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생은 행운과 불운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지독히 운이 좋은 점 중의 하나가 밝은 눈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붙어 산 지가 20년이 훨씬 넘었고, 주변에 읽고 있는 책이 없었던 경우가 거의 없이 30년 이상을 보냈는데도 지난주 안과에서 측정한 내 시력은 양쪽 모두 1.0이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읽을 때 초점이 흐려져서 활자를 읽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설마 내 눈에 이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연히 독서용 안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안경원에 가보기로 했다. 눈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은 아니고 뭔가 책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아이템 인줄로만 알았다. 마치 책갈피라든가 독서대처럼 사용자의 건강과는 상관없는 독서가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물건인 것으로 생각했다. 


평생 안경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은 묘하게 안경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심하게 말하면 저렴한 패션 아이템(인터넷 쇼핑몰을 보니 독서용 안경은 2만 원이 채 되지 않더라)이나 하나 추가하자고 재미 삼아 난생 처음  고객으로 안경원에 들렀다. 동네 안경원이라고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내 눈의 건강함을 자랑할 기회 따위는 주지 않았다. 대뜸 멋지게 생긴 기계에 나를 앉히고 들여다 보란다.


 자신만만하게 안경사가 시키는 대로 보이는 대로 대답을 했다. 안경사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에서 나는 내 장래를 읽을 수 있었다. 그 표정은 신규 고객을 확보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근엄하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면서 안경사는 피고석에 앉아서 처분을 기다리는 나에게 판결을 내렸다.


“네, 노안이 오셨군요. 정도를 보아하니 대략 1년 정도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쩐지 현미경처럼 생긴 물건이 심상치 않더니 정확하게 내가 책을 읽을 때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알려주고 있었다. 현대 기술은 정말 놀랍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쪽 눈을 가리고 검사하는 시력과 노안은 별개의 사안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마치 죽을병이라도 선고받은 것처럼 안경사에게 ‘치료할 방법이 없느냐’고 몇 번이나 캐물었는데도 안경사는 특별한 치료법은 없고 갈수록 악화할 뿐이고 2년 뒤에 도수가 더 높은 렌즈로 교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동안 홀수 해에 휴대폰을 교체해왔으니 내 돋보기 렌즈 교체 주기는 헛갈리지 않겠다)안경원의 진짜 고객이 된 나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안경테를 고르기 시작했다. 범죄자가 자기가 찰 수갑을 고를 수 있다면 이런 기분이겠다. 


뜻밖에 고객을 확보한 안경사는 승리자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위로의 덕담을 던져주었다. “그래도 먼 곳을 보는 시력은 정말 좋으시네요” 물론 그 와중에 나한테 잘 어울리는 테를 고르고 또 고르긴 했다어쨌든 들어갈 때는 한가한 쇼핑객이었는데 나올 때는 노안을 앓는 환자가 되었다. 다음날 가족들과 외출을 하는 길에 내 안경이 완성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심 지금껏 겪지 못한 신문물의 성능이 궁금했다. 마침 이웃 동네 구미의 핫 플레이스로 소문난 삼일 문고를 가볼 셈이었는데 좋은 우연이었다.


 다만 딸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바람에 신문물의 성능 확인은 약간 뒤로 미뤄져야 했다. 식사하고 무려 3km의 산책 그리고 커피와 디저트를 먹고 나서야 구미 삼일문고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내 안경을 닦고 또 닦았다. 안경 인생의 첫걸음 아닌가? 그 첫 경험을 내가 가고 싶었던 서점에서 하게 된다니 설렌 일이다.

 


들어가자마자 빨리 안경을 끼고 책이 어떻게 보이나 허기에 찬 사자처럼 서점 안에 있는 아무 책이나 집어 들려고 덤비는데 내 눈에 금방 띈 것이 내 책 <독서 만담>이라니.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자세히 보니 ‘시민의 서가’라고 해서 구미 시민 독자가 추천한 책을 전시하는 모양이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재미난 일이다.



