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역사 나남신서 72
미셸 푸코 지음, 이규현 옮김 / 나남출판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광기의 역사>는 광기가 각 시대별로 상이한 담론적/비담론적 실천들을 통해 인간 지식의 형태에 포위되어가는 양상을 기술하고 있다. '포위당하는 것'(광기, 비이성, 비정상)의 탐구를 통해 역으로 우리는 '포위하는 것'(이성, 정상, 인식)의 역사를 가늠해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광기의 역사는 인간에 관한 인식 가능성의 마지노선이 어떻게 변화해왔는가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광기(비이성)의 역사는 이성의 역사인가. 아니, 정확히 말해 <광기의 역사>는 이성과 비이성을 나누는 분할선의 역사, 계면의 역사, 윤곽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실 <광기의 역사>를 통해서 푸코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2차 텍스트나 인터넷만 찾아봐도 반나절이면 알 수 있을 것을, 반나절의 몇 곱에 해당하는 시간을 잡아먹은 독서의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보람은 '오기의 관철'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ㅠ_ㅜ;) 이 책에서 푸코는, '더듬고' 있었다. 푸코 역시 이성의 언어로 광기의 역사를 써내려갈 수밖에 없는, '인간학'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근대인이었으므로. 물론, 푸코는 자신이 이미 충분히 미쳐있기 때문에 <광기의 역사>를 제대로 쓸 수 있었다고 했다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는 제한된 여건 속에서 '더듬고 파헤칠 수밖에' 없었지 않을까. 서술에 있어서의 난해함은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 같다. 노획물의 소개와 전시가 아니라, 책 자체가 탐사와 발굴의 여정이기 때문에... 그 지난한 여정에 나도 서툴게나마 참여해 보았다는 것, 더듬고 파헤치는 손 위에 내 손을 잠시 포개어 얹어 보았다는 것(제대로 포개어 보았다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지만). 보람은 여기서 찾도록 한다. 창조적인 오독을 한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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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기의 광기 이 시기 사람들에게 광기는 야릇하면서도 친숙한 것이었다. (르네상스 문학작품에서) 광인들은 배에 실려 이 도시 저 도시로 떠돌아다녔다. 그들은 감금된 포로가 아니라 유랑하는 포로였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모습과 행동에서 낯설고 강렬한 즐거움을 느꼈고, 호의적이건 적대적이건 열광했다. 종말론적 세계관과 죽음에 대한 과도한 인식에 사로잡혀 있던 이 당시 사람들에게 광기는 세계의 파국이 임박하였음을 드러내는 신성한 표지였다. 사람들은 광기로부터 초월적인 존재의 숭고한 현현을 감지했다.

 

말하자면, 이 시기의 광기는 ‘앎’이었다. 그것은 금지된 앎이었고, 은밀하고 심층적이며 폐쇄적이고 비의적인 앎이었고, 우주질서에 대한 직관적 앎이었으며, 세계의 종말에 대한 예지적인 앎이었고, 그래서 다분히 매혹적인 앎이었다. 이 시기의 광인들이란, 그들의 순진한 어리석음 덕분에, 지혜와 이성을 갖춘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접근 불가능한 진리를 깨우친 사람들이었다.

 

그런가 하면 광기는 이 시기 인본주의자들의 담론 세계에 포획되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문란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고전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광기의 비극적 형상(신비주의 담론)들은 점차로 어둠 속에 묻히고, 대신 광기에 대한 비판의식(인본주의자들의 담론)은 끊임없이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광기에 대한 ‘비극적이고 우주적인 경험’은 배타적이고 특권적인 비판의식에 의해 ‘은폐’되어 간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광기는 환한 대낮에 논의되는 광기였다. 사람들은 세계의 모든 허술한 지점에서 광기의 위협을 느꼈고, 미치광이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자 기도의 대상이었다. 광기는 분리되고 배제되고 유배되고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가까이 실재하며 늘 느끼고 경험되는, 이상하고도 두렵고도 경이로운 어떤 것이었다.


고전주의 전기(17C): 대감호의 시절 고전주의 시대에 광인은 더 이상 이 도시 저 도시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기이한 순례의 길 위에 있지 않다. 광인은 사회공간의 배치에 혼란을 일으킨다. 광기는 가난 및 무위도식과 더불어 국가 정책이 적용되어야 할 대상으로 포획된다.

 

계기는 데카르트의 사유에서 비롯한다. 데카르트는 회의를 진전시키는 과정에서 꿈과 오류(착각)는 극복하지만, 광기까지 극복할 수는 없었다. 즉, 이 모든 현상이 꿈일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지만, 내가 미쳐서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애당초 나는 미칠 수가 없다. 사유를 통해서도 미쳤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광기는 바로 사유의 불가능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광기는 데카르트 이래로 진리의 구조 속에서 배제되며, 이성의 활동에서 사라지게 된다. 광기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고, 회의하는 자의 이름으로 추방당한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것, 사리에 어긋나는 것, 가족 질서와 사회 질서를 교란하는 것들 모두가 부도덕의 낙인이 찍힌 채 광기의 범주에 포섭된다. 그리하여 한때 신의 두려운 현현이자 악마에 사로잡힌 인물이던 광인 역시 개체성의 표지를 상실하고 미분화된 무리 속으로 흡수된다. 광인은 이제 연금술사, 난봉꾼, 얼간이, 불구자, 머리가 돈 자, 방탕하고 방종한 자, 배은망덕한 자식, 재물을 낭비하는 아버지, 매춘부, 동성애자, 자유사상가, 성병 환자, 빈민, 부랑자, 소매치기, 도둑, 무직자와 구별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런 유사성도 지각되지 않는 인물과 가치들이 이 당시에는 통일적 영역 안에 다 함께 묶여 ‘부도덕’한 ‘비정상’인들로 분류되고, 이들을 통제하고 수용하기 위해 ‘구빈원’이라는 시설이 설립되기 시작한다. (중세 말 서양 세계에서 나병이 사라지면서 나환자를 수용했던 공간이 비게 되는데, 잠시 텅 비었던 이 배제의 공간에 17세기의 새로운 무리들이 새로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구빈원은 오늘날 교도소, 정신병원, 정신분석가의 상담실 등으로 세분화된 공간들이 사실상 효율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공간이자, 법의 한계지점에 위치한 제3의 권력기구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로 치면 삼청교육대 정도 될 듯) 이 시설이 권력기구였던 까닭은, 사실상 이 당시에는 도덕이 상업이나 경제처럼 국가적으로 관리되었기 때문이다. 구빈원의 목적은, 법으로 처벌하기는 좀 그렇지만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비정상인들을 전(全)사회적 도덕 감수성으로 구별해 내어, 구제하면서 동시에 규제하고 자선을 베풀면서 동시에 징벌하는 것이었다. 국가는 구빈원을 통해 소요 및 폭동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고 동시에 값싼 노동력을 취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가난한 사람, 비참한 처지의 사람, 자신의 생활을 책임질 수 없는 사람들이 비정상인으로 취급되지 않았었다. 당시 그런 사람들은 하느님이 내리는 특별한 징계의 증거였다. 즉, 빈곤은 신의 경이로운 현존을 느끼게 해주는 ‘신성한 저주’였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 이들은 비정상인으로 분류되어 광인들과 더불어 구제 대상이 된다. 빈곤은 이제 ‘정죄되어야 할 무질서’이며, ‘국가가 도덕적으로 징벌해야 할 과오’로 여겨진다.

