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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 쇼콜라티에
미즈시로 세토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아.

진짜 역시 미즈시로 세토나님.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금 본인은 격조!

어디 소타같은 사람 없나. 있다면 정말 좋을텐데!

저렇게 초콜릿 만들어다 주면 난 정말 감동할거야.

 

무려 단권인줄 알고 책장을 넘기며 아쉬워했다.

한장 한장 넘길때마다 사르르 초콜릿과 함께 녹아들어가는 이야기에 도통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제 마지막장.

어라? 이야기가 끝이..?

세상에 2권에서!!

 

그러고보면 흑장미 앨리스도 그렇고 이번 실연 쇼콜라티에도 그렇고 주인공 인물들의 성격이 어째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이야기지만 닮은 두 인물.

이런 타입의 인물 너무 좋은걸!

 

엄청나게 순진한건지 아니면 순진한 척 하는 건지 헷갈리게 하는 사에코는 마음에 안들지만,

올리비에가 말했듯이 사에코 덕에 쇼콜라비라는 가게가 생겼다면 그건 정말 가치 있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초반 부분, 어디선가 본 듯한 전개에 당황스러웠지만 뒤로 넘어갈수록 미즈시로님의 색을 띄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너무나 달콤해서, 그 무지막지한 전개도 개의치 않을 수 있었다.

솔직히 갑자기 프랑스로 날아가 취직하게 되고 성공해서 귀국한다는 얘기, 드라마나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듯한 뻔한 이야기.

다소 진부적일지도 모르는 그런 도입부.

그래도 그런건 어찌되도 좋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 그게 실연 쇼콜라티에!

 

개성넘치는 인물들이 쇼콜라비에에 모여 자기 자리를 잡고 초콜릿을 판다.

저런 가게가 근처에 있다면 나 역시 엄청나게 드나들게 틀림없다.

 

이걸 어째. 한동안 초콜릿 단식해서 간신히 끊었는데 다시 불 붙었다!

책도 너무 이쁘고 가볍고 크고 그냥 다 좋다.

 

미즈시로님의 로맨스나 사랑에 대한 생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는 듯,

여기저기 대사에서 로맨스나 사랑에 대한 시니컬함이 잔뜩 묻어나온다.

역시 나는 그런 점이 너무나 좋다.

언제나 달달하게 로맨스와 사랑에 대한 환상적인 소리만 읊으며 그런 측면만 강조한 건 이젠 그만.

뻔한 순정만화에 질렸다면 단연 이쪽!

 

문턱이 낮은 남자에서 문턱이 높은 남자로 변신하는 소타.

순진하고 멍청할 정도로 일편단심인 소타.

어쩌면 그 일편단심을 빛나게 하는 것이 그 황당한 도입부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소타는 굉장히 끈질긴지도. 차였는데도 포기 하지 않잖아. 그래도 소타라면 괜찮을지도. (벌써 넘어갔다!)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는 프랑스어.

하나도 몰라서 한글만 읽고 넘어가지만 어째 배우고 싶다?!

초콜릿 만드는 것도 너무나 예뻐서 배우고 싶어, 먹고 싶어 이런 생각만 잔뜩.

 

자, 그럼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까.

다음 쇼콜라비 방문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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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야 2010-12-11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2권까지 봤는데, 3권이 안나와서 아주 몸살 날 지경입니다.. 으....
2권이 작년 12월에 나왔는데 말이죠...

2010-12-12 19:16   좋아요 0 | URL
원서로 보셨나봐요! 라센은 올 12월에 나와서 저는 얼마전에 봤답니다 :)
얼른 3권 보고 싶어요 ㅜㅜ
 
일게네스 3 - 검은 빛의 궤적
이시즈에 카치루 글 그림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살때 1권 표지에 홀딱 반해서 샀다.

 살때만 해도 혹시 BxB와 같은 라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은 했었는데...ㅎ

 

 우선 표지만 봐도 알겠지만 그림체는 그야말로 내 스타일. 이런 펜선이 좋다.

 게다가 이야기는 암시장을 배경으로 천재 미소년 폰을 필두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약간 위험하면서도 생명 윤리의 문제까지 던져질 수 있는 그야말로 시리어스한 소재!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변 동료들의 개성있는 성격에 그야말로 흥미진진.