삼일문고는 아늑하고 따뜻한 서점이다. 사실 개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와 보긴 했다. 그때는 그냥 서점이었는데 지금은 문화공간이 되어 있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참고서를 팔지 않는 단행본 서점은 그 자체로 존재가치가 대단하다. 더구나 삼일문고는 작은 동네 서점이 아니고 강연 공간까지 겸비한 중형 서점이다. 공단과 유흥으로 유명한 구미에 이런 서점이 생겼다는 자체로 놀랍고 뿌듯한 일인데 그간 삼일문고에서 진행한 행사와 초청 강연 저자의 면면을 보면 교보문고 광화문 지점의 것이라고 해도 믿기는 정도다.



개인적으로 더욱 감탄한 것은 최근 내가 아껴가면서 읽은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의 저자 이지은 선생의 강연이 삼일 문고에서 진행되었다는 것. 내가 알기로 이지은 선생은 현재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분이다. 누구의 안목인지 모르겠다. 저절로 리스펙트하게 된다. 단지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대형 출판사의 저자를 무작정 초청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는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은 단지 책을 파는 장소만 다른 것으로 생각했는데 삼일문고를 보자니 새삼 오프라인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복합문화공간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하층의 강연장은 아예 책을 전시하지 않고 오로지 강연을 위한 공간으로 양보하고 있었고, 출판사의 요란한 광고 대신에 서점 자체에서 따로 책 소개를 하는 띄지를 선보인다. 고민을 적어내면 약(책)을 처방해준다. 



책과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방이자 놀이터가 바로 구미 삼일문고라는 생각을 한다. 내부 공간도 절묘하고 재미나게 배치하여 책장이 마치 숲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두막집 같은 느낌을 준다. 꼭 돋보기를 끼고 보지 않아도 삼일문고 책들은 또렷하게 보인다. 재미나고 따뜻한 곳이다. 구미 삼일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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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10-06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만담 좋은 책이죠. 맨 앞에 전시한 건 서점 측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요. 안경 쓰기 전에 한번 뵀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안경 쓰고 만나요. 저는 참고로 눈은 작아도 시력은 좋습니다

박균호 2019-10-06 21:40   좋아요 0 | URL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저는 퇴근하면 늘 한가합니다 ^^ 저도 눈은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돋보기를 쓰니까 너무 쾌적해서 우울해질려고 합니다.ㅎㅎㅎ
 
독서 주방 - 불과 칼 사이에서 따뜻한 책읽기
유재덕 지음 / 나무발전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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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무척 좋아하는 제자가 있다. 이 학생은 시험기간이 되면 읽던 책을 친구에게 맡겨두고선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돌려받지 않기로 맹세한단다. 그러니까 이 학생에게는 이런 식의 강제적인 자기 구속을 하지 않으면 너무 재미나서 읽기가 참기가 어려운 책이 있다는 것이다. 합법적인 칼잡이 즉 셰프인 유재덕 선생의 <독서 주방>이 내게는 그런 책이다. 지난 몇 년 전부터 신문 칼럼으로 연재된 유재덕 선생의 글을 일부러 읽지 않았더랬다. 


요리사는 어떻게 글을 쓰는지, 음식을 어떻게 글로 녹여 내리는지 궁금했지만 참았다. 이게 나만의 특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지면이든 모니터이든 내가 인식하고 싶지 않은 정보는 눈에 보이지만 뇌로는 인식되지 않게 하는 재주가 있다. 항상 칼럼제목과 필자 사진만 보고 지나쳤었다. 언젠가는 책으로 나올 것이니 책으로 한꺼번에 읽고 싶었다. 


과연 몇 년을 칼럼의 한 줄도 읽지 않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첫 쪽부터 긴장감과 절제미가 넘치는 글이 이어지는데 숨을 죽여가면서 읽게 된다. 음식 재료를 맛을 보고 알아내는 과정일 뿐인데 마치 거대한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이 넘친다. 요리로 일가를 이룬 분인데 글 솜씨마저 이렇게 좋으니 자괴감이 생긴다. <독서 주방>을 읽다보면 역시 글쓰기는 재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명색이 책을 7권을 낸 바 있어서 강제적인 글쓰기 훈련을 오랫동안 한 나보다 글이 훨씬 좋다. 