 

수용되어 할 가난은 두 가지 양상을 나타냈다. 제시된 질서에 순응하고 부합하는 착한 가난과 질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반항적 가난. 전자에 해당하는 ‘선한 빈민’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빈민’은 수용을 받아들이고 수용시설에서 안식을 구한 반면, 후자에 해당하는 ‘악마의 빈민’은 수용을 거부하다가 결국 수용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수용은 보상과 자선이기도 하고 처벌과 탄압이기도 했다. 어쨌든 모든 수용자는 윤리적 가치 평가의 대상이 됨으로써 인식이나 연민의 대상이기 이전에 ‘도덕 문제’의 대상으로 취급되었다. 구빈원의 수용자들은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 생활과 신앙의 교정에 힘써야 했다. (신비주의 담론에서 도덕담론으로의 전환. 광인은 이제 도덕담론의 실천과 관계하는 언표가 된다.)

 

가난과 빈곤이 과오이자 악덕이었던 이유는 당시 사람들에게 노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기 이전에 아담의 죄를 회개하는 윤리적인 활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사람들에게 노동은 빈곤의 모든 형태에 대한 치유책이었다. 구조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가난이란 없었다. 가난은 단지 윤리의식의 해이에서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무위도식은 가장 나쁜 반항이었다. 아담 이후 무위도식은 야만이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주제에 신에게 말도 안 되는 호의를 기대하는 꼴이다.

 

이와 같이 이 시대의 광기는 무위도식에 대한 윤리적 단죄를 통해 인식되고, 또한 노동 공동체로 확고해진 사회의 내재적 존재(더 이상 배타고 떠돌아다니는 얘들이 아니라)로 인식된다. 이 노동 공동체는 윤리적 분할의 권한을 획득하여, 사회에 불필요한 모든 형태를 마치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인 양 배척할 수 있게 된다.


비이성으로 분류된 몇 가지 항목들

성병: 고전주의 시대 성병은 질병이라기보다는 부도덕에 훨씬 더 가까웠다. 따라서 성병환자는 치료인지 처벌인지 모를 조치(?)에 취해졌다. 사실상 이 시기에 성병의 치료를 담당하는 자는 '의사'가 아니라, 국가공무원 신분의 '정신교정자' 쯤 되겠다. 그러나 징벌과 치료의 병행은, 당시로서는 의학과 도덕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지극히 합리주의적인 방식이었다.

동성애: 르네상스 시대 자유롭게 표현되었던 동성애 역시 이 시기에는 남색을 밝히는 행동이 되어 정죄 대상이었다. 동성애뿐만 아니라 가정 파탄을 초래하는 모든 행위(방탕, 낭비벽, 불륜 등)가 당시에는 비이성의 범주에 속해 수용소 감이었다. 19세기 이후 개인과 가족의 갈등은 사적인 영역으로, 심리적인 문제로 변화하지만, 이 당시에는 가족이 공공질서와 관련된 문제였고, 가족 문제는 곧 일종의 보편적 도덕규범의 문제였으며, 따라서 모든 국가는 국민들의 가정생활에 관심을 기울였다. 누구라도 가족에 해를 끼치는 자는 비이성의 인간이 되었다.

자살: 자살은 신성모독이며 자살의 기도는 그 자체로 영혼의 무질서를 나타내는 것인 바 자살미수자들 역시 수용되었다. 자살미수자들은 다시는 자살 시도를 할 수 없도록 이상한 기구를 쓰고 살아야 했다.

마법(연금술, 주술 등 포함): 마법은 그것이 발휘하는 마력 때문이 아니라, 마법 그 자체의 비이성적인 속성 때문에 심판되었다. 그것은 감정의 무질서를 초래하는 정신의 환각일 뿐이다. 이 또한 사회적 무질서 초래하므로 수용 대상.

자유사상가: 자유사상가 역시 예전에는 자살 미수자나 마법사처럼 이단으로 몰려 화형감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다행히도 ‘수용’된다. 수용소는 이들을 도덕적으로 속박함으로써 진리로 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성병환자와 자유사상가가 어떻게 한통속이 될 수 있는지 오늘날의 우리는 도무지 이 당시의 비이성의 영역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 영역에 대해 고전주의가 확실히 독창적인 반응방식, 말하자면 ‘수용’을 창안했을 정도로 충분히 섬세한 감성(!)을 품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수용소의 성격과 광기의 유형 수용소(=구빈원)는 완전히 빈곤의 공간도 아니고, 질병의 공간만도 아니다. 수용에는 제도적 통일성이 거의 없다. 의학적, 심리학적, 정신의학적 일관성도 없다. 유일하게 보이는 일관성이라면, 고전주의 시대만이 보여주는 독특한 ‘인식의 일관성’일 것이다. 이 공간은 확실히, 고전주의 시대만의 특이한 감성과 관련된다.

