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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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리뷰

 

​무라카미 하루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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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든 하고 싶은 마음이 당길 때 허겁지겁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반대로 좀처럼 마음이 끌리지 않는 일에는 손길조차 대지 못하는 편이다. 이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인데, 내가 좋아하는 일에는 놀랄 만큼(!)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일에서는 마치 '부진아'처럼 빌빌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이제는 좀 알아두어야 겠다 싶어 이것저것 일을 벌려놓기는 하지만 역시나 예상대로 끝은 좋지 않다. 사실 그 끝이 기억이 안 나는 적이 더 많다. 제대로 끝을 본 적이 없으니.

다행히 책읽기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고나 할까. (나는 모든 사물에 감정이입하기를 좋아한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공부하라며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는 것조차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면학 시간마다 소설책을 꼭 한 권씩 들고 오곤 했다. 뭐든지 시키면 하기 싫은데 하지 말라는 건 더욱 더 하고 싶었던 게 그 시절 학생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을 테지만. 그렇게 공부보다 더 재밌는 세상이 많다는 걸 학창시절부터 조금씩 알아갔다. 독서를 방해하는 누군가가 부재한 대학에 와서는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읽을 수 있는 때가 왔다. (지금은 또 다시 약간 부진해졌다...) 주로 맞는 건 문학이다.

© 김영사,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작가의 무성의함이 돋보이는 에세이집​

웃긴 건 이상하게도 에세이류를 기피했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뭔가 작가의 노력이 덜 들어갔다'는 실로 위험한(!) 생각에 빠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혹은 에세이는 감성에 젖어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는 이에게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와서는 (조금 늦은 것 같지만) 그 때의 내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 대해 수많은 에세이집 작가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리려 한다(...). 물론 대부분의 유명 에세이집은 내가 읽지 않아도 이미 잘 팔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는 특별히 '작가의 무성의함'이 돋보이는 에세이집이다. (또 다시 폭탄발언을 하게 되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원래 작가도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는 하다. 놀라운 걸작 소설들로 유명한 작가의 조금은 까칠한 일기장을 읽어보는 느낌이라면 그래도 조금 정확할까.

물론 <앙앙> 독자가 내가 쓰는 글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 거기까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만약 "이 아저씨는 무슨 소릴 하는 지도 모르겠고 완전 시시해. 종이가 아깝다니까" 라고 생각하셨다면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나 자신은 상당히 재미있고 즐겁게 썼습니다만, 미안합니다.


- 첫머리에, p. 10


작품이 아닌 어떤 아저씨 한 명을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무튼 재미있는 책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이번 여름 휴가에 동행할 책으로 골랐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글의 분량은 에세이 한 꼭지당 칼같이 3페이지다. 투박한 일러스트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여름 풍경과 아주 잘 어울린다. 다만 의식의 흐름대로 작가의 글이 흘러가니까 논리정연을 따지는 건 조금 미뤄두는 게 좋겠다. 하루키의 작품이 아닌 하루키라는 어떤 아저씨 한 명을 만나보고 싶은 팬이라면 더욱 좋은 선택이다.


그런데 늘 희한하게 생각하는 것. 언제부터 소설가를 '작가님'이라 부르게 된 걸까? 옛날에는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채소가게님' '생선가게님' 같은 느낌이다.

뭐 사운드 면에서 편하기 하지만, 그렇게 불릴 때면 이따금 "아, 예, 예, 어서 옵쇼"하고 두 손을 비비며 나가야 할 것 같다.

- 일단 소설을 쓰고 있지만, p. 83


© 김영사,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그러나 그 맛 이상으로 내 속에 '좋은 토마토'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은 아저씨가 자신이 키운 토마토에 긍지를 갖고, 그 신선한 성과를 나와 나누고 싶다고 생각해준 것이었다. 뙤약볕 아래를 걸으면서 그 토마토를 우적우적 통째 먹으니, '세상에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네' 하는 실감이 들었다.

- 제일 맛있는 토마토, p.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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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김하나 지음 / 김영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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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리뷰

김하나, 김영사,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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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면 뭐든지 하기가 참 싫어진다.

