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썰전 - 세계사를 움직인 사상가들의 격투
모기 마코토 지음, 정은지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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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마코토, <철학썰전> 리뷰

 

모기 마코토, 철학썰전

ⓒ 북 21


철학을 처음 접해본 때는 수능 준비로 한창 바쁠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이었다. 어찌보면 철학이라 부르기에도 애매모호한 '윤리와 사상'이라는 수능 과목을 공부하면서였는데,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수능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고등학생에게는 꽤나 재미있는 과목이었던 것 같다. 인생을 고민하며 가끔씩은 비운의 삶을 살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읽고 배우는 일은 그 나이 또래들에게는 고고하지만 동시에 제법 멋져 보이기도 했을 테다. 각기 다른 가치관과 사상으로 맞부딪히는 철학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을 배우는 아이들에게는 공통된 흥밋거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대학에 와보니 철학이라는 과목은 그 누구로부터도 쉽사리 환영받는 과목은 아니었다. 철학을 생각하면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을 떠올리며 괜스레 기겁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에. 게다가 돈 안 되는 과목은 나중으로 밀려나는 요즘 같은 때에 철학은 그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들이 가득한, 동시에 현실적으로 여유가 조금 있는 사람들이나 했을 법한 비현실적인 학문이 되어버렸다. 철학 같은 거 몰라도 당장 밥 벌어 먹는 일이 훨씬 '중허기' 때문. 게다가 어려운 말들로 점철되어 몇몇 개의 명언을 제외하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철학자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기피대상 1호가 되어버린지도 모른다.


- 짜장이냐, 짬뽕이냐, 꿈이냐, 현실이냐

하지만 철학은 그저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맞부딪히는 수많은 고민거리들을 반복하는 학문이다.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을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도 똑같이 해왔다는 것이다. 이데아를 논했던 플라톤도, 현실론을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도 사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많고 많은 결정들을 논해왔을 뿐이기 때문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부터 '대학원이냐, 취직이냐' '꿈이냐, 현실이냐'까지 살면서 수도 없이 마주하는 결정의 순간들을 철학자들은 각자의 가치관대로 주장하고 연구했고, 그간의 과정들을 문자로 담아낸 것이 오늘날의 철학이 아닐까. 고로 철학은 저멀리에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만 따지는 학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모두가 공유했던 고민과 결정들을 담아낸 하나의 기록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역사상 비일비재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떤 독재자도 그들의 수족이 되어주는 관료 조직이 없이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죠. 스탈린, 마오쩌둥, 폴 포트, 김일성 일족의 죄를 묻는다면, 그들의 수족을 자청하고 앞장선 관료들의 죄도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더 나아가 "법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인간을 심판하고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은 어떤 법률에 근거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과연 법을 초월하는 정의라는 것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 제 1전 법과 정의, p. 15

ⓒ google 이미지


​모기 마코토의 <철학썰전>은 이러한 고민과 결정의 과정을 역사의 흐름을 통해 풀어낸 철학 입문서다. 법과 정의, 전쟁과 평화, 이성과 감정, 그리고 '나'와 세계라는 크게는 네 개의 테마를 정해 두고 시작한 이 책은 현대 사회가 계속해서 직면하고 있는 정의와 윤리, 이성과 종교와 같은 보편적이지만 쉽사리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을 철학자들의 관점에서 쉽게 풀어내고 있다. <철학썰전>은 일종의 강의 형식으로 철학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사건들까지 간단하게 요약 정리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주로 인용되는 철학자들이나 역사적인 사건들이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준의 것들이라 읽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역사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눈에서 지나 온 역사와 철학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동시에 '히틀러의 전체주의에 일조한 아이히만은 유죄인가?' '미국은 왜 '정전'을 계속하는가?' 혹은 '어디까지가 '나'일까?' 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들을 스스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일본에서 연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합니다. 현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물질적 풍요와 높은 학력만이 인생의 목표라고 가르치며 직업적인 성공과 출세에만 삶의 의미를 두고 있죠. 그들은 경쟁에서 밀리거나 불경기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합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우리 현대인들이야말로 니체가 도달한 경지에서, 도달하고자 했던 경지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 4전 '나'와 세계, p. 273


* 아쉬운 점

<철학썰전>이라는 제목만 보고는 '철학서'에 가깝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철학 + 역사학'을 다룬 책이다. 그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철학자들의 사상과 생애를 역사적 관점에서 다뤘다는 점은 새롭지만, 때문에 내용이 다소 어수선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단적인 예로, 법과 정의를 다룬 '아이히만은 유죄인가?' 와 같은 꼭지 또한 철학적 쟁점을 자세히 다루기보다는 비슷한 역사적 사례들을 나열하는 식이다. 때문에 역사보다는 철학적 토론에 관심이 더 많은 경우에는 그다지 흥미있게 읽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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