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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정명수 옮김 / 모모북스 / 2019년 10월
평점 :
어린왕자를 7번째쯤 읽는 것 같다.
마음이 힘들 때 항상 생각나는 책.
얇지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어린왕자는 표지만 봐도 가슴이 저려오는 책이다.
최근 예쁜 일러스트를 넣은 어린왕자를 보았다.
예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너무 예뻐서 어린왕자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눈이 비어 멍한 표정의 어린왕자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처음 어린왕자를 읽었을 때는 이 책이 왜 대단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금은 어리숙하고 이해하지 못할 말만 해대는 어린왕자.
별을 돌아다니며 어딘지 모르게 부족해 보이는 어른들을 만나고, 자신만 봐달라는 고집 센 장미와 함께 살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이 작은 왕자에게 빠지기 시작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한참 사랑이라는 것에 목숨걸때는 도도한 장미가 가장 공감이 갔고,
어린 아이들을 한참 키울 때는 어린왕자를 만나 말도 안 되는 그림을 그려주던 작가가 가장 공감이 갔다.
어느 날은 지리학자가, 어느 날은 여우가.
다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을 받게 하는 매력적인 인물들.
이번에 읽을 때는 어떤 인물에 가장 공감이 갈지 궁금했다.
“무얼 잊으려고요? “
술꾼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든 어린 왕자가 물었다.
“내가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서.”
술꾼은 고개를 푹 숙이며 털어놓았다.
“뭐가 부끄러운데요?”
어린 왕자는 그의 마음을 달래 주고 싶었다.
“술을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
어린왕자와 짧디 짧은 만남을 한 술꾼.
왜인지 모르게 이번에는 이 술꾼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부끄러운 행동을 감추기 위해 부끄러운 행동을 계속 하고 있는 사람.
어린왕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 역시 지금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그 술꾼이 신경이 쓰였다.
부끄러운 행동을 그만둘 만큼의 용기도 없는 사람.
그 부끄러움을 벗어날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사람.
나 역시 후회되는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현실이 답답했기에 술꾼에게서 동질감을 느끼는 것일까?
이런 감정을 느끼고 나니 어린왕자 속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왕자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 묻지 않아 알지 못하는 세상.
어린왕자가 부러워지면 나이가 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공감이 갔다.
난 이제 어린왕자의 생각보다 그가 이해하지 못하던 다른 이들을 더 이해하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책의 내용이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그만큼 내가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년 뒤, 2년 뒤에 나는 또 누구에게 가장 동질감을 느끼게 될까?
책을 덮자마자 다시 읽을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
그것이 어린왕자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