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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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추천하는 책들을 많이 읽게 된다. 이 책도 그렇게 걸려든 책이다. 신형철에, 무려 그리스인 조르바라니.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도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오호. 신나게 주문해 놓고는 다른 책들의 홍수에 휩쓸려 묻어 두었다. 주문한 것도 잊었더랬다. 서가에 책을 꽂을 때, 나름의 규칙을 두고 꽂는 편인데-한국 문학과 해외 문학의 서가가 다르고, 보통은 작가별로 꽂아둔다- 이 책은 뜬금없이 박완서 서가에 꽂혀있었다. 새로 출간된 박완서의 책을 읽고 꽂아두려고 갔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뽑아들었다. . 그래, 나 이 책 주문했었지.

 

책 뒤의 소개 문구를 읽어본다. 저명한 작가인 20년간 집안일을 돌봐준 가정부 에메렌츠를 추억하는 이야기. 오호. 보통 이러면 작가인 가 괴팍해야 하는데 가정부가 괴팍하단다. 조르주 벨몽이 쓴 나의 프루스트 씨류의 책인가. 에메렌츠와 셀레스트 알바레는 어디가 닮고 어디가 다른가 보자.

 

책을 펼쳐서 작가 소개를 본다. 서보 머그더. 헝가리 작가란다. 어라. 헝가리. 헝가리는 동유럽에 위치한 국가로 2차 세계대전 초반에는 독일과 동맹을 맺은 이력이 있는 공산 국가다. 내가 아는 헝가리에 대한 정보는 그 정도. 익숙하지 않은 국가다. 잠깐은 체코와 헷갈렸을 정도로. 그런데 나, 이 헝가리 출신의 작가 중 아는 작가가 있다. 산도르 마라이크리스토프 아고타. 아는 정도가 아니라 꽤 좋아하는 작가다. 이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신형철의 안내대로 천천히읽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아니 책의 시작은 악몽과 살해에 대한 고백이다. , 가정부 에메렌츠를 죽였단다. 괴팍한 가정부라고 했으니 얼마나 괴팍했길래 살해까지. 이건 흥미진진한 스릴러인가. 에메렌츠는 댄버스 부인 류였던 건가. 살해의 고백으로 책을 시작한 화자는 곧 에메렌츠와의 첫 만남부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자인 새 집에서 더 많은 가능성과 함께 책상에 더 오래 붙어 있고, 수도 없이 집을 비워야 하는 과외의 의무도 져야 하는 전업작가로 전향(p. 12)”하게 되었기에 집안일을 돌봐줄 누군가를 찾는다. 옛날 학교 친구가 소개해 준 에메렌츠는 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남자관계도 없고, 사람들에게 선물 주기를 매우 즐긴다. 무엇보다 집안일의 대가로 지불하는 돈은 그녀에게 별반 중요하지 않으니 우리가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p.13)”하단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입장이 뒤바뀌는 거다. 에메렌츠는 며칠에 걸쳐 화자 부부에 대한 평판을 수집한 다음에야 일을 수락하는데, 급료와 근무시간 마저 자기가 정한다. 그러니까, 다른 일들-공동주택의 관리인-을 하는 중간 비어있는 시간에 와서 일을 할 건데, 변덕스러운 근무 시간은 놀랄 정도의 성과를 동반해 나를 놀라게 한다.

 

두 사람은 천천히 친해진다. 첫 만남에서 화자의 남편(아마도 같은 작가이거나 최소한 학자일 법한)에게는 주인님이라는 칭호를 바로 사용하지만

 

에메렌츠에게는 내 남편에 대한 호칭만 있었을 뿐그녀에게 나는 여성작가도부인도 아니었다그녀의 삶에 마침내 내가 자리매김하기 전까지그녀의 관계망 속에서 내가 누구이며나에게 적합한 호칭은 어떤 것인지 그녀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그 기간 동안나에 대해서는 어떤 호칭도 없었다.

p. 19

 

그렇게 약 5년간, 화자 부부에게는 에메렌츠가 필요하지만, 에메렌츠에게는 굳이 가까이 둘 필요가 없었음에도 화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함께 한다. 그러다 화자의 남편이 폐종양 수술을 받았고, 수술이 끝난 직후 기진맥진해 진 화자가 홀로 집에 들어갔을 때 에메렌츠는 화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제외되었음에도 지친 화자를 돌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남편이 수술에서 잘 회복되던 무렵의 크리스마스날, 화자는 강아지 비올라의 생명을 구하고 그것으로 에메렌츠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비록 강아지 비올라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화자를 주인마님이라고 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긴장을 가지고 이어진다.