 

고전주의 시대 광기는 부분적으로 겹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방식으로 경험된 듯하다. 하나는 법적 책임을 질 수 없는, 주체의 자유의 박탈을 의미하는, 무책임과 무능력으로서의 광기, 그리고 하나는 도덕적 문란과 추문, 타자로 인식되는 광기. 전자는 타자의 권능 아래로 떨어지고 타자의 자유에 얽매인 존재와 관련되는 경험으로서의 광기, 후자는 타자가 되고 사람들 사이의 다정한 유사성과 무관하게 된 개인과 관련되는 경험으로서의 광기. (조악하게 말해, 전자는 오늘날 금치산자로 분류되는 자 및 병자 등 ‘무능한’ 인간이고, 후자는 자유사상가나 동성애자나 자살자 등 ‘이상한’ 인간이며, 둘 다 똑같은 비이성의 무리들이다.)


동물성으로서의 광기 앞서 살펴본 광기의 두 가지 경험 방식 가운데 전자로 분류될 수 있는, 오늘날에는 금치산자로 분류되는 ‘정신이상자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동물성의 이미지(친숙하면서도 낯선, 난폭하면서도 경이로운)로 다가왔다. 정신이상자들은 본능적 격분에 휩싸인 짐승이나 다름없었으며 실제로 이들을 수용했던 구빈원은 동물원의 맹수우리 같은 모습을 띤다. 이들이 보여주는 광기는 순전히 동물적인 것이기 때문에 ‘조련’에 의해서 제어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인간성의 가장 낮은 지점, 타락의 최종 지점을 보여주는 이들의 존재는 신이 베푸는 호의의 마지노선을 알게 해줌으로써 신을 찬미하고 구원의 교훈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전주의 후기(18C) 인식의 역사가 ‘인식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의 점진적 소멸의 역사이듯, 광기의 역사 역시 모든 ‘가시적이고 확고한 광기’의 뚜렷한 윤곽이 점차로 희미해져가는 역사이다. 18세기에 이르면 광기는 모든 가시적이고 지정된 형태를 잃어버리게 될 정도로 ‘세련화’된다. 대감호 시절 그토록 또렷했던 광기의 표지들이 이제는 잘 보이지가 않게 된 것이다. 그러한 예로, 이 시기에는 요즘 사람들이 전 세대보다 더 미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등장하게 되고, 또 누군가는 이성과 광기가 동시적으로 관여하여 자연의 질서가 확립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즉, 이 무렵의 광기는 서서히 이성의 영역으로 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이성을 몰아내는 추론” 편에 자리를 잡았던 광기가, 이제는 추론의 느린 합리성을 재촉하고 추론의 작용선들을 흩어놓으며 추론에 의한 단순 파악과 과오를 넘어서는 차분한 이성 편으로 슬그머니 접어들었다. 이제 광기는 ‘은밀한 이성’으로서의 광기, 이성을 위해서 이성에 의해 존재하는 광기, 이성에 의해 사전에 관리되는 광기, 이성 속에서 이미 소외된 상태로만 세계에 현존하는 광기로 '슬그머니' 변화한다.

 

확실히 18세기는 더 이상 광기를 정의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회의주의의 시기(p.309)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에 광기의 식별이 여전히 ‘오만한 확실성’ 속에서 별 문제없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광기는 부조화로서 단번에 솟아오르는 것이었고, 전적으로 부정적이고 순간적인 것으로서 쉽게 구분이 되었다. 광기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고 즉각적으로 포착되고 식별된다. 하지만 또한 광기는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규정하기가 점점 애매해진다. 한편으로 그것은 막연하고 아련하며 감지되기가 무섭게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규정하기 어렵지만 포착되는 광기의 역설. 역설을 낳는 광기의 빈틈, 공백. (일단 ‘다르니까’ 즉각적으로 구분은 되는데, 그 ‘다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도무지 모르겠는 상황?)

 

한편, 18세기의 의학은 ‘증후학’이었다. 질병은 더 이상 신의 저주가 아니었다. 린네의 식물 분류법처럼 질병 또한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증후’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분류되었다. 이렇게 의학의 증후학적 방법에 의해 광기 역시 질병의 범주에, 즉 이성과 질서와 합리성의 영역에 포섭된다. 광기는 이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질병의 영역에서 재구성된다. 도덕 담론에서 의학 담론으로 넘어온 광기는 이제 의료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할 학문적 대상이 된다.

 

그러나 광기는 아직 증후에 따른 종들의 합리적인 질서 속으로 완전히 편입되지는 않는다. 완전히 편입되기에는 항상 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인들을 증후학적으로 분류하다 보면 어느새 그것은 인물의 도덕적 성격 묘사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광기는 아무리 세심한 분류법에 따르더라도 언제나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아련한 어떤 것으로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건너뜀: p.353~p.558)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에 대한 고찰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는 비이성과 관련되어 이해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비이성은 광기의 가능 공간을 규정했으며 광기는 곧 비이성이 경험되는 형태였다.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는 종류의 ‘광기’라는 게 당시에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것은 그저 비이성으로서만 경험되는 형태. 즉, 비이성과 광기가 구분되지 않았고, 쉽게 말해 이성 아닌 것들은 다 광기였던 듯.) 고전주의 시대 사람들은(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이성’이 있었기 때문에 광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우리가 광기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곧 우리에게 이성이 있다는 증표에 다름 아니다.’ 광인은 언제나 그들 눈에 광인이었고, 그래서 비이성은 언제나 이성의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정확히 이성 안에서 이성에 의해 포위되고 소유되며 사물화되는 것이다. 포획된 비존재. 명백히 드러난 ‘오류’로서의 광기.

 

18세기 말의 동향 대감호 시절 이래로 광인을 비롯한 모든 비이성들은 어둠의 세계 속에 격리된 채 한데 얽히고 뭉친 채로 있었다. 그러다가 근대에 이르면 어둠의 세계 속에 들어있던 비이성들이 하나 둘씩 해방되어 빛을 보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인 게 사디즘이다. 사디즘은 18세기 말에 서양적 상상력의 커다란 전환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 대대적 문화현상이었다. 오랫동안 비이성으로 분류되어 어둠의 세계 속에 상상적 잠재력으로서 묻혀있던 사디즘이 명백한 욕망으로, 명백한 담론으로, 문학예술로서 부상한 것이다. 광기는 이제 시와 문학이라는 언어의 영역에서 스스로에 관해 일인칭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마치 꿈이 무질서한 이미지를 통해 말을 하는 것처럼.