철이 없다. 청개구리같은 심보라서 시키는 일은 재미가 없고 스스로 찾아서 하는 일에만 몰두하기를 좋아하니 말이다. 때문인지, 전공 성적은 이것저것 들쑥날쑥하다. 좋아하는 수업은 점수도 수월한데, 그렇지 않은 과목은 수업 일수를 간신히 채우기가 다반사다. 이렇게는 도저히 어른이 못 되겠다 싶은 때도 많다. 어느 잡지에서 읽었다. '성공하는 비결은 내 관심의 30% 정도는 내가 관심 갖지 않는 분야에 꾸준히 투자하는 거'라고. 그렇게 되면 정말, 나는 성공하기 글렀다. 내 관심의 거의 99%는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만 쏠려 있기 때문에.


밥을 벌어 먹기가 불가능하진 않아도, 시간은 좀 오래 걸릴 것 같아 문제다.

이렇게 내 고민을 털어놓으면 누군가는 와서 참 행복한 고민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게 얼마나 복 받은 일인 줄 아느냐고. 나도 안다. 내가 복 받았다는 걸. 하지만 좋아하는 것만 해서는 밥을 벌어 먹기까지는 불가능하진 않아도, 시간은 좀 오래 걸릴 것 같아서 그게 문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토익 점수도 올릴 수 없고, 면접관 앞에서 유려하게 말솜씨를 뽐내기도 그다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좋아하는 게 이토록 죄책감이 들어서야 되겠나.

'당신에게 필요한 모든 건 이미 당신 안에 있다. Everything you need is already inside.'

​참 좋아하는 나이키 광고의 카피다.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꼭 무언가를 갖추고 마련할 필요는 없다. 당신이 이미 가진 것에서 창의성은 시작된다.


- <Everything you need is already inside>, p.69

모든 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거룩할 것이나 모든 이에게서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은 욕심이나 아둔함에서 비롯된다. 전지전능하지 않은 우리는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 배제해야 집중할 수 있고, 집중해야 비로소 어떤 색깔이 생기기 시작한다. 만둣국도 하고 아구찜도 하는 집보다는 만둣국만 하는 집이나 아구찜만 하는 집이 더 맛있는 법이다.


- <커플을 받지 않는 게스트하우스>, p. 17



 


나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열심히 좋아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내가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서도 나는 또다시 나만의 좋아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다시 알아가고 있다. 아마 이렇게 가다가는 내가 지금 글을 쓰는 일에 빠져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내 전공인 프랑스어에 푹 빠져있는 날이 늦게나마 올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들을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늘려가는 기쁨을 알아가는 것도 요즘의 즐거움이다. 물론 아직 철이 들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코미디언 중 하나일 엘렌 드제너러스는 2007년 제 7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사회를 맡아 시작하면서 이런 농담을 했다.


"저에겐 참 대단한 밤입니다. 전 요만한 꼬마일 적부터 언제나 아카데미 시상식을 진행하고 싶어 했어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카데미에서 상을 타기를 원하지만 저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진행하기를 원했지요. 그러니 어린이 여러분, 여기서 교훈을 얻으세요.

'목표를 낮춰 잡을 것 Aim lower.'"


- <어깨에 힘 좀 빼고>, p.236


거창한 관심사 하나도 중요하지만, 가볍게 시작한 이야깃거리들이 우연치않게 우리 삶을 안내할 수도 있다. 김하나 작가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이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작 이 책은 광고나 홍보와 관련된 이야기는 채 10%도 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상 속의 크고 작은 소소한 이야깃거리들과 관심사를 두고 작가만의 생각으로 풀어낸 에세이집에 가깝다. 아이디어가 매일매일 번뜩이며 떠오를 것 같은 광고인들도 보통 사람과 별다르지 않은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는 점. 그럼에도 삶의 작은 부분들을 눈여겨 보는 그들의 습관을 자연스럽게 관찰해볼 수 있다는 것은 이책의 장점이자 요지라고 봐도 되겠다.

삶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순간, 우선 농담부터 시작할까요?

