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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다니엘 튜더 지음, 노정태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어떤 나라에 매료가 되어 사랑에 빠졌다고해도, 이렇게나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애정을 담아 한 나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에필로그에 실린 옮긴이의 말에서 문득 의문을 갖게 됐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잘 알지도 못한 채 사랑에 빠졌다가 알면 알수록 서서히 마음이 식어버리는 상투적인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게 사실이다. 무엇에 화르륵 불타올랐다가 사그라드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과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자인 다니엘 튜더는 한국을 더 잘 알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면까지도 보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다니엘 튜더는 사랑에 관대한 남자? 혹은 사랑하면 할수록 더욱 빠져드는 남자인건가.
다니엘튜더가 프롤로그에 적은대로 우리나라가 외국에 인식되는 경우는 몇 가지 없다. 북한, 핵, 분단국가, 한강의 기적 정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인식이 이제는 좀 달라졌을지 몰라도(싸이나 K-POP의 선전, 반기문 총장의 등장으로 조금은 다른 시선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외국인들의 시선에서 우선순위는 아마도 북한, 분단국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 찾아보면 대한민국의 관광명소 맛집 등을 소개하는 책은 많은데 이렇게 문제인식을 갖고 파고드는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책소개를 읽자마자 내가 서평을 신청하게 됐던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인이라서 너무도 당연해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외국인이라서 신선하게 느끼는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신선했다. 곁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는 가족처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내가 나고 자랐기 때문에 공기처럼 익숙하다. 익숙하기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지나치는 것들도 있을테고, 차마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이 외국인이 발견했다. '사랑을 간직한 3자의 입장'으로. 책을 읽으면서 세차게 고개 끄덕끄덕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를 읽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느꼈을 것이다. 너무나도 친숙하기도 하지만, 만지면 아플까봐 내버려 두었던 부분을 헤집는 불편한 느낌을 말이다.
뭐 불편한 느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한국인과 흥(興)에 관한 정서에 대한 이야기인데, 저자의 말대로 한국인들이 많은 부분 한(限)의 정서만 이야기를 중요시한다. 조상 대대로 겪어온 일들이 생각들이 DNA에도 반영이 되니까, 그들이 느낀 한의 정서는 우리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외국인은 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의 정서 또한 이야기 하고 있었다. 우리조차 잘 인식하지 않는 흥의 정서를 말이다. 물론 저자가 생각하는 흥의 의미와 내가 생각하는 흥의 의미는 조금 다르지만, 꽤 흥미로웠다. 가장 가까이에서 한국인을 느꼈던 이가 생각한 흥이라는 감정은 아마 계속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결국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지만 이야기는 간단하다.
'한국을 사랑한 청년'이 11년간 보고 듣고 느낀 한국에 대한 가감없는 이야기.
이 한 줄이면 설명이 되는 책이다. 하지만 이책에서 가져가야 할 것들은 너무나도 많고 생각해 볼 것도 많아 책 한권을 많은 줄과 글들로 채워 넣었다. 한 줄로 설명은 되는데 책을 읽지 않고서는 그 많은 생각들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까. 앞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책이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를 제대로 평가해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추신. "하루종일 일하고 밤새도록 놀고." 이 챕터는 앞쪽의 무거운 이야기들에 거부감이 드는 독자들이 먼저 읽어보면 씨익 웃음이 나는 챕터이다. 증류주인 소주에 관한 고찰부터 포장마차에서 옆사람과 이야기하는 법까지 설명되어 있어, 외국인이 보는 대한민국의 '음주' 문화가 꽤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