읽어갈수록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유재덕 선생의 글 솜씨의 원천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솟구친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요리사답게 식습관을 기준으로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시장 통 유세를 다니는 영상을 찾아서 음식을 보는 시선, 그것을 집어드는 손 모양, 입에 넣어 씹고 삼킬 때의 표정 등을 평가 재료로 삼은 모양이다. 


먹는 방법으로 품성을 환히 볼 수 있었다는데 ‘거친 음식을 드시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품위 있던 바로 그분’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유재덕 선생의 통찰력과 글쓰기에 대한 천재성을 발견하게 된다.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표현하지만 그 정답은 누가 봐도 명확하게 알 수 있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품위 있게 풀어내는 솜씨라니.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사는 미슐렝의 별이 주렁주렁 달린 최고급 레스토랑의 주방장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명의 철학을 위해 자신의 부엌에서 날마다 음식을 만드는 주부들이다!’


<독서 주방>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읽은 구절이다. <독서 주방> 북콘서트에서 유재덕 세프의 딸아이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해서 참석자들을 감동시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니까 유재덕 셰프는 성공한 전문가라기보다는 존경받는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 존경은 사회적인 성공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가족을 아끼는 지극한 정성과 사랑덕분이라는 것을 그의 글 몇 줄만 읽어도 알겠다.


술을 마시지 않는 아내, 너무 어려서 술을 마실 수 없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술에 취하면 안 되니까 집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다는 구절을 읽고 내가 얼마나 내 가족에게 미개했는지 실감했다. 세상에 이토록 따뜻하고 자상한 가장이라니.


 유재덕 셰프의 직업적 성공은 위대한 재능 덕분이 아니고(심지어 그는 조리가 아닌 식품공학을 전공한 이방인 이었다) 겸손하고 노력하는 마음 덕분인 것도 알겠다. <독서 주방>을 읽다보니 유재덕 셰프야말로 독서를 가장 실용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다.


주방에서 일이 꼬이거나 심지어 치매로 고생하는 어머니 때문에 슬플 때도 그가 해답을 구하고 위안을 구하는 것은 요리에 관한 책이었고 책은 그에게 해답과 위안을 주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재덕 셰프가 나보다 훨씬 글을 잘 쓰는 이유를 알겠다. 요리를 하는 과정은 글쓰기의 그것과 닮았다. 좋은 음식 재료(글쓰기 재료)를 준비한 다음 차례를 잘 지켜서 진행을 하며 음식이 다 되면 맛을 보고(퇴고) 간을 맞추지 않는가 말이다. 요리사로서 경력이 20년이 넘었으니 겨우 10년 경력이 채 되지 않은 나보다 윗길에 있는 것은 당연하다.


유재덕 셰프가 말하길 음식은 생의 이미지 그 자체이기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던 음식을 해놓으면 잠시나마 그 분이 본인 곁에 온다고 한다. 내 어머니는 종부로서 평생 떡을 만드셨는데 그래도 떡을 가장 좋아하셨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땐 이젠 떡을 내 곁에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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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개좋음
서민 지음 / 골든타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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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내 어머니는 새벽녘에 인적이 드문 곳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항상 그러하듯이 내 어머니를 따라다니던 개는 맹렬이 어머니 주변을 맴돌 면서 짖었고 마침내 이웃 주민들이 어머니를 발견했다.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비록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는 못하셨지만 17년을 더 사시다가 올해 별세하셨다. 그 당시 내 어머니가 몸 쓸 병으로 쓰러지신 것도 가슴 아프고 원통할 일이었지만 늘 어머니와 함께 했으며 어머니의 목숨을 구한 그 강아지가 더 이상 주인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된 사실도 적잖이 괴로운 일이었다.


