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박정태 옮김 / 이학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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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것 같다고, 서슴없이 쓴다. 그 모든 냉정하고 명철한 비관에도 불구하고 돌아보면 사르트르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오는 장수처럼, 이 명제는 끝내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체로 시지푸스와도 같은 운동을 계속 할 것이다.

 

세계의 지평을 인식하고 윤곽을 가늠하기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이 비록 우리 자신의 미소함을, 비루함을, 부자유를, 출구 없음을 처절하게 증명하는 일이 되더라도 이 무용한 탐구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희망 없이 나아가야 한다고, 그것만이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유지하는 일인 동시에 또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여전히 믿는다. 실존주의를 과연 한때의 유행이었다고, 사르트르를 철 지난 철학자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실존주의를 철학 사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실존주의는 그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준칙이며 행동 강령이다.  

 

쉽게 흥분하고 들썽대는 내 가벼운 천성 덕분에 책을 덮고 마음이 동해 모처럼 책장을 정리했다. 앙드레 지드, 키에르 케고르, 하이데거, 사르트르, 까뮈들을 이곳저곳에서 빼내어 양지바른 곳에 한데 모아두었다.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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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란 무엇인가
한병철 지음, 김남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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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가 말한 권력의 마지막 테크놀로지는 규율권력이다. 규율권력이란 '습관의 자동주의'이며, 표상과 기호의 게임(율법과 이성의 질서) 이전의 자동적 신체반응이다. 부르디외의 용어를 빌려오면 ‘아비투스의 내면화’. 일상성의 모습을 띤 권력. 이 최종적 권력은 우리의 신체를 형성하고 구조화하는, 상처가 아니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권력이다.

 

푸코가 말한 규율권력에 의해 우리는 비로소 최종적으로 우리로서의 모습이 가능해진다. 모습을 갖추는 것, 형태화는 곧 권력의 산출 활동이다. 푸코가 얘기한대로 권력에 의해 비로소 의미부여가 가능한, 자기인식이 가능한, 형태화가 가능한 우리는 결코 권력의 장(場)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적어도 사회학적으로는, 우리를 길들이고 가공하는 특정한 '주형틀'을 우리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떤 권력의 자장에 포섭될 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심각한 오독의 산물인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궁금하다. 우리의 운동이 궤도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는 궤도를 스스로 선택하는 문제는, 어쩌면 별개의 사안이 아닐까 하고. 즉, 우리는 기존의 권력의 공간으로부터 이탈하여 새로운 권력의 공간에 포섭되려는 일련의 모험을 꿈꿀 수는 없을까. 그리고 그러한 궤도 전환의 기적적 몸부림 속에서, 이탈에서 포섭까지의 과도기적 대변환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지 않을까. 푸코는 왜 변신하고 배반하는 주체, 이탈하는 여분의 주체, 기적을 일으키는 예외적인 주체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을까.

 

푸코에게는 논외의 대상이었지만, 변신과 배반과 이탈이 가능한 주체로서 신경증적 주체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매개수준이 높더라도, 아무리 다양하고 촘촘한 매개구조를 갖춘 시스템이라도, 그 안에는 그 모든 매개구조에 불만족을 느끼는, 끊임없이 대상 a를 의식하며 잃어버린 부족분에 과민반응하는, 자기 몰락의 두려움에 떠는, 매개 구조 속에서 자기 연속성이 파괴되었다고 끊임없이 히스테리를 부리는 신경증적 주체가 있다.

