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은 노래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7
도리스 레싱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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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는 영어권 작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white'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왠지 모를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드라마에서 보던 다인종이 한데 어우러져 서로 교감하는 장면은 사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장면이기에 반드시 도식처럼 삽입된 것이라는 감정적인 해석도 함께 왔다. 아직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다 같이 서로를 존중해 주기에는 너무나 욕심이 많다. 사는 일에 욕심이 게재되지 않고 생존이 영위되는 일이 가능할까? 다 같이 고결하고 다 같이 서로의 눈을 맞추며 함께 걸어가는 현실에서 삶이라는 이야기가 진행될 수는 없는 것일까? 미국의 대통령은 단지 태어날 때의 피부 색깔 하나로 자신들의 특권을 인정해 달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짐승 같은 소리라고 일갈하는 대신 비난의 초점을 교묘하게 이동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면에 있는 또 다른 욕망과 편견을 드러냈다.


사회적 약자의 프레임에는 수많은 판단 기준이 혼재한다. 경제,성별, 인종, 가치관, 연령. 그러니 결국 그 누구라도 완벽한 승자가 되기란 절대적 패배자가 되기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항상 언제나 처절하게 지는 사람들이 한켠에 있다. 그럼에도 언제나 역겹게 끈질기게 이겨대는 그들이 있다. 욕심쟁이를 욕하는 이야기는 쉽다. 하지만 항상 지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조심스럽고 어렵기 그지없다.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는 그러한 지는 자들에 대한 성찰이다. 지고 마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다. 그리고 연가다. 아름답고 처절하기 그지없는 절창에 한동안 아연해졌다.


남아프리카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백인 여성인 메리는 자신이 속한 사회적 계층, 인종에 대하여 큰 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운이 지독히도 나쁜 농장주 리처드를 만나 늦게 결혼하기 전까지 그녀는 불행하고 힘든 유년이었지만 비교적 순탄한 처녀 시절을 누린다.  그러나 흑인노예들의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농장주의 아내가 되며 그녀는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 채 상황의 안온하고 안전한 상황에서 누렸던 자신의 삶의 연약한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며 처음으로 진지하게 자신의 인종을 의식하고 자신이 부리는 흑인 노예들에 감정적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외부와 단절된 시골에 갇혀 흑인 노예들에게 자신의 무력감을 해소하며 말 그래도 인간으로서도 여성으로서도 점점 나빠져 간다. 메리에게 아니 그 나라의 그 사회의 그 시간에서의 백인들에게 이미 자신들이 오기 전에 그 땅에서 살고 있었던 흑인인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과는 도저히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메리는 전형적인 백인 여성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노예를 무시하고 괴롭히고 수족처럼 부리려 드는 모습은 지금 여기에서 그 모습을 상상하는 우리를 심히 역겹게 하지만 그녀를 전적으로 미워할 수는 없는 그 무엇이 있다. 도리스 레싱은 메리를 적나라하게 그리지만 메리 안의 '그 무엇'의 이물감이 독자를 밀어내지 않도록 주도면밀하게 그녀의 모습을 조종한다. 그녀의 살갗에는 우리의 못난 모습이 새겨져 있어 그러한 것일까? 과연 그러한 사회적 압력과 제도하에서 그것에 반역할 용기와 신념이 시대와 사회의 프레임 안에 개인을 가두었을 때 쉬운 일일까?


그녀가 결혼 제도 안에서 자본주의의 열패 안에서 추락해 가며 또다른 의미에서의 약자를 하대하고 괴롭히는 모습은 분명 낯선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복합성과 모순은 생의 의지 안에 잠복되어 있어 언제 그 추한 외형을 드러낼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어제는 거액을 기부하고 오늘은 식당이나 가게의 직원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는 모순은 바로 한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


메리가 흑인 노예 모세에게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이끌림과 거부감은 도리스 레싱의 모호하지만 아름다운 언어로 상당 부분 해석을 독자에게 맡겨버리고 만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메리가 모세를 증오했는지 사랑했는지 아니면 그 둘다였는지를. 비참한 최후 앞에서 자신을 결박해버린 그 처참한 배경마처 아름답게 관조해버리는 그녀의 시선은 그 자체로 모순의 결정체다. 이도 저도 아니지만 그 자체로 그게 삶이 되어버리는...삶은 언제나 언어 저 너머까지 날아가 버려 도저히 말로써 담아낼 수 없다. 언제나 저기까지 언어로 밀고 나가려하지만 그 언어의 마침표는 삶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만다.


노예 모세가 자신을 인간으로 취급해 달라는 그 당연한 요구로 그녀를 굴복시켜버렸듯 메리 또한 남편과 사회에 그 자신을 결혼 제도 안의 양순한 아내가 아닌 욕망과 꿈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해달라는 그 기본적이고 쉬워보이지만 한없이 어려운 요구를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떨구어 놓고 가버리고 만다.


그냥 머물러 있는 것. 그러다 그냥 쓸려가는 것. 메리의 슬픈 삶이 모세의 비참한 최후와 오버랩되어 잔상이 오래도록 남는 이야기에 오래도록 서성거리게 된다. 뒷맛이 씁쓸하면서도 장대한 이야기에 압도당하게 된다. 과연 오늘날은 메리의 시대에서 얼마만큼 진보되었는 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교양과 사회적 가면으로 위장하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억압을 자행하고 자행당하며 오늘을 소비하고 있는 것인지를 성찰하지 않고는 반드시 어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지 않을까. 나도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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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7-08-21 0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 너무 반가와요~~~~부비부비! 저 나비, 비비아롬나비모리입니다. 제가 모처럼 온 건데 어째 블랑카 님이 그렇게 된 듯한??ㅎㅎㅎ

암튼 이 책은 못 읽겠네요. 너무 화나고 슬프고 그럴까봐. 요즘 언급하신대로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인종주의에 더 불을 지피고 있는 현실이라~~~ㅠㅠ 뭐 세상이 이렇게 거꾸로도 돌아가는 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휴

blanca 2017-08-22 02:43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나비님 생각했었는데 왜 이리 뜸하셨어요! 막내도 많이 컸지요? 저도 요즘은 좀 뜸하게 됩니다. 시간이 참 빠르죠? 알라딘에 온 게 어언 십 년 전이라 생각하니...참 기분이 묘해요. 이 책은 강력 추천합니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첫작품이라네요. 원서로 읽으면 더 절창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