그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까지 얼마나 주인이 보고 싶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반대로 어머니가 올해 돌아가셨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지만 어머니가 다른 세상에서 17년 전에 헤어졌던 반려 견을 다시 만나 정답게 지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 어찌 보면 헛된 상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나마 어머니에게 반려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상상을 하고 잠시나마 미소를 짓게 되는 기회라도 주어진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새벽의 일을 계기로 각성을 해서 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것은 아니다. 오직 주인만 바라보며 주인의 사랑만을 먹고 자라는 개가 자랑스럽지 않기는 힘들지 않은가. 


<서민의 개좋음>은 잘 지은 제목이다. 어떤 의도로 지은 제목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좋음’이란 말은 내게는 중의적으로 읽힌다. 요새 아이들이 ‘개맛있다(참 맛있어)’라든가 ‘개싫어(매우 싫어)’라는 말을 하고 적잖이 거부감이 있었었다. 개라는 사랑스러운 동물을 조금 부정적인 접두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만이었다. 그런데 ‘개’를 사전에서 찾아봤더니 ‘정도가 심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사용가능한 표준말이 아닌가.


그러니까 ‘개싫어’라는 말이 아주 비속어는 아닌 셈이다. 어쨌든 <서민의 개좋음>은 개가 좋다는 의미로 쓴 것 같은데 ‘개가 무척 좋다’라는 의미가 연상되기도 한다. 일전에 내 장서표를 만들 때 판화가가 나를 상징하는 동물과 식물하나를 알려달라고 했을 때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개와 백일홍(할아버지 산소에 피어나는 꽃이다)을 선택했었다. 


그런데도 나는 개를 키우지 않는다. 아무래도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미용실을 예약하고 시간을 내서 들리는 것도 귀찮아하는 내가 어떻게 반려견을 제대로 관리하겠는가. 더구나 나는 지난 17년 동안 어머니 병구완을 하면서 걱정을 하고 마음을 졸이면서 살다가 결국엔 어머니를 다른 세상으로 보냈지 않는가. 나에게 반려견이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지만 아프고 병들고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마주할 슬픔이 두렵다. 


<서민의 개좋음>은 반려견을 입양할지를 두고 고민하거나 이미 반려견을 가지고 있는 모두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2017년을 기준으로 매년 버려지는 유기견이 8만 마리라고 한다. 개를 학대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견주들이다. 반려견을 버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개를 단순히 비용이 저렴한 경보장치로 생각하고 무거운 쇠사슬로 평생 동안 묶어두는 사람도 개를 학대하는 사람들이다.


<서민의 개좋음>을 개를 키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꼭 읽어서 개를 키우기 위해서 필요한 자격, 조건, 마음가짐을 알았으면 좋겠다. <서민의 개좋음>을 이미 개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서 개을 위해서 해주어야할 주인으로서의 도리와 의미를 알았으면 좋겠다.

서민 선생이 말하는 개를 키울 자격은 이렇다. 첫 째 식구 모두가 개를 좋아해야 한다. 나처럼 개에 대해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아내가 있는 집은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 반려견은 주인에게 사랑 받고 싶어서 꼬리를 흔들며 다가가는데 주인이 무서워하며 뒷걸음하면 개가 느끼는 혼란은 상상을 초월 할 테니까 말이다. 


둘 째 무슨 일이 있어도 개를 책임져야 한다. 개를 그냥 살아 숨 쉬는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별 생각 없이 입양했다가 그 귀여운 동물이 침대나 아끼는 옷에 똥을 싸기도 하며, 아프면 큰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반려견을 버리는 사람이 많다. 반려견의 생로병사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함께 해야 견주가 될 자격이 있다.


셋째 개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단순히 외롭다고 개를 입양해서는 안 된다. 개가 당신이 출근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린다고 생각해보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퇴근하는 싱글족들이 개를 키워서는 안 되는 이유다. 


넷째 개를 기울만큼 충분한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 최소 오만 원 내외의 미용비를 시작으로 개 한 마리를 키우는 데는 많은 돈이 든다. 개 치료비로 50만원을 기꺼이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개를 키울 자격이 있다.


