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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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대체 뭐란 말이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는데 글은 대체 왜 이리 무거운 거야. 반말 죄송. 읽으면서 계속 마음 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의 삶이나 인간이란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굉장히 다면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그러나 가벼운 농담을 섞어 쓴 책이라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배운 것: 현대식 변기는 키치이다. 인간은 소의 기생충이다. 이런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책의 뒷부분에서 키치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키치는 아닌 것 같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 책에서 ‘키치‘란
세상의 모든 일이란 것이 단면적이고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라는 생각이다.틀 안에 갇힌 개념이랄까.
(그러고 보니 베토벤의 그래야만 한다와도 연결되네!)

‘사랑‘으로 예를 들어본다면, 실제 사랑의 모습은 다면적이다.
테레사, 토마스, 사비나, 프란츠에게 있어 사랑은 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들 각각은 사랑을 서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사랑한다면 어떠어떠해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생각이 키치가 되는 것이다.
테레사의 사랑에 대한 키치적인 생각 때문에 테레사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받았고,
토마스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과 토마스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테레사는 토마스가 늙어버린 모습을 보고 마침내 이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 이어진 소련의 강제 점령과 그 후의 공산주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전체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많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 당시 체코 사회의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을 읽으며 지금 우리 나라 사회와 어쩜 이리 유사한 부분을 많이 발견하게 되던지..

그리고 사람이란 것이 한꺼풀만 벗기면 얼마나 한없이 약해질 수 있는, 살과 피와 뼈와 똥덩어리의 결합인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을 요즘 이런저런 소설들을 읽으며 계속 하게 된다. 벌레와 인간은 별반 다르지 않고,
결국 사람 사는 거 별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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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에밀 졸라는 이 책에서 한 노동자 여인의 몰락을 처절할 정도로 비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주인공이 제르베즈라는 세탁부인데 1권에선 희망차게 세탁소도 열고 결혼도 해서 번듯한 삶을 살지만 2권에선 몰락이 시작됩니다. 남편이 지붕 위에서 일하는 함석공인데 일하다가 지붕 위에서 떨어지면서 제르베즈에게 기대고 일을 안 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헤어진 전 남편까지 제르베즈에게 빌붙으면서 술독에 빠져사는 남편과 교활하게 놀고 먹기만 하는 전 남편을 혼자 힘으로 부양하다가 제르베즈는 결국엔 지치고 맙니다. 에너지 넘치는 아름다운 여자에 소박한 행복을 꿈꿨던 제르베즈는 무기력하고 게을러지고 급기야는 본인도 술을 마시게 됩니다.

제르베즈의 소박한 소망이란 `남편에게 맞지 않고 살며 죽을 때엔 자신의 집 침대에서 죽는 것`이었는데 결국엔 술주정뱅이 남편한테 맞고 살다 살던 아파트 계단 밑 골방에서 혼자 비참하게 굶어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고 맙니다.

작가는 노동자 계급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제르베즈의 남편은 똑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요, 아빠에게 맞고 자라던 제르베즈는 나중에 남편에게 맞고 삽니다. 이들의 예쁜 딸은 자라서 집을 나가 결국 창녀가 되고, 아들은 탄광촌에서 고생을 하고요.

19세기 후반 프랑스나 요즘의 한국 사회나 돈에 의해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인지라 물려받은 것 없이 태어난 가난한 사람들은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리고 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달라진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류 문명이 진보하고 있다는 게 과연 맞기는 한 걸까요.

에밀 졸라라는 작가는 힘이 있습니다.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부치며 보여줍니다. 이들의 딸 이야기인 <나나>와 제르베즈의 아들 이야기인 <제르미날>도 너무 궁금하긴 한데 다음을 기약하려 합니다.

제르베즈의 이루어지지 못한 소박한 소망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난 말이죠, 욕심이 많은 여자가 아니랍니다. 별로 바라는 게 없어요.... 내 꿈은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갖는 게 전부랍니다. 침대, 식탁, 그리고 의자 두 개, 그거면 충분해요..... 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죠..... 또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맞지 않고 사는 거에요. 내가 만약 다시 결혼을 한다면 말이죠. 그래요, 다시는 맞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다에요, 정말 그게 다라고요....˝

이런 당연하고도 소박한 소원도 이루질 못하네요. 참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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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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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왕따 중학생의 추락사를 둘러싸고 경찰, 가해자와 피해자의 부모,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이가 죽었는데 경찰이건 아이들이건 부모건 모두 자기 잇속만 차리는 모습을 보이고..

흔히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에게 왕따 시킨 일을 추궁해 보면 그 아이가 왕따 당할 만한 짓을 해서 그렇다고 거의 억울해 하면서 말한다. 이 책에서도 역시 그렇다. 피해자인 유이치는 어른인 내가 봐도 당연히 왕따 당할 만하네 싶게 인간적인 매력이 전혀 없다. 오히려 가해자로 나오는 두 소년 주인공은 정말 착하고 남자 아이답게 그려진다.
왕따와 집단 폭력이 이뤄지는 배경과 아이들의 심리를 참으로 리얼하게 그렸다. 그리고 아무리 착하고 모범적인 아이라 해도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게 마련인 인간인데다 정글 같은 중학교 3년을 헤쳐 나가야 하는 중학생이라면 누구나 집단 폭행에 큰 죄책감 없이 가담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중학생들은 아이가 죽은 것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도 관심도 없다. 왕따였다 죽은 아이는 금방 잊혀진다.

다 읽고 왕따 이야기인데 피해자인 유이치의 입장에서 서술된 대목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 이야기에서 유이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객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하고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었더라도 유이치는 그런 결말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유이치를 죽음으로 몰고 간 친구들, 가족들, 선생님들 등 개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나였다 해도 별달리 행동했을 것 같지 않지만 눈치없고 매력없고 의리없고 약자를 괴롭히고 허세 부리고 고마운 줄도 모르는 유이치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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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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