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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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감수성이 무뎌진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이 책은 첫사랑의 촉각을 건드렸다고 할까.   문장 하나하나 무뎌진 감성들을 되살아나게 하는 것만 같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19세기 문학의 황금시대를 꽃피웠던 투르게네프의 6편의 장편 소설 중 하나인 <첫사랑>...  투르게네프는 서정시로 문학적 경력을 쌓아서 그런지 이 소설은 시적인 사랑 표현이 많다.   투르게네프는 유부녀였던 여가수 폴리나 비아드로와의 만남을 평생 이어나고 그녀의 주변을 맴돌다가 그녀 앞에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작가가 <첫사랑>은 '창작이 아니라 나의 과거'라고 말했을 정도로 이 소설엔 자전적인 얘기를 많이 담고 있다 

 

"커다란 그러나 짓궂은 데는 없는 호탕한 웃음소리를 등 뒤로 들으며 내 방으로 도망쳐 들어와 침대에 몸을 던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 쳤다.  나는 몹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즐겁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본 일이 없는 흥분을 느꼈던 것이다."

 

16살이 이팔 청춘이라고 했던가.   16살 주인공 블라지미르가 21살 지나이다를 처음 보고 도망치듯 방으로 들어오는 장면이다.  지나이다는 뛰어난 미모에 위엄 있는 행동으로, 뭇남성들이 주변에 모여든다.   미모의 소유자는 주변의 시선를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성격과 운명이 결정되기도 한다는데..  지나이다는 누구에게도 마음은 주지않고 남자들을 모두 발밑에 엎드리게 하여 기분내키는 대로 가지고 노는 것을 재미있어 한다.    지나는 자신을 정복할 남자는 절대 없을 거라고 큰소리치며 남자들을 조롱한다. 

 

"이 소리 없는 번갯불과 억제된 듯한 섬광은, 내 마음속에도 역시 불타오르고 있는 말 없고 비밀스러운 불꽃에 호응이라도 하는 듯했다."

"나는 이미 단순한 어린 소년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  나는 그날부터 나의 열정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날부터  나의 고통도 시작되었다고 덧붙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한쪽이 더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불공정한 게임이 맞는 것 같다.  블라지미르는 지나에 대한 사랑의 열정에 빠져들고, 지나는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서 남들에게 변덕과 독립심으로 대변될 정도로 당당하게 보이던 모습이 변하게 된다.  블라지미르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한밤중에 지나의 집 길목을 지키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지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블라지미르는 아버지로부터 묘한 영향력을 받았다.  아버지의 말을 잘 다루는 강인함과 단호한 성격을배우고 싶어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자신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두사람의 불륜이 블라지미르의 어머니 귀에도 들어가 이사를 간후, 블라지미르는 우연히 아버지와 지나가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버지가 지나의 손목에 채찍질을 하고 지나는 그 상처에 입을 맞추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가며 채찍을 버린다.  

 

채찍질은 무슨 의미였을까.  지나가 날 버릴려면 때리고 가라고 했을까.  사랑하는 남자가 때린 상처까지도 사랑한다는 의미의 입맞춤..  블라지미르는 지나의 파멸적인 사랑에 자신의 흥분과 고통으로 얼룩진 사랑도 돌아보고 부쩍 자신이 성숙함을 느낀다.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지고 죽기 전에, 아들에게 편지를 남긴다.

 

"내 아들아, 여자의 사랑을 두려워해라.  그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해라...."

 

첫사랑의 열병은 젊어서 한번은 앓고 지나가는 홍역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사랑의 열병을 앓고나서 이성을 배우고 인생도 배우고 그러면서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이겠지.  죽음과도 같은 파멸적인 사랑은 못해봤지만 소설속에서나마 간접 체험하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투르게네프의 섬세한 사랑 철학과 인물들 묘사가 탁월하고 길지 않은 소설이니 첫사랑의 감각을 느끼고 싶을 때 한번씩 꺼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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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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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체호프라 불리는 단편 소설의 거장 레이먼드 카버.  그는 미니멀리즘, 리얼리즘의 대가라 불리며 1980년대를 풍미하다 1988년 50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길지 않은 인생의 막을 내렸다.   단편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 아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에 대한 문학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작가의 명성과 작품의 극찬을 익히 들어온 터라 궁금했다.  

