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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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사이드 위키리크스’ 폭로 전문 사이트의 내부를 폭로한다. 폭로에 관한한 예외조항을 인정하지 않는 위키리크스에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온 것인가? 익명을 자랑하는 위키리스크를 폭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돔샤이트 베르크다. 그는 최근까지 줄리안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2인 체제를 운영해온 인물이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뒤집어 놓은 조직이라서 그런지 위키리크스를 떠났지만 돔샤이트 베르크 역시 뜨거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현재 오픈리크스를 운영 중이다. 한때 젊음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던 위키리크스를 떠난 그가 비슷한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것이 뜻밖이다. 그는 떠나기 전 위키리크스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신랄한 비판과 진심어린 우려에 비해 줄리안과 위키리크스는 놀라울 정도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왜 위키리크스에 관한 글을 써야만 했을까? 읽는 내내 감출 수 없었던 불편함은 돔샤이트 역시 위키리크스의 권력일부를 차지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즉흥적이고 제멋대로인 줄리안에 비해 상당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었다. 돔샤이트는 노력한 대가를 원했고 위키리크스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싶었다. 힘든 일을 겪은 다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왜 처음부터 줄리안과 정확하게 선을 긋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몇 번의 폭로로 위키리크스의 인지도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돔샤이트는 머리 아프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위키리크스의 가능성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돔샤이트와 줄리안의 관계가 급속히 나빠지게 된 시기가 이때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그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줄리안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둘을 묶어 놓을만한 충분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인사이드 위키리크스’는 줄리안과의 결별 후 돔샤이트 베르크가 자전적으로 폭로한 위키리크스의 내부문서다. 줄리안과의 처음 만남부터 위키리크스의 운영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 무엇보다도 자료를 입수하기까지의 과정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시종일관 위키리크스를 떠난 것을 줄리안의 탓으로 돌린다. 자신의 명백한 의도와는 달리 줄리안은 처음부터 위키리크스를 자신을 우상화시키기 위한 사이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줄리안의 행적을 보면 돔샤이트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줄리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위키리크스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변화를 꿈꾸었던 두 천재의 운명은 안타깝게도 빗나갔지만 그들은 느슨한 세상에 누구보다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엄청난 위험이 수반되었음에도 위키리크스가 단기간에 그토록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들은 가감 없이 증명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폭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만약 충분한 익명이 보장된다면 주위는 폭로로 넘쳐날 것이다. 이에 반한 비밀을 간직하고픈 기득권자들의 욕망 또한 위키리크스에겐 충분한 먹이가 되었다. 위키리크스는 잘 꾸며진 플랫폼으로 인간의 욕망을 거래한 것이다. 줄리안은 위키리크스가 지닌 엄청난 힘을 알았다. 하지만 누구나 고민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선택은 내분을 일으킬 원인을 제공했으며 돔샤이트는 단번에 줄리안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돔샤이트는 위키리크스를 줄리안의 사이트가 아니라 폭로전문사이트가 되기를 원했다. 또한 줄리안의 구속이 위키리크스에 어떠한 피해를 입힐지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위키리크스 내에서의 줄리안과 돔샤이트를 원했던 것이다. 어느 해보다 추었던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줄리안 어산지에 관한 소식이 잠시 수그러든 분위기다. 향후 비평가들이 위키리크스와 줄리안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2010년, 그들은 금기의 영역을 넘어선 최초의 조직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스파이나 폭로자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최소한 어떠한 대가없이 비밀문서 전문을 폭로한 최초의 웹사이트로 기억될 것이다. 돔샤이트는 위키리크스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만한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권력의 다툼이라는 유혹을 넘어서지 못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세상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쉽게 잊혀간다. 자극은 순간적이며 모순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위키리크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앎의 과정을 통한 통로의 부재가 얼마나 자신을 얼마나 왜소하게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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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고 장전하고 발사하라
제프리 J. 폭스 지음, 이현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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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고 장전하고 발사하라. 상당히 자극적인 주제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문구도 없을 성 싶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TV 드라마 ‘욕망의 덫’은 욕망으로 가득한 기업세계를 투영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우린 이러한 드라마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재벌가문과 소유주들 간의 암투, 그들은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권력과 자본을 아끼지 않는다. 결과는 충분히 예측가능하지만 개인적인 비극은 사절이다. 너무 진부한 스토리로 막을 내리기에 우리들이 아는 비즈니스는 환상으로 가득하지 않는가?

