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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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울프,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The Beauty Myth)] 리뷰

 Image Ⓒ 김영사


2015년과 올해를 관통하는 여러 키워드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바로 '페미니즘'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별 생각 없이 웃고 넘어갔을, 어쩌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일이 당연해졌다. 잘못된 것을 두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늘어났고, 많은 대중매체에서도 이를 주목하고 심도있게 다루는 시도들을 많이 펼쳐 보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치고 박고 싸우는' 식의 대립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분명 사회는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좋은 징조다.


하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물결이 넘어야 할 것들이 태산같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미디어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새로운 각도의 글을 게재할 때나, 유명 여자 연예인들의 발언이나 행보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식의 조명이 드러날 때면 인터넷 댓글창은 전쟁터가 되기 십상이다. 진흙탕 싸움 속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페미니즘 운동의 본래 취지와 목적이 아닌, '누가 진짜배기 페미니즘이냐'는 식의 편가르기 논쟁이다.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는 메갈리아 논쟁부터, '나는 양성평등주의자지만 이런 식의 행동은 두고 보기 어렵다'는 때 아닌 '고백(?)'까지 누가누가 페미니즘을 가장해 물을 흐리고 있는지를 잡아내려는 수많은 시도들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한치 앞도 나아갈 수 없을 만큼 훼방을 놓기도 한다. 결국 메갈리아식 논조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공격적이지 않게, 하지만 성평등을 주장하는, 등등. 페미니즘에는 갖가지 조건들이 붙는다.


"스티브가 주인공인 것은 그가 널리 알려져야 할 예외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스는? 아마 아름답지 않았다면 큰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은 흥미롭든 흥미롭지 않든 이야깃거리는 '아름다운' 여성에게만 일어난다고 배운다.

'아름답지 않은' 여성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 p. 108


아름다움의 신화에서는 페미니즘 운동마저 자유롭지 못해

이러한 다각도의 사회적 편견과 방해공작들은, 애초에 여성의 권리 신장 및 보호라는 취지에서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에까지 아름다움을 바라기 시작한다. '좋은 일을 하면서도 얼굴까지 예쁜' '그렇게 파인 옷을 입고 페미니즘 운동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 등, 사회 각층에서 진행되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아직까지 기형적이다. 결국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없애나가고자 시작한 페미니즘 운동이 또 다시 아름다운 여성의 이미지에 결박되는 꼴이다. 취지의 순수성을 계속해서 의심받는 현재 페미니즘이 처한 현실은, 오랜 시간 여성들이 겪어 온 사회적 편견과 놀랍게도 닮아 있음을 여기서 알 수 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페미니즘, 그 자체로 완벽한 페미니즘에 대한 환상이다.


"문화는 여성을 아름다우면 지성이 없고 지성이 없으면 아름답지 않은 존재로 단순화함으로써 아름다움의 신화에 맞게 여성을 정형화한다.

여성에게 정신과 육체 가운데 하나만 허락하고 둘을 모두 허락하지 않는다."


- p. 105


나오미 울프의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오랜 시간 여성들을 결박해오고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족쇄를 낱낱이 파헤치는 페미니즘 저서다. 특히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속박의 기원이 대부분 '아름다움의 신화'에서 온다고 믿는 작가는 일, 문화, 종교, 섹스, 굶주림, 그리고 폭력에 이르기까지 각기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들을 괴롭혀 왔는지 철저하게 분석한다. 가사 노동에 일관했던 기존의 사회를 벗어나, 고용 노동 사회에 남자와 함께 바로 서게 된 여성에게 우리 사회는 또 다시 '미적 추구의 노동' 임무를 지우고 있다는 주장부터, 여성에 대한 이상적 이미지가 사회문화적으로 여성에게 그릇된 강박을 심어주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조금씩 날로 성장하고 있지만, 더 나은 가능성으로 나아가려는 여성들에게 어째서 사회는 문을 굳게 닫고 있는지 작가는 곰곰이 생각하며 수많은 저서와 통계자료, 논문들을 인용한다.