 

그 어떤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든그녀의 눈에 공구들을 돌리고 조이지 않는 남자들은 모두 기생하는 사람들이었다물론 질서를 다루는 그 총경은 제외하고각종 구호들로 연설하는 부인들도처음에는 나를 포함하여 빵을 축내는 사람들이었다.

(p. 149-150)

 

처음에는 만성적인 노동 기피자를 대하듯 우리들도 낮춰보았던 에메렌츠도 우리집의 문지방을 넘으면서는 반감이 약해졌는데, 우리가 두드리고 있는 것이 기계(타자기 말이다)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밥벌이를 하는 데 작은 기여를 한다고 스스로를 확신시켰기 때문이다. ‘에메렌츠의 세상에는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p.154) 말하자면 에메렌츠는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이고 화자 부부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에메렌츠의 반감과 경멸은 매우 두드러지지만 그것이 화자 부부에 와서는 약해진다.

 

왜 자신과 그렇게나 다른 내게 그녀가 집착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나의 어떤 면을 그녀가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는 내가 아직 젊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운명적으로 뒤엉켜 있으며예측불가능한 감정인지를 나는 철저히 분석할 수 없었다.

(p. 163)

 

화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에메렌츠는 화자에게 애정을 가졌고, 그 애정은 에메렌츠 평생의 신념(빗자루질에 의한 구분)도 대충 뭉뚱그릴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이었다. 이유가 없었기에 더욱 강력해 질 수 있는 것이 애정이다. 끝내 에메렌츠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집, 닫힌 문 너머를 나에게 열어보인다.

 

당신에게 이것들을 맡긴 것당신을 여기 안으로 허락한 것이 이상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 줄 수는 없네요.

(p. 231)

 

그것이 에메렌츠에게는 가장 강력하고 절실한 애정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끝내 에메렌츠는 나를 머그두슈카라고 부른다. 오직 부모님만 사용하던 호칭으로 나를 부른 거다. 에메렌츠는 엄마가 딸을 사랑하듯 화자를 사랑했다.

 

신형철은 이 소설을 천천히 세 번 읽었다고 소개한다. 여기까지 읽었더니 신형철이 왜 세 번이나 읽었는지 이해가 된다.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앞에서 그저 넘겼던 서술들, 짧은 문장들이, 작가는 물론 알고서 그렇게 배치했겠으나 독자는 무심코 넘겼던 구절들이 갑자기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덤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에메렌츠가 화자에게 끊임없이 다그쳤던 것처럼.

 

당신은 얼마나 바보 같은지요죽은 사람에게는 이미 모든 게 마찬가지예요망자는 제로예요영이에요어떻게 이런 생각을 못하는 거지요그 정도 나이면 충분한데도 말이에요

(p.314)

 

이 쯤 되면 책을 앞으로 허겁지겁 돌려보게 되는 것이다. 아아. 나는 얼마나 많은 구절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인가. 작가가 보물을 배치하듯, 책의 구석구석에 비치해 둔 그 많은 애정들을.

 

당신은 모든 것에 대해 나와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천만가지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은 배웠겠지만 그런데도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요당신이 쓸데없이 눈을 부라린다고 해도완전히 나의 것이 아닌 사람은 나에게 필요 없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으세요? ............ 그 사람을 남편으로 원했기에 내가 그를 친구로 삼지 않은 것인데마치 태어나지 않은 자식처럼 나에게 굴지 마세요. .............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그곳에 당신을 허락한 것도 잊지 말아요내 안에 더 이상은 없으니 이 이상 더 줄 게 없어요.

(p. 235-236)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영화 일 포스티노로 유명한 책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칠레 쿠데타가 일어나고, 집에 감금된 노벨문학상 수상자 네루다에게 쏟아지던 전보들. 우체부 마리오는 그 전보를 직접 전달할 수 없어 외어 와 읽어준다.

 

아옌데 대통령 죽음에 공분과 애도정부와 국민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 씨에게 망명지 제공스웨덴.”