 

예전에 <대성당> 중 앞에 있는 몇 단편들을 읽다가 뭐지 하면서 책을 덮은 적이 있다.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가 이야기가 너무 싱겁게 끝나서 그랬던 것 같다.  이번에 북클럽에서 함께 읽어보기로 하여 다시 읽어보니 묘한 여운이 남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읽는 맛을 알았다고 해야 할까.  뒤에 나오는 단편들은 처음 읽는데도 재미있게 완독하였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은 예기치 못한 장면들이나 이상한 장면들을 포착해 낸다.  문장들은 간결하고 묘사도 표면적일 뿐이다.  단편답게 길지 않은 몇시간의 내용이거나 짧은 기간의 얘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가 있다.   레이먼드 카버는 "한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은 없지만, 내 작품은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아이를 낳고 나서 법적으로 음주 가능한 나이가 됐을 정도로 어린 나이에 두아이 아빠가 되었고, 알콜 중독도 겪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도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된 부부들의 얘기와 알콜 중독으로 위기에 처한 부부가 등장한다.  그의 주된 테마는 부부, 알콜 중독, 헤어짐, 새로운 삶인 듯 하다.

 

그의 대부분의 단편들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호하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에서 특별한 주제나 교훈을 찾지 말라고 말한다.  그저 소설 속 인물들의 인생을 들여다 보고 우리네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그들의 인생을 간접 체험해 보라고 한다.   독자 나름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면 그의 단편들은 생각해 볼 여지를 많이 담고 있다.  작가의 의도가 명확하게 보이는 단편들이 몇 있기는 하다.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이다.  <깃털들>, <칸막이 객실>, <보존>, <열>도 나름 의미가 깊다.

 

레이먼드 카버의 집필실에는 유일한 장식물로 공작의 깃털들이 여기저기 꽂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단편집의 첫 단편의 제목이 바로 <깃털들>이다.   아기 없이 살기로 한 부부가 직장 동료의 집에 초대받아 갔는데, 그곳에서 집에 들여놓은 공작을 보게 되고 이제껏 그렇게 못생긴 아이는 본적이 없을 정도로 못생긴 아기를 보게 된다.  공작의 울음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에 질려한 듯 하면서도 이 부부에게 그 날이 어떤 특별한 날로 기억되었던 걸까.  그 날을 계기로 아기를 갖게 되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보통의 부부들처럼 TV나 쳐다보는 무심한 부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엄마가 아이의 생일에 맞춰 케익을 주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생일날 등교길에 아이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부부가 아이 곁을 지키며 깨어나길 기다리는 장면과 아이가 끝내 숨을 거두는 장면까지 치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독자로 하여금 부부의 절박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리얼하다.  부부는 빵집 주인의 얘기와 빵에 별것 아니지만 위안을 받는다.

 

<대성당>은 아내의 오래된 남자 친구 맹인이 찾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늦은 저녁 맹인과 텔레비젼을 보게 된 남자..  텔레비젼에서는 대성당을 소개하고 있고, 남자는 맹인에게 대성당을 설명해주지만 말로는 힘들다.  맹인은 남자에게 눈을 감고 그림을 그리라고 하고 남자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어 그림을 손으로 느낀다.  볼펜 자국을 손으로 더듬으며 느끼기도 한다.  눈이 있다고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님을 남자는 눈을 감고 알 수 있었다. 

 

<열>은 아내가 자아실현을 위해 집을 나간 후 두 애와 남겨진 학교 선생인 남자 얘기이다.   애기를 맡아줄 보모를 구한 후 간신히 안정을 찾았다.  안정도 잠시 남자가 고열에 시달릴 때 보모는 일을 그만둔다고 말한다.  고열은 몸과 마음에 대해 뭔가 알려주는 메시지라고 했던가.  남자는 열이 날 때 보모에게 자신과 아내의 모든 것을 풀어놓으면서, 모든 걸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아내를 보낼 수 있었다.  인생이 자신의 일부가 되었음을 알게 된다. 