반려견과 함께 하면서 해주어야 하고, 해주면 좋은 것들은 <서민의 개좋음>에 하도 많아서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서민 선생은 과연 대한민국 1% 개빠라는 것이 실감된다. 서민 선생은 <서민의 개좋음>의 차별성을 개를 키우는 사람이나 키우려는 계획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데 있다고 밝혔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물론 다른 매체나 책에서 전혀 보고 듣지 못한 ‘슬기로운 견주 생활’에 대한 노하우가 많기도 하지만 서민 선생 특유의 유머스러운 문체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책의 중간 중간에 유머가 마치 지뢰처럼 숨겨져 있어서 방심을 하고 읽다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리는 바람에 입안에 있던 과자 부스러기가 분출되는 불상사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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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9-2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선생님 흑흑흑. 기사도 쓰셨던데 리뷰까지 이렇게 써주시다니, 이 은혜를 뭘로 갚아야 할지, 오늘 하루종일 감사드린다는 말만 반복하네요. 이 책 때문에 선생님이 양치기소년으로 몰리는 게 아닐지 걱정됩니다 ㅠㅠ 흑흑. 복받으실 거예요. 제가 드릴 거니깐요

박균호 2019-09-25 21:55   좋아요 0 | URL
선생님, 지나치게 감동을 잘 하시는 것 아닙니까? ㅎ 재미있는 책을 읽고 느낌을 간단히 쓴 것 뿐인데 은혜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 개에 관한 유용한 정보도 좋았고, 선생님의 유머도 즐거웠는데 무엇보다 사모님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참 좋아보였어요. 부럽기도 했고요. 저희 부부는 늦게서야 여행이라는 취미로 주말 내내 같이 붙어 지냅니다. 좀 늦게서야, 다른 어떤 자리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즐기며 살아갑니다. 제 아내도 개를 좋아해서 함께 반려견을 키우면서 살아간다면 또 어떤 즐거움이 있었을까라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시덥잖은 서평에 친히 댓글을 달아주셔서 저야말로 영광이에요 ^^
 
물명고 - 상 연세 근대 동아시아 번역총서 10
유희 지음, 김형태 옮김 / 소명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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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속한 사회경제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까지 그가 사용하는 어휘가 말해준다. 나아가 같은 어휘라도 억양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용자에 대한 정보가 파악된다. 개인이 사용하는 어휘는 그가 살아가는 경로와 경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한 사람의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통찰력이 넘친다. 또 지식인이나 작가는 이름 모를 꽃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이어야 말로 작가나 지식인이 우선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독서의 가장 큰 장애는 어휘력이며 독서의 가장 큰 이득도 어휘력이다. 모국어로 쓴 책이라도 난이도에 따라서 어휘력 부족으로 읽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또 글을 쓰다보면 아직 말문이 터지지 않은 아기처럼 그 물건을 칭하는 어휘를 알지 못해서 답답증이 폭발할 때가 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휘력에 목말라하는 이유다. 단기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어휘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사전만한 것이 없다.

 

글 솜씨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휘력에 감탄하게 되는 작가는 모두 사전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다. 국어사전, 유의어 사전, 어원사전은 어휘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고의 비책이다. 사전을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첫 쪽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사전의 특성대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거나 심심할 때 아무 쪽이나 펼쳐서 모르는 단어 위주로 읽으면 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희가 지은 어휘사전이자 일종의 백과사전인 <물명고>는 적어도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나 한국어를 좀 더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책이다. <물명고>는 순 우리말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 지어진 책이니 만큼 한자에 대한 이해도 길러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어의 상당수는 한자다. 한글세대는 한자어의 음만 익숙하지 한자어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영어공부만 해도 그렇다. 수업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듣는 문법 용어의 대부분은 한자다. 명사(名詞), 대명사(代名詞), 동사(動詞), 가정법(假定), 부정사() 등 한자 이름 자체는 그 쓰임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는데 한글세대인 학생들에게는 그 의미를 별도로 설명해줘야 한다. <물명고>는 우리 민족과 친숙한 사물의 우리말 이름과 함께 한자식 표기를 알려줌으로서 요즘 유행하는 통섭이나 학문 융합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또 사물의 다양한 우리말 유의어가 풍부한 보물선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에 속하는 내가 예전에 리영희 선생이 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익과 좌익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는 취지의 책답게 좋은 비유가 사용된 책 제목이라고 생각했더랬다. <물명고>를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우익과 좌익에 사용된 익()이 날개라는 뜻이라니. 그러니까 우익과 좌익이라는 말 자체가 오른쪽 날개, 왼쪽 날개라는 뜻이다.

