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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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원제 <Norwegian Wood> 


  죽음으로 이별한 친구와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바친다는 소설 <상실의 시대>.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감으로 읽혀졌고, 다 읽은 후의 느낌은 허무, 우울, 단절, 죽음과 일상, 일본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들이었다. 가지고 있는 비틀즈의 음반에는 아쉽게도 <노르웨이의 숲>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그 음악을 들으며 하루키의 문체를 기억했다.


  <상실의 시대>는 주인공 '나(와타나베)'와 '기즈키'와 '나오코', '미도리'와 '나'와 '나오코', '레이코'와 '나'와 '나오코', '나'와 '나가사와'와 '하쓰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오코와 기즈키라는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나', '나'와 나오코라는 관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죽은 기즈키이며, 아미료에서 '나'와 나오코를 맺어 준 것은 레이코, 이처럼 <상실의 시대>에는 삼각관계가 많이 설정됐다. 한 평론가는 '두 개의 화살은 부러뜨릴 수 있지만, 화살 세 개가 합쳐지면 부러뜨릴 수 없다는 이치를 말한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순수한 '100퍼센트 연애'라고 해도, 결코 두 사람만의 이각 관계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나오코와 기즈키, 그리고 나가사와와 하쓰미라는 이상적인 커플조차도 마지막에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둘만의 마주보는 관계는 결국 그 어느 쪽인가를 상처 입히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절함과 자살이 이 소설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관계의 좌절, 환상의 차질이 마음의 병을 낳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오코의 병이 기즈키-'나'- 나오코라는 삼각형의 한 변이 박탈당하고 만 '상실의 상처'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이라는 관계 속에서는, 오히려 악화되어 버리는 듯한 병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삼각관계는, 결국 나오코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 원흉이었다. And when I awoke I was alone.(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혼자임을 알았다)고 노래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야말로, 상실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며,  상실의 시대로부터의 깨어남이 아니었을까? 


  탁월한 묘사력과 도시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 하루키는 소설 주인공의 삶의 양식이나 태도를 적절한 분위기를 타고 글 속에 녹아들게 하는 그만의 개성적인 글쓰기 형식이 있다. 예를 들면 소비문화의 다양한 기호(위대한 개츠비, 브람스의 심포니 4번,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와인, 서점풍경, 신주쿠 거리 등) 들을 거리낌없이 작중에 많이 사용했는데 그런 현대의 풍부한 재료들이 독자의 기분에 들어맞았을 것이고 적당한 자극을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나오코를 사랑하면서도 미도리와 심리적 저항 없이 교제를 하고, 선배 나가사와와 걸 헌팅을 할 수 있을까? 또한 나오코의 완전한 장례식을 치른 후 레이코와의 자연스런 접촉도 적이 놀라왔다. 하루키 연구의 권위자는 <상실의 시대>에서 '나'와 '나오코', 그리고 '나'와 '미도리'의 관계의 매개체는 사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 또는 다정스러움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오로지 연구자의 생각일 뿐 와타나베의 삶의 행태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 그러나 때때로 너무나 그의 삶의 모습이 이해가 되는...


  늘 알고 있는 사실을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 재인식한 게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남의 눈에 비치거나 비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 해도, 가슴속에 응어리로 맺힌 상처는 곧 상실의 아픔이 되어 평생을 두고 사라지 않는다는 진리(?)이다. 인생은 다 그렇게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라는 진리를. 나오코는 죽음을 선택하고, '나'는 진정한 사랑으로 미도리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그들만의 진리인 것을...


  하루키 작품 속의 젊은이들은 세계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상실의 아픔과 존재의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는 점이 어쩌면 나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 부분이라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게 우리 대다수의 삶의 행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더 많은 이야기는 토의를 통해 나누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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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휴먼 다큐멘터리 3
헤이든 헤레라 지음, 김정아 옮김 / 민음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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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레인식 프리다 칼로 명세서>

 

  지난 목요일 KBS에서 우연하게도  TV 책을 말하다 <프리다 and 디에고 리베다>에 대한 내용을 접했다. 그 프로가 <프리다 칼로>를 읽고 있던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또한 티비 프로를 보면서 디에고의 벽화를 직접 멕시코에서 디트로이트에서 만나보고 싶었고, 코요야칸의 파란색 담장 집, 지금은 프리다 칼로 박물관이 된 그 아름다운 집도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에 앞으로 나의 소망사항으로 추가했다. 