 

 1권은 프라틴인 귀족(일게네스라는 섬의 높은 분들의 자제들) 엘펜바인인 일반학생들의 대립이 위주다. 

 정확히 말하면 한무리의 프라틴과 폰의 무리의 대립이라고 할까. 

 

 폰은 눈빛에 점이 있는 천재 미소년으로 월반해서 이 군사학교에 들어온다.   

 어두운 과거, 엄청난 증오, 여리지만 그렇다고 여성스럽지는 않다.  

 제이크, 니콜라스, 크루덥- 일찍히 폰의 매력을 알아차린 이들이 그에게 끌린다.

 폰의 목표는 일게네스의 어두운 면, 생체인간을 사고 파는 암시장-소돔을 파괴하는 것. 

 

 비교적 1권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종의 인물소개와 해설이라고 할까.

 이것저것 복선으로 깔아놓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모양인데, 1권을 기대하고 본 분이 있다면 실망하셨을지도.

 물론 나도 기대하고 봤지만 오히려 재밌게 봤다. 다음엔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그렇게 본격적인 이야기는 2권부터 시작된다.

 암시장을 파괴하기 위해 뛰어들고 프라틴 중의 한명인 재니스와 얽히게 된다.   

 재니스는 암시장의 핵심인물의 아들로써 그에게는 그를 위해 만들어진 생체인간 '에스'가 있고 그를 동생으로 대하는 재니스.

 그래도 어차피 나중에는 에스가 죽는 건 똑같다며 폰.   

 하지만 재니스 역시 자기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또 암시장을 형 대신 자기 자신 손에 쥐려는 욕심도 있다.  

 폰의 암시장에 대한 분노와 그의 곧은 생각은 재니스와 에스 사이에 변화를 주게 되는데 3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3권 마지막에 가서 대망의 일게네스 정부에 대항하는 반정부 조직을 4명이서 만들게 된다. 

  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음에 실망한 폰, 그리고 때마침 연락이 온 에스.  

  암시장의 거물인 에스는 폰을 어쩌려는 걸까?

  그 순진한 얼굴로 뒷 일을 꾸미고 있다거나 그런건 아니겠지?

 

 이제 점점 일이 커지고 있다!

 4권은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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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니 퍼니 학원 앨리스 21
타치바나 히구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어느덧 퍼니퍼니 학원 앨리스도 21권이다.

언제 이렇게나 출간되었는지!

 

1권 봤을 때가 까마득하다.

처음엔 왠 초등학생들만 잔뜩 출연하냐며 투덜거리다가 이건 이것대로 좋은데...라는 생각도 하고

호타루, 나츠메, 루카를 보며 웃기도 했다.

소재도 재미있고 수많은 등장인물들도 다 개성이 있어서 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캐릭터 심리 테스트는 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ㅎㅎ

 

21권은 대망의 미캉 부모님의 과거 이야기.

이렇게 스케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주변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가 '세계를 구하고 싶어'로 나아가고 있는 것.

하도 많이 울어서 이젠 미캉 웃는 모습을 잊어버릴 참이다.

 

 과거 이야기로 몇권 동안 시리어스한 분위기로 진행 되었던 듯.

 나츠메랑 미캉 사이도 나아가고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결말을 향해 가는 듯하다.

 

 과거 이야기를 통해 베일에 가려진 초등부 교장의 앨리스나 페르소나의 과거 등 잔뜩 알게 되었다.

 초등부 교장을 중심으로 악의 축이 형성되지만 결코 그 주변 사람들이 나쁜 건 아니다라고 늘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나쁜놈은 한명만 있으면 된다는 걸까. 초등부 교장도 참 악역스럽지만 안됐다고 느낀적도 있는데!

 물론 내가 악역을 좋아해서 그런건 아니다.

 

 읽으면서 새삼 느낀건, 나도 참 나이가 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 중학교 1-2학년때 읽다 그만둔 "대런샌"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전원 구매, 읽었는데

 어째 중학생때 읽으면서 느낀 그 감상들은 거의 반감내지 없어서 너무나 슬펐다.

