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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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미치오 슈스케 소설 《용서받지 못한 밤》을 보니 예전에 본 소설 《찾아올 이를 그리워하는 밤의 달》이 생각났다. 그 소설 본래 제목은 《바람 신의 손 風神の手》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본 것도 본래 제목은 《뇌신 雷神(라이진)》이다. 어떤 일이 다른 일을 불러왔다고 생각하는 게 비슷했다. 살다 보면 그런 생각할 때 있기는 하다. 자신이 한 일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하고. 그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그런 거 생각하면 뭐든 편하게 하기 어렵겠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게 시간이 흐르고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니 말이다. 그건 그저 우연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겠다. 남한테 피해주지 않기밖에는 생각나지 않지만.


 여는 이야기에서 사람이 죽는다. 그 일은 우연히 일어난 사고다. 아빠를 생각하고 딸은 화분을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을 뿐인데 그게 밑으로 떨어지고 차창에 부딪친다. 그 차는 아이 엄마를 치고 만다. 언뜻 보면 아이가 한 일 때문에 엄마가 죽은 것 같지만, 이것보다 먼저 아빠가 잘못했다. 어린 딸을 베란다에서 놀게 했으니 말이다. 거긴 발코니인가. 그래도 아빠인 후지와라 유키히토는 딸 유미가 베란다 난간에 둔 엉겅퀴 화분이 떨어져서 아내 에쓰코가 죽었다 여겼다. 누구 잘못이 아니기는 하다. 유키히토는 딸이 바깥에서 놀지 못하는 게 안 돼서 바람이 통하는 베란다(발코니)에서 놀게 했고, 유미는 엉겅퀴가 잘 자라면 아빠가 기뻐할 거다 여기고 화분을 볕이 잘 드는 곳에 놓았을 뿐이다. 그게 떨어지지 않았다면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거 좀 억지스럽지 않나.


 가장 앞에 나온 이야기를 보면 안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유키히토 아내인 에쓰코가 밖에서 집에 온 다음, 잊어버리고 사지 못한 걸 다시 사러 간 거다. 그걸 다음날 사러 갔다면 좋았을 거 아닌가. 나라면 그날 못 샀다면 다음날 사거나 조금 쉬었다 나갔을 거다. 사고는 일어났다. 유키히토는 그날 유미가 한 일을 묻어두기로 했다. 열다섯해가 흐르고 누군가 유키히토한테 전화를 하고는 딸이 한 일을 딸한테 말한다면서,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 돈을 준비하라고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모르는 척하기 어려울까. 유미는 끝까지 그 일을 모르기는 한다. 모르는 게 나았을지. 유미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고 말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유키히토는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한 느낌이다. 에쓰코가 없을 때 유미를 베란다에 나가 놀게 한 것과 유미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간 일 말이다. 잠깐이라도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되는데. 이런 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것뿐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건 열다섯해 전 일이 아니고, 서른한해 전과 서른해 전에 하타가미에서 일어난 일이다. 유키히토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는 서른한해 전에는 하타가미라는 곳에 살았다. 버섯이 잘 나는 곳으로, 축제가 있기 전날 어머니는 버석국(하타가미에서는 버섯을 버석이라 한다)을 끓이러 신사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강가에서 찾았다. 어머니를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어머니는 숨을 거뒀다. 다음해 축제날엔 유키히토와 누나 아사미가 벼락을 맞고 병원에 실려가고, 마을 갑뿌(갑부를 갑뿌라 했다) 넷이 버석국를 먹고 두 사람은 죽고 두 사람은 살았다. 버석국에 독이 든 흰알광대버섯이 들어 있었다. 그 버섯을 유키히토 아버지가 버석국에 넣었다는 말이 있었지만 증거는 없었다. 아버지는 유키히토와 아사미를 데리고 그곳을 떠난다.


 지금 유키히토와 아사미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러 하타가미로 간다. 유미도 함께.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숨기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거 괜찮을까. 난 잘 모르겠다. 어떤 건 그때 아는 게 나았을 것 같기도 한데. 숨기는 게 나은 일도 있기는 하겠지. 유키히토는 벼락을 맞고 기억이 사라진 걸 말했지만, 누나인 아사미는 그걸 숨겼다. 말 안 한다고 괜찮다고 여기다니. 서른해 전 일도 그렇지만 서른한해 전 일 유키히토와 아사미 엄마한테 일어난 일을 경찰한테 말했다면 좋았을걸. 그랬다면 이듬해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때 유키히토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을 경찰에 말했다 해도 가해자는 벌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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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창비시선 464
정다연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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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다가 얇으니 괜찮겠지, 하고 본 게 바로 이 시집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정다연)예요. 정다연 시인은 처음입니다. 두번째 시집이라던데. 한국엔 시인이 많고 제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도 잘 모르지만, 가끔 시집을 만납니다. 보다 보면 괜찮은 시나 제 마음에 드는 시를 만나기도 해요. 하지만 시를 봐도 뭐가 뭔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네요. 뚜렷하게 말하기는 어렵고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갑니다.