다음

네루다는 눈자위에 그림자들이 어리는 것을 느꼈다그 그림자들은 거센 물줄기나 질주하는 유령들처럼 유리창을 산산이 부수고모래사장 위에서 스멀스멀 몸을 일으키는 희미한 몸뚱어리들과 어우러지고 싶어 하는 듯했다.

멕시코 정부시인 네루다 씨와 가족에게 비행기 제공조속한 내왕 바람.”

마리오는 낭송은 했지만 이미 시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네루다의 우편배달부우석균 역민음사, 2004, p.156

 

죽음을 앞 둔 시인에게 전해진 무의미한 구조 신호. 안전에 대한 그 완벽하고 거대한 약속이 오히려 얼마나 무심하고 슬펐던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도 그와 비슷하다. 병원에 누워있는 에메렌츠를 두고 문학상을 수상하고, 해외 문인 회의에 참여했던 나. 그 무의미함이라니.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그 외 무엇도 아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해가 된다. 4백쪽이 안되는 소설을 4천 쪽짜리 대하소설인 양 읽어야 했다는 신형철의 말이. 4천 쪽만큼의 감정이 4백 쪽에 응축되어있다는 그 말이.

 

전 세계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7700만에서 8천만을 헤아린다고 한다.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1300만명 정도다. 변방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어 사용자의 약 1/6 수준이다. 변방 중의 변방이다. 그 적은 수의 사람만이 사용하는 헝가리어로, 1987년에 출간된 이 책이, 2015년에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이 되고, 그로부터 또 4년이 지나 2019년 한국에 출간된 이유는 그 4천 쪽만큼의 감정 때문이다.

 

당신은 유다예요그녀를 배신한 거예요.

p.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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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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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통이없는 사자는 가짜가 아니고, 있을 것은 다 있는 그 강아지가 가짜인가요? 여기서 나에게 이랬다저랬다 무슨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 P115

자신 앞에 음식이 놓여서 예배 후 먹을 준비만 한 채 집에 당도하는 사람은 얼마나쉽게 독실해질 수 있는지를 내가 깨우치라는 것이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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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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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였다. 명절 연휴의 첫 날, 무료하게 TV 채널을 돌리다 배우 염혜란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소개하는 장면을 보게 된 거다. 김고은과 공유가 나온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고은의 악독한 이모 역할로 익숙했던 염혜란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배우 릴리 프랭키의 연기에 대한 칭찬을 하고 있었다. 릴리 프랭키. . 알아, , 이 사람. 나에게는 일본의 배우이기 전에 에쿠니 가오리의 것과 같은 동명 소설 도쿄타워의 작가로 먼저 익숙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주문하려다 실수로 릴리 프랭키의 책을 주문했고, 책을 받고서도 으레 저자 이름을 확인할 생각도 없이 펼쳐 읽다가 엥? 에쿠니 가오리 작풍이 바뀌셨나 했다가 처음 알게 된 작가. 실수였는데 뜻밖에 대박이었던 책으로 기억하고 있다. 에쿠니 가오리의 동명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소설의 저자로 상상한 릴리 프랭키는 뭐랄까, 약간 깍두기스러운 단순하지만 단단하고도 우직한 남자 였는데, 어라, 저 헐랭해 보이는 남자가 릴리 프랭키라고. 그래서 보게 되었다, 이 영화.

 

작년, 아니 재작년. 2019년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고 난리가 났었다. 그 관련 기사에 늘 언급되던 이름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고,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2018년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 수상작품이다. , 그렇군. 일본에서 우리보다 먼저 황금종려상을 받았네? 했다. 그리고 얼마 뒤, 2020년 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감독상, 각본상에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같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아카데미 무관인데 말이다. (외국어 영화상 최종 노미네이트까진 되었다) 이 촌스럽기 짝이없는 국수주의자는 은밀히 웃었다. 그리고 잊었다.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알라딘에서 보게 된 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소설 좀도둑 가족. 난 영상보다는 활자를 좋아한다, 이 유튜브 시대에 덜떨어지게도 말이다. 영화로 유명한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책으로 먼저 읽었다. 활자화 된 어느 가족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굳이 영화로 봐야만 하나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다시. 그렇게 되었던 거였다. 릴리 프랭키 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굳이 보지 않았을 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매우 서술적인 제목의 이 영화. 큰 기대 없이 무료한 설날 연휴를 보내는 중간에 끼어든 덤덤한 이벤트로 보기로 한 거다.