 안타깝지만 그런 느낌이 학원앨리스를 읽으면서도 잠깐씩 들었다.

 이젠 동심으로 돌아갈순 없는 것인가!?

 단지 달달한 이야기는 이제 읽어도 이젠 더 이상 예전같은 설렘을 느낄 수 없는 것일지도... 하하하...

 그래서 요즘 보는 만화책들은 하나같이 다 그런가???!!!!!

 

 그래도 신간나오면 바로 서점 달려가 사 보는 만화책 중 하나 인 학원 앨리스.

 이야기도 좋지만 나오는 등장 인물들 하나하나에 애정이 생겨서 이젠 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이번편에서는 카오루씨, 시키 선배가 참 좋더라... ㅎㅎ

 

 아마 다음편에서는 호타루 오라버니인 이마이 대표가 활약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코이즈미도 등장했고...

 무엇보다 이젠 과거가 아닌 현실! 이제 나아갈 시간이다.

 

 22권에서 또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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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가든 5
이현숙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악의 꽃>등의 전작으로 유명한 이현숙 작가님의 최근 연재작, <새비지가든>.

 전작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현숙 작가님은 작가님만의 특유한 분위기로 작품을 이끌어나가신다.

 

 비유를 하자면 줄 타기를 보는 것처럼 읽으면 그 위험함에 가슴을 졸이게 되지만

떨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럼에도 줄타기를 계속 지켜보는 것은 스릴있고 즐겁다.

 

 어디를 향하는지 모르는 인물들의 마음, 감추고 싶은 자신의 비밀, 서서히 드러나는 그들의 과거.

 그렇게 조금씩 과거를 되짚어 나가며 모두들 마음을 키우고 있다.

 

 이번 5권에서는 커져가는 마음과 숨겨진 과거를 얘기하기 위한 복선들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4권에 이어서 시작된다.

 

 아론의 하녀인 메리앤은 제레미와 있는 것을 아론에게 추궁당한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검은 속내를 감춘 채 아론에게는 마치 제레미를 위한 거짓말을,

 제레미에게는 이제 더 이상 여기서 일 할 수 없으니 후작부인이 받은 돈을 달라고 한다.

 물론 그 돈은 자신의 원래 연인과 도망치기 위한 자금이다.

 

 그리고 메리앤은 자신의 연인과 함께 숲에서 진짜 제레미가 먹고 죽은 것과 같은

 '벨라도나'와 함께 발견된다.

 

 한페지이를 장식한 메리앤과 그의 연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속, 흩어진 벨라도나, 두 사람.

 죽은 두 사람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뒤에 이어 메리앤을 죽인 사람으로 조슈아와 아론을 의심하며 소리지르는 제레미의 모습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고 유안은 쓰러진 제레미를 데리고 가며 고백한다.

 

 다들 유안이 제레미가 여자인지 아닌지 알고는 있는 것인지, 알고 있다면 언제 눈치챘는지 궁금할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위의 이야기에서 유안이 제레미를 말리는 데서 나온다.

 처음읽을 땐 눈치채지 못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혹시 이때 눈치 챈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때 눈치챘다고 한들 안 한들, 유안은 그 전부터 이미 제레미가 신경쓰임을 팍팍 티를 내긴 했었다.

 

 변화는 유안에게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안젤라와 유안의 약혼식이 진행되면서 레이가 충격을 받을 줄 알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제레미 생각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컷은 제레미 방문 앞에 기대서 방 안을 훔쳐 보는 레이의 시선.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유안의 시선.

 

 이현숙님의 컷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 대사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냥 푹 빠지게 된다.

 제레미의 어깨에 올린 유안의 손이라던가

 조슈아가 우는 제레미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다가가는 장면이라던가

 아론이 제레미를 죽이려고 목을 조르는 장면이라던가..

 

 어떤 인물을 미워할려고 하면 그와 마찬가지로 더욱 좋아하게 만드시는 이현숙 작가님.

 이번권에서는 정말 유안도 레이도 아론도 모두 좋았지만 단연 최고 활약상을 준다면 조슈아가 아닐까!

