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의 여동생과 나는 항상 비교대상이었다. 물론 내 동생이 거의 항상 압승이었다. 나는 동생을 질투했고 부러워했고 또 사랑했다. 그러니 우리의 친밀감은 항상 롤러코스터였다. 자매임에도 치고 받고 싸우기도 하고 같이 꼭 붙어 자며 마음 속, 머리 안의 모든 것을 다 펼쳐 보이고 공유하려 분투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외동딸을 꿈꿨다. 푸근하고 양보심 많은 장녀로 자라지 못하고 마음 자락이 넒은 여동생에게서 항상 많은 것을 받으며 자랐던 것 같다. 힘들거나 아플 때 그 아이는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을 나를 위해 내어 주기도 했다.

 

이랬으면서 일곱 살까지 집안의 첫손주로 사랑과 관심을 오래 독차지했던 딸아이에게 남동생이 태어나자 나는 분홍공주가 동생을 사랑하고 베풀며 터울 많이 지는 누나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비교적 온순하고 양보심이 많아 보였던 그녀가 남동생이 돌이 되기 전까지는 비교적 양호한 모습을 보이다 누나가 아끼는 카드를 구기고 숙제를 망치고 누나의 피규어들을 모조리 입속에 넣어 굴리는 남동생의 모습에 격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동생의 아직 여물지도 않은 이마에 꿀밤을 먹이기도 한다. "누나니까 양보해. 누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나는 내가 그렇게도 듣기 싫어했던 진부한 이야기들을 다시 내 안에서 꺼내기 시작한다.

 

점점 아이는 더 말을 안 듣기 시작한다. 울음을 터뜨리고 동생에게 고함도 친다. 형제를 만들어 주는 게 결코 첫째를 위한 것만은 아님을 알았음에도 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외동딸을 꿈꿨던 나의 어린 시절은 벌써 저만치 물러가 있고 여덟 살의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들은 거의 성장한 어른 수준의 너그러움들이었다.

 

다시 꺼내든 책. 그녀가 지금 둘째 만했을 때 이 책을 엄마들과 함께 읽었던 기억. 그 때에는 육아를 책으로 하던 시기였고 뭐든 의욕에 넘쳤던 때.

 

 

 

 

 

 

 

 

 

 

 

 

 

 

저자는 백혈병으로 죽어가며 이 책은 고전이 될 것이라고 되뇌었다 한다. 고전이 시공간을 건너지르는 가치라면 나에게 이 책은 정말 위대한 고전이다. 아이가 하나였을 때 건너뛰었던 형제에 관련된 내용은 마치 나에게 하는 얘기 같았다. 내가 다시 돌아올 것임을 이 사람은 마치 알고 있었던 것같다.

 

그만큼 형제간의 질투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이 아이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것은 인격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성격을 왜곡한다. 질투는 고통스런 삶의 주제가 될 수 있다.

- p.246

 

나도 여동생을 아주 강렬하게 질투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엄마는 온순하고 예쁜 여동생을 나보다 훨씬 더 사랑한다,고 여겼다. 꿈을 꾸면 엄마는 내 동생을 업은 뒷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여섯 살 차이가 난다고 해서 그 질투의 양과 무게가 감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딸애는 아기 남동생이 젖을 먹고 넘어졌을 때 안아주는 모습을 보고 슬퍼했다. 자신이 넘어졌을 때에는 부주의하다고 야단친 나의 모습을 두고두고 서운해하고 슬퍼했다. 저자는 새 아기가 태어나면 아이는 분노와 적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한다. 동생이 생겨 좋다고 방방 뛰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현실이 아니다.  아이의 마음에서 부는 그 태풍을 부모는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은 나누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특별함을 가지고 길어 올려야 하는 것같다. 나는 아직 그런 점에서 멀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자기 치유서가 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극복하지 못했던 과제들은 반드시 미결된 그 모습 그대로 귀환한다. 아마 다 풀지 못하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지점을 응시하면 그 응시하는 순간 자체가 치유와 성장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읽는 육아서는 복기하는 나의 어린 시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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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4-10-24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는 아홉살, 다섯살의 조카아이 둘이 있어요. 큰조카아이가 ˝동생 못 생겼어. 미워. ˝ 라 하고 작은 조카아이가 ˝고모. 형아야는 데려오지 마. 데려오면 안 돼. 나만 고모랑 있어.˝ 라고 얘기할 때면 ˝아니야. 동생 자세히 보면 귀여워. ˝ 라고, 또는 ˝미안해. 형아야랑 약속했으니 형아야도 데려와야지. 형아야랑 놀면 안 심심하고 재미있어. ˝ 라고 대답해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라서 쩔쩔매는 제가 보여요. ㅠ_ㅠ 큰 아이에게도, 작은 아이에게도 어떻게도 해소될 수 없는 애정의 결핍 같은 게 느껴져서 마음이 아프고요. 가끔-_-; 안 싸우고 재미있게 노는 모습 보면 그래도 형제가 있으니 좋네. 라고 생각하는 건 어른들의 편리한 합리화 같기도 하고. ㅠ_ㅠ;;;;;
저는 엄마는 아니지만... 아이의 마음에서 부는 그 태풍을 부모는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무척 와닿네요. 어린 아이에게, 여전히 각각의 충분한 관심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너무 큰 이해와 참을성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슬퍼지지. ㅠ_ㅠ;;; (눈물을 닦으며 보관함에 넣습니다. ㅠ_ㅠ;;;;)

blanca 2014-10-25 18:05   좋아요 0 | URL
달밤님, 이렇게 조카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고모가 있다면 조카들이 형제로부터 느끼는 서운함, 아쉬움 들은 상당부분 치유가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했고 제 딸도 고모가 없어서 오롯이 제 몫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때로 벅차요. 형제가 있어 힘이 되고 위안이 되는 것은 머리랑 마음이 어느 정도 커야 또 상황이 되어야 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나 많은 신화들을 다복한 가정 위에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hnine 2014-10-2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생이 태어나고 첫째가 받는 충격과 스트레스에 대해 걱정하는 엄마에게 법륜 스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그걸 꼭 나쁘게만 볼건 아니라고요. 다만 좀 일찍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느라 좀 힘든 시기를 거친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요.
저는 아이가 하나라서 내 몸에서 나온 두 아이가 서로에게 느끼는 스트레스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그걸 느끼는 엄마 마음은 어떨까 헤아려보게 되어요.
<부모와 아이사이> 저 책은 웬만한 책은 읽고 나서 오래 가지고 있지 않고 처분하는 제가 아직도 옆에 끼고 있는 책 중 하나랍니다. 읽으면서 하도 밑줄을 죽죽 그어대서, 누구에게 줄 수도 없고 중고책으로 팔 수도 없어요 ^^

blanca 2014-10-25 18:07   좋아요 0 | URL
hine님, 맞아요. 형제로부터 느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따뜻함, 풍요가 아니라 상실감과 좌절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저도 <부모와 아이사이>는 아마 아이들이 장성할 때까지 가지고 가려 합니다. 참, <부모와 십대 사이>는 선물받았는데 아직 그때를 위해 남겨두고 읽지 않고 있습니다.ㅋㅋ

2014-10-24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0-25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