 

()이 제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어린 시절 책을 읽다가 연미복(燕尾服)이 나왔을 때 어떻게 생긴 옷인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고 그림을 보고서야 겨우 그 생김새를 짐작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연미복은 제비꼬리처럼 생긴 남자 예복이었던 것이다. 또 흥부 놀부의 성이 연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 제비를 연상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하게 된다.

 

386세대이면서 소, 돼지, 닭을 직접 사육하고 도살해서 음식으로 먹었던 시골 출신인 나도 닭이라는 동물 이름과 함께 연상시킬 수 있는 어휘가 치킨말고 그다지 없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나만 해도 살아온 인생의 경험과 읽은 책으로 알게 된 그 동물의 특성이나 연관된 역사는 조금 알지만 닭이나 돼지 같은 우리와 친숙한 동물조차 그와 관련된 어휘는 빈곤하다.

 

<물명고>에는 닭을 단지 치킨을 생산하기 위한 재료로 쓰기 위해서 콩나물시루처럼 구겨 넣어서 상품으로 사육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어휘의 잔치가 펼쳐져 있었다. 오직 치킨으로만 닭을 만나는 요즘 사람들이 아닌 닭과 함께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닭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다양한 명칭이 있었다. 치킨이 아닌 닭이라는 가축이 생생이 살아 있었다. 우선 촉야, 벽치, 추후자, 대관랑, 구칠타, 찬리채가 모두 닭의 다른 이름이다.

 

힘이 매우 센 닭, 늙은 닭이 난 병아리, 쑥처럼 흐트러져서 어지럽게 된 머리를 가진 닭, 수염이 달린 닭, 얼룩점이 박힌 닭을 칭하는 명칭이 따로 있었고 닭이 살찌고 울음소리가 긴 것, 닭이 날개를 치는 소리, 닭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소리, 많은 닭들이 밤에 우는 것, 어둑어둑한 무렵에 혼자 우는 것, 닭을 몰아내는 소리를 구분하고 이른 뜻하는 어휘가 따로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마음껏 계란을 먹고 제사를 모실 때면 어김없이 한 마리씩 잡아서 제사상에 올릴 만큼 닭을 여러 마리 키웠던 집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닭이 올라 앉아 있는 곳을 일컬어 라고 하고, 앍을 낳거나 깃들이기 위해서 둥글게 만든 집을 둥우리라고 한다는 것을 <물명고>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닭이 친숙한 존재였고 그와 관련된 어휘와 표현이 발달된 만큼 닭과 관련된 어휘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시대상도 담겨 있다. 가령 수탉의 다리 뒤쪽에 나 있는 뾰족하고 딱딱한 돌출물을 며느리발톱이라고 한다. 보기에도 마치 혹처럼 생겨서 좋지 않고, 특별한 기능도 없는 이 부위를 왜 하필 며느리발톱이라고 불렀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존여비사상과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찮은 존재를 여성에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고생을 하는 존재라는 의미로도 생각될 수 있다.

 

며느리발톱은 사실 닭뿐만 아니라 말이나 소 그리고 개도 가지고 있는데 인터넷에 며느리발톱을 검색하면 강아지 발에 붙어 있는 며느리발톱에 관한 고민이나 그 처치 방법에 관한 게시물이 대다수다. 확실히 어휘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반려동물로 개를 많이 키우는 시대니 당연한 일이겠다. 한편 닭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소리를 한음이라고 하는데 실제 능력이나 됨됨이에 비해서 명성이 지나치게 높은 상황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닭은 날 수가 없는 가축인데 분수에 맞지 않게 하늘을 나는 새처럼 비행하려는 상황을 비꼬는 말이다.