 표지 권두 모델답게 이번권을 계기로 조슈아의 앞으로의 활약도 기대 된다.

 

 아마 6권 표지는 레이와 조슈아가 되지 않을까 한다.

 5권 마지막에 레이의 과거 이야기가 드러날 것임을 암시하듯 끝이 났고...

 또 제레미는 미국으로 떠날 것인지도 앞으로 남겨진 재미있는 과제!

 

 그럼 6권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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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오후 열린책들 세계문학 122
페터 한트케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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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를 보자마자 사게 된 것은 문학을 문학 그 자체로 보고 언어를 서술한다라는 문구에 끌렸었다.
 표지도 물론 한 몫을 했다.

 

 그리고 읽고 나서 느낀 점은 그는 언어자체를 문학으로 만들었고 또 사회적 수단이 아닌 자아와 정체성의 탐구 즉, 현실의 외부만이 아닌 내부의 모습을 서술하고 묘사하려고 했다라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람들과 세상과의 소통을 원하지만 작가는 세상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야 한다는 묘한 강박 관념을 가지고 타인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드러냈다가 이내 잊으며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고독에 잠긴다. 그리고 이내 영원한 고립을 선언한다.

 

 

 

 "나는 평생 동안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제 시켰다. 그들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내가 환영받고 포옹받으며, 여기 사람들 사이에 끝까지 앉아 있을지라도 나는 결코 그들에게 속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는다.

 

 

 

 "작가는 교차로에서 이례적으로 오랫동안 서 있었다. 자신의 활동을 통해 어떠한 생활 질서도 미리 그려 놓지 않는 그는 보잘 것 없는 나날의 움직임에도 하나의 이념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러한 이념은 두 가지, 즉 변두리와 중심을 연결시키려는 생각, 중심을 통과해서 변두리로 걸어가려는 생각과 함께 찾아왔다. 바로 그래서 그는 책상을 떠나 사람들 근처로 가는 것이 아닐까?"

 

 

 

 위에서 말한 그의 이런 묘한 강박 관념은 대인 기피증에서 비롯된 것 같다. 묘사에 있어 살펴보면 그는 지나치게 사람의 시선이나 행동에 초점을 두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삶에서 모든 것을 달성했다는 말을 계속해서 되풀이하곤 하는 다섯 번째 남자가 손목 관절을 만진 일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이는 불안해하는 한 인간이 절망감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애틋한 접촉이었다."

 

 

 

 불안해하는 한 인간의 절망감은 저 다섯 번째 남자만의 것이었을까? 그는 그를 통해 자신을 본 것은 아닐까?

 

 

 

 또한 그는 대인 기피증에 사로잡힌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대인 기피증에 사로잡힌 그는 우연히 행인을 만나자 움찔 놀랐고, 얼마 전 자신의 삶의 이력을 털어놓았던 그 누군가와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눈길을 옆으로 돌렸다. 작가는 늘 이렇게 넋 나간 사람처럼 행동했는데 물론 그런 상태를 핑계로 삼았다." 

 

 

 

 이 부분을 통해서 그는 작가 자신 스스로를 고립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반대로 자신이 관찰되고 있는 느낌에 휩싸이기도 한다.

 

 

 

 "말뿐만 아니라 그들의 호흡도, 소리마저도 모두 그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가 스스로를 고립한 자신을 되돌아보며 활짝 열린 창밖으로 자신이 내는 소음을 세상에 내보내며 생각한다.

 

 

 

 "나는 이웃을 갖기를 바란적이 있는가?"

 

 

 

 대인 기피증을 가진 그는 오전에 힘든 글 쓰기를 끝내고 그는 밖으로 향했다. 글 쓰기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고립시켰던 그는 그 고립감과 고독에 못 이겨 밖으로 나간 것이다. 

 밖으로 나간 그는 풍경을, 사물을, 사람을 묘사하고 그로부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중간 중간 스스로에게 <작품>이란 무엇을 뜻하는가?부터 시작하여 작가에게 내려지는 부정적인 평가와 판단과 번역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 독자의 다양성등을 직접이야기 하거나 글 속의 화자의 입을 빌려 드러내고 있다.