엄청난 실업률에 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언젠간 사막에 숨어있는 동굴을 찾아 ‘열려라 참깨’ 를 외쳐야 할 날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누구에게 있을까?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인가? 시대적 흐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세상의 책임인가? 어떠한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져있던 우리가 해야 할 명제는 너무도 단호하다. 살아가야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경제학의 발전과정을 안 뒤로 상당한 고민을 해왔다. 자기계발이란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짐을 올려놓았는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고민이다. 가장 흔한 주제가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라는 논리다. 경제학은 모든 가치를 효용성에 둔다. 즉, 생각도 행동도 이익에 있을 경우에만 실현가능한 주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화를 가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누구나 잘 날수는 없는 현실, 우리의 벅찬 현실을 누구에게 기댈 수 있을까?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그곳엔 대기업이나 총수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누구나 닮고 싶어 하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건 TV에 나오고 싶은 소망이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삶에 대한 자긍심이다. 아무리 쉬운 일도 10년을 하면 달인이 된다. 30년을 하면 경지에 오른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상대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높은 스펙과 뛰어난 지적 능력, 그리고 무시 못 할 인맥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눈을 가릴 뿐이다. 가슴 벅찬 삶은 의외로 우리의 마음에 존재한다. 달인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도 몸에 붙을 때까지 반복한 사람들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고민을 한다. 너무 같은 내용들이 반복되어 과연 저자는 어떻게 이런 많은 경험들을 이루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곁엔 항상 같은 주제, 내용들이 가득한 자기계발서가 놓여있다. ‘채우고 장전하고 발사하라.’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단편적인 주제와 거침없는 표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 이대로만 한다면 변화는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 권의 책을 읽은 주식투자자가 원하는 이익을 얻었다는 증거를 본적이 없다.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 자기계발서가 주는 최고의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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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
윌리엄 A. 서든 지음, 최은정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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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파괴하려는 외부적인 행동은 항상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놓는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인류조상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비를 몰고온다는 기우제가 최근에서야 사라진 것을 보면 인류는 상당기간동안 미래의 불확실성에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기술의 발전을 통해 어떻게 인류가 지구를 정복했는지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 인류는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하다. 오히려 뛰어난 과학발전이 가끔씩은 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이 틈을 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전 방위적으로 지구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불안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예측들이 사실일까? 진위여부를 떠나 미래를 알고 싶은 사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업들 중의 하나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한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즐비한 21세기 예측은 더 이상 신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예측분야도 광범위하게 넓어져 대다수의 국가와 기관에선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예측기법을 사용한다. 헌데 이러한 예측이 믿을 만 한 것인가? 라는 질문엔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The Fortune Seller'는 미래를 담보로 욕망을 파는 사람과 단체를 소개(?)한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치가들이고 경제학자들이다. 내막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로서는 현상에 충실할 뿐이다. 헌데 그들의 예측이 자주 그리고 상당한 오차로 빗나간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가장 최근에 빗나간 예측이 미국의 대혼란일 것이다. 누구도 예측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탐욕이 얼마나 눈과 귀를 가리는지를 증명해줄 뿐이다. 사회과학으로 시작한 경제학이 세상을 지배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대 경제학자들은 거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효용성이나 가치기준을 판단하는 것을 넘어 마치 금융의 연금술사처럼 행동한다. 문제는 그들이 주장하는 경제학이 풍파를 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복잡한 수학공식을 사용하여 시뮬레이션을 만든다. 그리고 과거의 데이터를 투입하며 현재가치에 가장 근사한 가격이 나오면 새로운 이론을 정립시킨다. 헌데 놀랍게도 그들의 예측능력은 단순한 추측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간이 멀어지면 예측력은 더욱 떨어지고 심지어는 반대로 예측하기도 한다. 신빙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토록 예측에 집착하는 이유는 경제가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계의 움직임이 비선형법칙에 의해 결정될 때 초기조건의 조그만 오차라도 영향력이 증폭되어 수초만 지나도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이론에 비해 복잡계는 하나의 기준원리에 영향을 받아 구성요소간에 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즉 복잡계는 어떠한 내부통제가 없이도 스스로 조직해간다는 이론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대표적인 복잡계의 이론이다. 하지만 경제는 복잡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인간은 산업혁명시절과 같은 패턴대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경제적 존재가 아닌 심리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라는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말은 경제학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할 문구다.