 

또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우는 닭이나 닭이 날이 샐 무렵에 너무 시끄럽게 우는 것을 황계라고 불렀는데 사람 입장에서는 모두 성가신 일이라 전쟁으로 인한 난리가 날 징조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물명고>가 알려주는 돼지에 관한 어휘도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우선 어진백, 대란왕, 오장군, 흑면랑, 장훼장군, 발하, (), 희가 모두 돼지와 같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서유기>에 등장하는 돼지 머리를 가진 인물의 성이 저()인 이유를 알겠다. 참고로 저()는 성이고 팔계가 삼장법사가 지어준 이름이다. 새끼를 밴 돼지, 거세한 돼지, 태어난 지 넉 달 된 돼지, 여섯 달 된 돼지, 쌍둥이 돼지, 세쌍둥이 돼지, 세 살 된 돼지, 머리가 짧고 살갗이 쭈글쭈글한 돼지를 따로 구분해서 부르는 어휘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돼지가 성내는 소리, 놀라는 소리, 새끼 돼지의 소리, 숨 쉬는 소리, 아파하는 소리, 돼지를 부르는 소리(루루로로)를 뜻하는 표현이 따로 있었고 돼지 밥, 돼지 발자국, 돼지가 잠자는 곳, 돼지 똥, 돼지 몸에 사는 이, 돼지를 매는 말뚝을 일컫는 말이 있었다. 돼지라고 하면 삼겹살만 생각하게 되는 요즘 시대에는 쓰일 수가 없는 말들이 되었다. 현대인들이 돼지가 아파하는 소리를 한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을까. 돼지를 부를 일도 없고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들조차 돼지를 매는 말뚝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요즘에는 돼지 밥이든 소 밥이든 닭이 먹는 밥이든 모두 사료일 뿐이다.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의 종류는 늘었고 풍부해졌지만 돼지에 관련된 어휘는 거의 다 없어졌다는 사실 만으로 돼지는 그저 집안에 함께 사는 생명체가 아니고 먹거리 상품을 생산하는 공산품에 지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물명고>와 같은 고전을 읽다보면 우리가 요즘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나 단어의 어원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목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 즉 물레는 목화씨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문익점의 손자 문래의 이름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명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 낭패(狼狽)하다에 대한 어원 이야기가 나온다. 낭패하다는 원하는 일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기대한 일이 어긋나는 것을 뜻한다. 낭은 뒷다리가 매우 짧고 패는 앞다리가 매우 짧은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과 패는 모두 한쪽 다리가 짧으니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협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낭과 패가 움직일 때는 낭이 패를 업고 낭의 앞다리와 패의 뒷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니 낭과 패는 서로를 잃어버린다면 극심한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낭패하다는 이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거실에 함께 있었다. 나는 드라마와 <물명고>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아내는 헬스용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내가 책을 읽다가 두루미가 학의 다른 이름인 것을 새삼 알고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다른 새가 아니냐고 대답했다. 모처럼 아내에게 잘난 척을 하고 뿌듯해 하고 있었는데 잠시 뒤에 아내가 내가 며칠 째 넋을 잃고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내 인생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나의 아저씨>의 여자 주인공 이지안을 괴롭히는 사채업자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는다. 물론 금시초문이다. 아내는 나처럼 책을 읽고 얻은 지식이 아니고 순전히 눈썰미로 스스로 찾아 낸 것이다. 나와 아내는 경로와 습득 방법은 다르지만 서로에게 취약한 지식을 채워주는 관계가 아닌가 싶다.

 

피자를 먹을 때는 아내는 토핑을 좋아하고 나는 아내가 여차하면 남기는 테두리 빵을 좋아한다. 치킨을 먹을 때는 아내는 가슴살을 나는 날개와 목살을 좋아한다. 낭패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일반적으로 일이 틀어지고 난감한 상황을 떠올리기 쉬운데 낭과 패는 서로 붙어 있고 협조하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조화를 이룬다. 아내와 내가 취향과 성향이 약간 다른 것이 어쩌면 낭과 패처럼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관계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지 재미난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가장 정겨운 것은 개와 관련된 말들이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개가 등장하면 이름이 바둑이인 경우가 많았는데 털에 검은 점과 흰 점이 마치 바둑알처럼 섞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개 이름이 바둑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둑알을 닮았다고 해서 바둑이였던 것이다. 바독이, 바두기가 같은 말이다.