 

사디즘의 해방을 목격하게 되는 이 시기에는, ‘광기에 대한 회의주의’를 넘어서 이제는 ‘광기에 대한 강박적 공포’가 생겨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광인을 식별할 때 자신의 마음속에서 광인과 똑같은 목소리와 똑같은 힘 그리고 똑같은 이상한 빛이 올라오는 것을 감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더 열렬히 강박적으로 광기를 색출하고자 했다. 누구나 자칫하면 백치나 신경질환자나 미치광이가 될 수 있었고, 백치와 신경질환자와 미치광이의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다. 비이성에 대한 이러한 강박관념은 매우 정서적일 뿐만 아니라, 상상적인 것의 부흥(사디즘의 등장) 움직임과도 전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 (문맥상 이 무렵을 기점으로 사디즘뿐만 아니라, 고야, 고흐, 횔덜린, 네르발, 니체 등등 가둬놓았던 광기들이 여기저기 분출하면서 시적, 문학적, 예술적, 사상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근대에 광기가 경험되는 방식 광기는 더 이상 신의 저주도 아니고, 도덕적 타락의 징표도 아니고, 동물성의 현존도 아니었다. 광기는 이제 ‘생활환경’과 관련한 것이다. 그것은 환경적인 원인에 의해 생활에서 수시로 발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나친 소설의 탐독이, 잦은 연극 관람이, 너무나 복잡한 지식의 섭취가, 한가하고 나태한 생활이, 과도한 신앙심이, 인위적 식생활이, 자유주의적 분위기가, 흥분과 불안과 감정적 소요를 낳고 광기를 유발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인간의 동물적인 본성이 극으로 치달을 때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오히려 인간에 의해 구축된 환경이 인간의 본성을 억눌러서, 인간 본성이 소외되어서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서(지나치게 자연에 가까워지다 보니 동물처럼 되어버려서) 광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지나치게 자연스럽지 못해서(환경에 의해 인간의 본성이 억눌려서) 광인이 된 것. 광기가 환경 변화와 관련되면서 광기는 시간적 출발점을 갖게 된다. 유해한 환경이라는 ‘원인’을 갖는 ‘결과’로서의 광기. (인과 관계, 즉 시간성의 개입이 근대의 전반적인 특징이듯) 시간성을 갖는 광기는 더 이상 우주적 순환의 일부를 이루지 않는다. 광기는 이제 문명의 그림자이다. 문명의 진보와 더불어 광기 역시 그 유해함이 더욱 더 증가되어 것이다.

 

근대의 광기는 시간성을 갖는 광기임과 동시에 자기소외를 보여주는 광기이기도 하다. 고전주의 시대에 광인이란 진실을 상실한 자였고, 세계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난 자였으며, 그 자체로 무질서고 오류이며 타락이고 동물성의 현존이었다. 반면, 근대의 광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된 자(주체로부터의 분리)이고, 자기 자신을 상실한 자(심신망탈, 자아망탈)이다. 그는 인간 자신의 본질에 관한 법칙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로부터 소외된 자다. 근대의 인간은 이렇게 고전주의 시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광기를 경험하게 된다.

 

광기와 분리된 빈곤, 빈곤과 분리된 질병 고전주의 시대의 빈곤은 도덕적 해이였고 게으름이었지만, 근대의 빈곤은 명백히 경제적 차원의 문제였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태동한 경제 사상은 빈민을 인구의 일부로서, 즉 노동력으로서 보게 만들었다. 이제 빈민은 부(富)의 재료이며 그 자체로 잠재적 부(富)이기에 더 이상 감금되어서는 안 된다. 인력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빈민층은 이제 자유가 충만한 사회 공간에 내버려 두어야 하고, 그러면 빈민은 값싼 노동력을 형성함에 따라 서서히 사회공간에 흡수될 것이다. 빈민은 자유로워야 한다. 단,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빈민만 자유로워야 한다. 병든 빈민은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므로 여전히 구제 대상이다. 빈곤이 노동력의 자유로운 유통에 흡수되어야 하듯이, 질병은 치료를 통해 사라져야 한다. 이렇게 질병과 빈곤은 분리된다.

 

질병으로, 빈곤으로, 사법적 형벌이 부과되어야 할 범죄(비행, 폭력, 무질서, 방탕, 치정 등)로, 문학적 상상력으로, 과거의 모든 비이성의 형상들이 수용에서 벗어나 밝은 곳의 제 자리를 찾아 분산되어간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기존에 수용소에 수감된 자들 중에서 광인(이때의 광인이란, 근대정신이 함양되어가는 수감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미친 것 같은 인간들)과 함께 감금되었다는 사실에 불만과 항의를 표하는 사례가 늘어난다. 광인은 수용소 안의 무리들 사이에서도 공포와 불만을 초래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근대인의 혼란. 새롭게 재편되어가는 사회 공간 안에서 최후에 남은 이 처치 곤란의 마지막 광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체벌해야 되나? 구호해야 하나? 아니면 완전히 사적으로 관리하도록 민간에 양도해야 하나? 암중모색 끝에 의료와 배제의 기능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감호의 형태가 계획된다. 사회를 광인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동시에 광인을 치료하기(다시 말해 이성으로 귀착시키기) 위한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의 탄생.

 

정신병원의 설립 18세기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광인들의 장소는 수용소에서 정신병원으로 변경된다. 추방에서 또 추방. 옛 배제의 내부에 자리 잡은 새로운 배제. 정신병원의 출현과 함께 광기에 대한 이해 역시 기존의 획일적인 방식으로부터 탈피한다. 미치광이, 얼간이, 정신박약자 등 광기의 다양한 양상들이 새롭게 포착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근대 에피스테메의 정신병리학이라는 담론 안에서 새롭게 포착되고 형성되고 정의되는 대상들) 이러한 객관적 분류와 분석 작업을 통해 이성은 비이성의 가장 가시적인 영역을 학문적으로 대상화하여 각각의 광기의 처치에 고유한 의료적 실천을 고안해 내고자 고심한다. 의학적 이성이 광기를 통제하는 방식.