경제예측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곳이 증권시장이다. 경제학에 관한 미래예측들이 고스란히 정부와 재계에 투입된다면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증권시장은 더욱 미래예측이 활성화 되고 있는 곳이다. 혹 최고학부를 자랑하는 월가의 CEO들이나 투자회사들이 별자리에 의존해 투자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놀랍게도 증권시장은 점쟁이들로 가득차 있다. 동전던지기와 제비뽑기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애널리스트의 실적과 비등한 수익률을 내는 것을 보면 증권에서 예측은 아무런 쓸모가 없음이 판명되었다.

욕망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를 부추긴다. 특히 이러한 욕망을 부추기는데 미래의 불안과 불확실성만한 상품도 없다. 그들, 경제학자, 증권관계자, 기술자, 통계학자들은 본연의 임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미래예측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미래가 진행된다면 지구는 준비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이해관계도 실마리를 쉽게 풀어놓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과연 인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에 대한 우울한 예측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혹독한 기근과 질병이 유럽의 패국을 막았듯이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단순한 바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뭔가를 걸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예측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때’ 가 아니라 우리가 ‘가야할 때’ 이기 때문이다.‘ - 마티아스 호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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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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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경제학은 ‘악의 근원지’ 일까? 과연 자본주의는 더 이상의 효용성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일까? 코엔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악은 이미 번영일로의 길에 들어섰다. 아니 너무 번창해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자주 연출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일부로 시작한 경제학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우린 왜 경제학의 이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경제학은 인문학을 넘어 종교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뛰어난 철학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기위해선 지금의 경제학만으론 분명한 한계가 보인다. 맹목적인 믿음 뒤에 따르는 고통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변수다.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양화란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놀랍게도 찬란한 문명들이 서양화란 그늘에 가려 무수한 짓밟힘을 당했다. 중국이 그랬고 인도가 그랬다. 하지만 21세기 세상의 쏠림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비상은 분명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린 그들의 성장 뒤에 숨겨있는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자전거 한 대씩을 사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동차 한 대씩을 보유하게 된다면 지구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바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성장을 멈추게 할 어떠한 명분도 찾지 못하고 있다. 코엔은 사이버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신흥강대국에서 뿜어대는 열기로 인해 노후된 서양화의 폐해가 우리를 뒤덮을 것이라 경고한다.

로마의 몰락과 함께 중세 암흑기가 도래한다. 당시의 유럽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질병이 세상을 초토화시킨 시절이었다. 부족한 식량과 인구문제는 항상 유럽인들이 해결해야할 생존의 조건이었다. 그들이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아프리카까지 항해를 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화약을 만들었지만 폭탄을 제조할 줄 몰랐고 나침반을 만들었지만 항해엔 관심이 없었다. 몽고의 침략에 고민하던 황제의 결정은 결국 서양화를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이에 반해 12세기와 18세기 사이 어느 시점에 유럽에선 부가 부를 낳은 자기촉매과정이 탄생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계몽주의와 르네상스 그리고 산업혁명의 부흥이다.

코엔은 현대 경제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특히 갈수록 첨예해지는 도덕적 논란과 근거가 없는 금융상품의 폐해를 예로 들며 앞으로 인류의 집단적인 자기파멸을 경고한다. 그 중심에 생태계의 파괴가 있다. 생태계는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문제와는 관점이 다른 문제다. 어떻게 되었든 모든 것은 지상이나 지하로 사라졌지만 근원적인 자원은 고찰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누구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지 전 인류적인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강대국일수록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는 생산성 상승으로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쉽게 쓰고 버리는 경제’가 세상을 휩쓸고 있다고 말한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경제의 오래된 논리가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거의 없다해도 무방할 것이다.

‘악의 번영’은 상당히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려 12장에 달하는 코엔의 해박한 지식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담고 있으나 너무 많은 것을 한곳에 보여주려한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의 총명함은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경제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꾸어 준다. 피하지 못할 두 가지의 종속변수가 항상 우리를 괴롭혀 왔다. 바로 인구와 토지문제다. 맬서스의 법칙이 더 이상 효용가치를 잃어버렸을 때 우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가져야만 했다. 하지만 파티를 깰 어떠한 명분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위기는 항상 풍요 속에서 탄생한다. 세계사를 전환시킨 대부분의 전쟁은 번영과 평화 속에서 발생했다.