 

도쿄의 고급 맨션에 거주하는, 성공한 건축가 노노미야 료타에겐 아름다운 아내와 여섯 살 난 아들 케이타가 있다. 료타의 욕심만큼 출중한 능력을 지닌 아들은 아닐지언정, 케이타는 아버지의 기대 수준을 맞추려 최선을 다하는 아들이다.

처음엔 노노미야 료타 역의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한국 배우 정우성과 꽤나 닮아보여서 신기해 하며 봤다.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더라, 아예 이 두 배우 연관 검색어가 있더라니까. 진짜 닮긴 많이 닮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꾸만 케이타가 눈에 밟혔다. 어떤 감정은 자신이 그 상황이 되었을 때에 비로소 명확하게 읽히기도 한다. 엄마인 나는 애쓰는 케이타가 몹시 아팠다.

 

6년을 친아들인줄 알고 키웠는데 어느날 갑자기 애가 바뀌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병원에서는 아주 단순하게도 이런 경우 100% 교환을 선택합니다.” 라고 말한다. 교환이라니. 이게 무슨 오배송 된 택배도 아니고 말이다. 처음에 노노미야 료타는 당연하다는 듯 교환을 선택한다. 6년간 키워온 아들 케이타를 버리는데 별 고민이 없어 보인다. 바뀐걸 아는 순간에 네 아들을 돌려줄 테니 내 아들을 돌려다오, 하는 건 아닐지언정 바뀐 아들을 키우는 저쪽 부부와 교류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친아들을 돌려받기 위한, 말하자면 친아들의 충격을 좀 덜기 위한 과정으로 보였을 뿐 6년간 키워온 케이타에 대한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은 별로 없어보인다. 그에게 아들은 자신의 삶의 업적이나 마찬가지이니까. 어쩌면 병원에서 말한 교환이 료타에게는 딱 맞는 표현이었을지 모르겠다.

 

몇 달의 교류를 거쳐 양가는 료타의 의사대로 아이를 교환하기로 하고 각자의 친아들을 각자의 집에서 돌보기 시작한다. 케이타의 부재가 비로소 료타도 알지 못했던 케이타에 대한 애정을 깨우기 시작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낳은 정과 기른 정의 대립에서 감독이자 작가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매번 키운 정에 손을 들어준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가에 대한 질문은 감독 작품의 순서상으로는 뒤쪽이지만 내가 접하기로는 먼저인 좀도둑 가족에서 명확하게 말한다. 시바타 가족은 가짜 할머니, 가짜 부부, 가짜 손녀 가짜 아들로 이루어진 가짜 가족이지만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는 것에서만은 오히려 가짜가 진짜 가족이라고.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결국, 료타는 그렇게 케이타의아버지가 된다.” 로 결말을 짓는다. 아이가 바뀐 것을 알기 전, 케이타에게 아버지 료타는 늘 잠만 자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조차 사랑하고 관찰하며 사진을 찍어주던 케이타, 료타가 아버지가 되기 전에 이미 케이타는 아들이 되어 있었고 낳았으니 아버지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료타를 깨닫게 한다. 이제 케이타의 아버지가 된 료타는 릴리 프랭키가 열연한 사이키 유다이 씨에게 배운대로 아버지 노릇을 잘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행위로서의 아버지 노릇이 아니라 감정적인 아버지 노릇이다.

 

부모 역할이란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는 과목의 공부와도 같다. 누구나 부모 노릇은 자신의 부모에게서 배우게 된다.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키운 방법이 아무리 싫었다고 한들, 다른 부모노릇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 속담대로 미워하며 닮는다는 식으로 미워했던 그 부모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료타 역시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양육한대로 케이타를 양육했고, 아들이 바뀐 것을 알지 못했다면 아버지가 될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케이타를 사랑한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면서도 사랑한다고 믿고 살았을 것이다. 일본의 배우 기타노 다케시의 말처럼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믿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연이니까 가족이라고 믿으며. 사랑하지 않으면서 혈연이니까 가족인 걸까. 혈연이 없더라도 사랑하고 아끼면 가족인 걸까.