 

<대성당>은 레이먼드 카버의 세번째 단편집으로, 편집자 고든 리시와 헤어진 후 출간되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단편집은 고든 리시가 많은 분량 편집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특히 두번째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엔딩도 바꾸고 제목도 인물이름도 바꾸고 어떤 단편은 70프로 이상 싹둑 잘라냈고 한다.   소설의 창출자로서 잘려지는 맘이 어땠을까.   레이먼드 카버 사후, 아내가 편집하지 않은 오리지널 버전으로 출간한 것이 <풋내기들>라고 한다.  요즘 두 책을 비교하면서 읽는 독자들도 있다고 하는데 재미있을 것 같다.  편집자가 무엇을 잘라내고 싶었는지, 레이먼드 카버는 처음에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비교하는 맛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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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독서 - 욕망에 솔직해지는 고전읽기
이현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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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그 이웃님의 소개로 알게 된 이현우의 <아주 사적인 독서>를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고전은 독자의 연령대나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감동도 달라진다.  게다가 독자들에게는 고전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집필 의도에 따라서도 읽는 느낌이 달라진다.   이 책 <아주 사적인 독서>는 독자들이 고전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읽으면서 놓쳤던 부분을 알 수 있었고,  아직 읽지 않은 고전들은 직접 읽으면서 확인하고 싶게 만든다.

 

이 책에 서평을 실은 작품은 여성편 <마담 보바리>, <주홍 글자>,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남성편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 <석상 손님>이다.  우연찮게도 이 중에 여성편은 모두 읽어 본 것이고, 남성편은 모두 아직 읽지 못했다. 

 

보편적인 인간상을 세 종류로 나눈다면, 햄릿형, 돈키혼테형, 파우스트형이 있다.

햄릿형은 생각이 많은 우유부단한 인간을, 돈키호테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파우스트형은 무한한 욕망의 인간을 대표한다.  이 책을 통해 세 고전을 소개 받는 동시에 인간의 유형 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햄릿>에서 햄릿은 왜 복수를 지연시켰을까.   햄릿은 다른 행동에서는 우유부단하지 않았는데,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일만은 계속 머뭇거린다.  저자는 프로이트적인 해석, 법률가적인 해석, 철학자 관점의 해석 등 다양한 해석을 제시한다.  저자 나름의 해석도 제시한다.  아버지와의 경쟁을 유예시킨 상태에서 숙부가 아버지를 대체하자 어머니가 왜 아버지보다 못한 숙부를 선택했는지 그 수수께끼에 대면하느라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보았다.  햄릿은 복수를 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맹세했지만 그것을 글로 적고 맹세를 반복하는 것에서 복수가 지연되리라는 것을 미리 암시했다.  내가 살면서 지금도 망설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햄릿을 읽을 때 곱씹어 봐야겠다.

 

