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인가 돈인가

기다리는 데 필요한 것은 전기인가 물인가

기다리는 데 필요한 것은 밥인가 술인가


다 필요없다.

나만 있으면 된다.

그곳이 어디든,

그때가 언제든,

이 모양 이 꼴이든,

저 모양 저 꼴이든,

정신 차리고

나만 있으면 된다.


기다리는 실력이 점점 늘어간다.

올 것은 오고야 말테니.

올 때까지,

내가 있으면 된다.


2020년 한 해,

기다리는 실력이 엄청 늘었다. 

사람이든 날씨든,

손님이든 친구든,

택배든 시간이든,

책이든 뭐든,

다,

모조리,

죄다 기다려주마.

싹다 기다려주마.

나는야 기다리는 나라의 대마왕

대대대 대대 대마왕

움화하하하하하

*

결국

기다리는 자가 맞이할

도서목록.

『놀라운 나비들』

놀라운 가격

놀라운 그림

놀라운 나비

놀라운 나,

놀라운 나의

놀라운 기다림









『경이로운 동물들』

경이로운 그림

경이로운 동물

경이로운 시간

경이로운 세상











아 나 기다림의 대마왕인 나에게도 힘든 시간이다.

금요일 오후 네 시.

다 팽개치고 뛰쳐나가고 싶은 시간.

아 진짜.


♬밖으로~ 나가버리고호~


정신차리자.

아직 아니다.

잊지 말자.

나는야 기다리는 나라의 대대대 대대 대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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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리커버 양장 에디션)
이슬아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품절


내가 움직인 만큼 딱 그만큼 세상이 깨끗해진다. 한 사람만 왔다 가도 치울꺼리가 생기고, 가게 문을 열었다는 자체가 이미 스탠바이 하겠다는 약속이기 때문에, 몸에는 늘 힘이 들어간다. 움직여야 계속 움직일 수 있다. 체력이 딸린다고 느낄 때 더 움직이는 이유다. 움직여야 힘이 빠지고, 힘이 빠져야 힘이 덜 든다.

6년째, 가게를 하면서 내가 가장 잘 이해하게 된 것은 깨끗함에 대한 욕구(실은 ‘욕망‘이라고 말하고 싶은) 또는 기대치가 엄청 높다는 점이고, 이것은 손님들 얘기가 아니라 나 자신이 그렇다는 얘기다. 아직 강박증까지 생긴 것은 아니지만 그것 역시 시간 문제가 아닐까, 아니겠지, 아닐 것이다. 강박증이라면 치울꺼리 남겨두고 도망치듯, 늘 그렇게 후다닥 퇴근하진 못할테니까.

오늘도 확진자가 많이 나와서 손님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바빴다. 특이점은 날이 추운데도 커피를 들고 나가서 차가운 바깥 의자에 앉는 손님이 많다는 것이다. 장사를 안한다면 모를까 계속 하려면 역시나 바깥에도 테이블을 놓아야 할까? 흠.


*
《부지런한 사랑》을 읽고 좋아서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력고 기다리고 있어》를 읽고, 그것도 좋아서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을 읽고, 이어서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읽는다. 다른 책보다 크고 눈에 띄는 표지라 가게에서 읽자니 오가는 사람들 시선이 느껴지지만 끝까지 다 읽었다. 다 읽고도 치우지 않고 앉아서 책멍(표지멍? 제목멍? 이슬아멍, 복희멍, 우럼마멍) 때린다. 훌쩍 30분이 흘렀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세대고, 나이, 성격, 취향, 어느 하나 닮은 데가 없는 이 사람 얘기가 왜 이렇게 와 닿을까 골몰하다가 퍼뜩 깨달았다. 아 거기, 그 모든 공간, 그 모든 장소에 내가 있었구나. 서울, 을지로, 청계천, 구제 옷 가게, 반지하, 운동장, 운동회, 면허시험장, 스쿠터, 카페, 미술학원, 화실, 강의실, 신사동, 잡지사, 면접실, 그리고, 내가 없는 것 같으면서도 모든 것을 충만하게 느낄 수 있었던 바로 거기에.