 

책으론 그저 그랬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이렇게 괜찮다면, 어느 가족도 영화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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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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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지금 누가 나에게 보통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이마에 뿔만 안 달리면 다 보통 사람이라고 대답하겠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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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상 가장 미움받는 왕이 인조다. 재위 기간이 짧았던 예종(세조의 아들, 9개월), 인종(중종의 아들, 8개월) 등이 존재감이 없어 미울 꺼리조자 없는 것과는 반대다. 일단 인조의 존재 자체가 인조 반정이라는 거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으며 재위기간 내내 비극적인 사건은 줄을 이었다. 두 번의 호란을 겪었고, 아들 소현세자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며느리 강빈을 사사했고, 세 명의 손자 중 둘을 굶겨 죽인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친아들이 맞으니 그가 굶겨 죽인 손자도 친손주가 맞다. 심지어 소현세자가 8년간 심양에서 인질 생활을 하는 동안 인조의 궁에서 인조가 직접 기른 손주이기까지 하다. 도대체 인조는 제가 낳은 친아들 소현세자를 왜 그리도 경계하고 미워했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는 말을 다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뒤직거리다보면 만약이라는 가정을 하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조선의 역사에서 그 가정을 가장 강하게 하게 되는 순간이 소현세자와 강빈에 관한 기록을 들추는 순간 아닐까. 무능한 왕 인조를 대신해서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요망하기로 장녹수 찜쪄먹을 후궁 조씨 대신 대찬 소현세자빈 강씨가 조선의 궁궐을 휘어잡았더라면. 병자호란 직후 인조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더라면, 아니, 8년간의 인질생활을 거친 소현 세자가 인조 사후에 정상적으로 왕위에 오르기만 했어도 어땠을까. 봉림대군 대신 말이다.

 

인조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가정이다. 당시 조선 상황으로는 세종과 같은 명군이 아니라 세종 할애비(어라, 세종 할애비가 무려 태조 이성계일세. 아하하, 이 비유의 허무함이라니)가 왔어도 그 난관을 쉽게 극복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봉림대군 대신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랐다고 한들 효종임금보다 나은 임금이 되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함께 큰 물에서 놀았던 소현세자는 청 세조 순치제의 숙부이자 살아생전 황제 순치제보다 큰 권력을 누렸던 섭정왕 도르곤조차 꽤 인정했던 큰 시야를 가진 인물이었던 것 같은데 봉림대군은 8년간의 심양 인질 생활에서 배운 거라고는 청에 대한 원한밖에 없었던 걸까. 훗날 연암이 허생의 입을 빌어 통렬하게 비판하는 허위에 가득한 북벌론밖에 주창한 바가 없으니. 같은 아버지의 자손이 이렇게 다를 수가.

 

사람들의 생각은 다들 비슷하게 출발한다. 소현세자와 강빈에 대한 많은 저작물들, 학술적 기록과 그에 기반한 소설적 상상력 모두 그 아쉬움을 강하게 드러낸다. 똑같이 아들을 죽인 아비일 지라도 영조와 인조에 대한 평가가 이리도 극명하게 갈리는 것은, 소현세자와 사도세자가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역시 당쟁에 희생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사도세자가 이미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였음은 많은 기록들이 증명하고 있지 않나. 심양일기를 비롯한 심양에서 보내온 숱한 장계에서 드러나는 바, 소현세자는 당대 조선의 인물로서는 드물게 매우 실사구시(實事求是)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의 아내 강빈과 함께 말이다. 농지를 경영하고, 조선의 조정에서는 구하지 않았던 조선의 포로들을 석방시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백성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왕과 나라는 대체 왜 존재하는가. 소현과 강빈은 심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는 조선의 백성을 보호하려 노력하였고, 그것이 조선의 백성을 버려두었던 인조와 조정의 미움을 샀던 것일 게다.

 


작가 김인숙에 대해서 나는 그간 애매한 평가를 내려왔다. 평가를 내린다는 말 자체가 웃기기는 하지만, 김인숙의 작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소설 소현은 김인숙을 새롭게 보게 된 작품이다. 호오, 이 작가, 글을 꽤 쓴다.

 

배반하지 말라, 무엇도 배반하지 말라. 그리고 의심하지 말라! 내가 다만 조선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음이니!”

 

김인숙, 소현, 자음과 모음, 2010, p. 75

 

김인숙이 보는 소현세자는 이러했구나. 아버지와 조선 조정의 의심을 살까 조심했던 소현의 절박한 외침은 소현세자의 절박함을 드러내기 보다 인조의 옹졸함과 조선 조정의 비루함을 더욱 크게 웅변한다. 본디 무능하고 감당못할 자리에 앉은 자들은 자신이 할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짐을 덜어주려는 자들에 대한 의심만을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삼는다. 이와 같은 태도는 김훈의 선조에게서도 보인다.