  초현실적인 일기장을 써 온 그녀 프리다. 그러나 화단에서는 퇴폐적이고 유럽적인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라며 맹렬하게 부인한 그녀. 그래. 그녀는 '현실'에 깊게 뿌리박은 화가이며  특출하게 사실적인 화가였지. 그녀의 수많은 자화상들이... 역사상 출산을 다룬 이미지 가운데 가장 압도적인 것의 하나인 나의 탄생이... 그림 속에서 위로 받을 수 있는 가면이... 자신의 상처를 표현한 작은 사슴이...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려졌던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정체가 탄로 난 듯한 느낌이 들게 하는 꿰뚫어 보는 듯한 노골적인 시선. 기뻐서, 혹은 부조리한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그녀의 두 가지 웃음. 그녀의 생애는 재미가 넘치며 매혹적이고 비극으로 끝을 맺는 피츠제럴드의 단편처럼 흥미진진하다. 정치 영웅이자 혁명 투사로, 고통받는 여성, 학대받는 아내, 아이 없는 여인, '멕시코의 오필리아'. 공작이 날개를 펼치듯 자신의 환희를 과시했지만, 그것은 깊은 슬픔과 내면세계, 자신만의 강박 관념을 감추기 위한 눈가림이었다. 디에고의 요구나 그의 강력한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였던 파란색 담장의 코요아칸 집. 그곳은 어쩌면 가장 프리다를 닮아있던 푸른 날개를 가진 자유새의 이미지로 내게 각인됐다.

  철학은 인간을 사려 깊게 하고 책임감을 갖게 한다고 가르친 기예르모 칼로의 딸이지만 혁명의 딸로 불리기를 더 희망했던 프리다. 카추차 회원으로서 누가 더 좋은 책을 찾아내는지, 그 책을 누가 먼저 읽는지 경쟁하며, 각색해서 연기했던 프리다. 엄청난 독서광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으며, 지루하거나 수업 준비를 안 해 오는 교사의 강의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할 정도의 '당참'이 돋보인 프리다.

  자기 생각을 물 흐르듯 유창하게 표현하는 친구, 대화는 하나의 예술이며 대화 사이사이에 적당히 침묵을 지키면서 언제나 듣는 이를 사로잡았던 알레한드로를 사랑했던 프리다. 끔찍한 교통사고로 일생동안 32번의 외과수술을 받아야 했던 그녀는 부모님께 안겨 준 충격이 마흔 군데에 상처가 나는 것보다 더 아프다고 했지. 자신의 자화상은 대부분의 경우 그녀에게 행복을 가져다준 마술 부적이며 심리적 외과수술과 같은 것이었겠지.

  나를 그린 것은 혼자일 때가 많았기 때문이고, 내가 가장 잘 아는 소재가 나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유일하게 잉태했던 화가 프리다. 자신의 그림을 생산하는 생물적 기능을 수행하는 인간이라고 했던 개구리 왕자 디에고를 사랑하게 되므로 행복했으며 동시에 불행했던 프리다. 너무나도 삶에 대한 집착이 강했고 불행에 유연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비탄에 잠겨 있지만은 않았던 그녀.

  스스로를 낳은 사람, 자기의 삶으로 가장 멋진 시를 쓴 사람, 바로 그녀 프리다. 멕시코의 '국보급 커플'이며 '신성한 괴물들'로 기억된 코끼리(디에고)와 비둘기(프리다). 그 둘의 대화에는 아이러니와 유쾌함, 블랙 유머가 한데 녹아들어 있었으며 부르주아 도덕률을 거부했고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담겨 있었지. 혁명적인 삶의 의미와 진정한 색채 감각을 동시에 가르쳐 준 스승, 디에고를 가장 사랑했던 프리다. 알레한드로가 프리다를 꽃으로 감쌌다면, 디에고는 그녀를 진짜로 감싸 안아준 남자였다. 프리다의 일생 동안 두 번의 중대한 사고, 하나는 전차 사고였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 강하고 독립적인 여자들을 좋아한 '멕시코의 레닌' 디에고는 그녀를 위해 자동차 문을 열어 주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세계로 나가는 문을 열어 주었다. 테우아나 의상을 입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 프리다는 카우보이 모자에 꽂힌 공작 깃털 같은 장신구처럼 완벽한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디에고에게 해주었다.