"여성이 아름다움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나 여성을 노동자가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평가하는 것은

날마다 직장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불의를 은유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 p. 99


같은 여성조차도 쉽게 의식하기 힘든

여성의 정체성이 단순히 사회가 바라는 '아름다움'이라는 이미지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는 작가의 주제 의식이 책 전체에 꼼꼼하게 녹아 있다. 책을 읽다보면, 편견의 대상인 같은 여성조차도 쉽게 의식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의 신화(the beauty myth)'들이 사회 곳곳에 자리한다는 걸 알고 깜짝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아마 아름답지 않았다면 '테스'는 큰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여성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Image Ⓒ 서울신문


* 덧붙임

번역되어 국내에 출간된 건 얼마 되지 않았지만, 원서인 'The Beauty Myth'가 출간된지는 시간이 조금 되어 가끔씩 시대적으로 공감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번역투가 조금 있어서 이해가 단번에 되지 않는 작가의 문장들이 간혹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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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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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밴, <아쿠아리움> 리뷰

 Image Ⓒ 북21


우리나라만큼 '가족 판타지'가 심한 곳이 더 있을까 싶다. 요새는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타인 불가침의 영역이다. '가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남들이 알기 어렵다. 애초에 남의 가정사에 왈가왈부하는 일이 지극한 '실례'라고 간주되는 분위기도 여전히 팽배하다. 이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지워지는 심적 부담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족이 이해해주지 못하면 또 누가 이해해주겠니' '어렵게 살아서 그래, 가족들이 이해해줘야지' 따위의 말들은 마음에 생채기가 하염없이 쌓여가는 와중에도 도저히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 외면하는 순간 '가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오롯이 도망친 이의 몫이므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한다'

데이비드 밴의 장편소설 <아쿠아리움>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도 그 어떤 화해나 용서도 구하지 못한 채 위태롭게 유지되어 가던 가족 판타지를 열두 살짜리 소녀가 목격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케이틀린은 일하느라 바쁜 엄마의 빈 자리, 친구들로부터 오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매일 아쿠아리움에 간다. 물고기에 대한 애정이 남다는 케이틀린은 아쿠아리움에서 한 노인을 만나 친구가 되지만, 알고보니 이 노인은 수년 전 케이틀린의 엄마와 외할머니를 두고 떠났던 외할아버지라는 게 밝혀진다. 마냥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와 엄마가 다시 화해하기를 바라는 소녀의 관점에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은 어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얘기해줄게요.

엄마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게 될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해칠 테니까.

다시는 케이틀린을 만날 수도 없어요. 내가 당신을 해칠 테니까요.

(...)

누구도 찾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럴 거예요. 그게 당신의 미래예요.

엄마는 사이드 미러가 부서져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내리쳤다.

까지 조심해서 가세요.

(...)

소리 혹은 그보다더 큰 어떤 충격에도 부서지고 깨어지기 쉬운 바다였다. 문득 그렇게 사라져버릴 수 있는.

그저 바닥에 엎드리거나 숨는 것 말고 할아버지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 p. 187

억지스럽지 않아 좋다

책 <아쿠아리움>이 흥미로운 건, 케이틀린 가족의 문제를 단순히 가족 구성원 중 하나에게만 떠넘기고 해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래 전, 아내와 딸을 버리고 사라졌던 케이틀린의 할아버지 톰슨이 다시 돌아와 용서를 비는 장면도,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그 스트레스를 다시 케이틀린에게 해소하려고 하는 케이틀린의 엄마의 모습에서도, 작가는 이들을 마냥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해하라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만, 열두 살 소녀의 관점에서 지금의 혼란스러움과 슬픔, 짜증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할 뿐이다. 때문에 외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홀로 남겨졌던 케이틀린의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하다가도, 주인공 소녀 케이틀린이 비이성적인 모습의 엄마와 부딪히는 장면에서는 금방 아이의 마음에 이입할 수 있다. 책 <아쿠아리움>은 이들 가족의 총체적 난국을 억지스러운 평화적 화해로 끌고가지 않는다.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주인공 아이의 솔직한 대사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마치 내가 괴물이라도 되는 듯 역겨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 순간, 엄마는 너무 당황해 숨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던 그날을 돌아볼 때면 나는 엄마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를, 할아버지가 나타나기 이전을,

그런 무게에 억눌려 있을 때를 떠올려본다.


- p. 346


작가 데이비드 밴​ 

Image Ⓒ 교보문고



* 총평

제목으로는 내용을 전혀 유추할 수가 없어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에 비해 줄거리가 다이내믹했다.

번역이 매끄러운 편이다.

