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더링 하이츠 (리커버) 을유세계문학전집 여성과 문학 리커버 에디션
에밀리 브론테 지음, 유명숙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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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동화책에서 소설책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가장 좋아했던 책은 <제인 에어>였다. 작가 소개를 읽다가 브론테 자매를 알게 되고 이어 <폭풍의 언덕>을 읽었지만 <제인 에어>만큼 흥미롭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아마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작품이었을 것이다.

<워더링 하이츠>는 그 시절 내가 읽던 <풍풍의 언덕>이다. "워더링 하이츠"를 직역하면 바람이 휘몰아치는 언덕이 되고 실제 이 집을 설명하는 록우드를 통해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서 폭풍우가 몰아치면 대기의 소요에 그대로 노출됨을 이르는 말"(...11p)의 사투리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본문을 읽다 보면 워더링은 그저 집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된다. 이전부터 을유문화사에서는 <폭풍의 언덕>을 <워더링 하이츠>로 출간했음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여성 문학으로서 새로운 옷을 입고 아름다운 판형과 표지로 만나게 되었다.

사실 <워더링 하이츠>는 가슴 아픈 사랑을 쫓는 히스클리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예전에 읽었던 느낌은, 그저 으스스하고 기분 나쁜 그 자체였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세상을 좀 알 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나도 이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 책을 붙잡고 무려 2주 이상을 읽었던 걸 보면 예전의 내가 엉망으로 읽은 건 아니구나, 싶었다.

<워더링 하이츠>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우긴다면 그저 오만하고 이기적인 한 남자의 스토커적 집착이라고 하겠다. 그보다 이번 독서를 통해 눈에 띄었던 건, 각 인물에 대한 묘사와 그보다 더 큰 숲을 이루는 린턴 가와 언쇼 가의 대립 구조였다. 하나는 언덕 아래, 하나는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두 가문엔 어린 두 남매가 있고, 여기에 린턴 가의 아버지가 여행 후 히스클리프를 데려오며 이 처절한 비극의 서막이 시작된다.

이 커다란 구조 속에 내 눈에 들어온 건 19세기 여성들의 삶이었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자라며 자신의 분신과도 같이 여겼던 히스클리프와의 결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는 캐서린 뒤에는, 그녀의 말 일부만 듣고 뛰쳐나가 복수를 계획하는 히스클리프가 있었고 그저 찰나의 사랑에 속아 결혼을 했지만 곧 현실을 보게 된 이사벨라 또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 반면 유약한 에드거나 자신의 삶을 놓아버린 힌들리, 사랑이라고 우기며 복수만을 꿈꾸는 히스클리프는 너무나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남자들이다. 여성들은 아들이 있어야 아버지의 유산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의 결정이 언제라도 남자들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음을 거침없이 보여주는 작품이 <워더링 하이츠>인 것이다.

다시 브론테로 돌아가서 브론테 자매는 어떻게든 자신들의 위치에서 스스로 자립하려고 했던 인물들이다. 어릴 적부터 황야와 바람을 맞으며 자신들끼리 의지했던 이 자매들은 이야기를 꾸며내고 아버지의 서재를 샅샅이 훑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이 시기 한 여성으로서 홀로 설 수 없었음은 어쩌면 그들에겐 너무나 큰 짐이 아니었을까.

앤 브론테의 <아그네스 그레이>나 샬론의 <제인 에어>, 에밀리의 <워더링 하이츠> 모두 그런 자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현실을 그대로, 타협하지 않고 보여주는 작품은 <워더링 하이츠>임이 분명하다.

*이 후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워더링하이츠 #에밀리브론테 #여성작가 #세계문학 #여성문학 #폭풍의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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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봄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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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애거사 크리스티가 "메리 웨스트매콧"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시기가 있다. 이미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했던 애거사 크리스티가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작품 6 작품을 쓴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이유가 있다.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 등으로 큰 충격을 받고 실종 사건을 일으킨 애거사 크리스티는 이후 한 호텔에서 발견됐지만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등 방황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때에 대한 어떤 언급도, 설명도 하지 않는다. 이후 작가가 자서전을 쓸 때에도 이때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메리 뭬스트매콧"을 필명으로 한 6권의 책은, 바로 이때에 자신의 심경과 변화를 소설화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이전에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었다.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를 떠올리게 할 만큼 충격적이고 공감되는, 오래 기억할 작품이었다. <봄에 나는 없었다>는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와 알게 되었지만 이후 언제나 나머지 5권이 궁금했다.

두 번째로 읽게 된 책이 바로 <두번째 봄>!

<봄에 나는 없었다>는 우연히 사색의 시간을 얻게 된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깨닫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면, <두번째 봄>은 훨씬 더 애거사 크리스티 자신의 삶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죽음" 앞에 놓인 한 여성을 구해주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이후 그녀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훑어나간다. 마냥 천진난만하고 충만한 사랑을 받았던 어린 시절과 그녀의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며 뭇 남성들에게 청혼을 받는 처녀 시절, 사랑을 통해 이루어 낸 결혼과 그 이후의 이야기들.