  요염하게 보이기 위해, 아니 자신의 상처와 불편한 다리를 숨기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녀는 평생동안 삶에 대한 사랑의 확인을 함과 동시에 고통과 죽음에 대한 자각을 했다.

  로맨티시스트이며 휴머니스트인 엘로에서 박사에게 마음이 담긴 편지로 자신의 일상을 잔잔하게 고백하는 글을 통해 그녀의 고통과 기쁨이 담긴 일상이 유화처럼 펼쳐졌다.

  멕시코가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은 대지와 인디언의 무한한 아름다움뿐인데 추악한 미국은 날마다 멕시코를 한 조각씩 훔쳐 가고 있다고 했던 그녀. 산앙헬 분홍색 집에 사는 리베라와는 달리 자만심을 경멸하고 어떤 식으로든 '굵은 똥'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던 파란색 집의 그녀. 리베라 부부가 살고 있던 두 채의 집과 이 두 집을 연결하는 다리는 상호 독립적인 동시에 상호 의존적인 그들의 독특한 관계를 상징했다.

  여자를 사랑하면 할수록 상처를 주고 싶어했던 디에고의 못된 성격의 희생자였던 프리다.
'웃음'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던 그녀의 웃음은 정말 깊이가 있고 전염성이 강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서 운명에 복종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여성이다. 자기의 개인적 고통을 의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관람객 또한 그것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특별한 윤기와 신랄한 재치가 담긴 비속어를 잘 썼던 그녀는, 사랑을 하고 목욕을 하고 다시 사랑을 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관이라고 말했지. 늘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지만 자신을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그녀.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 러시아의 혁명가 트로츠키, 사진작가 니콜라스 머레이, 시인 폴 엘뤼아르, 화가 막스 에른스트, 그녀를 만나는 순간부터 그녀가 떠나는 날까지 그녀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화가 피카소, 프리다의 그림에 감동한 나머지 모두가 지켜보는 전시장에서 순수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안아 올려 두 뺨과 이마에 키스했던 화가 칸딘스키. 가장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가졌던 에스파냐 망명객 화가 B. 프리다와 관계했던 여러 유명인사들 중 내가 아는 이름만 기억해 본다.

  독창적인 화가가 되고 싶어했던 그녀는 자신의 판타지에 양분을 제공하는 것이 외국의 '이즘'이나 학설 같은 것이 아니라 멕시코적 전통이라는 평판을 듣고 싶어했다. 미술학도들에게 자극을 주었을 뿐 미술을 가르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던 그녀는 학생들에게 비판과 칭찬의 파장을 조절하며 "여기는 색채가 좀 더 강해야 할 것 같다. 이것과 이것의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이 부분이 썩 잘된 것 같지 않아.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 하지만 나는 나고 너는 너지. 내 생각은 하나의 의견일 뿐, 틀릴 수도 있어. 도움이 된다면 내 말대로 하고, 아니면 네 생각대로 해라."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하고 기꺼이 그들의 조언도 요구하고 수용했던 그녀의 스승상이 아름답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고독과 권태를 두려워하고 항상 유쾌함, 신랄한 수다, 야한 농담을 좋아했던 프리다. 그랬던 그녀의 이러한 표현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내가 디에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디에고와 사는 것이 또 얼마나 힘든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표현 방식은 너무 이상해서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나는 그가 나를 '자기 방식대로'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결혼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배고픔과 식욕'을 결합했다고." 내게 need와 want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부분이었다.

  디에고는 실토했다. "내가 그녀를 모르고 죽었다면 진짜 여자가 뭔지도 모르고 죽었을 거야!"  나는 그때서야 나의 생애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 프리다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마저도 독특했던 그녀의 모든 것! 그녀를 만나는 동안 내 속엔 끝없는 경이가 밀려오고 쓸려갔다. 그녀를 만났던 지난 20여일이야말로 내게는 아주 독특한 체험이었음을 알리며...   