 

-전하, 통제공의 죄를 물으시더라도 그 몸을 부수지 마소서. 전하께서 통제공을 죽이시면 사직을 잃으실까 염려되옵니다.

임금이 대답했다.

-너희들이 남쪽 바다에서 사직을 염려했느냐?

 

김훈, 칼의 노래, 생각의 나무, 2002, p. 119

 

임금이 아닌자가 나라를 걱정할 때, 무능한 임금은 불안에 시달린다. 김훈의 선조는 임금은 나를 죽여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고 나를 살려서 사직을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었다”(p. 165) 였다. 인조는 소현을 인질로 보냄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고 싶었을 것이고, 소현을 죽이는 것으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려 했다. 아아, 이 무능하고 욕심 많은 것들아.

 

병자호란의 슬픔은 수많은 포로가 끌려감에 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일본도 조선의 백성을 수없이 끌고 가기는 했으나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포로노획은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인조 때 이조판서를 지낸 최명길에 의하면 호란 직후 50만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추측하였는데, 당시 조선의 인구가 6-7백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10%의 인구가 끌려간 거다. 이들의 서글픈 이야기는 이후 다양한 소설로 변주된다.

  


(헉, 하얀새는 절판되어 이미지도 없나보다.ㅠ.ㅠ)


그 중 최고의 소설은 송우혜의 하얀새(푸른숲, 1996)라고 생각한다. 송우혜는 윤동주 평전으로 유명한 동아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작가이자 사학자다. 이분의 이력은 매우 독특한데, 서울대 간호학과를 들어갔다가 중퇴하고, 신학대학에 들어가 졸업한 뒤, 사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는다. 간호와 신학과 사학이라니. 이러고는 뜬금없이 작가가 되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을 해 버리는 거다. 이런 독특한 이력은 단단하고 야무진 글쓰기를 만들어 낸다. 송우혜가 하얀새에서 구현해 낸, 조선 중기 양반 가문의 표본 같은 여인 이승효는 전형적이면서도 개성적이다. 매력적인 여인이다. 이 소설에서도 소현세자의 아내 강빈은 몇줄의 언급이건만도 뛰어난 판단력을 지닌 여인으로 묘사된다.

 

세자빈은 본시 강단이 있고 총명하여 사태 판단이 빨랐다. 아침 나절에 갑곶 나루의 수비가 무너져서 적군이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리를 듣자 성이 곧 함락당할 것임을 내다보았다. 그래서 곧 원손을 안고 성을 빠져나가 다른 데로 도피하고자 했다. 만의 하나라도 지체가 막중한 원손과 세자빈이 적의 포로가 되어 인질이 되면 전쟁의 국면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화성을 수비하던 조선군 지도자들은 사태 판단에 어두웠다.

(중략)

사태가 이에 이르자 세자빈은 독단적으로 비상조치를 취했다.

(중략)

세자빈이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음이 증명 되었다. 원손을 맡아 안고 나간 다섯 내관들은 칼을 휘두르며 성문을 열게 하여 원손을 모시고 나가서 무사히 섬을 빠져 나가 안전한 지역으로 피난했던다. 그리하여 강화섬에 있던 왕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아기 원손만 적의 포로가 되는 치욕을 면했던 것이다.

 

송우혜, 하얀새, 푸른숲, 1996, p. 209-210

 


강빈의 이런 모습은 유시연의 소설 공녀, 난아에서 더욱 자세히 묘사된다. 난아는 처음 상전 난향-강빈의 소녀적 이름-을 대신하여 명나라 환관의 양딸로 끌려가 중국 땅을 떠돌다 세자빈이 되어 심양으로 끌려온 세자빈 강씨를 다시 만난다. 이 소설에서 세자빈 강씨는 우유부단하고 연약한 소현세자를 보필하며 심양의 살림을 이끄는 여걸로 묘사된다. 하얀새에서의 승효가 조선 양반가 여인의 금제를 벗어 던지고 압록강에서 심양에 이르는 동팔참의 어느 곳에서 아주 크고 부요한 장원을 경영했듯, 이 소설 공녀, 난아에서 강빈은 난아를 매개로 하여 심양의 관소를 경영한다.