 

광기의 양상에 대한 세분화된 인식과 더불어, 근대에는 광기로 하여금 스스로에 관해 말을 하도록 만드는 작업(정신분석)도 이루어진다. 근대 사람들은 최초로, 예언의 목소리도 아니고 신이나 악마에 들린 상태의 목소리도 아니고 익살의 목소리도 아닌, 광기 고유의 목소리를 듣고자 시도했다. 광기가 저 혼자 스스로 말하도록 내버려둠으로써 광기를 식별하고자 한 것.(증상의 고백과 상담치료로 진행되는 정신분석은, 사제 앞에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기독교적 기법의 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병원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광기는 자유롭게 표출되도록 내버려진다. 광인은 감호소 안에서 자유롭다. 폐쇄 공간에서의 한정된 자유를 얻은 광기는 정신분석에서의 해방된 언어처럼 만개했다가 저절로 사라짐으로써 치유된다. 거리를 두고, 자유롭게 풀어주고, 관찰되는 광기. (그러나 정신병원은 본질적으로 규율과 감시의 체계로 이루어진 공간이며, 정신병원에서의 광인의 치료법은 범죄자를 처벌하게 되어 있는 방법과 유사하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가 동물성의 광경이었다면, 근대의 광기는 의학적이고 추상적인 분류 개념에 부합하는 객관적 광경이다. 근대의 광기는 합리적 인간의 언어에 의해 포위된 대상으로서 관찰된다.

 

광기의 역사와 함께 하는 심리학 심리학은 비이성의 숨겨진 형태와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묘사를 제시하기 위해 탄생한 근대의 학문이다. 심리학을 통해 얻어진 ‘인간의 심리적 진실’은, 고전주의 시대가 사회의 가장 멀리 떨어진 경계로 내쫓았고 추방했던 유구한 힘이 바로 인간 자신의 깊은 내면에, 고독의 극단에, 행복의 그럴듯함도 도덕도 닿지 않는 지점에 똑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심리학에 의해 비이성은 인간에게 있는 가장 주관적이고 가장 내밀하며 가장 깊은 것으로 부득이 객관화된다. 그동안 인간의 진실이 사라지는 오류의 형태를 유발했던 비이성이 사실은 가장 순수한 진실이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광기는 인간의 마음속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비밀’이 된다. 그 결과, 인간의 진실로서 표명되기에 이르는 모든 것은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즉, ‘결백’한 것이 되고 면책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근대의 광기의 양상 근대에 광기는 ‘해방’된다. 그리고 해방된 광기는 다시 ‘보호’된다. 이 두 계열은 서로 대립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상호적 보완 이상의 작용을 하며 하나의 수미일관한 통일성을 이룬다. 즉, 광기는 다른 모든 비이성의 형태들과 뒤섞여진 수용으로부터 분리(‘해방’)되지만, 광기가 자체의 진실과 합류하는 특별한 장소, 요컨대 정신병원이라고 하는 그 지정된 장소에 다시 새롭게 수용(‘보호’)된다. 그곳은 광기의 발현장소임과 동시에 치유공간이게 되어 있는 난공불락의 공간이다. 또한 광기는 근대에 이르러 스스로 표현되고 이해되며 광기 자체의 이름으로 말할 권리를 얻었지만(‘해방’), 그렇게 말해지는 광기는 사실상 근대 인간에게 있어서 객관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순수한 대상으로 취급된다(‘보호’). 한편 광기는 정념, 폭력, 범죄의 메커니즘을 해명하는 심리적 진실로서 인정받는다.(‘해방’) 그러나 동시에 광기는 정념, 폭력, 범죄에 대해 가책하는 양심의 작용으로서 사회에 편입된다.(‘보호’)

 

정신병원의 풍경 근대의 광기는 생활환경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이들의 치유를 위한 은거처는 복잡한 사회를 벗어나, 모든 인위적인 것을 벗어나, 가능한 자연과 가까운 환경이어야 한다. 은거처에서의 인간집단은 가장 본원적이고 가장 순수한 형태를 되찾는다. 자연, 진실, 이성, 순수한 사회도덕 등으로 구축된 신화적인 풍경.

 

광기는 은거처(병원)라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권위에 의해 제압되어 있다. 정신병원의 사회는 간수와 환자로 이루어진 가부장제 가족 공동체의 모습을 띠기 때문. 간수는 성인이고, 광인은 미성년이다. 광인은 자율권이 없고 이성의 세계에 기대서만 존속한다. 가부장제의 위엄.

 

한편으로 광인은 이성의 세계에 새로 온 사람, 최근에 막 도착한 사람과도 같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의사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 앉은 다과회 장면. 광인은 마치 국외자처럼 정중한 환대를 받는다. 거기서 광인은 미지의 손님이라는 미확정된 역할을 맡도록 끊임없이 요구받고, 그에 대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 쪽으로 내던져지며, 이런 식으로 시선을 통해 조용히 그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인물의 모습과 가면에 따라 자기 자신의 표면으로 불려나와, 합리적 이성의 눈앞에서 완전한 국외자로, 다시 말해서 야릇함이 인식되지 않는 국외자로 객관화되기를 권유받는다.

 

르네상스 시대에 끊임없이 일어났던 이성과 광기와의 ‘대화’는,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 ‘싸움’으로 치달았고, 근대에 이르면 ‘단절과 침묵’으로 변하게 된다. 이성은 이제 광기에 냉담하다. 둘 사이에는 공통어가 없는 것이다. 이성이 인정하는 언어는 죄의식의 언어일 뿐이다. 광기는 이성 앞에서 오로지 (그들의 언어인) ‘과오’로서만 진술될 수 있다. (사실상 정신과 의사의 언어는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일 뿐이다.)

 

정신병원의 사회에서 의사는 신격화된다. 그는 존경과 순종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자(賢者)이고, 아버지이고, 재판관이다. 의사 앞에서 광기의 당치 않은 자만심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광기는 마침내 이성에 맞게 진정된다. 의사가 발휘하는 마술과도 같은 기적은 광인과 의사가 정신병원 안에서 짝패를 이루기 때문에 가능하다. 광인과 의사의 짝패에서는 귀속관계에 의해 암묵적 공조가 시도된다. 가족-자식 관계, 과오-징벌 관계, 광기-무질서 관계가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소우주적 구조의 탄생.