공갈빵을 씹다가도, 대중가요의 노래 가사를 듣다가도 시작하는 각각의 에세이들은 가볍고 담백한데, 이렇다 할 진지함도 크게 묻어나지 않는다. 정말 별 것 아닌 이야기로 시작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의 작은 꼭지들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디테일한 삶'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 적당히 가르쳐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이 아니라, '정말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이런 생각까지?' 싶은 글도 많다. 편하게 읽되, 조그마한 것에서 넓은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잠시나마 길러볼 수 있다. 작가의 일러스트는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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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만드는가? - 맥스위니스 사람들의 출판 이야기
맥스위니스 엮음, 곽재은.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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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위니스, <왜 책을 만드는가?> 리뷰

 

맥스위니스, 미메시스, <왜 책을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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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나름대로 '고상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비참해질 때가 많은데 그건 바로 퇴짜를 맞을 때다. 무슨 일인들 그렇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느냐만은, 개인의 창작을 필두로 하는 일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뭐든지 지면이든, 영상이든 어딘가에 실어줘야 내 창작물도 세상에 존재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년 이맘 때 모 대학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담당자로부터 아무런 답장이 없어 심란했던 하루가 아직까지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의 입맛에 맞지 않았겠거니, 의연하기에는 내 멘탈은 이미 '와장창' 했으니 말이다.

퇴짜 좀 맞으면 어때?

물론 지금도 내 멘탈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을 일주일에도 몇 번 씩 경험하고 있다. 기획 단계부터 퇴짜를 맞은 글, 마음 먹고 써보려 했으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아 중간에 쓰기를 그만두는 글, 그리고 새벽에 썼다가 아침이면 가슴을 치며(?) 성급히 지우는 남 부끄러운 글까지, 어쩌면 나오는 글보다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글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학생 시절을 지나 사회로 나가 정녕 내가 글 쓰는 일을 하게 된다면 이런 일은 정말 비일비재하겠지. 누군가를 의식하며 그 사람에게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란 생각만 해도 어렵고 머리가 빠질 만큼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아직이라 하기엔 아직 나는 나이를 덜 먹은 듯 하지만) 글쓰기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퇴짜 맞는 글도, 엎어지는 글도 다 내 자식만큼 애정이 담겨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아마 1995년이나 1996년 정도일 겁니다. 친한 친구이자 뛰어난 단편 소설 작가인 코트니 엘드리지가 어느 날 다른 문예지에서 퇴짜 맞은 원고들만 모아서 실어 주는 잡지를 만들려고 하는 이 남자를 만났다는 거예요. 코트니는 자신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혹시 제게도 해당되는 원고가 있는지, 그러니까 다른 곳에서 거절당한 글이 있는지 알고 싶어 하더군요. 물론 거절당한 원고야 항상 차고 넘치죠. 언제나 수도 없이 거절 편지를 받는 것, 관심을 받으면 또 그만큼 거부도 당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작가로서의 제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p. 18


맥스위니스 사람들의 출판 이야기

이렇게 퇴짜 맞은 원고들은 오갈 데 없이 개인 컴퓨터 하드에 고이 몸을 감추게 된다. 그러다가 이따금씩 글쓴이가 한가할 적에 열어보며 '내 글이 그렇게 별로였나' '생각해보니 더 교정을 보고 보냈어야 했어' 와 같은 생각을 하며 자책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마도 해당 원고들은 더 이상 세상에 얼굴을 내밀기는 어려울지도. 하지만 이렇게 쉽게 묻혀버린 원고들도 누군가에 의해 다시 발굴되기도 한다. 책 <왜 책을 만드는가?>는 퇴짜 맞은 원고들을 모아서 잡지를 창간하게 된 맥스위니스 편집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맥스위니스의 사람들 가운데 북 디자인이나 출판 제작을 공식적으로 배운 이는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작은 출판사의 식구들은 태반이 자원봉사자나 인턴으로 첫발을 뗐고, 그래서 모두들 스스로를 평생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학생이라고 간주한다. 우리는 말에 대한 사랑 때문에, 세계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말을 매만지는 그 끝없는 과정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함께 모였고, 또 여전히 함께 한다. 또한 그 말이 살아남고 존속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책 만들기의 끝없는 과정에 지금 몸담고 있다."


