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에밀 졸라는 이 책에서 한 노동자 여인의 몰락을 처절할 정도로 비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주인공이 제르베즈라는 세탁부인데 1권에선 희망차게 세탁소도 열고 결혼도 해서 번듯한 삶을 살지만 2권에선 몰락이 시작됩니다. 남편이 지붕 위에서 일하는 함석공인데 일하다가 지붕 위에서 떨어지면서 제르베즈에게 기대고 일을 안 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헤어진 전 남편까지 제르베즈에게 빌붙으면서 술독에 빠져사는 남편과 교활하게 놀고 먹기만 하는 전 남편을 혼자 힘으로 부양하다가 제르베즈는 결국엔 지치고 맙니다. 에너지 넘치는 아름다운 여자에 소박한 행복을 꿈꿨던 제르베즈는 무기력하고 게을러지고 급기야는 본인도 술을 마시게 됩니다.
제르베즈의 소박한 소망이란 `남편에게 맞지 않고 살며 죽을 때엔 자신의 집 침대에서 죽는 것`이었는데 결국엔 술주정뱅이 남편한테 맞고 살다 살던 아파트 계단 밑 골방에서 혼자 비참하게 굶어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고 맙니다.
작가는 노동자 계급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몰락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제르베즈의 남편은 똑같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요, 아빠에게 맞고 자라던 제르베즈는 나중에 남편에게 맞고 삽니다. 이들의 예쁜 딸은 자라서 집을 나가 결국 창녀가 되고, 아들은 탄광촌에서 고생을 하고요.
19세기 후반 프랑스나 요즘의 한국 사회나 돈에 의해 굴러가는 자본주의 사회인지라 물려받은 것 없이 태어난 가난한 사람들은 결국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리고 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달라진 바가 별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류 문명이 진보하고 있다는 게 과연 맞기는 한 걸까요.
에밀 졸라라는 작가는 힘이 있습니다.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부치며 보여줍니다. 이들의 딸 이야기인 <나나>와 제르베즈의 아들 이야기인 <제르미날>도 너무 궁금하긴 한데 다음을 기약하려 합니다.
제르베즈의 이루어지지 못한 소박한 소망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난 말이죠, 욕심이 많은 여자가 아니랍니다. 별로 바라는 게 없어요.... 내 꿈은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갖는 게 전부랍니다. 침대, 식탁, 그리고 의자 두 개, 그거면 충분해요..... 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죠..... 또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맞지 않고 사는 거에요. 내가 만약 다시 결혼을 한다면 말이죠. 그래요, 다시는 맞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다에요, 정말 그게 다라고요....˝
이런 당연하고도 소박한 소원도 이루질 못하네요. 참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