 

 한트케가 말하는 작품이란 재료란 거의 중요하지 않고 구조가 무척 중요한 것, 즉 특별한 속도 조절용 바퀴 없이 정지 상태에서 움직이는 어떤 것, 모든 요소들이 자유로운 상태로 열려 있어 누구나 접근 가능할 뿐 아니라 사용한다 해서 낡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작가란?

 작가가 되기 위해 대인 기피증이 있는 사람이 된 환상 속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그가 사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언어의 문학을 통한 소통이 아니었을까? 

 단순한 외부 세계의 관찰이 아니라 외부 세계의 것을 보며 내부 세계를 탐구하는 그것은 자아 탐구 내지 정체성 탐구와 통하고 있다. 대인 기피증이 있는 작가라는 설정은 자신의 내부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그 너머의 것을 보여주기에 이상적인 소재가 아니었을까?

 

 그는 신문을 보며 젊은 시절의 꿈에서 작가에게는 문학이 모든 나라들 중의 가장 자유로운 나라였고 이 나라에 대한 생각이야말로 일상적인 비열함가 굴종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동등한 능력을 얻을 수 있는 탈출구였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서 글이란 세상과의 소통구였고 점점 글을 쓰면서 자신과의 소통구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또한 그 작가에게 내려지는 부정적인 평가와 판단으로 이루어진 순환에 결코 다시는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중립을 지키고 옆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계속 해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명예가 회복되고 다시 무리 속으로, 점점 더 의견이 갈리는 조그만 무리 속으로 들어간다는 생각만 해도 원초적인 구역질이 인다고 한다. 

 이것은 작가 자신에게 비평을 내리는 무리에 대한 시선이 아닐까. 그리고 그러한 그의 생각이 그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수많은 작품을 낳는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자신을 거부하기도 하고 찬사를 하기도 한 문학계에와 독자들에게 말하기라도 하는 듯 그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골목이 넓어져 차가 다니게 된 길에서 자신이 가려다 실패한 무대로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 내는 책마다 <성공을 거듭>하곤 했던 어느 작가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나라 전체에 더 이상 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돛을 단 배처럼 서표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깨어날 때쯤에는 그 서표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어느 책에 관한 꿈을 떠올렸다."

 

 

 

 그가 말하는 <성공을 거듭>하곤 했던 어느 작가는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작품을 거부하는 이상 이 나라 전체에는 더 이상 독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뒤 바로 이어서 그와는 반대로 지금 자신의 작품이 일부 찬사를 받고 있지만 그것은 마치 꿈처럼 깨어나면 허상같은 존재가 아닐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한 그는 모작, 모방의 위험성과 함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그는 자신이 쓴 내용이 이미 단어 그대로 적혀 있는 그의 선구자의 저서를 통해 자신이 이날 쓴 내용을 전해 들었다."

 

 

 

 작가의 고뇌와 회의감 역시 이러한 부분에서 드러난다.

 

 

 

 "다시 말해 낮 동안 쓴 것이 단순히 무가치하고 무의미한 것이 아닐지라도ㅡ그래서도 안 되지만ㅡ 글을 쓴다는 것은 죄가 되는 일이었다. 예술작품, 즉 책의 월권행위는 다른 어떤 죄악을 저질렀을 때보다 더한 영겁의 벌을 받게 되는 가장 고약한 죄악이었다."

 

"그의, 작가의 일이란 무엇인가? 그가 사는 세기에 아직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단순히 보고되고 기록으로 보관되거나 역사책의 소재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서사시나 그저그런 가요의 형식으로라도 자신의 의미가 전승되기를 행위나 외침으로 부르짖는 어떤 종류의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기를 원하는가?"

 

 

 

 그는 작품, 작가 뿐만이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인 번역가의 입을 통해서 작가로서의 고뇌와 불안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번역가로서의 즐거움과 그에 대한 동경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제 나는 어떤 고통에도 시달리지 않고, 글을 쓸 권리란 것을 느껴보려고 고통을 기다리지도 않는다오. 번역가는 확신 할 수 있고 그 확신은 활용된다고."