 

소우주적 구조 내의 권력구도 속에서, 역할극이라 할 만한 그런 권력구도 속에서, 환자는 자기 자신을 냉정히 바라볼 것을 요구 받는다. (앞서의 다과회 장면에서도 광인은 이런 요구를 받는다.) 그는 ‘고독한 고양의 자유’를 상실하고, 자신의 권능(상상적으로 구축한 자신의 지위)에 모욕을 당하고, 오만에 타격을 입고, 그 모든 굴욕과 치욕을 통해 자기 자신이 객관적으로 미친 자라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게 된다. 동시에 점점 더 환자는 신적이고 악마적인 의사의 수중으로 내던져진다. 그는 의사의 모든 위세를 통째로 미리 인정하고 경이로운 것으로 느끼며, 통찰이자 예지력이라고 전제하는 과학에 처음부터 종속됨으로써, 자신의 의지를 의사에게 모조리 투사, 전이, 양도하고, 자신은 자발적으로 무기력하고 순수한 대상이 됨으로써 자주성을 상실한다. (자신의 진실조차 자기 입으로 발언할 수 없는, 발언해도 소용 없는 상태)  

 

이렇게 설득과 속임수 속에서 광기는 비로소 오늘날 소위 말하는 그런 광기가 되어간다. (정신분석이 정신이상자의 징후를 절대 해독할 수 없고 비이성의 목소리를 결코 들을 수 없는 까닭 역시 이러한 의사-환자(=분석자-피분석자) 구도에 놓여있기 때문.) 광기의 자기 소외. 설득 당해서 인정한 자신의 진실에 의해 완전히 장악당한 광기. 자신의 진실 속으로 전락하는 광기. 그것은 곧 자신의 진실을 잃어버리는 방식이다. 자신의 진실 속에 감금되는 광기. 광인은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즉 비-광기와 소통함으로써 비로소 미치게 된다.


근대의 광기 근대의 광인은 ‘동일자’와 ‘타자’의 언제나 되살아나는 변증법 속에서 모습을 보인다. 다시 말해 광기를 포획하면 할수록 포획되지 않은 광기가 자꾸만 눈앞에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가령 이런 광기를 생각해보자. 사회적으로 ‘범죄자’로 분류된 자와 사회적으로 ‘정신병자’로 분류된 자 사이에서 아직 명명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광기. 범죄자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정신병자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바로 그 지점에 머물러 있는 광기. 이런 광기는 또 뭔가?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설령 그것을 겨우겨우 분류한다고 해도 우리 앞에는 또 다른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광기가 ‘변증법’적으로 새로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예전에 고전주의 시대의 경험에서는 광인이 존재와 비존재의 가시적 분할 속에서, 이를테면 빛과 어둠 속에서 다른 담론 없이 오직 자신의 현존에 의해서만 곧장 지칭되었던 반면에, 근대에는 광인이 언어를 지니고 언어로 둘러싸이는데, 이 언어는 결코 고갈되지 않고 언제나 다시 시작되며 상반되는 것들의 작용 때문에 외부로 향하지 못하는 언어, 인간을 광기 속에서 자기 자신과 다른 존재처럼 보이게 하는 언어이다(?).

 

광인은 더 이상 고전주의적 비이성의 분할된 공간에 갇힌 ‘미치광이’가 아니라, 질병의 근대적 형태에 들어맞는 ‘정신병자’이다. 의사에 의해 자신의 진실을 알게 되는(=진실이라고 과학적으로 추정되는 것을 설득 당하는) 근대의 광인은 자기 자신의 진실이자 자기 진실의 반대이고, 자기 자신이자 자기 자신과 다른 것이며, 진실한 것의 객관성에 붙잡히지만 진정한 주관성이고, 현재의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죄이지만, 동시에 현재의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어서 유죄이다. 비이성의 결정적이고 중요한 분할은 이제 인간의 진실과 인간 사이의 언제나 상실되고 언제나 회복되는 인접성으로 대체된다.

 

인간학의 악순환 광인의 실존영역에 속해있는 자유, 실존하는 현존재로서의 광인이 경험하는 자유, 그러한 자유는 지금껏 어떠한 명백한 행위로서도 주어지거나 제공되지 않았다. 광인의 자유는 언뜻 엿보인 진실, 광인에 관해 말해지고 생각되며 행해지는 것의 언저리에 맴도는 애매한 요구, 결코 완전히 파악되지 않는 끈질긴 현존이었다. 광인의 실존적인 자유, 광기의 본질을 구성하는 자유는, 끈질기고 동시에 불안정하며, 광기의 지평에 언제나 머물러 있지만 누구라도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면 모습을 감추는 그런 자유다. 임박한 소멸의 형태로만 현존하고 실재하는 자유. 광기가 스스로에 관해 말할 수 있을 극단의 영역에서 언뜻 엿보인 이 자유는 시선이 와 닿자마자, 얽매이고 속박당하며 축소된 것으로만 보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시’를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시’에 관해 말하려 하는 순간 ‘시’가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광인의 자유는 객관적 구조 속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순간 소멸하고 만다. (실제로 푸코는 "광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자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셸 푸코, 1926~1984>)

 

(...) 근본적으로 광기는 주체로 하여금 스스로 광기의 언어를 말하고 광인이 될 수 있게 허용하는 그러한 풍토, 그러한 작용공간이 광기 주위에 있음에 따라서만 실재할 수 있었다.(고전주의 시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기점인 18세기 말의 동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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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 크리톤 파이돈 향연, 문예교양선서 30
플라톤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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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고소한 밀레토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묻는다. '내가 젊은이를 타락시켰다고 하자, 그렇다면 젊은이를 선도하는 사람은 누구냐?' 처음에 밀레토스는 '재판관들'이라고 했다가 소크라테스의 유도질문에 넘어가 '소크라테스만 제외한 아테네의 모든 이들'이라고 범위를 확장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의 일격,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자는 단 한명 뿐이고, 그 외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선도한다면 그들은 참으로 행복한 환경 속에서 산다고 할 수 있겠군.'