다만, 왜 헤밍웨이를 걸고 넘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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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썰전 - 세계사를 움직인 사상가들의 격투
모기 마코토 지음, 정은지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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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마코토, <철학썰전> 리뷰

 

모기 마코토, 철학썰전

ⓒ 북 21


철학을 처음 접해본 때는 수능 준비로 한창 바쁠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이었다. 어찌보면 철학이라 부르기에도 애매모호한 '윤리와 사상'이라는 수능 과목을 공부하면서였는데,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수능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고등학생에게는 꽤나 재미있는 과목이었던 것 같다. 인생을 고민하며 가끔씩은 비운의 삶을 살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배우는 일은 그 나이 또래들에게는 고고하지만 동시에 제법 멋져 보이기도 했을 테다. 각기 다른 가치관과 사상으로 맞부딪히는 철학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공통된 흥밋거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학에 와보니 철학이라는 과목은 그 누구로부터도 쉽사리 환영받는 과목은 아니었다. 철학을 생각하면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을 떠올리며 괜스레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게다가 돈 안 되는 과목은 나중으로 밀려나는 요즘 같은 때에 철학은 그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동시에 현실적으로 여유가 조금 있는 사람들이나 했을 법한 비현실적인 학문이 되어버렸다. 철학 같은 거 몰라도 당장 밥 벌어 먹는 일이 훨씬 '중허기' 때문. 게다가 어려운 말들로 점철되어 몇몇 개의 명언을 제외하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철학자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 1호가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 짜장이냐, 짬뽕이냐, 꿈이냐, 현실이냐

하지만 철학은 그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맞부딪히는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반복하는 학문이다.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을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도 똑같이 해왔다는 것이다. 이데아를 논했던 플라톤도, 현실론을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많고 많은 결정들을 논해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부터 '대학원이냐, 취직이냐' '꿈이냐, 현실이냐'까지 살면서 수도 없이 마주하는 결정의 순간들을 철학자들은 각자의 가치관대로 주장하고 연구했고, 그간의 과정들을 문자로 담아낸 것이 오늘날의 철학이 아닐까. 고로 철학은 저멀리에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만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모두가 공유했던 고민과 결정들을 담아낸 하나의 기록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역사상 비일비재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독재자도 그들의 수족이 되어주는 관료 조직이 없이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죠.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김일성 일족의 죄를 묻는다면, 그들의 수족을 자청하고 앞장선 관료들의 죄도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더 나아가 "법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인간을 심판하고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떤 법률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법을 초월하는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 제 1전 법과 정의, p. 15

ⓒ google 이미지


​모기 마코토의 <철학썰전>은 이러한 고민과 결정의 과정을 역사의 흐름을 통해 풀어낸 철학 입문서다. 법과 정의, 전쟁과 평화, 이성과 감정, 그리고 '나'와 세계라는 크게는 네 개의 테마를 정해 두고 시작한 이 책은 현대 사회가 계속해서 직면하고 있는 정의와 윤리, 이성과 종교와 같은 보편적이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을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철학썰전>은 일종의 강의 형식으로 철학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사건들까지 간단하게 요약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로 인용되는 철학자들이나 역사적인 사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의 것들이라 읽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눈에서 지나 온 역사와 철학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시에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일조한 아이히만은 유죄인가?' '미국은 왜 '정전'을 계속하는가?' 혹은 '어디까지가 '나'일까?' 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일본에서 연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물질적 풍요와 높은 학력만이 인생의 목표라고 가르치며 직업적인 성공과 출세에만 삶의 의미를 두고 있죠. 그들은 경쟁에서 밀리거나 불경기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합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들이야말로 니체가 도달한 경지에서, 도달하고자 했던 경지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 4전 '나'와 세계, p. 273


* 아쉬운 점

<철학썰전>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철학서'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철학 + 역사학'을 다룬 책이다. 그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철학자들의 사상과 생애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뤘다는 점은 새롭지만, 때문에 내용이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법과 정의를 다룬 '아이히만은 유죄인가?' 와 같은 꼭지 또한 철학적 쟁점을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비슷한 역사적 사례들을 나열하는 식이다. 때문에 역사보다는 철학적 토론에 관심이 더 많은 경우에는 그다지 흥미있게 읽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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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고양이들
짐 튜스 지음, 엘렌 심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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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튜스, <뉴욕의 고양이들> 리뷰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 북 21


세상에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만 있다고 한다. 개와는 달리, 고양이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유명한 소설 '검은 고양이'의 이미지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까지 검은 고양이가 불행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을 믿는 이들도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전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검은 고양이들이 억울할 만하다.