                                               2004년 2월 21일 새벽 여섯 시 근처에 책읽기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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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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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20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미국 문학의 영원한 기념비' '국보급의 작품' '작가 피츠제럴드가 살아온 고단한 삶의 궤적이 깊이 새겨져 있는 작품' [위대한 개츠비]. 1920년대 미국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야 한다고 했던가?

  피츠제럴드를 '재즈 시대의 왕자'라고 한다. 재즈 시대란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대전을 겪은 뒤 서구 문명 자체에 깊은 회의를 보이면서 재즈에 심취하던 미국의 1920년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재즈 시대를 기적의 시대며, 예술의 시대며, 과도의 시대였으며 풍자의 시대였다고 말했다. 가끔 듣곤 했던 재즈의 선율을 기억하며 두 명의 남자를 떠올렸다.

  성대한 파티를 자주 여는 트리말키오를 닮은 인물 개츠비는 감성형 인간으로서 무능력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야망을 품고 육군장교가 되어 데이지와 만난다. 그러나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면서 그는 유럽 전선으로 떠나게 되고 데이지는 개츠비와 헤어진 슬픔도 잠시, 곧 돈 많은 남자 뷰캐넌과 결혼한다. 오 년 후, 개츠비는 오직 데이지를 다시 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엄청난 부를 누린 후 동부에 등장한다. 데이지와 상봉하여 데이지를 사랑하는 데 들어간 과거를 되돌리고 싶어했으나,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한낱 이룰 수 없는 꿈같은 데이지란 여자를 쫓다가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줄거리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본다. 그리고 쓸쓸한 한 남자의 뒷모습를 떠올렸다. 은빛 후춧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을 바라보고 있던 개츠비를… … 

  개츠비의 일생을 펼쳐 나간 화자는 성실한 이성형 인간으로서 생각이 느린 데다가 욕망에 브레이크를 거는 내면의 규칙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을 얼마 안 되는 정직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균형 잡힌 사람'이다. 화자는 불길하고 위협적인 또 한 차례의 십 년이 펼쳐져 있는 나이 서른 살을 고독 속의 십 년을 약속하는 나이, 야심이라는 서류 가방도 점점 얄팍해지는 나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가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이한 후 그의 삼십대를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해졌다.

  돈으로 가득 차 있는 목소리를 내는 여자, 데이지.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그 끝없는 매력의 목소리로 개츠비를 사로잡았던 데이지. 그녀의 그 목소리를 듣고 싶은가? 그렇다면 함께 133쪽을 펼쳐서 읽어보자.

  {잠시 뒤 그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양복과 실내복, 그리고 넥타이와 와이셔츠가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옷장 두개를 열어 보였다. "영국에서 옷을 사 보내주는 사람이 있어요. 봄가을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물건을 골라서 보내오지요." 그는 와이셔츠 더미를 끄집어내어 하나씩 우리 앞에 던졌는데, 엷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란넬 셔츠가 떨어질 때마다 개켜졌던 자국이 펴지며 가지각색으로 테이블 위를 덮었다. 우리가 감탄하는 동안 그는 셔츠를 더 많이 가져왔고 부드럽고 값비싼 셔츠 더미는 점점 높이 올라갔다. 산호빛과 능금빛 초록색, 보랏빛과 옅은 오렌지색의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무늬와 바둑판무늬 셔츠들에는 인디언 블루 색으로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데이지가 소리를 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고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아름다운 셔츠들이에요." 훌쩍거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겹겹이 쌓인 셔츠 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슬퍼져요, 난 지금껏 이렇게… … 이렇게 아름다운 셔츠를 본 적 이 없거든요."}

 화자 닐은 말한다. 개츠비는 한번도 데이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고. 그가 자기 집에 있는 모든 것을 데이지가 어떤 눈길을 주는지 그 반응 여하에 따라 새로 평가하는 것 같아 보였다고. 개츠비는 부가 가두어 보호하는 젊음과 신비, 그 많은 옷이 주는 신선함 속에서 그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은처럼 안전하고 자랑스럽게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순간을 위해 그는 젊음의 시절을 보냈다.

  개츠비의 삶은 한 마디로 데이지를 위한, 데이지를 향한, 데이지에 대한 집착으로 얼룩진 고난한 시간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여자에게 향한 한 남자의 무모하도록 집요한 사랑의 비참한 최후가 많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사뭇 궁금하다. 