<돈키호테>는 근대 소설의 효시라 할만큼, 이건 인위적으로 쓰인 소설이다라는 성격을 여러번 소설 속에서 강조하고 있다.  <돈키호테>는 17세기 초반에 발표되었는데, 12세기의 방랑기사의 얘기를 다룬다.  서양 문화에서 사랑의 모델로 처음 등장한 것이 그리스의 동성애이다.  미소년이 사랑받는다던지 소크라테스같이 지혜에 감화돼 미소년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던지 하는 사랑이다.  그 다음으로는 중세 기사도적 사랑이다.  그다음 18세기 낭만적 사랑이다.  남녀 간의 감정 교류는 계속되어 왔지만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을 명명한 변천사를 살펴본 것도 재미있었다.  돈키호테는 기사도적 사랑을 철저히 고수한다.   숭고한 이상을 향해 돌진하던 돈키호테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인지하면서도 끝까지 이상을 쫓는다.  방랑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오자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무기력, 권태에 빠진다.   죽기 전에 방랑 기사의 환상에서 빠져나와 제정신의 말을 하자 오히려 친구들은 미친게 아닌가 염려스러워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아니할 수 없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중년을 위한 작품이다.  이 명작 고전을 그동안 읽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안도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제부터 언제라도 읽으면 될 터이다.   파우스트의 비극은  인간의 무한한 욕망 중에서 지식욕으로부터 시작된다.  결국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각에 이르러 메피스토펠레스의 제안을 따라 계약을 맺게 된다.  파우스트 나이 50대 중반에, 지상에서 악마의 힘을 빌려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고, 대신에 죽은 뒤에 영혼을 내주는 계약을 맺는 것이다.  파우스트는 이성에 대한 성적 욕망, 마지막으로 권력을 추구하는 권력욕에 빠진다.  파우스트는 이런 욕망에 끝까지 가보지만 무한한 욕망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우스트는 방황해도 노력하는 자였기에,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로 구원을 예감하는 문구로 마무리된다.  어떤 노력이었기에 구원받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걸까. 사랑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의미일까.  직접 읽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에 솔직해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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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7
소포클레스 지음, 강대진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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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의 소설 <Zorba the Greek>는 국내 번역본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와 <희랍인 조르바>로혼용되고 있다.   그리스와 희랍이라는 말은 고대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읽으며 확실히 구별하게 되었다.   고대극의 배경이 되는 국가는 자기 나라를 헬라스라고 불렀고, 이를 비슷한 발음으로 음역한 것이 희랍이다.   Greece라는 말은 라틴어(Graecia)에서 유래한 말로, 로마인들이 희랍 땅 가운데 자기들 나라에 가까운 지역을 부르던 이름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헬라스라 한 것을 그리스라고 번역하는 것은, 신라의 삼국유사를 코리아의 삼국유사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책의 번역자를 포함한 최근 원문 번역자들은 그리스 대신에 희랍이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르바는 the Greek이므로, 최근 발간된 책에서는 그리스인이 더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이 책은 희랍 고전의 세 비극 작가 중 한명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네편,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이 실려 있다.   그 중 <오이디푸스왕>은 우리에게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창시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말의 기원이 되는 고전이다.  고전은 내용은 알지만 읽지는 않은 책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북클럽 모임이 아니었으면 언제 읽어볼지 기약 없이 책장에만 꽂혀있었을텐데, 이 기회에 읽어보게 되었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는 남아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말한다.    프로이트가 서양 문학사의 3대 걸작으로 <오이디푸스 왕>, <햄릿>,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꼽았다는데, 모두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프로이트는 소년 시절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인간사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모든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좀 과장된 경향이 있지만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서 그의 업적은 인정하고 있는 듯 하다.

 

<오이디푸스 왕>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다는 신탁을 듣고 집을 나와 떠돌다가 테바이 입구에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된다.  이전 왕 라이오스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아들 둘과 딸 둘을 낳고 십몇년을 살았지만, 테바이에 기근과 전염병이 돌아 나라는 피폐해진다.   이전 왕 라이오스의 살해자를 추방해야만 전염병이 멈춘다는 신탁을 듣고 오이디푸스왕은 살해자를 찾으려고 한다.   살해자가 점차 밝혀져 가는 이 희곡의 구성은 현대 미스터리 못지 않게 탄탄하다.  차츰 드러나는 전모..  그 살해자가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증거가 하나 둘 나오는데.. 아내는 멈추라고 하고 예언자도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데 오이디푸스왕은 멈출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인가..  오이디푸스왕은 그 답(자신이 테바이 라이오스왕의 아들로 신탁 때문에 버려졌다는 것, 자신이 친아버지를 죽였다는 것,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것)을 얻은 대가로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자신은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하루아침에 파멸의 길에 들어선 오이디푸스..  고대 희랍어 휘브리스는 오만을 뜻한다.  이 비극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휘브리스를 경계하여, 아무리 운명을 피하려고 발버둥쳐봤자 종내에는 신의 운명 대로 흘러갈 수 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파멸의 길에서 신이 아니라 자신의 뜻에 따라 손수 눈을 찔렀다.  신의 운명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의지와 신의 운명의 대립은 읽는 독자 마다 다르게 읽을 때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오이디푸스가 집요하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파고들지 않았다면, 마음속 화를 조절하여 아버지를 죽이기까지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급격하게 몰락하지 않았을수도 있었을까.  아니 신이 정해놓은 운명이기에 어떻게든 벌어질 수 밖에 없었지도 모른다.  이 비극의 마지막 코로스의 대사는 죽음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죽을 때 까지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인간들의 삶의 위태로움, 허무함, 덧없음을 말해주는 듯 하다.

 

"오, 조국 테바이의 거주자들이여, 보라, 이 사람이 오이디푸스로다. 

그는 그 유명한 수수께끼를 알았고, 가장 강한 자였으니

시민들 중 그의 행운을 부러움으로 바라보지 않은 자 누구였던가?