 -데이브 에거스, 서문

'맥스위니스'는 문학과 예술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정형화되지 않은 틀에서 다양한 시도를 선보이는 잡지다. 창간 이전에 문학 계간지에 대한 지루하고 재미 없다는 편견에 시달리고 있었던 편집장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지만, 단 몇 명의 사람들만이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주류 언론사들로부터 거절 당한 원고들을 조금씩 모으는 것으로 이 독특한 이야기는 시작한다. 몇몇 알고 있는 이들에게 메일을 돌리고, 또 그 사람들이 주변 이들에게 메일을 보내는 형식으로 시작된 '퇴짜 맞은 원고 찾기'는 오늘날의 '맥스위니스'를 있게 하였다.


맥스위니스, 미메시스, <왜 책을 만드는가?>

© 알라딘



"사람 몇이 발송 작업을 도와주겠다고 나섰으니까 예정대로라면 두어 시간 안에 일이 끝났어야 했어요. 그렇지만 자꾸 쳐지기 시작했고, 결국 피자마저 바닥나자 나중에는 착한 사마리아인들만 남게 됐죠. 누군가가 10번가, 그러니까 우리 사무실에서 모퉁이 하나만 돌면 되는 곳에 있는 주소 딱지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가까워져 있었어요. 제가 불쑥 그랬죠. '우리 손으로 직접 배달해요.' "

p. 46



 

 

과정은 서툴지만, 결과물은 훌륭해

그러나 <왜 책을 만드는가?>는 단순히 소규모 출판사의 창업 성공 스토리를 담은 책은 아님을 미리 밝힌다. 출판업이 상세하게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안목이 필요한지 등의 형식적인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게 더 낫다. <왜 책을 만드는가?>는 '재밌는 것을 해보고 싶다'라는 다소 엉뚱하고 어리석은(?) 생각 하나로, 말 그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해낸'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맥스위니스 편집에 뛰어들었던 사람들과 원고를 보내준 필자들의 인터뷰를 육성 그대로 담고 있는 형식을 꾀하고 있다. '맥스위니스' 창간의 취지와도 조금 비슷하게 정해진 스토리나 형식이 없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그래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구쟁이 같은 편집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읽는 이마저 유쾌해진다.

 



* 아쉬운 점

앞서 말했지만, 출판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맞지 않는 책일 수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진지한 고민만 하는 것보다는 가끔씩 유쾌하고도 약간은 엉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엉뚱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사진이 풍부한 책이다. 조금 두껍지만 동시에 눈이 즐거운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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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엄마 안녕 유럽 - 엄마가 떠나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김인숙 지음, 강영규 사진 / 한빛라이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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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떠나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김인숙, <안녕 엄마 안녕 유럽>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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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절대로 내 맘 모르지. 나는 내 인생을 잃어버린 느낌이야..."

엄마의 이혼은 별다른 계획없이 어느 날 진행되었다. 어쩌면 그냥 터질 게 터진 거였다는 말이 더 걸맞는 것 같았다. 나는 스무 살씩이나 되어서도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아버지 앞에서 무력했고, 또 그 앞에서 그저 무섭기만 했다. 고래고래 집안이 떠나가라 소리가 나는 부엌 근처에서, 나는 그냥 문 뒤에 숨어 숨죽여 울 뿐이었다. 하루는 이러다 엄마한테 병이 나겠다 싶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가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것보다 무서운 건 그런 아버지를 견뎌내느라 엄마한테 또다시 몸과 마음에 병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그 때는 그랬다. 지금도 그렇고, 그 때도 그렇고 온통 나는 나만 생각하기 바빴던 것이다.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있기보다는 거리에 나앉더라도 이것보단 마음이 편하겠다, 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나왔다. 막상 나오니 홀가분한 동시에, 막막함의 연속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가 근처 원룸 오피스텔에 자리 잡았다. 잠시만 있자, 라는 생각으로 일 년을 있었다. 일 년 남짓한 시간동안 엄마의 이혼을 옆에서 보고 도우며 들던 생각은, 생각만큼 아버지와 헤어져도 별 일이 없다는 것. 남들은 이상하게 보겠지만 그다지 보고싶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 긴 시간을 홀로('홀로'라는 말이 지금에 와서 보니 가장 정확하다) 견뎌온 엄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일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쓸데없이 잘 울었던' 내 말을 엄마는 언제나 잘 들어주었는데, 나는 스무 해를 지나 겨우 일 년 여의 시간도 채 못 견딜 만큼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고통스럽다고 느꼈던 것이다. 딸이랍시고 있는 게 그거 하나 듣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 갑자기 비가 내리고 날이 어두워졌다. 결국 숙소로 가는 길을 잃고 말았다.