 

강빈은 소장하고 있던 서예와 수묵화, 시문을 높은 가격을 받고 청의 귀족에게 팔아서 자금을 마련한다. 그 자금으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다시 되팔고 하며 규모를 늘려나간다. 강빈이 심관에 딸린 식구들과 조선인들의 식량 조달에 힘쓰며, 생활 전반을 지휘하는 사이 소현은 황실과 권력자들과 조선의 사신단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며 조율하느라 늘 피곤하다.

 

유시연, 공녀, 난아, , 2014, p. 180

 

김인숙은 소설 소현의 저자 후기에서 조선의 기록문화에 대해 감탄한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할 당시의 기록들, 그 격변의 시기의 기록들을 중국 학자들이 조선왕조의 기록에서 빌려다 쓰고 있다(p.338)’고 하니, 기록이 가진 힘이란 엄청나다. 김인숙은 너무나 냉정하여 너무나 무한한 이야기들이 그 안에 있다고 감탄했지만 좋은 재료도 솜씨 좋은 숙수를 만나야 최고의 요리로 탄생하듯 엄청난 기록의 힘도 솜씨없는 소설가를 만나면 이게 뭐냐 싶다.

 


소설가 본인의 이름보다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의 아내라는 이름으로 먼저 소개되는 소설가 유하령의 첫 번째 소설은 청나라에 끌려가 살아남은 조선인 포로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 화냥년이다. 무려 역사소설 병자호란이라는 부제마저 달고 있는 이 소설은 푸른역사에서 나왔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아니 푸른역사 출판사 님아, 나 푸른역사 좋아하고 신뢰하는 출판사라고요, 왜 이러십니까.

 

이 소설의 저자 유하령은 후기에서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의 아내답게 수많은 참고문헌들을 자신이 읽었음을 자랑하고 있다. 자랑만 하고 있다. 이 많은 자료들을 읽고 나온 작품이 화냥년이라면 음.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이 책은 걍 패스하시라. 이 작가도.

 

마지막으로 김인숙의 소설 한 구절을 옮긴다. 이 한 구절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슬펐다.

 

조선의 적은 그들이었으나 그들의 적은 조선이 아니었다. 봉림의 찬란한 적의가 세자는 그래서 슬펐다.

 

김인숙, 소현, 자음과 모음, 2010, p. 22

 

친명과 반청, 조선의 그 명분이 과연 청나라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문득 김훈의 소설 한 장면이 떠오른다.

 






성 안을 살피던 칸이 눈에 힘을 주며 찌푸렸다. 멀리 행궁 마당에서 움직이는 것들이 보였다. 뭔가 펄럭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사람들이 그 주위에 모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칸이 용골대에게 물었다.

-저것이 무엇이냐?

 

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p. 262

 

청나라 군사에 몰려 왕궁을 버리고 남한산성에 도망가 포위당해 있는 처지에 설날이 되었다고 명을 향해 원단의 예를 치르느라 행궁 마당에 멍석을 깔고 왕이 춤추는 모습을 본 청태조 홍타이지가 묻는다. ‘저것이 무엇이냐?’라고. 네네, 청태조 아저씨. 제 말이요. 대체 저게 뭐하는 짓이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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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16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냥년이라는 말은 청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를 가리키는 한자어 환향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저게 발음이 꼬이다보니 화냥년이 된건데 정말 당대 청에 끌려간 여인들이 정절을 잃었음을 비꼬고 억압하면서 저런 말이 만들어진거지요. 작가가 좀 더 의식이 있었다면 제목을 환향녀로 해도 됐을텐데 말이죠.

아시마 2021-02-16 01:30   좋아요 0 | URL
역사학자 한명기 교수의 아내 유하령 작가는 화냥년의 어원을 우리가 흔히 아는 환향還鄕녀가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인들에게 바쳐졌던 조선의 여인들을 통칭하는 말 화랑花郞녀 에서 기원했다고 보더군요. 아주 대단한 지식의 발굴인냥 여러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제 남편은 비루한 상대출신이라 역사학자 남편을 둔 유하령 작가에게 제가 뭐라고 토를 달겠습니까만, 어원이고 나발이고 간에 소설이, 소설이. 너무나 재미가 없어요. -_-

바람돌이 2021-02-16 01:32   좋아요 0 | URL
아 처음 듣는 어원이네요. 좀 더 찾아봐야겠어요. 그리고 역사고 뭐고 일단 소설인데 그게 너무 재미가ㅠ없다니 안타깝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