 

다리가 짧고 목이 작은 개를 발바리라고 한다. 어린 시절 시골 어른들이 덩치가 작은 개를 가리켜 발바리라고 불러서 나도 그렇게 불렀는데 그냥 시골 동네에서만 통하는 극본이 없는 사투리 인줄 알았다. 발바리라는 말이 이미 조선시대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유서 깊은 말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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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9-16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이런 책이 있었군요. 저도 읽고 싶은데 책 값이 장난 아니네요.
이제 이달의 당선작 적립금 욕심 안 낼려고 했는데
적립금 모아서 이책 사 봐야할 것 같습니다.ㅋㅋ

박균호 2019-09-16 20:23   좋아요 0 | URL
이건 그냥 책이 아니고 거의 문화재 같은 느낌이에요 ^^
 
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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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소설이 나왔다는 광고를 보았을 때 ‘이건 빨리 사야 해’를 외치며 순식간에 주문했다. <새의 선물>의 여운과 감동은 이토록 진했다.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은 산더미였지만 은희경의 신작 소설 앞에서는 뒷전이었다.


 이 소설은 화자가 대학의 기숙사 시절 경험한 추억과 친구들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게 다였다. 은희경 작가가 연배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아줌마들이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만나서 떡볶이를 먹으면서 옛날이야기를 한다면 딱 이 소설의 내용이 되겠다. 


그 시절의 무시무시했던 군사정권의 압제도 소설 속의 여자들에게는 그냥 사귀는 남자와 관련된 일부분에 불과하더라. 해맑은 여대생의 천진난만 하고 케케묵고 재미도 감동도 공감도 없는 추억담 모음집을 왜 내가 읽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짜증을 혼자서 내다가 읽다 말은 이 소설을 재활용 통에 버려버렸다. 다 떠나서 아무 재미가 없더라. 이제 은희경이라는 이름만으로 그의 책을 사는 읽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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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9-09-0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선생님, 안녕하셨어요. 글고보니 저도 언젠가부터 은희경 책을 안사고 있네요. 그렇게 손절한 작가들이 여럿입니다. 알랭 드 보통, 아멜리 노통브, 베르베르 등등... 끌림도 갑자기 찾아오지만, 이별은 서서히 이루어지더군요. 아마 박선생님도 이 책 한권으로 손절하시진 않으셨을 겁니다. 이상한데?---> 이번에도 이상한데?---> 아 이제 헤어질 때가 됐구나, 뭐 이런 단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좋은 작가가 많고 또 박선생님도 그 중 하나이니, 너무 슬퍼마십시오

박균호 2019-09-07 17:03   좋아요 1 | URL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근황은 서재 글을 통해서 잘 보고 있었어요.^^ 이문열, 황석영, 조정래, 김훈도 이젠 안 읽게 되더라구요. 김훈의 최근 책을 보니 ‘내가 젊었을 때는 이랬다’는 글이 많더라구요. 그냥 작가로서의 창의력과 신선함이 사라진 신호로 느껴졌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은희경의 이번 책이 그랬고요. 그나저나 선생님은 항상 새롭고 신선한 책을 내셔서 존경스러워요...댓글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주 글 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저를 좋은 작가로 칭찬해주신거 캡쳐해서 가보로 남기고 싶지만 과찬이시고 격려의 말씀으로 여기겠습니다. 이 또한 고맙습니다....

레삭매냐 2019-09-07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서평단에 똑 떨어지는 바람에
좀 그랬었는데...

나중에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다 읽어야
하는 싶었는데 패스해야겠군요.

항상 책 읽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니
말이죠. 재미가 없다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박균호 2019-09-07 21:05   좋아요 0 | URL
네 읽는 시간이 아까운 그런 책이었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