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게 2주일 정도 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나는 어떤 회사의 2차 전형까지 합격하고, 방금 3차에서 떨어진 상태다. 마치 시기적절하게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한데, 어쩌면 구직하는 과정에서 나도 모를 불만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난 6년이나 대학에 다녔는데,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난 여기서 그럭저럭 열등감없이 공부해왔고, 영어도 했고, 신문도 읽고, 손석희의 시선집중도 열심히 들었는데, 왜요, 왜, 내가 제일 답답한 건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노력하지 않았다, 라고 할 수 없지만, 다들 열심히 하기 때문에 이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다. 이럴 때 방법은 한 가지,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이 되는 것이겠지. 그런데 다들 이런 생각이니까, 다들 나는 놈이 되어버리니까 갈수록 힘들어진다. 게다가 이번에는 4차 면접까지 치른 후 300명 중에 겨우 1명을 뽑는 것이었으니 달리 할 말이 없긴 없다. 

 현재 이 책을 180여 페이지 읽고 있는데, 책에 의하면, 우리 나라 직업 중에 열정노동에 지배당하지 않는 직업군이 거의 없는 것 같고, 그나마 스스로가 '노동자'가 아니라 '창작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업'도 사실은 가장 열정노동을 강요하는 분야일 수 있다. 물론 본인은 그렇게 느끼지 않고, 만약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 좋아서'라기보다는 '너희는 좋아하는 일을 하잖아'라는 말로 '좋아서 하는 일'에 대한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의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외국의 사례를 비교하면서 우리 나라는 역시 모든 면에서 젊은이들 복지에 취약하는 것을 보여주니까, '한국은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어권에서 태어나지 못해 몇 년이나 영어에'만' 투자해야 하는 이 운명이 야속하기도 하고-영어권에서 태어났으면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여튼, 여튼, 여러가지 생각을 든다. 특히 요즘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시위와 맞물려 20대 청춘을 '젊음'이라는 자본을 가진 '강자'로 착각하는 건지, 혹은 청춘에게는 이미 '젊음'이 보장되어 있으므로-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므로- 그들의 희생은 당연한 것인지, 뭐, 나는 내 청춘이 그렇게 청춘답다고 말할 수 없으므로 내가 얼마나 강한지도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반값 등록금 시위 현장을 트윗으로 속달받으면서 느낀는 것은, 20대는 여기까지 왔구나-정말로 와 버렸구나 어쨌든 오긴 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현실을 계속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이런 생각 결코 하지 않았는데, 정말 사회순응적인 인간이었는데, 지금도 굉장히 순응적인 편이지만, 돌이켜보니 내 삶이 돌아가는 사이클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취업고민없는 자유로운 젊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세상이 20대에게 공부할 시간을 더 줬으면 좋겠고, 그리고 근무 여건이 괜찮아서 조금 덜 받더라도 일할 맛이 난다는 소문이 도는 취업자리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솔직히 공사,공단을 희망하는 것도 그런 것이니까).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디스토피아를 바라지 않는 건데, 어쨌든 난 그렇게 힘들어 죽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를 생각하면 조금 막막하다.  

_트윗: 그래서방금내린결론은영어를더하고(말하자면토익이고)신문을미친듯이읽고시사지를읽고매주한편씩논술을쓰고수학문제를더빨리풀수있도록구몬학습을신청하고내가가고싶은기업의홈페이지를이잡듯뒤져야겠다는것그러나문제는여기에어떤비판같은것이없다는것이다그냥그렇게해야겠다고내가생각하고있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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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토끼 2011-08-1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정은 노동(강제적인 것으로 취급되는 모든 부류의 일)에 대한 거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건가.
 