 

소크라테스는 또 밀레토스가 '착한 사람은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하고 악한 사람은 이웃에게 악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든 다음, 이렇게 추궁한다. '하물며 나보다 나이 어린 너도 그 정도는 아는데, 그렇다면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누군가를 타락시키면 타락시킨 자 역시 상대방으로부터 손해를 입기 쉽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무지몽매하겠느냐? 내가 그토록 무지몽매하지 않다면, 나는 청년을 타락시키지 않았거나, 만약 타락시켰다 하더라도 고의는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법률은 비고의적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범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너는 개인적으로 나를 불러서 타일렀어야지 않겠느냐. (이 파렴치한 놈아!)'

 

과연 소크라테스로군! 논리가 정연해서 함부로 반박할 수는 없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정체모를 짜증이 치밀어오르는 이 이상한 '산파술'로 인해 기원전 399년도 무렵의 아테네 시민들이 얼마나 큰 심적 고통을 겪었을지 이 책 한 권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본인의 무지를 깨달았으면 조용히 홀로 지적 수양에 매진할 일이지 왜 소크라테스는 시민들을 붙들고 돌아다니면서 모두를 그토록 짜증나게 만들었을까. 오늘날 도를 아시냐는 분들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모든 인간은 저마다 자기만의 무식한 방식에 입각하여 독자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권리가 있다. 왜 <I Wanna Rule The World>라는 노래 제목도 있질 않나. 소크라테스는 자율적으로 각자의 내적 세계를 통치해 나가고자 하는 아테네 시민들의 정당한 욕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형에 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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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9.11테러 이후의 세계 뉴아카이브 총서 4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김희진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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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될까?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지젝의 선동은 두려움과 흥분을 준다. 아마도 내가 냉소적인 식자층, 아니 애당초 식자층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무지하고, 피상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귀를 솔깃해 하는(벤야민이 그랬던가, 모든 책은 하나의 전략이라고? 그렇담 지젝의 수다스런 인용은 확실히 전략적이다), 생존을 사수하느라 삶을 잃어버린, 포스트모던 시대의 전형적인 ('전형성'에 있어서 순도 높은?) '말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 같은 이들은, 오늘은 매운 게 땡겨서 육쌈냉면 먹으러 가듯이(혹은 요즘은 육쌈냉면이 대세니까 육쌈냉면 먹으러 가듯이), 지젝도 그런 식으로 소비하는 족속들이지만, 재미있게도 이런 종류의 피상성이, 진실되지 못함이, 근본주의적이지 못한 태도가 '마술적 마주침'의 조건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젝의 말은 불행 중 다행 아닌가? 내 안의 '저열함의 잠재력'을 믿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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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윤리 - 칸트와 라캉 슬로베니아 학파 총서 4
알렌카 주판치치 지음, 이성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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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의 윤리'를 논하기에 앞서 주판치치는 윤리를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으로서 자유의 가능성에 대해 살피고 있다. 주판치치가 자유의 단서로 들고 있는 것은 '죄책감'이다. 자연법칙의 인과성 속에서는 우리의 어떤 행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지극히 내적인 심리적 동기들마저도 크게 보면 자연적 인과성의 또 다른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이처럼 필연성의 결과이고 따라서 우리에게 어떠한 자유도 없는 것이라면, 때때로 왜 우리는 벌어진 어떤 일들에 대해서, 이론적으로는 내 잘못도 아닌 그런 일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이미 우리의 자유를 상정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주판치치는 “나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죄가 있다”는 표현이 보여주는 그 분열 속에서, 분열과의 조우 속에서 주체의 자유가 현시된다고 말한다.

 

자유가 ‘분열’ 속에서 현시되는 것이라면, "인간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고 말할 때 후자의 자유란, 굉장히 실재계적인 차원의 개념인 것 같다. 주판치치는 우리가 인식하고 형언할 수는 없지만 이미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 그런 차원의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사실 이런 자유는 정신분석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주체가 자신의 무의식에 종속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무의식의 주체로서 그것을 자유롭게 선택(칸트가 말하는 ‘소질’의 차원에서 정위되는)했다고 간주되어야만이 정신분석 자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자유를 정신분석의 체계를 지탱하기 위한 '외설적 보충물' 같은 것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표면적으로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자유 의지는 희박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바르샤바에 간 레닌>(모스크바의 미술 전시회에 레닌의 부인이 공산청년동맹의 단원과 침대에 함께 있는 그림이 전시되었다. 그림의 표제는 ‘바르샤바에 있는 레닌’이었고 그림 속에서 레닌을 찾지 못해 황망해하던 관람객이 묻는다. 레닌은 어디 있지요? 레닌은 바르샤바에 있습니다.)이라는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그림에서 떨어져나가야 했던 ‘레닌’처럼, 정신분석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분석의 체계가 완결되기 위해 제거된 잉여물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신분석에서 부재한 듯 보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정신분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원인으로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도 인간의 자유의지의 존재를 증명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왜냐하면 이 자체가 순환논증의 오류이기 때문이다.

 