어차피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검은 고양이나 하얀 고양이나 얼룩 고양이나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편이다. 마트에서 참치 캔 3개를 사면, 두 개는 우리 집 김치찌개에 넣고 한 캔은 꼭 길고양이에게 나누어 주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 그 고양이, 매우 통통하게 살이 올라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내가 귀가할 적마다 (시간을 어떻게 알고) 칼같이 오피스텔 현관 앞에 서서 누구나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야옹'거리던 그 아이는 어디서나 밥을 잘 얻어먹는 고양이였다. 길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교가 늘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애정을 많이 받아서 사람들과 친숙해진 건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분명한 사실은 이미 그 고양이는 내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딱히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미 그 아이의 집사였다(...).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 고양이는 참으로 신기한 생명체입니다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만, 아마도 이유를 한 가지만 댄다면 (물론 이유가 너무 많다.) 그건 예측할 수 없는 고양이의 행동패턴 때문일 것이다. 도통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데 비해, 간혹 바보같은 (하지만 지극히 사랑스러운) 행동을 연발할 때마다 인간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예쁜 집을 마련해줘도 굳이 다 낡아빠진 상자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일. 너무 좁아서 상식적으로 거기 어떻게 들어갔나 싶은 공간에 굳이 몸을 구겨넣고 인간을 부르는 일(네가 들어가고 왜 부르는데?). 죽었나 싶을 정도로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일. 이해하고 싶어도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고양이를 보며, 사람들은 그저 고양이를 바라보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끔씩 손을 내밀어 줄 뿐이다. 인간과 함께 있지만, 그 어떤 반려동물보다 독립적이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생명.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씩 스마트폰을 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그렇다고 게임이나, SNS나, 그런 걸 하지는 않을 거야.

시간 낭비 같거든.


그럼 어디에 쓰고 싶은데?


참치 캔 같은 걸 주문하는 데 쓰고 싶어.

- 허니듀, 로어 이스트 사이드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 세상에서 가장 쿨한 고양이들을 인터뷰하다

짐 튜스의 책 <뉴욕의 고양이들(FELINES OF NEW YORK)>은 저자가 뉴욕의 고양이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하며(?) 작성한 인터뷰를 사진과 함께 실은, 재미있는 프로젝트의 기록이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뉴욕시의 집사들'에게 직접 연락해 고양이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자세한 사정들을 직접 글로 옮겼다. 우리에겐 다 똑같은 소리로 들리는 그들의 언어를 작가만의 관점에서 (작가도 사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재치있고 엉뚱하게 풀어냈다. 쿨하지만 나름대로의 사정과 사연을 간직한 뉴욕의 고양이들을 사랑스러운 사진으로 한 번 만나고, 그들의 짤막한 인터뷰로 두 번 만난다. 인터뷰 내용은 믿거나 말거나. 하지만 고양이에 매료된 집사들이라면 한 번쯤은 고개를 끄덕일지도.

너도 나처럼 고양이라면 사람들이랑 소통할 때 끊임없이 균형을 유지해야 해.

언제나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하지.

"먹을 걸 얻기 위해, 사람이 하는 짓을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 킵, 그래머시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이 책을 빼곡히 수놓은 100여 마리의 고양이들은 제각기 다른 삶과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 놀랍게도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과 단순함이 가져다 주는 '통찰'은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자기계발하는 고양이, 대학에 다니고 싶었던 고양이, 집을 나온 고양이, 그리고 사랑에 빠졌지만 실패한 고양이까지. 그들의 눈과 입을 통해 들려주는 몇 가지 말들은, 사실 작가가 다년간의 집사 생활(!)을 통해 고양이로부터 느끼고 배우며 마음에 담아두었던 소중한 기억들일지도 모른다. 고양이가 보는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랑을 표현하는 건 뭔가를 해 주기보다 뭔가를 안 해 주는 거야.

예를 들어 내가 널 사랑한다면, 난 네 침실 문 앞에 똥을 안 싸겠지.

- 롤로, 파크슬로프



 ⓒ 아르테 <뉴욕의 고양이들>


꽃이 먹고 싶으면, 꽃을 먹을 거야. 꽃을 먹는 나를 이상하게들 보지만, 뭐 어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그냥 해 버려.

꽃을 먹고 싶으면, 그 망할 것들을 냅다 먹어 버리라고.