 시를 보다 보니 나뿐 아니라 세계를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층간소음도 있고 커피, 공정무역, 테러와 전쟁, 지진. 정다연은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은가 봅니다. 글을 쓰려면 세상에 관심을 갖기는 해야겠습니다. 저는 그러지 못하는군요. 지금은 재난이나 재해를 소비한다고 하는군요. 전쟁이 일어난 소식을 듣고,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했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물가가 오른 걸 걱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물가가 오르기도 했답니다. 이제는 세계가 이어져 있기도 하죠.




시가 안 써진다는 이유로 홍콩야자라 하는


셰플레라 화분을 샀다


수건으로 잎을 닦아주면 윤기가 생겨


관상하기에 좋다고, 가게 아주머니가 말해준다


덧붙여서 물과 음지를 좋아한다는 것도


깨지지 않게 품에 안고 가세요


유리문이 닫히고


깨뜨릴까봐, 나는 품에 안고 조심조심 걸어간다


그렇게 하면


뭔가가 써질 것처럼


시가 눈에 보이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싶다가


마음을 고친다 시가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가 눈에 보인다면 나는 그것을 바라보는 데 전부를 쓸 것이다


첫날에는 물만 흠뻑주고 삼일을 지켜보기만 하세요


그 말을 몇번이고 곱씹는다


나의 너무 많은 최선이 식물을 괴롭히지 않도록


거리를 둔다


조명을 어둡게 한다


나는 그것이 잘 자랐으면 좋겠다


-<셰플레라>, 56쪽~57쪽




 정다연 시인이 시를 쓰지 못해 야자나무 셰플레라를 사 왔을까요. 그랬겠지요. 식물을 보면 쓸 게 떠오를지도 몰라서. 시를 생각하고 셰플레라를 사온 일이 시가 되기도 했네요. 뒤에서는 처음 마음과 달라졌습니다. 셰플레라와 거리를 두고 잘 자라기를 바란다고.




축하는 축하를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받자

슬픔은 슬픔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사람에게만 말하자  (<러프 컷>에서, 63쪽)




슬픔은 혼자서만 하자

넘치는 기쁨으로

홀로 빛나자

내가 내 마음을 미워하는 날에도  (<러프 컷>에서, 64쪽)




 앞에 옮겨 쓴 건 시 <러프 컷>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저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냥. 다른 시에도 마음에 드는 부분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하나밖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늘 그렇지만 이번에 만난 시집도 알듯 모를 듯했습니다. 모르는 게 더 많았군요. 조금 분위기가 무서운 것도 있었습니다. <이사>. 이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일지. 짐 옮기는 사람이 무섭게 하지 않겠지요. 그래야 할 텐데. <여자는 시베리아허스키를 키울 수 없다>도 무서운 시군요. 실제 있었던 일인가봐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정말 여자는 시베리아허스키를 키울 수 없을까요. 남자들이 여자와 함께 있는 시베리아허스키를 총으로 쏴서 죽였답니다. 시베리아허스키는 추운 나라에 사는 개인데, 아프가니스탄은 어떨지(대륙성기후군요. 겨울엔 추운가 봅니다). 한국에서 시베리아허스키를 기르는 사람도 있겠군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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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20 0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셰플레라‘ 시 좋네요 ㅋ 좋아하는게 눈에 보이면 전부를 쓸 거 같다는 문장이 특히 좋습니다 ~!! 거리를 두는게 쉽진 않죠~

시집의 매력은 알듯 모를듯 인거 같습니다~!!

희선 2023-12-21 23:36   좋아요 1 | URL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도 그걸 다 쓰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가 보이면 그걸 보기만 한다니... 그럴 것 같네요

시 잘 몰라도 그냥 봅니다 몰라도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희선

2023-12-20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2-21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립백 에티오피아 단세 모모라 - 12g, 5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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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커피가 달라졌습니다. 안이 아니고 겉이. 단순해졌어요. 그림이 아니고 색깔과 글씨가 쓰여 있어요. 이것도 괜찮네요. 여러 가지 색깔 나오겠습니다. 문학동네 시집이 생각납니다. 시집과 커피, 어울리죠.






