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
데이비드 밴 지음, 조연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9월
평점 :
품절


데이비드 밴, <아쿠아리움> 리뷰

 Image Ⓒ 북21


우리나라만큼 '가족 판타지'가 심한 곳이 더 있을까 싶다. 요새는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타인 불가침의 영역이다. '가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남들이 알기 어렵다. 애초에 남의 가정사에 왈가왈부하는 일이 지극한 '실례'라고 간주되는 분위기도 여전히 팽배하다. 이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지워지는 심적 부담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도 가족이 이해해주지 못하면 또 누가 이해해주겠니' '어렵게 살아서 그래, 가족들이 이해해줘야지' 따위의 말들은 마음에 생채기가 하염없이 쌓여가는 와중에도 도저히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 외면하는 순간 '가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오롯이 도망친 이의 몫이므로.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파괴한다'

데이비드 밴의 장편소설 <아쿠아리움>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면서도 그 어떤 화해나 용서도 구하지 못한 채 위태롭게 유지되어 가던 가족 판타지를 열두 살짜리 소녀가 목격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케이틀린은 일하느라 바쁜 엄마의 빈 자리, 친구들로부터 오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매일 아쿠아리움에 간다. 물고기에 대한 애정이 남다는 케이틀린은 아쿠아리움에서 한 노인을 만나 친구가 되지만, 알고보니 이 노인은 수년 전 케이틀린의 엄마와 외할머니를 두고 떠났던 외할아버지라는 게 밝혀진다. 마냥 어린 마음에 할아버지와 엄마가 다시 화해하기를 바라는 소녀의 관점에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은 어른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얘기해줄게요.

엄마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만 남겨두고 떠나게 될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해칠 테니까.

다시는 케이틀린을 만날 수도 없어요. 내가 당신을 해칠 테니까요.

(...)

누구도 찾아가지 않을 거예요. 그럴 거예요. 그게 당신의 미래예요.

엄마는 사이드 미러가 부서져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내리쳤다.

까지 조심해서 가세요.

(...)

소리 혹은 그보다더 큰 어떤 충격에도 부서지고 깨어지기 쉬운 바다였다. 문득 그렇게 사라져버릴 수 있는.

그저 바닥에 엎드리거나 숨는 것 말고 할아버지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 p. 187

억지스럽지 않아 좋다

책 <아쿠아리움>이 흥미로운 건, 케이틀린 가족의 문제를 단순히 가족 구성원 중 하나에게만 떠넘기고 해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래 전, 아내와 딸을 버리고 사라졌던 케이틀린의 할아버지 톰슨이 다시 돌아와 용서를 비는 장면도,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그 스트레스를 다시 케이틀린에게 해소하려고 하는 케이틀린의 엄마의 모습에서도, 작가는 이들을 마냥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에 이해하라고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만, 열두 살 소녀의 관점에서 지금의 혼란스러움과 슬픔, 짜증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할 뿐이다. 때문에 외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홀로 남겨졌던 케이틀린의 엄마에게 감정이입을 하다가도, 주인공 소녀 케이틀린이 비이성적인 모습의 엄마와 부딪히는 장면에서는 금방 아이의 마음에 이입할 수 있다. 책 <아쿠아리움>은 이들 가족의 총체적 난국을 억지스러운 평화적 화해로 끌고가지 않는다. 엄마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주인공 아이의 솔직한 대사는 오히려 현실적이다.


마치 내가 괴물이라도 되는 듯 역겨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 순간, 엄마는 너무 당황해 숨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던 그날을 돌아볼 때면 나는 엄마가 더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을 때를, 할아버지가 나타나기 이전을,

그런 무게에 억눌려 있을 때를 떠올려본다.


- p. 346


작가 데이비드 밴​ 

Image Ⓒ 교보문고



* 총평

제목으로는 내용을 전혀 유추할 수가 없어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에 비해 줄거리가 다이내믹했다.

번역이 매끄러운 편이다.

다만, 왜 헤밍웨이를 걸고 넘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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