나는 내가 조금도 읽지 않고 쓰지도 않고 살 수 있는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번 그렇게 해봤는데, 그런 결심을 했을 때, 내 상황은 대학원까지 끝난 상태에서 학교로 갈 수도 없었고, 글 쓸거예요, 하면서 부모님한테 빌붙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외부적인 상황이 내가 지난 몇 년동안 유지해온 삶의 체계를 바꾸도록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취직이라는 것을 해야한다면 영어를 해야 하니까 영어를 하겠다고 말하고, 다시 학원비를 타다 쓰고 밥값을 타다 쓰고 가끔 놀아야 된다고-그러나 거의 놀지 않았다 돈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이만원을 추가로 타서 썼다. 물론 내 통장에도 빈약하나마 돈이 약간 있었고, 내 돈을 탕진하면 믿는 구석이 사라지는 것이므로 아끼고 아끼면서 썼다. 그러다가 겨우, 통장잔고가 바닥을 찍기 전에 일자리-임시적인-를 얻었다. 그 사이 나는 책을 아주 안 읽었던 것은 아니지만, 진짜 많이 읽지 않았고, 스스로도 책 따위가 지금 뭐가 중요해, 하면서 읽지 않았고, 글은 진짜 쓰지 않았다. 가끔 쓰고 싶어서 몇 자 끄적였지만, 그것은 완성되지 않았고, 완성된 것을 쓰는 것은 왠지..죄를 짓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소 혼란스러웠던 일 년동안 예전과 달리 나에게도 세상에 나갈 때 내밀 수 있는 토익 점수라는 것이 생겼고-그러나 부족하다고 느낀다 왜냐면 토익 고득점자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느끼게 만드니까- 당분간은 돈을 벌 수도 있게 되었다. 말하자면 안정권. 그리고 주말이 되자, 친구도 별로 없고, 애인도 없고, 할 것도 많지 않은 나는, 집요하게 도서관에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그러다가 이제는 사무가 끝나면 도서관에 갔다. 왜 가냐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거기 가면 내 눈에 활자를 찍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되도록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도서관-어차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에 가서 아무거나 읽고 있다. 그런데, 이 기분이 학교 다닐 때 책을 읽던, 그 숙제하는 기분이 아니었다. 정말 좋았다. 책을 읽고, 글도 좀 썼다. 하지만 이제 나란 인간은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읽고 싶었던 것이라고 느낀다. 점점 알게 된 것은, 세상에 책의 형태로 나온 것 중에 쓰레기란 없는 것이 아닐까. 그냥 책이라는 판형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것의 가치를 느끼는 구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중에 정말 좋아서 미치게 만드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만 읽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누군가 가치 있다고 선정해 놓은 것만 읽는 일이, 어쩌면 지난 몇 년간의 내 독서를 힘들게 했던 것이다. 이제는 거의 읽는 일, 쓰는 일로 업을 삼겠다는 마음을 포기했고 그래서 읽고 싶은 것에만 마음을 기울이게 됐고, 그러자 정말 즐거워졌다. 하루 종일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눈이 아프고 엉덩이도 아픈데, 사무실에서 나오면 바로 도서관으로 가서 다시 아픈 눈, 아픈 엉덩이로 책을 보고 메모한다. 그리고 아무런 욕심도 갖지 않는다. 이 상태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난 이런 삶을 내가 계속 살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하지만 틀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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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06-08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도 읽지 않고 쓰지도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그럴 때 읽게 되고 쓰게 되는 무언가가, 굉장히 좋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예감이 있어요. 통장잔고는 떨어지고, 날은 덥고, 저도 오늘은 도서관에나 가야겠어요.

김토끼 2011-06-08 16:51   좋아요 0 | URL
저도 30분 후면 도서관에 앉아 있을 것 같아요. 5시가 퇴근!! 여름에는 시원해서 가는 일이 많아요. 작년 여름에는 거의 도서관에서 살았던 거 같아요. 공부도 공부지만, 무엇보다 도서관은 무료고 집에 있으면 더워서요 ㅎ 조금도 읽지 않고 쓰지도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에는 조금이라도 읽고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걸 깨달았어요. '쓰고 읽는 것' 이외의 삶의 다른 부분을 고민하게 되면서,,,이상하게도 '쓰고 읽는 것'에 더 집착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잠시후에는 서로 각자의 도서관에 있겠네요.^^
 

 

2011년 5월 29일 일요일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4쪽-56쪽

_과연 정말 좋아서 하는 걸까?  
_항상 더 열심히를 부르짖게 되는 건 내재화된 기업가의식 때문?
_문화종사자: 우린 노동자 x 장인 o 그런데 배고프고 일은 죽도록 하는데 삶의 질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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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파구가 없을 때 보게 되는 종류의 책들이 있다. 자기계발서. 혹은 셀프-코칭. 이렇게 처세를 강조하는 책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저항하는 그룹도 있지만, 반대로 지지하고 숭배하는 세력도 있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잘 써진 자기계발서는 아주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편. 말하자면 지지 세력이다. 시기적절한 순간에 등장해주는 자기계발서는 고맙기까지 하다. 솔직히 말하면 '여자의 운명은 20대에 결정된다'는 나만의 명저다. 속물 20대의 철저한 자기 관리 같은 게 뭔지 알게 되었을 때 어쩐지 쾌감이 들었다. 원래부터 말초신경을 자극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잘 팔릴 목적으로 세상에 나오는 책들은 말초적으로 가는 부분이 있다. 그래도 안 팔리는 책들이 있고, 잘 팔릴 목적 없이 세상에 나와서 잘 팔리는 경우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목적이 어떻든 책은 읽히려고 태어난다는 점이다. 여하튼 '읽힌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신문의 단평이나 블로그 한 꼭지, 심지어 화장실 낙서에도 적용된다. 분명 그 세계에서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는 사람이 있고 대충 읽혀도 그만 안 읽혀도 그만인 태도로 쓰는 사람이 있을 테다. 그런데 결과는 묘하게도 열정을 다해 쓴 글이 안 읽히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대충 썼는데 막 읽히는 때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이기는 습관>을 보고 쓰는 글이니만큼, 이기는 습관에 초점을 두고 얘기해보겠다. 그러니까 '열정적!' 그것은 이기는 습관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그 '열정적'이 '지는 습관'을 감싼 금박의 포장지 같은 건 아닌가 싶다. '잘 하고 싶다. 완전 잘 하고 싶다. 미친 듯이 잘 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열정'이라는 껍데기를 썼을 뿐. 그런 마음은 기본적으로 못하는 자신을 인식하는 데서 온다. 못하니까 잘하고 싶어지는 거다. 잘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 안 한다. 잘 하는 사람들은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한다. 예를 들면 '잘 쓰고 싶다. 엄청 잘 쓰고 싶다'랑 '조사의 쓰임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다' '좋은 문장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스스로도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싶지만 더 얘기하면 '대충'이라는 말 속에 오히려 '이기는 습관'이 있다고 본다. 100ml컵에 물을 부어 넘치려면 얼마의 물이 필요하나? 뭐, 100ml이상의 물이겠지. 인풋이 넘쳐야 아웃풋이 나온다고, 지금 메모지를 펼쳐 한 문장만 써보면 된다. 그것이 바로 컵에서 쏟아진 물이다. '대충'하는데 결과가 좋은 사람들은 평소 컵에 물이 차고 넘치는 사람일테다. 막 휘갈기는데 작품이다. 그간의 과정이 struggle인지 enjoy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의 컵은 이미 넘쳐 흐르고 있다. 그런고로 때때로 열정은 대충을 이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 대충이라는 경지 속에 오랜 열정의 시간이 축척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뭐든 대충할 위인은 안되니, 감히 추측만 할 뿐이다.