  왜, 제목이 [위대한 개츠비]일까? 거듭 읽어도 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부분에서 그가 왜 위대한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 계획표 1906년 9월 12일
기상 … … … … … … … … … … … 오전 6:00
아령 들기와 벽 타기 … … … … … … 오전 6:15~6:30
전기학 및 기타 공부 … … … … … … 오전 7:15~8:15
일 …… … … … … … … … … … … 오전 8:30~4:30
야구와 스포츠 …… … … … … … …  오후 4:30~5:00
연설 연습, 자세 연습 …… … … … … 오후 5:00~6:00
발명에 관한 공부 …… … … … … …  오후 7:00~9:00

- 결심
섀프터스나 또는 xxx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
궐련과 씹는 담배를 삼갈 것.
이틀에 한 번씩 목욕할 것.
매주 유익한 책이나 잡지를 한 권씩 읽을 것.
매주 5달러(줄을 그어 지웠다.) 3달러씩 저축할 것.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을 것.

  개츠비는 위의 계획표에 고착하면서 생활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위대했다. 계획표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러므로 실천하는 사람은 그 실천 자체로도 위대하기 때문이다. 개츠비에 대해 계획표를 보고 위대하다고 생각한 건 순전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피츠제럴드나 평론가들이 생각하는 '위대하다'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츠비의 그 위대함이 계획표를 실천함에 있다고 과감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화자 아버지의 아름다운 조언.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 점을 명심하여라.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는 걸 말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자주 기억해야 할 문구가 되리라.

  현재 팔리고 있는 이 책의 판본만 27종. 피츠제럴드가 이끌어 나가는 문체를 김욱동의 편안한 번역(민음사)으로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즐거운 책읽기 경험을 전하며,  내 나름대로 식의 독후감상문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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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이야기
신경숙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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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부리지 않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오랫동안 저축한 얼마의 돈으로 교외에 땅을 사놓고. 또다시 돈을 모아 보태서 그곳에 아담한 이층 목조건물을 지었다. 사치스럽지 않은 작은 벽난로가 있어도 좋고, 무쇠난로가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어도 좋다.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 이불을 덮고 나는 J 이야기를 읽는다. 무릎 이불은 얼마 전 아름다운 친구에게 받은 정성이 담긴 퀼트선물이라면 더 좋겠다. 무릎에 온기가 퍼져 온다. 그 온기처럼 내 마음을 급하지 않게 서서히 데워주는 산문집이 바로 J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책 속에서 빠져 나오니 무릎 이불은 내 체온이 더해져 따사롭게 덥혀져있었다. 그 이불을 금방 외출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언제나 말없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짝꿍에게 건네주고 싶다. 그들에게도 그 따뜻함이 산산한 겨울을 날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라며...

J는 나였다. 아니, 당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가까운 이웃, 손 뻗어 대화를 원한다면 기꺼이 편안하고 깊은 눈길로 내 눈빛을 응시하며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소중한 친구, 아니 솔직히 아주 오래 전 헤어진 따뜻한 마음을 지닌 푸른 바다를 닮은 사람들을 나는 J를 통해서 만나고 느꼈는지도 모르지.

해질녁의 하늘을 떠오르는 해인지 일몰의 해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단잠에 빠졌던 여자 이야기, 찐 감자와 미역국을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먹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 사흘동안 쓰이지 않던 원고가 헤어졌던 연인이 옆에 있어주니까 슬슬 풀렸다던 이야기, 셀로판지를 모르는 아버지를 속여 용돈을 타내던 소녀가 성숙해져서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포용하는 이야기, 옛 연인과 7년만의 재회를 앞두고 철저한 살빼기를 하고 만난 연인이 대머리 아저씨로 변해 있던 이야기,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김방구'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 놓고 당황해 하는 이야기 등. 그녀가 J여도 좋고 작가여도 좋다.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기분으로 나는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동안 그녀의 글들이 무거운 돌덩이 같았다면 이번 글은 가벼운 깃털 같다는 느낌, 그러나 그 깃털은 가벼운 웃음 한켠으로 의미 있는 추억 하나씩을 만들어 주곤 했다. 그 추억은 가끔 울적할 때 꺼내서 들추어보고 다시 편안한 힘이 되는 미소 한 줌씩 건네줄 수 있으리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차별 없는 따뜻한 시선을 지니고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잔잔한 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녀의 깔끔하고 따뜻했던 문체에 박수를 보낸다.