- 노먼, 부시윅



* 덧붙임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당연히 권하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책을 유쾌하게 읽고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바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사진이 사랑스러운 것은 물론, 인터뷰도 무척이나 재밌다.

아쉬운 건 표지가 생각만큼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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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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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가만한 당신> 리뷰

 가만한 당신, 마음산책

Ⓒ 네이버 책 정보


태어나서 장례식장에 가본 일은 단 한 번뿐이다. 가까운 친척 분이 돌연 돌아가셨을 무렵이었다. 인근 병원의 장례식장에 내가 발길을 돌리게 될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나는 새삼 무감각했다. 식장에 들어서서 조문객들을 받으면서도 어린 나이였던 탓인지 놀랍거나 슬프지 않았으니까. 그냥 사진을 가져다 놓았을 뿐, 누군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렸다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듯 싶다. 내게도 죽음은 아직까지 비현실적이다.

떠난 사람의 빈 자리를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주어야 죽은 이의 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고 했는데, 막상 그 장례식은 쓸쓸하기만 했다. 생각만큼 많은 이들이 찾아주지 않았고, 형식적인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오래오래 우는 것을 바라보며,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마지막까지도 이렇게나 평범하기 그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줄도 모른 채 스러져 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으며, 나 또한 언젠가는 그 행렬에 함께하겠구나. 이런 생각.

- 평범한 이들의 죽음은 덧없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가끔씩은 문득 '왜 유명한 이들의 죽음만 주목받는가' 라는 회의감이 든다. 우리네 삶을 평생에 걸쳐 열심히 살아내는 이들의 거의 대다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데. 누군가의 죽음이 평범하기 그지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생을 헛되이 산 것도 아닌데.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삶의 숨은 구석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 또한 셀 수도 없이 많은데, 라는 생각.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인생에 있어 한 명 한 명의 주역이라는, 생각.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은 여태껏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평생에 걸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 온 사람들의 일생과 그 죽음까지를 다룬다.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죽음을, 짧지만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글들이 빼곡하게 실려있다. 작가는 일간지 '한국일보'에서 2년 남짓한 시간동안 외신 부고를 읽고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내는 코너인 '가만한 당신'을 맡아왔다. 책 <가만한 당신>은 그 중 서른 다섯 명의 부고를 추려 묶었다.


이 책의 어떤 대목이 읽을 만하다면, 책 속 그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한 세상이 아름다워서일 테고, 책 바깥 독자들의 세상이 너무 고약해서일 테다. 그 간극을 메우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 책 머리에, 최윤필

- 다양한 시대, 서로 다른 자리를 맡아 묵묵히 살아온 자들의 이야기​

다양한 시대, 서로 다른 자리를 맡아 묵묵히 자신만의 일을 해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편안하고, 동시에 얼마나 어렵게 얻어낸 소중한 것들인지를 깨닫게 된다. 60년대의 흑인 인권 투쟁에 나섰던 한 청년의 일생부터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위해 평생을 싸운 운동가, 성폭력 피해자에서 조력자로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갔던 젠더 운동가의 삶까지. 어쩌면 유명하게 이름을 떨친 몇몇의 인사들보다 훨씬 더 힘들고 값진 삶을 살았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을 돌아볼 수 있다. 동시에 '조력자살'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고, 마리화나 합법화, 수형자 인권, 여성 오르가슴 해방 운동에 몸을 던진 자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하나의 논쟁거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주제들도 빠짐없이 엿볼 수 있다.

영국 존엄사 운동에 앞장섰던 '데비 퍼디'

Ⓒ 한국일보

지금이라도 누가 다발성경화증 치료법을 발견한다면 나는 환자 대열의 맨 앞에 서겠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문제는 내가 내 삶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죽을 권리 : 궁극의 자유를 찾아서>, p. 228 

 

수형자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앨빈 브론스타인

Ⓒ 한국일보


"압제는 힘센 자가 아니라 가장 힘없는 이들을 짓밟는 데서 시작됩니다."

변호사 앨빈 브론스타인에게 약자는 남부의 흑인도 이주 노동자도 도시 빈민도 아닌 옥에 갇힌 이들이었다. 그는 1972년 미국시민자유연맹의 '국가감옥프로젝트'를 만들어 23년간 이끌며 재소자 인권과 수형 제도 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 <폭동 아닌 봉기 : 수형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p. 283

 

 

* 덧붙임

사람이 중심에 자리한 책을 찾는다면 이 책만한 게 있을까.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책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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