*
바깥에 놓을 테이블을 주문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
불멍이니 물멍이니 별소리가 다 많으니 나는 오늘 책멍 또는 북플멍이다.
일을 하는 건지,
돈을 버는 건지,
핑계김에 책을 읽자는 것인지.
읽는김에 글을 쓰자는 것인지.
그걸 다 하자는 말인가.
말이다.
말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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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 이라는 말에는 반가운 마음이 들어 있다. ‘오랜만에 비가 온다‘고 하면 오랜만에 와서 좋다는 거지 오래만이라서 기분 나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비는 오랜만에 오지만 미세먼지는 오랜만에 오지 않는다.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지만 도둑놈은 오랜만에 만나지 않는다.

오랜만이라는 말에는 그리움이 깔려있다.

오랜만에 그립고 반가운 얼굴,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
오랜만에 쓰는 엽서,
오랜만에 찾아간 우체국,
오랜만에 찾아온 감성,
오랜만에,
참 오랜만에,

그리고,
정말 참말 진짜로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인생이 부럽다.
이슬아가 쓴 책을 읽으며 이슬아의 시공간을 부러워하는,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오랜만에 한가한,
오랜만에 그런 지금이다.

#
3시간 경과
지금 시간 오후 1시 25분.

바람이 많이 분다.
태풍처럼 분다.

비도 많이 온다.
장마처럼 온다.

손님이 다 갔다.
바람처럼 지나갔다.

사진 한 장 더 찍었다.
아이처럼 신난다.

바람이 자꾸 종을 울린다. 띠링띠링~
손님처럼 인사한다.
어서오세요.
잘 가세요.
안녕.
또 오세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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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11-20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땜시 친구들 못 만나지도 근 1년이 다 되가네요.정말 오랜만에 친구들 만다고 싶은데 요즘 같아서 전화걸기도 무섭습니다ㅜ.ㅜ

잘잘라 2020-11-20 08:22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 혹시 조하문이라는 가수를 아시나요?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렇게 문득 그대 보고 싶을 땐 우리 사이 너무 멀어요~‘ 정말 오랜만에 노래를 불러 봅니다. 부디 편안한 주말 보내시기 바래요. ^______^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이슬아 서평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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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에서, 손님 없을 때 책 읽기가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누가 언제 들이닥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책에 빠져들기라도 했다가는 손님들한테 잔소리 듣기 십상이다. 무슨 책이냐는 질문이라도 듣는 날엔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래서 이렇게 떡 내놓고 봐도 책이라는 티가 나지 않는, 작고, 얇고, 그러면서도 재밌는 책을 읽는 날은 기분이 좋다. 이슬아 서평집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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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 이슬아 서평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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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 잤다. 으악! 아침 굶고, 점심으로 햄버거 하나 먹고, 교대 한번 없이 10시간 꼬박 가게 보고 왔더니 진이 빠져서 뭐를 먹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그래서 더 허겁지겁, 김치국에 밥 말아 먹고 앉아서,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책,《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때문에 깜놀.

아까 낮에, 4층에서 전태일 50주기 기념 전시한다고 보러 오라는 소리를 들어서 그랬는지 책 목차를 훑어보는데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을 읽고》‘가 눈에 띄길래 65쪽부터 읽기 시작한 것인데, 읽다보니 또 어찌나 짠한 마음이 드는지 에휴, 겨우겨우 76쪽까지만 읽고 책을 덮다가 불쑥 ‘초판 1쇄 발행 2019년 11월 13일‘을 확인하고는 ˝뤼얼리?˝ 이러면서 달력을 쳐다봤더니만, 와우, 오늘이 바로 ‘11월 13일‘이 아닌가 말이다.

과연 그렇네.
‘전태일과 같은 우주(76p.)‘에
나 이리 웅크리고 앉았네.
오늘밤은 외롭지 않네.
두렵지도 않겠네.

시간을 따져보자고 전태일은 말했다. - P68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게 삶인데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은 날마다 처참했기 때문이다. - P68

전태일은 유서에서 남들을 이렇게 호명한다. ‘나를 모르는 모든 나‘라고. 또한 자신을 이렇게 호명한다.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고.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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