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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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원제 <Norwegian Wood> 


  죽음으로 이별한 친구와 멀리 떨어진 친구에게 바친다는 소설 <상실의 시대>.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감으로 읽혀졌고, 다 읽은 후의 느낌은 허무, 우울, 단절, 죽음과 일상, 일본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들이었다. 가지고 있는 비틀즈의 음반에는 아쉽게도 <노르웨이의 숲>이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서 그 음악을 들으며 하루키의 문체를 기억했다.


  <상실의 시대>는 주인공 '나(와타나베)'와 '기즈키'와 '나오코', '미도리'와 '나'와 '나오코', '레이코'와 '나'와 '나오코', '나'와 '나가사와'와 '하쓰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나오코와 기즈키라는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나', '나'와 나오코라는 관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죽은 기즈키이며, 아미료에서 '나'와 나오코를 맺어 준 것은 레이코, 이처럼 <상실의 시대>에는 삼각관계가 많이 설정됐다. 한 평론가는 '두 개의 화살은 부러뜨릴 수 있지만, 화살 세 개가 합쳐지면 부러뜨릴 수 없다는 이치를 말한다. 바꿔 말하면, 아무리 순수한 '100퍼센트 연애'라고 해도, 결코 두 사람만의 이각 관계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나오코와 기즈키, 그리고 나가사와와 하쓰미라는 이상적인 커플조차도 마지막에 잘 풀리지 않는 것은, 둘만의 마주보는 관계는 결국 그 어느 쪽인가를 상처 입히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절함과 자살이 이 소설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관계의 좌절, 환상의 차질이 마음의 병을 낳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나오코의 병이 기즈키-'나'- 나오코라는 삼각형의 한 변이 박탈당하고 만 '상실의 상처'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우리 두 사람'이라는 관계 속에서는, 오히려 악화되어 버리는 듯한 병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불완전한 삼각관계는, 결국 나오코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한 원흉이었다. And when I awoke I was alone.(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혼자임을 알았다)고 노래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이야말로, 상실의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며,  상실의 시대로부터의 깨어남이 아니었을까? 


  탁월한 묘사력과 도시적 감수성을 지닌 작가 하루키는 소설 주인공의 삶의 양식이나 태도를 적절한 분위기를 타고 글 속에 녹아들게 하는 그만의 개성적인 글쓰기 형식이 있다. 예를 들면 소비문화의 다양한 기호(위대한 개츠비, 브람스의 심포니 4번,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와인, 서점풍경, 신주쿠 거리 등) 들을 거리낌없이 작중에 많이 사용했는데 그런 현대의 풍부한 재료들이 독자의 기분에 들어맞았을 것이고 적당한 자극을 연출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나오코를 사랑하면서도 미도리와 심리적 저항 없이 교제를 하고, 선배 나가사와와 걸 헌팅을 할 수 있을까? 또한 나오코의 완전한 장례식을 치른 후 레이코와의 자연스런 접촉도 적이 놀라왔다. 하루키 연구의 권위자는 <상실의 시대>에서 '나'와 '나오코', 그리고 '나'와 '미도리'의 관계의 매개체는 사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마음 또는 다정스러움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오로지 연구자의 생각일 뿐 와타나베의 삶의 행태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 그러나 때때로 너무나 그의 삶의 모습이 이해가 되는...


  늘 알고 있는 사실을 <상실의 시대>를 통해서 재인식한 게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행복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남의 눈에 비치거나 비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 해도, 가슴속에 응어리로 맺힌 상처는 곧 상실의 아픔이 되어 평생을 두고 사라지 않는다는 진리(?)이다. 인생은 다 그렇게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라는 진리를. 나오코는 죽음을 선택하고, '나'는 진정한 사랑으로 미도리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그들만의 진리인 것을...


  하루키 작품 속의 젊은이들은 세계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상실의 아픔과 존재의 위기를 헤쳐 나가고 있다는 점이 어쩌면 나의 삶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 부분이라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게 우리 대다수의 삶의 행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더 많은 이야기는 토의를 통해 나누길 희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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