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 뜨겁게 우리를 흔든, 가만한 서른다섯 명의 부고 가만한 당신
최윤필 지음 / 마음산책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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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가만한 당신> 리뷰

 가만한 당신, 마음산책

Ⓒ 네이버 책 정보


태어나서 장례식장에 가본 일은 단 한 번뿐이다. 가까운 친척 분이 돌연 돌아가셨을 무렵이었다. 인근 병원의 장례식장에 내가 발길을 돌리게 될 줄은 그 때 처음 알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해보면 그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나는 새삼 무감각했다. 식장에 들어서서 조문객들을 받으면서도 어린 나이였던 탓인지 놀랍거나 슬프지 않았으니까. 그냥 사진을 가져다 놓았을 뿐, 누군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버렸다는 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듯 싶다. 내게도 죽음은 아직까지 비현실적이다.

떠난 사람의 빈 자리를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주어야 죽은 이의 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고 했는데, 막상 그 장례식은 쓸쓸하기만 했다. 생각만큼 많은 이들이 찾아주지 않았고, 형식적인 조문 행렬이 이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엄마와 할머니가 오래오래 우는 것을 바라보며,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은 마지막까지도 이렇게나 평범하기 그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줄도 모른 채 스러져 가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으며, 나 또한 언젠가는 그 행렬에 함께하겠구나. 이런 생각.

- 평범한 이들의 죽음은 덧없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면, 가끔씩은 문득 '왜 유명한 이들의 죽음만 주목받는가' 라는 회의감이 든다. 우리네 삶을 평생에 걸쳐 열심히 살아내는 이들의 거의 대다수는 아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인데. 누군가의 죽음이 평범하기 그지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일생을 헛되이 산 것도 아닌데. 특별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삶의 숨은 구석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 또한 셀 수도 없이 많은데, 라는 생각.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인생에 있어 한 명 한 명의 주역이라는, 생각.

최윤필의 <가만한 당신>은 여태껏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평생에 걸쳐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해 온 사람들의 일생과 그 죽음까지를 다룬다.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자신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했던 이들의 죽음을, 짧지만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글들이 빼곡하게 실려있다. 작가는 일간지 '한국일보'에서 2년 남짓한 시간동안 외신 부고를 읽고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내는 코너인 '가만한 당신'을 맡아왔다. 책 <가만한 당신>은 그 중 서른 다섯 명의 부고를 추려 묶었다.


이 책의 어떤 대목이 읽을 만하다면, 책 속 그들의 삶과 그들이 추구한 세상이 아름다워서일 테고, 책 바깥 독자들의 세상이 너무 고약해서일 테다. 그 간극을 메우는 데 이 책이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


- 책 머리에, 최윤필

- 다양한 시대, 서로 다른 자리를 맡아 묵묵히 살아온 자들의 이야기​

다양한 시대, 서로 다른 자리를 맡아 묵묵히 자신만의 일을 해냈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의 삶을 되돌아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편안하고, 동시에 얼마나 어렵게 얻어낸 소중한 것들인지를 깨닫게 된다. 60년대의 흑인 인권 투쟁에 나섰던 한 청년의 일생부터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위해 평생을 싸운 운동가, 성폭력 피해자에서 조력자로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갔던 젠더 운동가의 삶까지. 어쩌면 유명하게 이름을 떨친 몇몇의 인사들보다 훨씬 더 힘들고 값진 삶을 살았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을 돌아볼 수 있다. 동시에 '조력자살'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고, 마리화나 합법화, 수형자 인권, 여성 오르가슴 해방 운동에 몸을 던진 자들의 이야기도 이어진다. 하나의 논쟁거리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주제들도 빠짐없이 엿볼 수 있다.

영국 존엄사 운동에 앞장섰던 '데비 퍼디'

Ⓒ 한국일보

지금이라도 누가 다발성경화증 치료법을 발견한다면 나는 환자 대열의 맨 앞에 서겠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문제는 내가 내 삶을 끝내고 싶어 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과 같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죽을 권리 : 궁극의 자유를 찾아서>, p. 228 

 

수형자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던 앨빈 브론스타인

Ⓒ 한국일보


"압제는 힘센 자가 아니라 가장 힘없는 이들을 짓밟는 데서 시작됩니다."

변호사 앨빈 브론스타인에게 약자는 남부의 흑인도 이주 노동자도 도시 빈민도 아닌 옥에 갇힌 이들이었다. 그는 1972년 미국시민자유연맹의 '국가감옥프로젝트'를 만들어 23년간 이끌며 재소자 인권과 수형 제도 개선을 위해 헌신했다.

- <폭동 아닌 봉기 : 수형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p. 283

 

 

* 덧붙임

사람이 중심에 자리한 책을 찾는다면 이 책만한 게 있을까.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좋은 책으로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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