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이야기
신경숙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욕심부리지 않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오랫동안 저축한 얼마의 돈으로 교외에 땅을 사놓고. 또다시 돈을 모아 보태서 그곳에 아담한 이층 목조건물을 지었다. 사치스럽지 않은 작은 벽난로가 있어도 좋고, 무쇠난로가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어도 좋다. 흔들의자에 앉아 무릎 이불을 덮고 나는 J 이야기를 읽는다. 무릎 이불은 얼마 전 아름다운 친구에게 받은 정성이 담긴 퀼트선물이라면 더 좋겠다. 무릎에 온기가 퍼져 온다. 그 온기처럼 내 마음을 급하지 않게 서서히 데워주는 산문집이 바로 J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책 속에서 빠져 나오니 무릎 이불은 내 체온이 더해져 따사롭게 덥혀져있었다. 그 이불을 금방 외출을 끝내고 돌아온 아이들에게, 언제나 말없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짝꿍에게 건네주고 싶다. 그들에게도 그 따뜻함이 산산한 겨울을 날 수 있는 힘이 되길 바라며...

J는 나였다. 아니, 당신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가까운 이웃, 손 뻗어 대화를 원한다면 기꺼이 편안하고 깊은 눈길로 내 눈빛을 응시하며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소중한 친구, 아니 솔직히 아주 오래 전 헤어진 따뜻한 마음을 지닌 푸른 바다를 닮은 사람들을 나는 J를 통해서 만나고 느꼈는지도 모르지.

해질녁의 하늘을 떠오르는 해인지 일몰의 해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단잠에 빠졌던 여자 이야기, 찐 감자와 미역국을 너무나 다른 방법으로 먹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 사흘동안 쓰이지 않던 원고가 헤어졌던 연인이 옆에 있어주니까 슬슬 풀렸다던 이야기, 셀로판지를 모르는 아버지를 속여 용돈을 타내던 소녀가 성숙해져서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포용하는 이야기, 옛 연인과 7년만의 재회를 앞두고 철저한 살빼기를 하고 만난 연인이 대머리 아저씨로 변해 있던 이야기,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김방구'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 놓고 당황해 하는 이야기 등. 그녀가 J여도 좋고 작가여도 좋다.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기분으로 나는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동안 그녀의 글들이 무거운 돌덩이 같았다면 이번 글은 가벼운 깃털 같다는 느낌, 그러나 그 깃털은 가벼운 웃음 한켠으로 의미 있는 추억 하나씩을 만들어 주곤 했다. 그 추억은 가끔 울적할 때 꺼내서 들추어보고 다시 편안한 힘이 되는 미소 한 줌씩 건네줄 수 있으리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차별 없는 따뜻한 시선을 지니고 있는 작가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잔잔한 글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녀의 깔끔하고 따뜻했던 문체에 박수를 보낸다.

일 년 동안 늘푸른독서모임에서 책읽기에 참여해 준 당신이 어쩌면 내겐 J같은 존재였다. 힘이 되었다. 책을 통해 당신의 마음 속을 만나볼 수 있어서 행복했으며 소중했던 시간이었다.

- 2003.12.22.월요일. 고양시 중남미문화원에서... 좋은 친구들과 독서토의를 끝내고 빠에야 요리를 즐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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