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조앤 디디온은 갑작스럽게 외동딸과 남편을 잃게 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감기로부터 시작된 딸의 긴 투병 과정과 딸을 면회하고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며 여느날 같은 하루의 마무리를 배반한 남편의 죽음은 잔인하게 오버랩된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어느 가을의 거리에 불현듯 죽음을 떠올렸던 나날을 복기한다. 죽음을 연상시킨 것은 의외로 빛이었다. 눈부신 햇살은 설명하기 힘든 종말에 대한 예감을 상기시킨다. 영원히 이 아름다운 날들을 새털처럼 쌓아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상실과 쇠락의 나날은 소설처럼 전조나 복선의 예행 연습을 시키지 않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비집고 들어오는 운명의 전환은 그렇게 유한을 상기시킨다. 아무렇지도 않은 나날들이 어느새 무너지는 시점에 선 그녀의 생의 그 허룩한 지점에 대한 묘사는 절절하게 이미 예고된 우리의 상실들을 환기한다. 당연한데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들은 나간 자리에서 그 무게를 드리운다.






















헤밍웨이는 <위대한 개츠비>의 스캇 피츠제럴드와 절친이었다. 아내를 버리고 정부에게 가려는 그를 말린 것도 피츠제럴드였다. 두 여자 사이의 방황은 반드시 둘 다를 잃게 된다고 젤다 옆에 있었던 피츠제럴드는 격정에 눈이 먼 친구에게 경고한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저녁 둘은 재회한다. 황금의 시대 천재 작가로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던 둘은 이제 아픈 아내와 창작열의 고갈과 흘러버린 세월의 짐을 저마다 지고 만난다. 둘은 서로가 맞았다,고 이야기한다. 헤밍웨이는 아내를 버리려던 자신을 붙잡았던 피츠제럴드가 스캇은 결혼 생활이 쉽지 않음을 상기시킨 헤밍웨이가 옳았다고. 청춘과 너무 일찍 주어진 명성과 돈이 그 둘의 인생을 어떻게 저당 잡았는지를 깨달은 위대한 전설이 될 작가 둘은 스스로를 루저라고 폄하한다. 우리는 아직도 그들을 읽고 쓰는데 늙어버린 그들은 그들에게 사후에 주어질 이런 미래를 알지 못한다. 이것은 일종의 불멸에 대한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다수가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 죽어서도 기억되는 일. 찬란하기도 했고 비천하기도 했던 나날들이지만 결국 남은 것들에 대한 찬탄.



















여기도 봄이다. 여기도 사람이 산다. 죽어 없어질 것이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것들을 여전히 추구하고 자식을 낳고 키우고 그렇게 영원히 살 것처럼 별 일도 없는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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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4-26 14: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안 보이셔서 궁금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 거죠?^^

blanca 2017-04-27 02:48   좋아요 1 | URL
좀 뜸했죠? 스텔라님도 잘 지내시죠? 저도 잘 지내요. 독한 감기 걸려 한동안 엄청 고생했어요. 따뜻한 댓글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