여성이라면 어떻게 공감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소설은 한 여성의 삶을 그저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읽다 보면 나와 그다지 다를 것 없는 고민과 삶을 사는 그녀를 통해 공감하고 이해하고 답답하고 화도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라고 얼마나 다를까. 물론 성격도 다르고 자라 온 성장 환경도 다르고 지금의 상황도 다르지만 50대를 막 시작하는 여성으로서의 삶은 아직도 큰 변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작가 자신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듯한 주인공의 이야기에 조금이나마 작가의 절망감과 외로움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여성 소설로서도 아주 뛰어났을 애거사 크리스티가 6권만 남긴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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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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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온통 책이다. 따로 공간이 생겨 큰 책장 3개 분량이 밖으로 나갔는데도 도대체 어디서 책이 빠진 건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집엔 책으로 가득하다. 가끔 이 책들을 가지고 서점을 차려볼까~ 하는 엉뚱한 꿈을 꾸곤 한다. 그럼 중고 서점이어야 하나, 최근 유행하는 공간을 빌려주는 곳이어야 하나~ 상상의 나래도 펼쳐 본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곧, 그렇게 시작을 한다면 나의 꿈이 다시 생활에 필요한 돈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고 그러면 살포시 접어 둔다. 돈을 벌려면 치열해야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치열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속 영주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으로 돈을 벌기 위한 서점을 연다. 그 이전의 삶이 훨씬 더 치열했기에 어릴 적 좋아했던 책과 관련된 일로 쉬는 삶을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처음 그는 책을 팔거나 서점을 홍보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하나 둘 채워나갈 뿐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그리고 그런 사장의 개성이 드러나는 휴남동 서점은 사장과 함께 조금씩 성장해 간다.

책 속엔 치열함의 끝까지 가 본 인물들이 여럿 나온다. (사실 대부분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그렇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 지친 이도 있고, 성공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달리다 놓아버린 이도 있고, 언젠가를 꿈꾸며 달리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상실감에 멈춰버린 이도 있다. 그저 버티기 위해 휴남동 서점을 찾았고 이곳에서 위로받는다.

재미있었다. 단지 개인적으로 아주 치열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지라, '음~ 힘들겠구만~' 정도 떨어져 읽느라 푹~ 빠져들지는 못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다. 우리 부모는 "성공"을 부르짖는 분들이신데 난 어쩌다 삐딱선을 타 "여유 없이 어떻게 사나, 사람이 좀 여유롭게, 긍정적으로 살아야지~"하고 있는 건지. 어릴 때부터 그랬다. 최선을 다 하려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꼭 20% 정도는 남겨두었다. 지금도 그렇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있지만 하루 1시간 이상 내 시간을 만들지 못하면 병이 난다. 슈퍼 우먼 따위 되고 싶지 않다. 음~ 그래서 돈을 못 버나.ㅋㅋㅋ

삶에 정답은 없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찾아나가면 된다. 힘들면 멈춰서 쉬어도 되고 쉬다 힘이 나면 다시 걷고, 뛰고. 등장인물들의 중심에 "휴남동 서점"이 있어 이들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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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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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눈에 띄었다는 건, 서점가에서 어느 정도 베스트셀러 반열에 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사실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나는 "어린이"들과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아들은 없지만 딸은 11년 터울로 둘이나 키우고 있는 사람이라 어린이라면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니 내겐 필요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언젠가 둘째와 서점가를 거닐고 있을 때, 베스트셀러 목록이 있는 곳에서 9살이었던 둘째가 주장했다. "엄만, 이 책을 좀 읽을 필요가 있어. 어린이들에게 너~무 공감 능력이 떨어져." 충격이었다. 발끈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난 어린이들과 아주 잘~ 지내고 있고, 어린이들이 나를 참 좋아한다고 반박했으나 둘째는 그럴 때도 있지만 아주 중요한 한끝, 그 세심한 하나를 모르고 지나치는 때가 있다고 한다. 음~ 사실 나도 안다. 왜? 난 극 T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잘 공감해주고 함께 웃고 위로해줄 수 있지만 뭔가 아주 미묘한 감정 하나는 뒤늦게 생각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내 딸들일 경우에 더 심하다. 그래서 구매!

읽으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우선, 김소영 작가와 나는 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감성적인데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잘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바로 김소영 작가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있었던 일 속에서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소중하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린이"들의 감정 하나, 행동 하나에 감동하고 공감해준다.

그렇다고 좌절감에 휩싸이진 않았다. 난 나만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나는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장단점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때로 냉철해 보이지만 듣기 싫은 말, 옳지 못한 행동 등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알려준다. 그리고 자고 나면 잊는다. 아이들은 그런 내가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큰 기복없이 자신들을 받아들여준다는 사실을 알기에 미묘한 감정 싸움이나 조금 큰 잘못을 했어도 한번 이야기하고 나면 다음에 올 땐 밝은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어느 정도 반성은 됐지만 내가 고쳐나갈 점을 생각하며(성격이 그런다고 바뀌나 싶긴 하지만) 즐겁게 읽었다. 무엇보다 어린이는 사랑스럽고 때로는 감탄하게 하며 열심히 배워나가는 존재라는 데에 무한 공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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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의 구성원으로서 똑같은 자격을 갖는다고 배웠다. 기사에 달린 댓글에는 어린이가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있었다. 글을쓴 분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들린 비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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