투두둑투두둑.

비는 더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고, 나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몽땅 젖었다.

겨우 숙소에 도착하자 안내데스크 직원이 물었다.

"Are you okay?"


​(...)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몸이 여기저기 터지는데도 몰랐던 사람이다.

괜찮지 않았을 것이다. "


p. 32

​웃긴 건 지금도 엄마가 예전 이야기를 하면(예전이라봤자 얼마 되지도 않았다) 재빨리 다른 화제로 돌리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엄마의 고통을 모른 척 하고 싶어한다. 정말 못된 딸이다. 언젠가 엄마가 빨리 힘든 일은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길 바란다고 절에서 빈 적이 있다.

이제 생각하니 다 거짓말이다. 그저 내가 잊고, 모른 척 지나가고 싶었을 뿐인 것을.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괜스레 죄책감이 들기 때문일까.

" 어느 날, 엄마는 아빠의 옷을 장롱에서 한 아름 꺼내고는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나는 자다 일어나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옷을 자르면서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며 흐느꼈다.

(...)

엄마가 떠난 후로 나는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 휴지를 찢는 버릇이 생겼다.

엄마가 가위로 옷을 자르듯 나는 휴지를 조각냈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에는 한 번도 휴지를 찢지 않았다. 내게 밴 버릇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


p.136


엄마가 떠나고 여행은 시작되었다.

김인숙의 <안녕 엄마 안녕 유럽>은 암으로 엄마를 떠나보낸 필자가 유럽 여행을 시작하며 엄마와의 이야기를 담아낸 여행에세이집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엄마의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며 필자는 여행을 떠났다. 어쩌면 엄마라는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어린 아이같은 마음에 시작한 여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를 뒤로하고 떠난 여행의 순간 순간에 엄마의 존재와 그 크기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에서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된 엄마의 행동과 말들. 자꾸만 되돌아보게 되는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소중했던 순간들이 언제나 있다.


" 어릴 때 손빨래하던 엄마 옆을 지키다가 빨랫감을 보고는 "엄마는 왜 구멍 난 팬티를 입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가 뒤돌아 있었기에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모르지만, 커가면서 철없던 질문이란 걸 깨달은 후 그날 일이 줄곧 마음에 남았다.


매일 가계부를 적던 엄마의 모습, 엄마가 젊었을 때 입었을 게 분명한 유행 지난 옷들이 가득한 옷장, 고무줄 늘어난 팬티가 곱게 개어 있던 서랍장, 반짝이던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을 떠올릴 때면 그날이 항상 생각났고 그래서 미안했다. "


p. 200

© 알라딘 제공. 한빛라이프

* 덧붙임.

페이지 곳곳에는 강영규 사진 작가가 찍은 유럽의 사진들이 함께 곁들여 있다.

책 사이즈가 조금 작은 편이라 그런지 페이지 별 사진이 작아 조금 아쉽다.


엄마에 대한 책은 사도 사도 아까운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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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up 투애니업 - 씨엘 아빠, 이기진 교수의 청춘 일러스트 에세이
이기진 글.그림 / 김영사on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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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건너는 5가지 기술


이기진, <20 up>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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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미 어른이야.

남들은 스무 살이 되면 성인 대우를 받고 무엇보다 술을 제약없이 마실 수 있어 좋다고들 했는데, 나로서는 그 나이가 참 애매모호하게만 느껴졌다. 그 때만큼 성인이라는 말이 안 좋게만 들리던 때가 또 있었을까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스스로 아이같고 아이이고 싶은데 겨우 한 해 바뀌었다고 아이에서 성인이 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싶기도 했다. 게다가 철딱서니 없는 애들은 어딜가나 많으면 많았지 줄어들지는 않았고, 성인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다고 해서 우리 나이대의 애들이 모든 걸 스스로 다 책임질 수 있다는 것도 아니었다. 해는 바뀌었고, 책임져야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점점 불어났지만 막상 할 수 있을만한 것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세상은 경쟁할 일들로 넘쳐 난다."

