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ner : A Novel (Paperback) - 『스토너』원서 Vintage Classics 765
Williams, John L / Vintage Classics / 201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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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그 후기를 보고 읽게 되었는데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된다. 책 뒷표지에 "<Stoner> is a perfect novel, so well told and beautifully written, so deeply moving, that it takes your breath away."라고 뉴욕타임즈의 소개글이 적혀 있다. 나는 이 말을 을 조금 바꾸고 싶다. <Stoner> is NOT a perfect novel, BUT well told and......라고.

 

2

이 소설은 전반적인 서술시점이 3인칭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1인칭 같은 착각에 빠진다. 당연히 윌리엄 스토너한테 감정이 이입될 수 밖에 없다. 이 소설은 스토너의 일대기다. 연대순으로 스토너의 성장과정부터 스토너의 죽음까지를 묘사한다. 스토너의 일대기는 스토너 혼자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평생 우직한 농부였던 스토너의 부모. 스토너를 농대에 보내지만 대학에서 스토너는 농사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깨닫는다. 가르치는 일도 있다는 걸 스토너는 간접적으로 알게 된다. 스토너가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 이디스. 이디스는 부서질 것처럼 예민해서 스토너의 고지식하고 우직한 성격과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보수적 시기에 형식적으로라도 모범가정을 유지하는데 두 사람 다 최선을 다 한다. 기껍지 않은 상황에서도 두 사람의 천성은 불쾌나 분노를 표현하는 편이 아니고 두 사람은 딸을 얻는다. 대학시절 전쟁이 일어나고 절친 둘이 입대를 한다. 그 중 한 친구가 죽고 사교성 좋은 한 친구는 같은 대학 학장이 된다. 같은 학과 교수와의 갈등으로 학문 정진의 기회가 닫히고 그 암흑기에 애인을 만나고 헤어진다. 그리고 그를 영문학으로 이끌었던 교수가 시들어가듯이 스토너도 시들어간다. 세월의 더께에 지적 명석함은 바래고 육체도 풍화된다. 바짝 마른 낙엽에 암이라는 강한 폭풍까지 더해져서 그의 풍화는 가속되고 결국 그는 눈을 감는다.

 

스토너 주변 인물들은 스토너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주로 이용된다. 그래서 소설이 입체적이라기 보다는 좀 진부한 면이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덮을 정도로 훌륭한게 갈등상황에서 긴장감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이디스와 결혼 전에 만날 때 어쩔줄 몰라하는 초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학원생 세미나에서 동료 교수 로맥스와 숙적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학생한테 F를 주자 평가위원회가 열린다. 세 사람의 평가위원으로 그 학생을 심사하는 컨퍼런스에서 마치 법정씬처럼 긴장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캠퍼스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 묘사는 스토너 현재와 미래 심리를 수채화처럼 묘사해서 아름답고 시적이기까지 하다. 불타는 햇빛과 더위가 어떤 때는 스토너의 생기를 암시하고 또 어떤 때는 앞으로 다가올 사건의 긴장을 암시하기도 한다. 스토너가 생기를 잃을 때 눈 쌓인 겨울과 거리의 황량함, 스토너가 마음의 버거운 짐을 지고 있을 때는 찌는 듯한 더위 등등으로 표현된다.

 

3

스토너는 작가 존 윌리엄의 자아상일 뿐 아니라 보통 우리의 자아상이다. 스토너는 원칙주의자고 완고해서 철저하게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다 갔다. 그의 출신은 땅이다. 땅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정직하다. 스토너의 전공은 "중세 서정시에 대한 고전 전통의 영향"이고 그가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열었던 세미나는 "헬레니즘과 르네상스 문학에서 라틴어 문법의 영향"이다. 그는 문법과 전통의 세계에서 살았고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벗어나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원칙에서 벗어난 경우가 딱 한 번 있었다. 세미나 수업을 듣던 학생이자 신참 선생과 사랑에 빠졌다. 보통은 비난받을 상황이지만 스토너가 단 한번도 자신의 상황이나 세계에서 도망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기에 그의 윤리적 일탈을 응원하게 된다. 심지어 친구마저도 그의 일탈을 응원하는 거 처럼 보인다.

 

"In theory, your life is your own to lead. In theory, you ought to be able to screw anybody you want to, do anything you want to, and it shouldn't matter so long as it doesn't interfere with your teaching. But damn it, your life isn't your own to lead. It's-oh, hell. You know what I mean."(207)

 

스토너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산 사람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친구가 말했듯이 스토너의 방식만은 결코 스토너의 방식이 아니라 전통과 사회질서가 제시한 방식이었다. 스토너가 문학이 전통을 계승하고 중세 서정시가 라틴어 문법의 변주라고 믿었듯이. 스토너한테 묘한 애잔함을 느끼는데 아마 스토너의 삶의 방식에서 오는 모순을 어렴풋하게 들여다보았기 때문인 거 같다. 그 모순은 스토너의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도 하니까.

 

스토너가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마지막 부분에서 스토너는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는다. 그는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 40년 간 가르쳤던 일이 단 한 권의 별 볼 일 없는 책으로 남아 바래가도 그것으로 만족하는 거처럼 보인다. 그가 죽음을 보는 관점은 이렇다.

 

"Roman lyricists accepted the fact of death, as if the nothing they faced were a tribute to the richness of the years they had enjoyed. Christian poets of the Latin tradition when they looked to death which promised, however vaguely, a rich and ecstatic eternity of life, as if that death and promise were a mockery that soured the days of their living."(41)

 

스토너는 불행해보였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았다. 과정을 즐겼으므로. 이 지점에서 실존주의 영역까지 밀고 나갈 수 있겠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평가할 수 없다. 그 삶을 산 자신만이 자신의 삶을 평가할 자격을 갖는다. 그런데 나이들어 자꾸 꼰대처럼 이걸 자꾸 잊는다. 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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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8-13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좋네요. 넙치님..^^
정말 꼼꼼하게 읽으시는게 느껴질 정도예요...

꼰대처럼이라기보다는 보이는게 많아져서이실거예요...
~~~

넙치 2014-08-14 13: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이 쉬우면서도 묘사가 아름다워서 읽는 동안 즐거웠어요.
나이들면서 다양성에 관한 생각은 넓히려고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현실에서는 참 그게 쉽지가 않네요. 자꾸 내 기준으로 재단하는 몹쓸 행동을..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