"번역은 나를 보다 깊이 쉬게 해주었지. 그런데 말이오, 내가 체험하는 기적은 한결같다고. 더 이상 외톨이의 역할을 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지. 여전히 절절한 단어 하나로 충분하고,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는 이 나리에도 불구하고 달리기가 된다오!"

 

"나는 선생의 상처를 되도록 멋지게 보여 주면서 나의 상처는 숨긴다고. 나는 번역가가 된 이래로 책상에서 죽으리라 생각하게 되었소."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내면적인 무언가를 추구함과 동시에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지며 작가인 자신의 정체성에도 의문을 던진 것 같다. 그리고 또한 그는 그런 내면적 추구를 통해 <작가로서의 나>가 아니라 <나로서의 작가>를 드러내며 작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며 자신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고독과 외로움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다음 부분에서 나는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다.

 

 

 

 "시끄럽게 차 소리가 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일은 그에게 도움이 되었다. 수십 년을 살았음에도 쉽사리 마음의 평정을 잃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작품에 고무되어 열정적으로 일했음에도 여전히 확신 없이 살고 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가 맹세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나의 오후는 작업이 끝나는 순간 시작된다! 그는 그때까지 더 이상 신문을 펼치지 않으려 했고, 골목을, 그러니까 도심을 피하려고 했다. 내 집이 있는 곳, 변두리로 곧장 나가자! 음식물을 취하고 음료수를 마시며, 몰입해서 바라보고 기록하면서 행인들의 대열에 끼어들기도 하는 그가 무엇 때문에 자기 집, 자기가 거하는 방, 허기도 갈증도 사람들과의 교제에 대한 욕구도 느끼지 못하는 방에 머물지 못한다는 말인가? 그곳에는 사방에 방위를 가리키는 연필들이 놓여 있고, 한낮의 마지막 빛을 받은 종이가 타자기 속에서 반짝이고, 부근의 작은 산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밤 비행기를 위한 신호를 보내오지 않았던가? 발자국들, 계단의 난간과 더불어 그의 집 전체가 위험 속에 방치된 듯한 느낌이다. 겨울 꽃을 피운 현관의 식물들은 자기들을 좀 봐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계속 집에만 있고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고 교류를 나누지 않으면 사람은 정서적으로 메말라간다. 그리고 소통에 대한 갈증을 느낀다. 하지만 소통을 나눌 사람은 없기에 대리만족이라도 얻으려고 거리로 향한다. 세상을 보며 그들의 소통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현재 모습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의문을 품고 생각에 잠긴다.

 

  저 식물들은 마치 작가 자신을 대변하고 있는 것과 같다. 위험 속에 방치된 듯한 느낌의 집도 작가 자신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부근의 작은 산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보내는 밤 비행기를 위한 신호는 작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알리는 경고와 같은 신호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외로움과 고독은 비단 작가이기 때문에 느끼는 것일까? 작가만이 느끼는 비애인것일까?

 

 어쩌면 이 문장이 이 책의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묘사를 하고 낮에는 글을 쓰고 밤이 되면 밖으로 나가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감정을 토하는 글의 전반적인 서술 방식들이 녹아 있다.

 

 책 앞의 작가 소개에서 본 책이 '첫눈이 내릴 뿐 특별한 사건이라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이 짧은 이야기'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어째서 이 책이 '첫눈이 내릴 뿐 특별한 사건'이 없다고 하는 것인지 '어째서 이것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짧은 이야기 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나는 첫눈이 내린 일보다 오히려 수풀들 속 나뭇가지 위에 매달려 있던 여자가 더 인상 깊었다. 어째서 그것은 사건이 되지 않는 걸까? 애초에 사건이라는 것의 정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평소에 일어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사건이라면 첫눈과 함께 이 책에서는 그 밖에도 수많은 사건이 녹아 있다. 번역가를 만나는 것, 십자가에 매달린 두 사람.. 찾아 보면 사건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혹 다른 소설에 비해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 사건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보기엔 나뭇가지에 매달려 죽어가는 여자는 가히 다른 장르소설에 비할 정도로 '자극적'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게다가 일상을 사건으로 만들고 사건을 일상으로 만드는 것도 독자의 몫이 아닐까. 무엇보다 일상이 있기에 사건이 존재하고 사건이 존재하기에 일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일상을 일상으로 치부하는 순간 그것은 일상이 아니게 되고 사건을 사건으로 치부하는 순간 사건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첫눈이 내린다는 것은 겨울철 밤에 꽤나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것 역시 일상이 아닌가?