미진한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인간의 자유를 전제로 해서 주판치치는 윤리가 본성상 과잉이고 과도함이라고 말한다. 즉, '의무에 부합해서' 하는 행위가 법적인 것이고, '의무에 부합해서, 그리고 오로지 의무 때문에' 하는 행위가 윤리적인 것이라 할 때, '그리고 오로지 의무 때문에'라는 잉여, 그 과도함, 라캉의 대상 a로 치환될 수 있는 이 부분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 순수형식으로서의 윤리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순수한 경지의 윤리적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선한 종류일지라도 자체의 과도한 본성 때문에 공동체 구성원에게는 불온하고 위험하며 심지어는 악마적인 교란 행위로밖에 와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주판치치의 해석대로라면 칸트가 말하는 윤리적으로 이상적인 인간이란, '오로지 의무 때문에' 공동체의 조화를 위협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지극히 반사회적이고 맹목적인 광기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칸트는 우리가 이런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그저 오로지 무한한 자기 정화를 통한 점근선적 접근만이 가능할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주판치치는 칸트의 이런 입장 자체가 마치 영원한 고문 속에서 쾌락을 증진시키는 사드처럼, 영혼의 불멸성을 전제로 깔아서 스스로를 최고선에 도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도덕법칙을 영원히 지속시키려는 지극히 정념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희생양이란 건 없다. 그것은 그저 사드가 만들어낸 자기 환상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칸트가 말하는 최고선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같은 맥락으로 최고선은 결코 불가능한 게 아니다. 영혼의 불멸성이 전제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최고선이란, 칸트가 자신의 쾌락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이제 주판치치는 '욕망'으로부터 '충동'을 분리해내어 이 둘을 대립시키기에 이른다. 그녀는 아마도 우리가 욕망의 인간(사드, 발몽)으로부터 벗어나 충동의 인간(돈주앙)으로 도약한다면 순수형식으로서의 윤리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최고선이란(혹 악마적 악이든) 대상의 주위를 에두르며 적당량의 쾌락을 지속적으로 누리는 방식 대신, 쾌락의 최대치를 누리고 파국으로 치달아버리는 과도한 방식을 통해서만 획득될 수 있다. 금욕적인 자기 수양이나 정화가 아니라, 소질의 혁명, 니체적으로 말하면 노예에서 주인으로의 '전향'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전자의 경우(사드나 발몽)의 방식대로라면 우리는 영원히 윤리적인 것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상 우리 자신이 도달을 '지연'시키는 것이지만) 언제나 윤리를 목전에 두고 그것을 영원히 '의지의 대상'으로 향유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과잉이랄 만한 게 없으니 이는 애초에 윤리적 국면이 아니다. 그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하고 정상적인, 도덕적으로 쇠약한 삶의 방식일 뿐이다. 반면에 후자(돈주앙)의 방식을 통해 주체는 비록 자신의 환상 속에서나마 윤리적인 것에 도달한다. 그러나 도달하자마자 주체는 파멸한다. 주체와 대상 a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도달 이후에는 언제나 너무 멀리 가고 마는, 그럼으로써 자기 파괴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게다가 이런 극단적 방법에 따른 행위가 ‘최고선’인지 ‘악마적인 악’인지는 행위하는 주체로서는 판단을 내릴 수도 없다. 왜냐하면 최고선과 악마적인 악은 형식상 동일한 구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실 칸트의 윤리의 맥락 속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의지와 도덕법칙이 일치하는가, 일치하지 않는가 하는 구분만이 가능할 뿐이다. 만약 일치한다면 그것은 윤리적인 행위일 것이며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윤리와 상관없는, 정념적인 행위일 것이다. 선과 악은 의지와 도덕법칙이 일치하는 주체의 어떤 파멸적 행위가 일어난 이후에, 그러니까 그런 실재계적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사후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영역일 뿐이다.

 

주판치치의 칸트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무도 쳐다보지 말고 오로지 네 스스로가 정립한 도덕법칙에 준하여 저 실재의 심연으로 뛰어내려라. 틈새를 현시함으로써 너 스스로 세계의 외상(그리고 향락)이 되어라. 환상으로 상연되어라. 네 행위가 (상징계에 사후적으로) '악마적 악'으로 기입되든 '최고선'으로 기입되든 아무도 탓하지 말라. 어떻게든 너로 인해 상징계의 지형은 변화할 것이다. 이것이 주체의 윤리다." 이 책은 총 9장까지 있는데 너무 어려워 끝까지 읽지 못했다. 심연의 언저리를 배회하며 어떻게든 상징계 안에서 버텨보려는 나의 안전주의 근성, 사드적 노예근성을 (역시 사드처럼) 쾌락주의적으로 위무하기 위해 <실재의 윤리>를 펼쳐 읽기 시작했지만, 반쯤 읽다가 벌써 위무가 다 되어버린 걸 보면 난 역시 윤리하고는 거리가 먼 정념의 인간인가. 아래는 역자 블로그에서 가져온 정오표.

 

12쪽 하2: 욕망의 --> 욕망을
21쪽 상8: 연관되 --> 연관된
215쪽 상1: 경우이다 --> 경우가 아니다
222쪽 상2: 잔여물 이외에 다름아니다 --> 잔여물에 다름아니다
315쪽 하1: 완수한다 --> 완수하는 것이다
357쪽 상1: 그녀는 신의 법칙의 보증을 확보하기 위해 지탱물로 만들지 않는다 --> 그녀는 신의 법칙의 보증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확보"는 고딕체)
377쪽 하4: 위치시킬 수 있다. 첫 번째 것의 --> 위치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 이행 자체는 두 가지 상이한 행로를 취할 수 있다. 첫 번째 것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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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범우사상신서 19
콜린 윌슨 지음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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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과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 '아웃사이더'라는 인간 유형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의 아웃사이더 분류 기준은 모호한 면이 있고, 해석하기에 따라 아웃사이더적인 인간은 참으로 광범한 것 같기도 하다. 차라리 아웃사이더는 소수의 열외자도, 선구적인 존재도, 희귀하고 독보적인 어떤 유형도 아니라, 우리 안의 가장 깊숙한 장소에 은거하고 있는 보편적 내부자라 하는 편이 옳겠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까닭 역시 그만큼 아웃사이더가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회에 기입되지 못하고 탈각되어버린 자신의 고유한 잉여분에 매순간 시달리고 있는 대다수의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책이 말하는 아웃사이더 캐릭터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의 분석 가운데 인상깊은 대목은 아웃사이더의 말로이다. 저자는 블레이크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조화라는 것이 인생의 궁극의 목적이기는 하나, 그보다 중요한 제1의 목적은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보다 충실한 인생을 보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맥락상 '충실하다는 것'은 곧 욕망에 정진하는 일, 즉 삶과의 치열한 투쟁을 의미하는 것이겠다. '조화'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저자는 이 책 마지막에서 아웃사이더가 종교적 각성을 통해 궁극적으로 해방에 이르게 된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각성 이후 해방된 아웃사이더는 더 이상 아웃사이더라고 부를 수도 없을 뿐더러, 어쩌면 인간이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사회적, 정치적 성취는 화해와 성찰 이전의 격렬한 고투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은 아웃사이더라는 인간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니체, 도스토예프스키, 헤세 등의 작품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데, 우선 나는 이들 대문호들의 문학 작품부터 일독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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