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난처한 일이 그녀에게 생겼다. 벤치에 앉아 깜빡 잠들었다가 깨어났는데, 그녀의 몸이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첫 시작부터 엄청난 문장이였다.

한겨울 그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벤치에 앉아있다가 찰나의 사이에 잠에서 꺠어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녀.

시작하자마자 마주한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부터 차근차근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눈사람이 되버린 그녀를 마주한 그 남자는 이 상황이 얼마나 기가막힐까.

그녀와 단둘이 살아가는 그 어린 아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무엇보다 당사자인 그녀는 점점 몸이 뭉개져서 몽뚱아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의 손을 잡고, 아들을 안아줄 때 그 부분이 녹았고,

눈물을 담은 눈두덩이가 녹아내렸다.

내 몸이 녹아서 뭉개지는 것을, 정말 이대로 물이되어 없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뜻대로 잘 풀리는 인생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런 일이 벌어질지 그녀는 몰랐을 것이다.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의 작별을 보면서 가슴이 저릿하고 먹먹했다.

하루아침에 작별을 해야하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기가막히고, 무섭고, 두렵고,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슬플지 온갖 감정이 다 생각났다.

그녀의 앞선 인생이 어땠는지도 모르고, 그 전날을 어떻게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눈사람이 된 그 하루동안 완벽하게 그녀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50여페이지 정도밖에 안되는 글 속에 그렇게 빨리 끌어들여서 스며들게 만드는 작가님의 필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존재, 소멸, 작별, 관계, 삶, 인생 이런 단어들이 생각나면서 "눈"이라는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글의 내용이 어렵지 않았다.

그냥 하루동안의 일이였다.

연인을 만났고, 아들을 다시 만났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작별을 하는 시간들이였고, 마음을 울렸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대로 축복받으며 태어난 인생들이지만

죽음에는 나이순도 아니고, 언제 죽을지 그 시점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인생과 소중한 사람들과 언제 어떻게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되는 순간이 올지 모른다.

막연하게 이 세상 모든것과 헤어진다는 것을 상상만해도 무섭다.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살아가면서 여러번 헤어짐이 생길 것이다.

그런 경우에 이별이 아닌 작별을 하고 싶다.

이 이야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별의 이야기로 온통 가득하지만

그래서 그 모든 순간 가슴이 먹먹하지만

그렇기에 조금 더 행복하게,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별을 하던 그녀와 그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밟혀서

책을 덮고도 그 마지막 순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제 다 틀렸어.

나직이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가 얼굴을 돌려 그녀를 멍하게 마주 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의 입술이 만났다.

그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뎠다.

그것이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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