​그래서 정말이지, 20대는 사춘기를 한 번 더 겪는 것 같다. 특히나 대학에 곧장 들어와 혼란을 겪는 친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각종 고민들이야 언제나 차고 넘치지만,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갈피를 못 잡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항상 앞에 두고 있는 목표라는 게 일관성이 있었다. 시험이면 시험, 대입이면 대입, 같은 반 아이들이 대부분 비슷한 길을 향하고 있고 그 안에서 나는 '다르다'는 느낌을 전혀 갖지 못한다. 오히려 다름 없음에 안도를 느낀다면 모를지언정.

문제는 대학에 들어와서 그 '다름 없음'이라는 게 정말 쓸모 없는 일임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점이다. 1, 2년 사이에 학교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학생들은 '다름 없음'에서 '다름'으로 갈아타야 한다. 똑같은 것들은 봐주지 않기 때문이라면 조금 가혹하지만 현실이다. 갈피를 못 잡는 가운데 시간은 훅훅 쉽게만 지나간다.

" 세상은 경쟁할 일들로 넘쳐 난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학교 성적은 단지 그 일부일 뿐. 죽어라 노력해서 경쟁에서 이기는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겠는가! "

p. 34


© 김영사 블로그

청춘을 건너는 5가지 기술.

청춘을 정리하는 데 '겨우' 5가지 기술밖에 안 된다고 하니 조금은 김 빠지지만, 이기진의 <20 up(투애니 업)>은 나름대로 20대에게 필요한 약간의 팁을 작가만의 방식대로 전해주고 있다. 공부, 꿈, 사랑, 인생 그리고 행복의 기술로 정리하는 그만의 방식은 약간은 식상한 이야기지만 여느 교수님이 제자에게 들려주는 덕담 같기도 하고, 그저 농담 따먹기 같기도 하다. 삶의 '지침'을 바라고 대학에 왔지만, 막상 그 어느 것도 정하지 못해 두리번거리는 20대 아이들에게 스승이 건네는 가볍지만 진심이 녹아 있는 조언이라 볼 수도 있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살면서 계속해서 듣고 싶고  또, 들어야만 힘이 나는 그런 말들.



" 개성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먼저 개성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기를 권한다. 그리고 개성 있는 인간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모하고 따라 해 보자. 그 사람을 진정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사랑의 처음 단계는 어설플 수 있다. 하지만 진실된 마음으로 사랑에 빠지면 그 개성을 본인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고 충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 사람처럼 되고 싶고, 그 사람처럼 웃고 싶고, 그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고, 그 사람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본인의 개성을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p. 95​


알록달록한 일러스트는 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글씨는 적고 그림이 많다는 점(!). 이기진 교수가 취미로 그리기 시작한 낙서 같은 그림이 하나의 일러스트이자 작품이 되어 책의 한 켠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때로는 여러 번의 말씀보다는 한 눈에 들어오는 그림 한 장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이기진의  <20 up(투애니 업)>은 마냥 가벼울 수도, 마냥 무거울 수만도 없는 20대들의 고민과 현실에 하나의 작은 울림을 준다. 책장에 꽂아 두고 머리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펼쳐보면 딱 좋다.

" '불행한 사실을 믿기 시작하면 진정으로 불행해진다'라는 말을 라파엘에게 해 주고 싶었지만 불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라파엘은 힘차게 공을 차며 사라졌다. "

 

p. 231

 

* 아쉬운 점

책 표지를 보고 나서도 잘 모르다가, 서문을 다 읽고 나서야 작가가 걸그룹 '투애니원' CL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사실 책 표지에 '씨엘 아빠'라고 소개가 되어 있긴 한데 '투애니원' 팬 혹은 인지도를 노린건가, 싶다. 너무 부정적인 마음일까.

힐링 책을 싫어하면 안 사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림 좋아하면 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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