하지만 보라, 그가 무서운 재난의 얼마나 큰 파도 속으로 쓸려 들어갔는지.

그러니 필멸의 인간은 저 마지막 날을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할 수 없도다,

아무 고통도 겪지 않고서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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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영웅들 - 우리가 몰랐던 세계사 속 작은 거인
문수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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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태국, 필리틴,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의 동남아 아홉 국가들은 현재 우리 국민들에게는 휴양에 최고인 여행지, 한류 수출국 정도로만 인식될 뿐, 그들의 역사나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로마사에 관한 서적을 포함하여 로마사를 기원으로 하는 서양사는 다양하게 출간되어 접할 기회도 많고 관심도 많지만,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책은 생소하기만 하다.   

 

이  책에는 아홉 국가들의 역사속 인물과 장면들이 소개되어 있어 그들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접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익히 알고 있는 베트남의 호찌민, 싱가포트의 리콴유, 미얀마의 아웅산 장군,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를 그 역사적 배경과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영웅들의 얘기와, 제국주의 열강 속 지배로부터 독립을 이끌어낸 얘기들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부심으로 지켜낸 역사가 뒷받치고 있기에 지금의 국가로서 이름을 당당히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국주의 열강속의 근현대사는 비슷한 맥락이 숨어 있는 듯 하다.  스페인, 영국, 네델란드 등의 지배를 받던 국가들은 제국주의 후발 주자인 미국과 일본이 유럽 열강으로부터 독립해주겠다며 접근하였다가 그들의 점령에 다시 빠지는 양상을 보였다.  세계 2차 대전 종전 후에는 다시 유럽 세력이 들어와 완전한 독립은 1950년대에 이룬 나라들이 많았다. 

 

이런 근대 열강의 지배속에서도 주권을 한번도 뺏기지 않은 국가가 있었으니, 태국이다.  태국 근대화의 아버지 줄라롱껀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의 영국와 프랑스의 식민지 경쟁에서도 국가의 주권을 지켜 냈다.  

 

미얀마의 국부 아웅산...  영국의 지배를 일본군의 힘을 이용하여 밀어냈지만, 사실상 일본이 수도를 점령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다시 아웅산은 영국군과 함께 일본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영국정부와의 협상으로 미얀마의 완전한 독립을 보장받고, 선거 승리로 독립국 미얀마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정적에 의해 암살당했다.   우리의 김구 선생과 닮아 있다.  독립을 이끌어낸 영웅들에겐 이렇듯 정적이 많을 수 밖에 없는것인가.   그의 딸 아웅산수치 여사는 미얀마의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또 다른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간이 만든 경외로운 건축물 중 하나인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캄보디아...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던 1941년에 왕위에 오른 시아누크는 조국의 독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프랑스와 협상을 이어나간다.   독립을 이뤄낸 후에는 중립정책을 표방하였지만, 베트남 전쟁중에 북베트남과 비밀동맹을 맺은 것으로 서방으로부터 공산주의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1970년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롤놀이 쿠데타를 일으켜 시아누크는 망명길에 올랐다.  론놀은 완전한 통제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주 정권에 의해 쫓겨나고, 크메르루주 정권은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아래 최대 200만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킬링필드이다.   1979년 베트남 군대가 크메르루주 정권을 축출하고 캄보디아를 점령하게 되었다.  반베트남 저항 운동으로 시아누크는 1991년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선거를 통해 왕위에 다시 오르게 된다.   다른 동남아 국가의 인물들보다 근현대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은 지도자가 아닐 수 없다. 

 

인도네시아에는 네델란드의 350년 식민 지배를 끝낸 국부 수카르노가 있고, 말레이시아에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이끌어 낸 첫 번째 수상 툰쿠 압둘 라만이 있다.  300여 년이 넘는 스페인 식민 상태에서 비폭력주의 운동으로 스페인에 대항한 호세 리잘과 무장혁명 조직을 만들어 대항한 안드레스 보니파시오는 필리핀의 영웅들이었다.  이들은 거의 상류층에서 태어나 지배국민들의 학교나 지배국으로 직접 유학을 가 조국의 현실을 목도하고 돌아와 조국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서방세계가 산업화 이후로 세계를 몇백년 주도했다면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에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주도할 날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아세안 국가들이 그들의 저력을 경제면에서도 발휘하여 성장세를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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