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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본능 - 왜 남자는 포르노에 열광하고 여자는 다이어트에 중독되는가
개드 사드 지음, 김태훈 옮김 / 더난출판사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비본능』은 진화심리학에 기초해서 소비자 행동을 분석한 책입니다. 진화심리학이란 "다윈 이론에 기초하여 인간 행동의 진화적, 생리적 근원을 이해하려는 다양한 학문 분야의 최신 사조"(21p.에서)를 말합니다. 지금까지 심리학이 특정 행동과 그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심리를 연구해 왔다면, 진화심리학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심리의 근본을 파악하려는 학문입니다. 진화 심리학에 의하면 우리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는 자연 선택과 성(性) 선택에 움직이는 본능이 자리잡고 있다고 합니다. 인기 블로거이자 마케팅 교수인 저자 개드 사드는 이러한 본능 때문에 우리의 소비행동이 동물의 행동과 유사하다고 주장합니다.
저자의 주장은 종교계의 도덕적 반발뿐만 아니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회과학도에게조차 논리적 반발에 부딪치게 됩니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똑같이 바라보는 진화론이 겪어야했던 심리적 저항감을 진화심리학 또한 피해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센 저항에 맞서서 저자는 차분하게 논리적 반박과 더불어 거부하기 힘든 사례를 증거로 내세웁니다. 저자가 내세우는 대표적인 사례는 "햄버거, 페라리, 포르노, 선물"(16p.에서)입니다. 햄버거는 고지방 음식에 대한 선호를, 페라리는 짝짓기를 위한 성적 신호를, 포르노는 인간의 성적 특성을 형성하는 진화적 힘을, 선물은 사회적 호혜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문화와 사회를 뛰어넘어 인간에게는 공통된 '소비본능'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다양한 문화와 국가마다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면, 그만큼 소비행동을 분석하고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에 전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소비본능'이 존재한다면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행동을 분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을 얻을 수 있고(40p.에서), 마케터는 전세계의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성공적인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으며(42p.에서), 정책입안자는 보다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44p.에서). 과연 이 흥미로운 주장이 얼마만큼 타당한 것인지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론과 사례를 연결하지 못하는 미싱링크(missing link)가 아쉽다.
이 책은 '소비본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방대한 자료와 실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와 소비본능을 연결하는 논리적 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진화 과정의 중간에 해당하는 종(種)이 존재했다고 추정되는데도 화석으로 발견되지 않은 미싱링크(missing link)처럼 말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페라리는 남성의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소비본능의 사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장소와 국가를 가릴 것 없이 페라리를 몰면 남성의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크게 상승하는 실험과 유명한 자동차 수집가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이 그 증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소비본능을 설명하는 제대로 된 증거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페라리는 누구나 부담없이 사서 운전할 있는 가격의 차가 아닙니다. 당연히 유명한 자동차 수집가들은 대부분 (부유한) 중년이며, 미혼이 아닌 기혼자들도 페라리를 몰거나 자동차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소비본능만으로 페라리를 구입한다기보다는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과시적 소비의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햄버거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자는 햄버거로 상징할 수 있는 고지방 음식에 대해 우리가 본능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또한 본능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생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현재 우리의 유전자는 구석기 시대의 인류와 똑같습니다. 수렵과 채집생활을 했던 당시에는 식사가 불규칙적이었기에 우리의 유전자는 될 수 있으면 영양을 몸에 축적하는 쪽으로 발달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작 문제는 구석기 시대와 달라진 우리의 음식 환경입니다. 먹을거리가 항상 부족하거나 적당했던 그 때와 달리, 지금은 너무나 쉽고 빠르게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더 많은 음식을 먹도록 식품업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햄버거는 소비본능을 악용하고 있는 그릇된 음식산업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론과 사례의 미묘한 어긋남은 저자가 본능과 환경, 본능과 문화에 대한 모호한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인간 행동의 전부 혹은 다수가 사회화의 결과물이라고 믿는 사회적 구성주의(24p.에서)에 반대합니다. 오히려 그는 영화, 음악, 문학,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소비본능에 걸맞는 보편적인 주제(217p.에서)가 담겨있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진실은 영화 스타워즈의 경우처럼 한 지역의 문화적 현상이 반드시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인기를 얻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그는 소비자가 문화적인 존재(47p.에서)임을 인정하는가 하면, 우정에는 사회 계급에 따른 문화적 차이(146p.에서)가 존재하며, 미의 기준은 보편적이지만 화장법에는 지역적 차이(276p.에서)가 있음을 밝히기도 합니다. 이처럼 저자는 문화가 본능에 종속된 존재라는 주장을 펼치다 가끔 마지못해 개별적 현상임을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입니다. 본능과 문화에 대한 명확한 관계 정립이야말로 소비본능이 풀어야 할 과제이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저자 자신은 문화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음에도 책의 마지막 장에서 진화심리학과 사회과학의 통섭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회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이해가 없는 저자의 이런 태도가 그리 순순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진화론에 의해 모든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그의 주장은 통섭을 가장한 학문적 제국주의와 더 비슷해보입니다. 우리는 세계대전이라는 역사를 통해서 제국주의가 얼마나 파괴적이며 무익한 사상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진화론에 의해 매도당할 만큼 사회과학은 무력하기만 한 것일까요?
진화심리학이 인류의 보편적인 소비본능을 설명할 수 있다면, 사회과학은 문화적 차이에 따른 개별적인 소비행동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클로테르 라파이유가 쓴 『컬처코드』가 대표적인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어린 시절 경험한 문화적 체험에 따른 고유한 컬처코드가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컬처코드는 소비본능이 설명하지 못하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설명해줍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스포츠카가 프랑스에서는 왜 외면당했는지, 뷔페 식당에서도 영국인들은 왜 매우 적은 양의 음식을 먹는지, 미국에서는 패스트푸드가 프랑스에서는 슬로푸드가 왜 발달했는가와 같은 경우입니다.
통섭이란 일방적인 종속이 아니라 평등한 상호교류 속에서 일어나는 시너지 효과입니다. 진정한 통섭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인 소비본능과 개별적인 문화적 차이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멋진 통합이론이 세상에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조금은 불친절한 번역이 읽는 내내 신경 쓰였습니다. "유전 코드의 변화 없이 유전자의 발현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후성적 메커니즘은 환경적 촉발 요소의 작용으로 특정 유전자의 발현을 조정한다.(31p.에서)"와 같은 문장은 번역이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독자를 배려하는 제 2의 창작임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