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에 실재감을 느끼는 순간에 짜릿함을 잊지 못해서 읽고 또 찾아 읽고 이게 내 실재와 만나길 기다린다. 미로를 뒤지는 것도 같고, 보이지 않는 길을 찾는 것도 같고....

-원하던 목표를 이뤘습니까?
일본 답사기에는 문화사 안에 유물을 빼곡히 넣었어요.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해요. 비로소 안 다는 것의 실체감이 생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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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문득 이 구절을 읽는데 눈물이 났다.
은희가 영지 선생님에게 와락 안기던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깊이 찌르르 했던 것처럼.
많이 사랑하면서 살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

이 모든 일이 심장을 양보한 그 순간에 시작된 거지요?
그렇지요. 내가 양보한 심장을 받은 그 여성분은 두 번째수술 없이 지금도 잘 살고 있어요. 그 여성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30명 정도 가족이 모여 있었는데,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예뻤어요. 감사로 반짝반짝 빛이 났어요. 그들은 무슬림이었어요. 살면서 그눈빛이 종종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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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 보수적이라는 단어가 대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데 권력을 휘두루는 일이 그와 같아야겠지.

‘법대로 한다 하고, 맡은 임무를 수행한다고 하지만 이런 구조 속에서 결국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우리가 어떻게 판단하 고 처리하느냐에 따라 향방이 결정된다고생각하죠. 형법 혹은 형벌에는 최후 수단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라틴어로 ‘울티마라티오(Ultima Ratio)‘라고 하는데요. 형법을 적용하고 집행할 때 필요 최소한도에그쳐야 하고, 형법은 최후 수단으로 등장해야 한다는 거죠. 이게 최우선으로 등장하는 순간 그 사회는 모든 게 형벌에 의해재단돼버립니다. 사회적 합의라든가 논의,절차가 사라져요. 지금 보면 정치적 사안도 전부 수사기관으로 가고 있잖아요. 모든 걸 사법 영역으로 보내 판단을 맡기는건 대단히 잘못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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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의 멈춤을 아는 것과 같을까

재일한국인 정치학자 강상중 교수 역시 ‘나다움을 알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을 ‘부족함을 알고 자족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라 켄야가 도달하고자 하는 디자인 세상도 그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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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도 차곡차곡 이 시간이 저장되겠지, 지나치게 마구 살지 말고 지나치게 아둥바둥 살지 말자.

손끝, 발끝에도 뇌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요?
네. 좋은 공간은 눈보다 피부로 느낀다고 하죠? 저는 인
‘간의 신체는 추상화할 수 없다고 봐요. 땀이 나고 숨을 쉬는 것처럼 신체는 반응을 해요. 디자인을 하다 보니 디 자인된 제품을 쓰는 행위도 일종의 디자인이라는 생각을합니다. 몸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고 저장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알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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