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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래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야."
연세드신 분들에게 당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한 마디 여쭈어 볼라치면 흔히들 하시는 추임새가 있다.
말도마 ~~~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고, 책으로 써도 한 트럭은 나온다며 구구절절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낸다.
이 책 '고래'가 그렇다. 노파, 금복, 춘희의 삶을 파괴적 이고 기괴하며, 환타지 스러운 이야기 구조로 구구절절 하게 변사가 이야기 하듯이 들려주고 있다.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고, 한 권으로 이야기를 끝낼 수 있을까? 한 트럭은 써야 할듯한 방대한 이야기와 다양한 인생의 이 야기를 담고있다.
내용이 너무도 외설적 이면서도 감성적이고, 신파적 이 면서도 진취적이며, 환상적 이면서도 실제적이다. 모든 장르를 뛰어넘는 종횡무진의 이야기 전개와 방대한 스케 일에 정신이 없고 어안이벙벙 해진다. 놀라운 이야기꾼 이다.
심사평에서 역설과 혼합의 산물이라고 지적을 받았으며, 단지 허풍에 불과하며 소설이 아니라는 논쟁을 일으킬 만큼 소설이 갖추어야 할 형식이란걸 탈피 하였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어릴적 할머니에게서 들은듯한 이야기를 익살스럽고, 맛깔난 추임새 ('~~법칙')와 능청 스럽고 능란한 화술에 빨려들게 된다.
천명관의 모든 이야기에는( 나의 삼촌 브루스리, 고령화 가족 등) 관습과 편견, 권력의 힘, 치졸한 인간의 욕망을 여과없이 신랄하게 다루고있어 읽으면서 주눅이들게 하 면서도 쾌감을 느끼게 한다.
'고래'의 주축이 되는 노파와 금복의 욕망은 거대한 고래 를 연상케하며 결국은 자신의 욕망의 덫에 걸려 침몰하 고 만다. 노파는 평생을 먹지도 쓰지도 않고 엄청난 돈을 모았으나 자신은 정작 그 돈을 한 푼도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죽어서까지 세상에 대한 원한이 깊었고 욕망에 사로잡힌 노파의 한맺힌 복수는 저주로 이어진다.노파의 저주는 두 여자의 인생과 한 마을을 통째로 날려버린다. 세상에 복수하고자 돈을 악착같이 모은 노파와 다르게 금복의 욕망은 거대한 고래가되어 세상을 심키려했다.
금복은 세상이 간단치 않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늘 불안했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 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에 쌓인 인생. 금복은 부지불식간에 엉뚱한 미망이나, 부조리한 집착 에 사로잡혔다. 처음본 고래의 이미 지에 사로잡혔고, 커피에 탐닉했으며, 스크린속에 거침 없이 빠져들었고, 사랑에 모든것을 바쳤다. 그녀에게 적당히는 없었다. 모 든것을 삼켜버리고 싶었던 금복, 그래서 어쩜 남자로 변 신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여자인 노파와 금복에 게 공평치 않았다. 비참하고 잔혹한 삶 만이주어졌다. 인생의 절대 목표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거였던 금 복. 좁은 산골을 떠난것도, 부둣가 도시를 떠나 낙엽처럼 전국을 유랑했던 것도, 마침내 고래를 닮은 거대한 극장 을 지은것도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끝없이 달 아나고자 했던 과거는 다시 고스란히 그에게 로 되돌아 왔고 달아 나지 않았다. 숨가쁘게 굴곡졌던 영욕과 성쇠는 스크린 과 함께 그녀의 거대한 삶도 파도 에 휩쓸리듯 삽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다른 사람은 흉 내낼 수 없는 그녀의 특별한 수완과 능력도 어쩔 수 없는 한 어리석은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금복이 모든것을 체념하고 입버릇 처럼 되뇌이던 말.
"그러니까 다 껍데기 뿐이란 말이군. 육신이란게 결국은 이렇게 하얗게 뼈만 남는 거야."
평생을 죽음과 벗하며 살아온 그녀가 곧 스러질 육신의 한계와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덧없는 몸부 림은 무척이도 허망하고 쓸쓸하고 애처로웠다.
반면 세 여자 중 가장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소유한이는 금복의 딸 춘희 이다. 날때부터 벙어리이자 자폐아였던 그녀는 언제나 외부로부터 차단당한 채 고유한 자신만의 내부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붉은 벽돌의 여왕, 7kg 거구
로 태어나 기괴하리 만치 엄청난 힘을 소유하고 있다. 영
원히 벗어던질 수 없는 거대한 육체안에 갇힌 그녀의 영 혼. 세상은 그녀에게 불공평 했으며, 무관심과 적대감과 혐오를 퍼부었다. 새순처럼 여리고 여린 춘희의 감성을 사람들은 짓밟았으나 춘희는 노파와 금복같이 뒤틀린 증 오나, 욕망에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았다. 고통은 단지 고통일뿐 다른 어떤것으로 환치시키지 않았다. 증오도 원망도 없었다. 모든것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어버리는게 춘희의 방법 이었다. 춘희에게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무 질서와 부조리로 가득한 낮선 세계였으며 야만의 세계였 다. 춘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보듬어 준 것은 코끼 리 점보와, 양아버지 '문' 뿐이었다. 사람들을 피해 벽돌 공장으로 숨어 들어갔으나, 평생을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결말은 조금은 어리둥절하고 어처구니없이 안드로메다로 끝난다. 춘희의 바라던대로 그녀의 영혼은 점보와 함께 거대한 우주속 안드로메다로 날아간다. 어쩜 그 장면이 가장 춘희를 잘 표현한 부분 인것도 같다.
익살스러운 변사를 통하여 한 많곡 굴곡진 인생사를 생 생하게 들은 느낌이다. 변사의 '이것은~~~법칙' 이라는
(세상의 법칙, 생식의 법칙, 화류계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무조건 반사의 법칙, 무지의 법칙, 의처증의 법칙, 거리의 법칙, 진화의 법칙, 자연의 법칙, 그들의 법칙, 알코올의 법칙, 유언비어의 법칙, 만용의 법칙, 자본주의 법칙, 플롯의 법칙, 감방의 법칙, 토론의 법칙, 권태의 법칙, 신념의 법칙, 자본의 법칙, 사랑의 법칙, 지식인의 법칙, 이념의 법칙, 시청률과 대중성의 법칙, 자연의 법 칙, 경영의 법칙, 소문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헌금의 법 칙, 구호의 법칙, 구애의 법칙, 비만의 법칙, 운명의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 무의식의 법칙, 습관의 법 칙, 작 살의 법칙, 운명의 법칙, 서부극의 법칙, 칼자국 의 법칙, 유전의 법칙 ,관성의 법칙, 금복의 법칙)
목소리가 아직까지도 귀에 웅웅 거린다. 나는 지금 무슨 법칙의 틀에 갇혀있는 걸까? 작가는 수 많은 법칙들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하면서도 본인은 모든 법칙을 철저히 무시하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황당,억지, 외설,기괴한 이
야기를 싫어 한다면 이 책을 펼치지 마세요. 그러나 풍부 한 이야기거리와 해학과 날카로운 비판을 좋아 한다면 강추 합니다. 호불호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