 

 

 위의 나뭇가지에서 죽어가는 여자를 두고 그는 담담한 어조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묘사한다.

 

 

 

 "그들은 서로 알지 못했지만, 심지어 외국인들까지 뜻밖의 우연으로 다시 만난 오랜 이웃들처럼 담소를 나누었다.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고도 화기애애하게 모여있던 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당했지만 아직 의식을 잃지 않은 여자의 이름도 묻지 않았다."

 

 

 

 작가는 문학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언어이지 사회적인 요소는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점점 차가워지고 사람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현대인의 모습이 비춰져서 이 부분만은 예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사회적인 부분이 아닌, 원래 자기 자신의 안일 밖에 신경 쓰지 않는 인간의 내재된 본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후자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면만 보면 딱딱하고 재미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본 책을 보며 웃은 적이 있다. 마냥 진지하고 고루한 소설은 아닌 것이다.

 

 

 

 "오, 머물러라! 너희들, 신성한 예감들이여!"

 

 

 

 

 

 본 책이 줄거리가 없다고하는데 그것은 어쩌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줄거리라는 것은 글을 요약해 놓은, 그야 말로 책의 핵심만 뽑아서 '사건'을 나열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줄거리이고 사건이고 또 핵심이기 때문에 줄거리가 없다라는 말은 틀린 말이된다.

 게다가 본 책은 줄거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언어, 그 자체로 이루어진 문학이기 때문에 줄거리가 필요 없다. 그저 작가의 시선에 따라 몸을 맡기고 사유를 따라 같이 생각해보며 언어 자체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다소 문장 문장 사이에 뚝 끊기는 느낌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생각이 흐르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과연 생각을 할 때 다른 책들처럼 논리정연하게 순서대로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도 생각을 할 때 건너뛰고 뜬금없이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고 사물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고 똑같이 사유를 한다.

 

 하지만 본 책은 우리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정리되어 있다. 즉, 읽는데 아주 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끊어지고 비어져 있는 부분은 각자의 상상력으로 메꿔 나가면서 읽으면 된다.

 무엇보다 그의 문장은 너무나 아름답고 한문장 한문장 음미하며 곱씹을 때야 비로소 가슴에 와닿는다. 게다가 천천히 흘러가는 시선의 이동에 나도 모르게 말려 들어가 천천히 읽다보면 마치 내가 그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도 든다.

 

 무척이나 정확하고 정교한 묘사와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생각의 자유로움. 무엇보다 사유를 함에 있어서 너무 감상에 치우치지도 않고 너무 무미건조 하지도 않은 채, 적정선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았다.

 만약 '나'라는 1인칭을 썼더라면 자칫 감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대명사에 있어서 '작가' 또는 '그'라고 밝힌 것은 좀 더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포함한 작가로서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함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한다. 실제로 작가 또는 그라는 대명사를 써서 읽는 내내 무척이나 신선하고 또 재미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중편 소설임에도 이것이 '진짜 작가'가 쓴 에세이는 아닌가,라는 착각에 빠져서 읽기도 했다.

 위에서 리뷰를 적으면서도 굳이 진짜 작가와 책 중의 작가를 구별하지 않은 건 구분하고 싶지 않기 때문도 있고 어디서 구분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그만 그 흐름에 푹 빠져 순식간에 읽어내려 갔다. (여기서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는 것은 시간의 빠름이 아니다. 흡인력의 정도를 말한다.)

  

 비정치적인 성향이 두터운 내게 있어 문학에서 항상 사회적 흐름을 읽어내고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는데 지친 나에게 페터 한트케의 '어느 작가의 오후'는 그야 말로 단비였다.

 페터 한트케의 작품은 이것이 처음 접하는 것이었는데 너무나 만족스럽고 즐겁다.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자주 펼쳐보며 언어의 미학을 즐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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