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침묵 - 이윤기 산문집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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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만이
희망이었다
 
   
 

나는 나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이 가는데도 재물은 도무지 늘어나지 않아 늘 곤핍하고, 귀밑머리 허옇게 세어 가는데도 세상과 맞설 철학은 도무지 성숙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랬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나무라도 심어야지. 나무에게라도 의지해야지. 9p.

 
   
   
 

지금의 내 작업실 풍경을 궁금해할 독자는 없겠지만 나는 이 나무들에 대한 중간 보고서를 쓰고 싶다는 유혹을 누를 길 없다. 우리가 긴 세월을 바라보면서 심은 나무가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자라는지,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의 희망 또한 얼마나 차분하게, 그러나 구체적인 현실이 될 수 있는지 전하고 싶은 유혹을 누를 길이 없다. 10p. 

 
   
   
 

이으면 인연이요, 끊으면 절연인 법. 50p. 

 
   
   
 

내가 참 좋아하는 소설 속의 인물 『그리스인 조르바』의 어록.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는가?" 

  "키스하고 있네."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자네와 여자밖에는 아무것도 없네. 키스나 실컷 하게." 89p.

 
   

정말이지 아버지는 '너무' 멋있었다.  이다희(번역가) 177p. 

 

나의 아버지는 2002년 오월에 돌아가셨다. 향년 65세.
이다희 번역가의 아버지는 2010년에 돌아가셨고. 향년 64세. 

이다희 번역가의 아버지 이윤기 작가의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을 읽으며,
「정말이지 아버지는 '너무' 멋있었다.」에서
정지. 

그게 이 책에 쓰인 모든 문장 가운데 가장
마지막 문장인데, 거기서
정지.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아니 그냥 쳐다보며
정지. 

내 아버지를 생각하며 모두
정지. 

읽기 정지.
쓰기 정지. 

정지. 

 

 

커서는 정지하지 않는군. 깜빡 깜빡.
[등록하기]를 누르면 정지할거야.
정지하려면 버튼을 눌러.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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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0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딸이 아버지의 유고집에 쓴 글이 '아버지는 너무 멋있었다'라니...공감하고 싶어요!!

잘잘라 2011-03-09 12:43   좋아요 0 | URL
공감하고 싶어요?
공감해요, 가 아니구요?
^ ^ 순오기님 장난꾸러기!! ㅋㅋ

순오기 2011-03-09 14:04   좋아요 0 | URL
예~ 안 읽었으니 아직은 공감할 수 없지요.
그양반이 멋쟁이라는 건 알지만요.^^

양철나무꾼 2011-03-08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이지 리뷰도 '너무' 멋지군요~
어떻게 이렇게 통통 튀게 글을 쓰실 수 있는 것인지...
땡스투 누르고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요,,,풍요인 동시에 결핍이예요~^^

2011-03-08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3-09 12:50   좋아요 0 | URL
님께서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우와~ 메리포핀스 하늘로 날아갑니다. ^ ^
붕~ 붕~

아버지! 단어 앞에서
정지.

2011-03-09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03-09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정말 이윤기 님은 우리나라 문필가 중에서 몇 안 되는 멋쟁이들중의 한 분인거
같아요. 이윤기님이 작고하시기 전에 <그리스 인 조르바>를 감명깊게 읽었던 작년
여름이 생각나네요.ㅠ_ㅠ 요즘 니체를 읽게 되니 <그리스 인 조르바>를 또 읽고
싶어지네요 ^^

잘잘라 2011-03-09 13:17   좋아요 1 | URL
제 성姓이 '조'예요.
저는 제 이름에 컴플렉스가 있어요.
조인성 좋아하다가도 왜 하필 조씨냐 그런 적도 있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책 제목을 '그리스인 조,르바' 라고 읽고
조르바라서 별로, 라고 생각했어요.
이르바나 나르바 장르바 였다면..
ㅋㅋ 제가 왜 이럴까요.
아.. 우리밀홍합짬뽕 먹고 와서 그런가봐요. ㅎㅎ


굿바이 2011-03-0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스인 조르바>는 제게도 참 특별했던 책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대목을 읽어도 별로 실망했던 기억이 없어요.
이윤기씨 따님이 쓰신 글이 참 인상적이네요. 그런 아버지로 기억되지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잘잘라 2011-03-09 13:20   좋아요 0 | URL
굿바이님도 『그리스인 조르바』를!!!
음... 그렇다면 저도 '조'씨 컴플렉스를 덮어두고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하하.

쫌 부럽더라구요. 그런 아버지를 둔 딸도,
그런 딸을 둔 아버지도..

2011-03-12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13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1-03-12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맨 마지막 녹색 글씨들을 읽지 못했는데,
두번째엔 저 구석에 적힌 네 줄을 읽어버렸어요!
어쩜 이렇게 귀여우실까요?

이윤기 선생님 글과 번역을 참 좋아했습니다.
따님이 번역을 하고 계시군요.
오랫만에 메리포핀스님과 성이 같은 '르바'씨 이야기를 한번 들춰보고 싶네요. ^^

잘잘라 2011-03-13 19:28   좋아요 0 | URL
크헉- 님마저... ㅋㅋㅋ
좋군요. 이렇게 르바씨와 인연을 맺었으니
꼭 챙겨서 읽겠슴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