마왕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의 지진 소식에서 ‘센다이’라는 지명을 듣고 처음 떠올린 생각은 “어, 그곳, 마왕에 나왔던…”이었다. 내게 센다이는 그런 곳이었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도시, 도쿄를 떠나 자신이 사랑하는 이와테산과 가깝다는 이유로 살고 있는 곳.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다른 소설 “골든 슬럼버”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 그래서 언제나 궁금하던 곳이다.
  물론 소설에서 실존하는 도시는 그저 배경에 불과할 따름일지도 모른다. 물론 “마왕”에서도 그렇다. 작은 소도시로 자연과 교감할 수 있고 또 도시의 사람들 속에 묻힐 수 있는 곳. 조용한 작은 도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이야기.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가 애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당하고 광장에 시체가 공개되었을 때, 군중들은 그들에게 침 뱉고 조롱하며 그 시체를 거꾸로 매달았다.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혀 속옷이 훤히 다 보이게 되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즐거워하며 흥분했다. 그 때 한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게 해줬다. 준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공포심이나 주변 분위기에 지지 않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건 많은 사람들의 바람일 것이다. 나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내게 물어보았다. 나의 바람은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이지만, 현실의 나는 가능할지? 그런 극한 상황에 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지만 그것이 저런 상황에나 생각해야 하는 일일까?
 

  파시즘이란, 선동에 무비판적으로 동참하는 것일 게다. 때로는 그 주장에 동조하고, 때로는 무관심하며, 때로는 손해 볼까 다칠까 두려워하며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슈베르트 가곡 “마왕”에서처럼 별거 아니라 무시하는 사이에, 모르는 사이에 나를 사로잡아 소중한 것을 앗아간다. 파시즘은 거대한 힘이 되어 사회와 삶을 휘어잡는다. 지금의 사회를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거대한 신자유주의와 무한 경쟁이라는 선동, 주류라는 흐름에서 튀어나가지도 못하고 익사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리. 그 거친 물살은 한 개인이 어찌하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세어서 휩쓸리는 수밖에 없다지만, 그래도 형제는 그 흐름에 쓸려가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서. 겨우 그걸로 마왕과 맡서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공포심이나 주변의 분위기에 지고 싶지 않아. 형은……”
“형은 지지 않았어. 달아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나도 지고 싶지 않아.”
“무진장 큰 규모의 홍수가 났을 때, 그래도 나는 물에 휩쓸려가지 않고 언제까지고 꿈쩍도 않고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
― 315쪽

  이번 일본 지진과 해일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살아계신 분들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합니다. ―1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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