 

★ 이 구절이 좋았습니다. 

(140) 프로는 아마추어처럼 '노력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이나 '전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는 낭만적인 생각으로는 생존할 수가 없다. 결국 프로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은 경기에 나가 이기는 것, 탁월한 실적으로 우승컵을 거머쥐는 것뿐이다.  

(끝)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모든 일에서 
       극단에까지 가고 싶다. 
       일에서나, 길에서나
       마음의 혼란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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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1-03-29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지금까지의 저는 항상 '아 젠장 엄청 잘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쪽. :)

김토끼 2011-03-30 10:10   좋아요 0 | URL
팝트레쉬님은 '아 젠장 엄청'까지는 아니어도 '엄청' 잘 쓰고 있으신데요!! '아 젠장'까지 바라시는 거였군요 ㅎ _자기계발서가 질타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생각의 틀을 이분화시키니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극단으로 밀어붙일만큼 혼란을 주는 책을 읽어야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고로 누군가는 안 읽히려고 기를 쓰고 써나가는 모습도 멋있지 않을까요.ㅎ 저만의 생각일까요.. (갑자기 강연회에서 박상륭 소설가가 "남자들은 소설 쓰지 마세요, 여자는 좀 괜찮지만, 그래도 왠만하면 쓰지마세요"라고 한 게 떠오르네요.)
 

 

뭐라도 쓰는 게 중요하다. 

 

-친구와 포 베이 (쌀국수+매운 볶음밥) ; 해후라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느낌은 거의 오래 묵은 세월을 뚫고 만난 것 같았다. 친구의 헤어 스타일이 참으로 도시적이었다. 칼로 자른 듯 그러나 한층 세련된 그 차가운 느낌. 그러나 헤어 스타일과 상관없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서 한국식 난방으로 가동되는 아파트를 건설하라거나, 중국의 고산지역에서 매일 아침 10km의 산길을 헤치고 나아가 물을 길어오라고 해도 거뜬히 해낼 것 같은, 생존적인 매력이 있는 친구다.(뭐라 설명 할 수가 없다.) 

-혼자 서점 ; 영어 공부 하려고 영어 원서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외국인들에 흠칫 놀라 슬그머니 다른 쪽으로 피신했다. 한국인과 함께 왔는데 'it's fine'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영어다. 왁. 나도 외국인과 친해지고 싶다. 어떤 기분일까? 그나저나 세스 고딘의 '더 딥'을 사려다가 조금 비싸서 포기했다.  

-성적 확인 ; 오늘 토익 성적 나왔다. 좌절과 조용한 환희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겠지. 나는 조용한 환희 쪽에 가까웠다. 점수가 진리인 날도 있는 것이다. 조금 기뻤다. 조금. 내 생각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익 점수 너무 높은 편인 것 같다. 특히 목표 점수는 더 높다. 상향 평준화라고 하던데. 그렇다고 하향 될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지 않나. 

 -현미 ; 밥에서 떡 맛이 난다.     

 

-오늘 안과도 갔다왔다. 코가 막히는 것과 눈이 건조한 것 사이에 뭔가 연관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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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3-2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경험에 의하면요, 점수는 늘 진리였어요. 늘.

김토끼 2011-03-22 08:00   좋아요 0 | URL
시험을 오랜만에 봐서, 잠깐 잊고 있었어요 .. 이 세상 어딘가에 모든 인간을 점수로 환산하는 기계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항목을 조합해서 뭐 체력, 리더십, 배려심, 독립심, 추진력 등등을 수치화 한 그런 것이 있지나 않을런지.. 어릴 때 프린세스 메이커를 너무 했나봐요. 몹쓸 상상력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