 이번 커피 ‘드립백 에티오피아 단세 모모라’ 예전에 나온 적 있던가요. 청포도라는 말이 있어서. 언젠가 한번도 청포도 산미 나는 커피 나왔는데. 맨 위에 청포도가 쓰여 있으니 포장 색깔 연두나 풀색 괜찮았을 것 같네요. 풀색은 나왔던가요. 풋(청)사과. 그 커피 여러 분이 기대했던 것 같은데. 연보라는 그냥 포도색과 비슷하군요.


 분위기 있는 곳에서 커피 마시면 기분도 좋을까요.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은 분위기 크게 마음 쓰지 않을 것 같네요. 마신다는 걸 즐기겠습니다. 저는 커피 즐겨 마시는 것보다 버릇인 것 같아요. 물을 마셔야 할 텐데.


 커피 언제 마시든 좋지만, 서늘해지거나 추울 때 마시면 더 맛이 좋겠습니다. 지금이 딱 그럴 때네요. 저는 사철 내내 커피 마십니다. 그것도 따듯한 커피. 차가운 커피를 마시려면 물을 얼려야 하니. 이 말 여름에 했던 것 같네요. 얼음 귀찮아서 만들지 않는다고. 정수기 물은 바로 얼리겠군요. 정수기 없어서 물을 끓이고 식힌 다음에 얼려야 하니 얼마나 귀찮겠어요. 추운 겨울에도 차가운 커피 마시는 사람 대단합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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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12-20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커피 괜찮더라고요~~
커피 마시며 좋은 겨울 보내세요.
서울은 눈이 많이 왔어요^^

희선 2023-12-21 23:34   좋아요 1 | URL
겨울을 느끼게 해주는 눈이네요 어제 아침에 눈을 쓸었는데 낮에 보니 더 많이 쌓여서 그거 쓰느라 힘들었습니다 손이 얼어서... 지난해에는 밤에 여러 번 쓸기도 했어요 왜 그랬는지...

겨울엔 따스한 커피가 좋죠 다른 때도 좋지만...


희선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엽서책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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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하기에 나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해준 사람이 모지스군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예요. 한국에도 늦은 나이에 그림 그린 사람 있겠습니다. 그림뿐 아니라 글을 쓴 사람도 있겠네요. 나이보다 하려는 마음이 중요하겠지요,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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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 10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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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열권 보기 마음 먹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텐데, 내가 조금 게으르게 지내는 때 《혼불》을 봐서 이 책 열권 다 보는 데 시간 많이 걸렸다. 책은 모두 열권이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최명희 작가는 이걸 얼마나 쓰려고 했던 걸까. 이 ‘혼불’을 빨리 못 본 건 이야기가 앞으로 가지 않아서다. 이야기가 앞으로 가야 다음에는 어떻게 되려나 하고 쉬지 않고 볼 텐데. 이건 핑계인가. 지난 《혼불》 9권에서는 사천왕 이야기를 참 길게도 했다. 마지막 《혼불》 10권, 5부 거기에는 사람들이도 그리 다르지 않다. 아니 마지막 권은 ‘거기 사람들이’에 초점을 맞췄다. 이 제목 보고 ‘거기’는 어디일까 했는데, 거기는 만주인 듯하다. 강모와 강태가 간 곳이기도 하다.


 만주로 간 강모와 강태 이야기가 아주 안 나온 건 아니지만, 조금밖에 나오지 않았다. 9권에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강모는 학교 전주고보에 다닐 때 역사를 가르쳐 준 역사 선생 심진학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심진학이 만주 봉천에 왔다. 강모가 먼저 심진학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강태도 함께. 심진학은 강모보다 강태를 편하게 여겼다. 심진학이 역사 선생 아닌가. 조선에서 역사를 가르쳐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게 얼마나 싫었을까. 심진학은 조선에서 독서회를 만들고 제대로 역사를 알리려다 경찰에 잡히고 고문 당하고 만주로 떠나왔다. 여러 학생과 학교를 바꾸려다 그렇게 됐구나. 심진학은 만주로 오기 쉽지 않았을 거다. 심진학은 만주로 오고 조선족 이민실록을 써 봐야겠다 생각했다.


