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한테 그림자란 무엇일까. 자기 발밑에 붙어서 언제나 자신을 따라오는 것 말고 다른 것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림자 없는 사람은 없겠지. 자신과 그림자가 따로따로 움직이는 일도. 이야기 속에서는 그림자가 좀 다르다. 마치 자신만의 뜻이 있는 것처럼 제멋대로 움직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 그림자를 잘라내서 그것을 죽은 사람 몸에 넣고 자기 말을 잘 듣는 좀비로 만들기도 한다. 그림자를 빼앗긴 사람은 해가 뜬 낮에는 다니지 못하고 밤에만 다녀야 한다. 그림자는 밤에도 생기는데. 그림자 없는 사람은 뱀파이어 같은 느낌도 든다. 뱀파이어는 거울에 비치지 않던가. 그건 그림자가 없어설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다니면서 생물을 잡아먹는 괴물이다. 이건 좀 무섭겠다. 그래도 그림자 속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지 않다. 다른 약점도 있어야 할 텐데. 동물이나 작은 벌레는 쉽게 잡아먹지만 사람은 쉽게 잡아먹지 못한다고 하면 좀 나을까. 이건 사람한테만 특권을 주는 거겠다. 그건 다른 세계 괴물로 우연히 우리가 사는 곳에 올 때가 있다고 하면 되겠다. 예전에 생각한 게 하나 더 있다. 그것도 괴물이기는 한데 그림자만 먹는 거다. 그림자 먹는 괴물나무였던가.

 

 자신과 늘 함께 있는 그림자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겠다. 갑자기 그림자와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림자는 사람처럼 말하기 어렵겠지. 잘 아니까 그림자하고 굳이 이런저런 말을 나누지 않아도 괜찮겠다. 이건 그림자를 좋게 생각하는 거구나. 어쩐지 이 소설에 나오는 그림자는 안 좋게 보인다. 어느 날 그림자가 일어나고 어딘가로 가려 한다. 그 그림자를 따라가면 안 된다. 어떤 사람 그림자가 일어서느냐 하면 사는 게 힘든 사람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느낀 절망이 그림자가 일어서는 걸로 나타나는 걸까. 자기 그림자가 일어서도 잘 달래서 사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 것 같다. 그림자가 뜯겨나가 좀 달라진 사람도 있다. 그림자에는 자신의 기억이 있다는 건지도. 자신의 그림자에 짓눌린 사람도 있다. 그건 대체 뭐지. 그 사람한테 찾아온 슬픔이 넘쳐서 그림자가 짙어지고 그게 자신을 짓누른 것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슬프구나.

 

 여기 나오는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 아니다. 전자상가는 도심에 있지만 곧 사라지게 생겼다. 가 나 다 라 마동으로 이루어졌는데 가동은 헐리고 거기에는 공원이 생겼다. 앞으로 다른 곳도 헐리겠지. 소설에 나오는 전자상가 같은 곳 실제 있었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전구를 파는 오무사 이야기는 인상 깊다. 주인 할아버지는 전구를 사고 가져가다 깨뜨릴 수도 있다면서 손님이 달라는 것보다 한개씩 더 주었다. 그런 곳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어떨지 상상이 간다. 오래되고 낡은 것은 안 좋은 걸까. 그렇지 않을 텐데, 지금은 그런 곳이 별로 없다. 새로운 게 많이 생겨도 못사는 사람은 여전히 못산다.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 때문일까. 오무사가 한번 사라져서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건가 했는데, 다른 곳으로 이사한 거였다. 그때는 이사한 거였지만 전자상가 가동이 헐리고는 아주 없어졌다. 처음에 더 먼곳으로 이사했다면 나았을 것 같은데. 가게를 잃은 할아버지는 정말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두 사람 은교와 무재 이야기도 볼 만하다. 그게 중심이기도 하다. 그렇기는 해도 다른 사람 이야기도 중요하다. 힘들게 살아야 하는 세상에 누군가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낫다는 건지. 은교와 무재 그림자도 일어섰지만 아직은 괜찮다. 서로가 있기에 괜찮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 마음을 잡아주는 게 이성만은 아니겠지. 사람이 아닐 때도 있다. 살기 힘들고 어두운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괜찮겠다. 어느 날 자신의 그림자가 일어서도 놀라지 말고 따라가지 말기를. 당신 마음을 이 세상에 단단하게 묶어두기를 바란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아서 죽은 것 같구나. 그런 게 아주 없지 않은 것 같다. 사는 게 힘들고 자기 마음과 다른 세상 때문에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겠지. 어쩌면 그것도 아주 잠시일지도 모른다. 그때를 잘 넘기면 좀 나을 거다.

 

 힘들게 사는 사람 이야기를 하지만 아주 어둡지 않다. 이 소설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불빛 같다. 불빛이 있기에 우리는 길을 잃지 않겠다.

 

 

 

희선

 

 

 

 

☆―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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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3-28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자상가는 종로와 동대문 일대에 재개발 추진하던 실제를 소설배경으로 차용해서 제겐 머릿속에 그 그림이 잘 그려졌죠^^
제 기억엔 황정은 작가 아버님이 전자상가쪽 일을 하셨던 걸로 아는데...

그림자뿐인가요. 자아, 욕망 온갖 것에 끌려다니는 게 인간 아닙니까ㅎ

희선 2017-03-30 23:28   좋아요 1 | URL
작가 아버지가 거기에서 일했다는 거 보고 그때 일도 쓰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재개발은 돈 있는 사람만 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새는 덜 알려진 곳에 사람들이 찾아가면 그곳 땅값을 올리고 그곳에서 일하던 사람을 쫓아내기도 한다더군요 돈보다 다른 걸 먼저 생각하면 좋을 텐데...

저는 게으름에 끌려다닌 듯합니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