과연 전 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은 존재하는가? 애덤스미스의 이론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역사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현상을 태동시킨다. 제3세계, 사이버세계는 인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공존과 번영의 길목에서 과연 지구인들은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코엔교수의 뛰어난 경제학적 고찰과 서양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고려해볼 시간이다. 패러다임은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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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행이 답이다 - 생각을 성과로 이끄는 성공 원동력 20
이민규 지음 / 더난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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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1%만 다를까? 상당히 많이 다르다. 하지만 우린 무엇이 다른지 굳이 비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냐 하는 비아냥거림과 자만심이 잠시나마 언짢았던 기분을 덮어둔다. 왜 베스트셀러인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고 있는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원한다.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공인된 베스트셀러에 눈길을 돌린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왜 자기계발서들은 나오는 수량에 비해 제몫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문제는 너무 꿈에 부풀어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는 가슴 벅찬 꿈만을 심어준다. 진정 당신의 문제가 꿈이 없어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일까?

꿈이 없는 사람과는 대화도 하지 말라 라는 교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위한 자신과의 결심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최소한의 피드백이라도 하고 있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의 저자이자 심리학 교수인 이민규님의 ‘실행이 답이다.’란 책이 출판되었다. 그는 세상이 포괄적인 문제에 너무 일방적인 해답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실행’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격언은 실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알려준다. 좋은 꿈도 원대한 이상도 계단 하나를 올라가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꿈은 높게 가지되 현실은 극히 보수적이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선 상당한 이견이 존재한다. ‘언제쯤이면 당신의 목표가 이루어질 것 같나요?’ ‘글쎄요, 한 10년, 아니면 40대 중반’ 대략이라는 예측은 정확한 목표가 아니다. 목표를 달성하기위한 접근 방법에 ‘역산 스케줄링’을 시도한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역산 스케줄링은 수치(목표달성 년도)를 정해놓고 역으로 이루고 싶은 일들에 대한 목표를 계산하는 것이다. ‘99퍼센트의 사람들은 현재를 보면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고, 1퍼센트의 사람만이 미래를 내다보며 지금 무엇을 행동할지를 결정한다.’ 왜 꿈만 가지곤 안 되는지, 우리에게 필요한건 자신을 벼랑 끝에 세울만한 정확한 데드라인이다.

자기비하는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없다. 흔히 말하는 생각의 차이라는 관점을 자신의 현실에 접목시킨다면 시도하는 모든 일을 ‘실험’이라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험은 실패한자만이 성공을 얻을 수 있는 창조적 행위다.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누구의 행위인가? 안 될거라 미리 단정 짓는 자기암시와 불가능한 이유를 늘어놓는 뻔뻔스러움이 당신의 앞길을 막고 있다. 에디슨은 모든 것을 실험으로 규정했다. 그랬기에 수천 번을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며 그가 창조한 대부분의 발명품들이 부산물로부터 얻어진 것을 알게 된다면 실험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위한 가장 실천적인 행위이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엔 롤링 12번, 1억부 이상이 팔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저자 잭 캔필드와 마크 한센 33번, 100편의 소설이 2억부이상이 팔린 루이스 라모르 350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세계적인 작가들이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횟수다. 이들의 성공을 눈앞에서 본 출판사들로서는 자신들의 무능함에 속만 태우겠지만 그들은 자신을 믿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모든 관계 특히 설득의 단계엔 임계의 법칙이 있다. 아무리 바위 같은 사람도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 ‘할 만큼 해봤다고’ 수많은 세일즈맨들이 늘어놓는 고민은 자신에 대한 의무감이 지배적이다. 마지막 한 번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기회였다면 그동안 당신의 수고는 아무런 대가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실패 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닉슨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같은 말이지만 다르게 받아들일 때가 있다. 그때가 이 말을 듣고 싶을 때다. 분명 실행이 답이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목표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분명 바뀌고 싶은 인생인데 분명 성공하고픈 인생인데 왜 우린 지배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 일의 우선순위에 대한 개념,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절박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 실행에 대한 답이다. 결심-실천-유지, 누구에게나 같은 조건이지만 문제는 실행뿐이다. ‘1% 실행하면 100% 달라진다.’ 1%가 다른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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