 

신경증자처럼 매개구조에 포섭되기 어려운 존재가 또 있을까. 신경증자처럼 굴복되지 않는, 이물질 같은 존재가 또 있을까. 신경증자처럼 정신의 외화과정에서 눈에 거슬리는 존재가 또 있을까. 그는 결코 '소화'되지 않는다. 철저히 자기 안에 갇혀있는, 흡사 갑각류와도 같은 신경증자는 세계를 쉽게 내면화하지도 않으며, 세계에 쉽게 내면화되지도 않는다. 그는 결코 화해하지도, 화해되지도 않는다. 그는 자꾸만 구멍을 의식하고, 구멍을 가리키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신경증적 주체는 시스템을 불안하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신경증적 주체에게도 권력의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미시적 개체의 권력 의지, 생명체로서의 의지, 자기 생장의 의지, 자기 확장의 의지를 간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예측불허의 상황을 낳는 결정적이고도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증적 주체의 생명체로서의 생장의지가 궁극에는 계의 오류를 불러일으켜 프로세스를 붕괴시킬 수 있다. 만약 그가 쉽게 배출해 버릴 수 없는, 중금속과도 같은 대단히 악질적인(?) 존재라면, 게다가 그 존재가 타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존재라면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신은 절대적인 자아 연속체를 세우고 그곳에 거주한다. 그곳에는 신이 자신을 상실할 만한 어떤 간극도, 틈새도 없다. 그 안에는 신이 그 자신이 아니게 할 근본적인 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신경증 환자"는 자신의 "작고 협소한 성"에 칩거하는 자일 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자기 자신이려고 하는 강박을 가진 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자면 헤겔의 '신'이나 '정신'은 이러한 신경증의 현상일 수도 있다. -p.110

 

무한한 존재로서의 신이야말로 전형적인 신경증자라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신은 완전체다. 그에게는 타자가 없으며 대상 a도 없다. 신경증자들이 끊임없이 신을 열망하는 까닭 역시 신이야말로 신경증자들의 '이상형'인 때문 아닐까. 물론, 이것이 신의 실체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무한한 권력자'로서의 신을 헤겔의 신으로 국한하면서, 헤겔과는 전혀 다른 신성(자신에게 회귀하려는 지향성이 없는 종교적 연속성, 타자를 향해 자아의 경계를 열어놓는 친절함)에 대해서도 동시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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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
버트란트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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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루하고 따분한 논리실증주의자의 행복론이 때로는 가장 명쾌한 지혜의 말씀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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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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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진리, 진보, 도덕, 휴머니즘, 이데올로기 등 지금까지 추앙되어온 모든 근대적 가치들을 부정하는 사유의 작업이 과연 니체 이후로 우리에게 얼마나 더 큰 지적 충격을 안겨줄 수 있을까. 존 그레이는 요란하게 뒷북을 쳐대는 니체의 아류 같고, 그래서 이 책은 다소 진부하고 식상하게 읽힌다. 사실 오늘날의 지적인 유행 속에서 심오한 근대적 가치들의 우스움과 벌거벗은 인간의 앙상한 본질 따위에 대하여 가차 없이 펜을 휘두르기란 몹시도 쉬운 일이 아닐까. 쉬운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칫 사유의 경박성을 드러내는 일이 되어버릴 가능성마저 있는 게 아닌지.     

어찌되었든 이 책에서 저자는 근대적 가치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파헤치고 나서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패닉 상태에 빠져있을 독자들을 염려하여 플라톤식 해결책을 제안한다. 삶의 목적을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에 두지 말 것. 행동은 어디까지나 ‘위안’일 뿐이니 그저 관상(觀想)할 것. 아울러 저자는 좋은 삶이란 진보를 꿈꾸는데 있지 않고 비극적인 우연성을 헤쳐 나가는 데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무수한 사건의 마주침들 속에서 삶을 구성해 나가는 존재이며, 도래하는 모든 사건들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결단과 선택과 행동을 촉구하지 않던가. 심지어는 행동하지 않고 그저 관상하는 일 조차도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결단과 선택에 따른 행동이 아니겠는가. '비극적인 우연성을 헤쳐 나가는' 인간의 지극히 실존적인 행동이야말로 저자 자신이 부정하는 휴머니즘적 가치에 다름 아니며, 바로 이 비극성으로부터 인간은 불가피하게도 철학적인 사유를 시작하게 된다는 점 역시 저자는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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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 하룻밤의 지식여행 15
다리안 리더 외 지음, 이수명 옮김 / 김영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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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문자를 화나게 만드는 입문서. 차라리 그림이라도 예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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