일 년 동안 늘푸른독서모임에서 책읽기에 참여해 준 당신이 어쩌면 내겐 J같은 존재였다. 힘이 되었다. 책을 통해 당신의 마음 속을 만나볼 수 있어서 행복했으며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 2003.12.22.월요일. 고양시 중남미문화원에서... 좋은 친구들과 독서토의를 끝내고 빠에야 요리를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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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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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다 읽고 정말이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전율만이 온 몸을 휘감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 내 나이 스물에 난 전혜린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 때 최초로 내 인식의 세계를 일깨우고 넓혀 주었던, 그래서 내 삶의 정신적 지주의 표본으로 삼았던 사람이 바로 전혜린이었다. 그녀가 체험했던 뮌헨의 슈바빙 지대에서의 삶을 읽으면서 난 최초로 독일이라는 이국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뮌헨의 몽마르트르라고도 하는 슈바빙은 가장 정신이 자유로운 곳. 목적을 가진 생활 때문이라면 내일 죽어도 좋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생활, 따라서 온갖 물질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곳. 언제나 아무도 안 사는 그림을, 안 읽을 시를 쓰면서 굶다시피 살면서도 오만과 긍지를 안 버리는 슈바빙 구역에 사는 그들 모두의 자유로운 생활을 나는 미치도록 동경했다. 인종적 편견이 없고, 히틀러 정권 밑에서의 레지스탕스도 완강할 수 있었던 슈바빙.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과 발표가 전통이나 인습에 반기를 들고 행해지고 있는 곳이 슈바빙이었다.

까만 골덴 바지와 까만 쉐타를 입은 젊은이들이 한 잔의 커피나 맥주를 마시며 몇 시간이라도 토론을 해도 조금도 싫어하지 않는 무관심한 음식점의 분위기가 몹시 부럽기도 했다. 뮌헨에 가면 제일 먼저 그녀가 자주 들렸던 제에로오제라는 카페에 가서 그녀의 고독을 피부 깊숙이 느껴보고, 그 곳의 젊은이들을 직접 내 눈으로 만나고 싶었다.

독일 대학생들의 광적일 정도의 공부에의 정열, 온갖 낭비에 대한 극단적인 인색함(특히 시간), 그들은 대학 생활 4년간을 문자 그대로 주야를 안 가리고 인식에 바치고 있었다. 언제나 완전한 정신이 집중 통일되어 있는 것, 의식이 활짝 깨어 있는 것, 지식을 지식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독일 대학생의 일반적인 특질인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딸 정화를 관찰하며 쓴 독특한 필법의 육아 일기는 생생한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 그렇게 소중한 보물인 정화를 두고 그녀는 어떻게 삶을 마감할 생각을 했을까?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내내 그녀가 너무도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임을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그녀의 글에서 이미 죽음의 카타스트로프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다음과 같은 글에서 난 그녀의 죽음을 서서히 예감했다.

그렇다. 그녀는 삶에 너무나 철저했으면서도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지 않았을까? 그녀는 먼 곳에의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 무너져 버린 뒤에도 그리움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을 그녀는 갖고 있었다. 집시의 생활이 가끔씩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된 그녀였다. 오염되지 않은 원시적이며 야성적인 순수를 갖고 있는 바다를 보며 그녀는 충만해 했었다. ]

그러나 때때로 그녀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하는 보통 여자의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 지금 나는 아주 작은 것으로 만족한다. 한 권의 책이 맘에 들 때 또 내 맘에 드는 음악이 들려올 때, 또 마당에 핀 늦장미의 복잡하고도 엷은 색깔과 향기에 매혹될 때 또 비가 조금씩 오는 거리를 혼자서 걸었을 때, 나는 완전히 행복하다. 맛있는 음식, 진한 커피, 향기로운 포도주. 생각해 보면 나를 기쁘게 해주는 것들이 너무 많다.' .................................

그녀는 서른 둘의 나이로 겨울에 이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을 떠났다. 이 세상에 사랑하던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났다. 그녀는 어쩌면 7,80을 살다 간 어떤 인생보다도 온갖 열정으로 쏟아 부은 일생을 살다 간 자유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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