 여기에 발해 이야기가 나온다. 고구려에서 발해가 된. 발해는 고구려 사람과 말갈 사람이 만든 나라였다. 신분제도가 있었던 발해에서는 말갈족이 거의 백성이었다. 발해는 이백삼십 년 이어지다 겨우 스무날 만에 망했단다. 한나라가 겨우 이십일 만에 망하다니. 그건 말갈족 백성이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마음 쓰지 않아서였다고. 백성이 살고 싶은 나라여야 다른 나라에서 쳐들어오면 싸우지. 후발해가 나타난 적도 있는데 그 나라는 여러 달 버텼단다. 후발해는 육십년 이어졌다고. 가끔 발해 땅도 한국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데. 거기가 바로 만주구나.


 조선시대에 만주로 끌려간 사람도 많았다. 정묘, 병자호란 때. 고향으로 돌아오려면 돈을 내야 했다. 그런 돈 내주는 사람은 양반뿐이었겠지. 만주 어딘가에는 박씨 마을이 있었다. 조선 선조 때 그곳에 끌려간 사람으로 박씨라는 성을 그대로 이어서 살았다. 말은 중국말을 쓰지만, 여성은 전족을 하지 않고 친척과 결혼하지 않았다. 이거 정말일까. 고려 사람이 러시아쪽에 가고 그걸 잊지 않고 산 사람도 있지 않나. 카레이스키던가. 박씨 마을은 지금도 있을지. 조선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남과 북으로 나뉘고 조선에 돌아오지 못하고 만주에 살던 사람은 조선족이 되었다. 이제 조선족은 조선과 아주 상관없는 사람일까.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려고 일본 사람을 조선에 오게 하고 조선 사람은 만주로 내쫓기도 한 것 같다. 만주에 가면 잘산다는 거짓말로. 멕시코, 하와이도 다를 거 없었다.


 이 ‘혼불’을 보면서 최명희는 백제를 좋아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원이나 전주가 옛날에는 백제 땅이기는 했지만. 조선을 세운 이성계도 전주 이씨고 백제 사람이다 여겼구나. 역사란 이긴 사람 처지에서 쓴다는 걸 생각하게 했다. 맞는 말 같다. 이걸 쓰다가 하나 깨달았다. 일본이 조선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고 잘해줬다면 지금 한국이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나라를 다스릴 때도 민심, 곧 백성 마음을 얻어야 한다. 발해도 말갈족 사람을 대우해주지 않아 망했다. 가난하게 살아도 자기 나라가 있는 게 낫겠다. 나라가 거기 사는 사람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나라를 살기 좋게 만들려면 그 나라에 사는 한사람 한사람이 애써야 하지 않을까. 정치 하는 사람이 없어도 안 되겠지만, 그 사람들이 좀 더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을 생각하면 좋겠다. 정치가는 자기들만 생각하는 것 같다.


 봉천에서 강모는 부서방을 만난다. 매안에 있을 때 강모는 부서방을 몰랐다. 부서방은 강모 할머니 청암부인한테 은혜를 입었다 여겼다. 강모를 청암부인처럼 여겼다. 강모는 부서방한테 강실이가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던가 보다. 강모와 강태는 부서방을 만나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았다. 부서방은 만주로 올 때 고생하고 영구 농장에 갔다가 죽을 것 같아서 달아났다. 그곳은 농사 지을 만한 땅이 아니었다. 조선 사람을 그런 곳에 살게 하다니. 매안과 거멍굴 이야기는 마지막에 조금 나왔다. 강실이는 여전히 옹구네 집에 누워 있고, 강태 아버지 기표는 만주로 떠났나 보다. 강실이 아버지 기응은 강실이가 가기로 한 절에 갔다가 강실이가 거기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효원은 강실이가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


 소설이 끝이 나지 않아 아쉽구나. 매안 이씨 집안은 기울어 가고 강모는 종손이 무거워 달아나고. 아내인 효원은 생각하지 않고 강실이만 생각하다니. 오유키는 강모와 함께 있다 해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강실이는 몸을 추스르기는 할지.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도 중요한데, 강실이 마음은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끝은 나지 않았지만, 《혼불》 다 만났구나. 시간이 흐르면 누군가는 괜찮아지고 누군가는 힘들게 살겠다.




희선





☆―


 심진학은 말했다.


 “오늘은 일본이 우리를 잠시 친 것 같지만, 우리를 지렁이로 폄하해서 군화발로 무참히 짓밟겠지만, 우리는 짓뭉개진 오욕에도 결단코 죽지 않을 것이네. 밟은 그 발보다 오래 살아서, 우리 이름 우리 혼을 이어갈 것이다. 개한테 물리어도 생살은 돋아나듯이.”


 가슴에 꽃심이 있으니. 피고, 지고, 다시 피어.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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