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책세상 세계문학 2
안네 프랑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책세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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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제목 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고, 또 오랜시간 필독서로 꼽힌 책인 만큼 어렸을 적 이 책을 읽은 독자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 <안네의 일기>를 읽었지만 후에 이전에 출판되었던 <안네의 일기>에는 빠진 부분이 있으며 그 부분을 추가한 완전판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보았고, 한 번은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실행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이렇게 예쁜 디자인의 연분홍색 양장본으로 말이다.

<안네의 일기> 본문은 안네 프랑크가 생일선물로 일기장을 받은 1942년 6월 12일부터 적은 일기로 이루어져있는데, 안네는 이 일기장에 ‘키티’라고 이름을 붙이고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 일기를 적었다.

한 소녀의 일기가 지금까지 널리 읽히게 된 이유는 안네가 일기를 쓴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 있다.
유대인을 박해하는 히틀러의 나치가 독일뿐만 아니라 안네 가족이 거주하는 네덜란드까지 점령하여 유대인 가정에서 나고 자라던 안네와 그 가족이 은신처에 숨어 살아야만 했던 그 상황말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생활하다보니 안네의 일상에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유대인은 가슴에 노란 별을 달고 다녀야 하고, 무더운 여름에도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어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서 치과에 가야 하고, 저녁 8시 이후에는 외출이 금지되어 마당이나 정원에도 나갈 수 없는 등 온갖 제약이 뒤따르는 생활.
하지만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네의 가족에게 SS의 소환장이 도착하고 은신처 생활이 시작되어 이마저도 하지 못하게 된다.
은신처 생활을 하게 되면서 안네는 바깥 한 번 나가지 못하지만 안네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소식들과 안네 가족의 은신처 생활을 도와주고 있는 선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적으며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키티에게 소상히 알려준다.

그리고 안네는 자신이 적은 일기가 가족에게, 아니 전세계에 공개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텐데, 그래서 일기에 자신의 생각과 고민들을 솔직하게 적어놓아 안네가 친구들의 뒷담이나 연애 이야기나 지인과 가족들을 험담한 것까지 다 읽을 수 있다.

은신처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들킨다는 건 곧 죽음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는 것과 다름 없기에 은신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모두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었고, 안네의 가족뿐만 아니라 판 단 가족과 후에 합류한 치과의사 뒤셀 씨까지 남과 함께 부대껴서 살아야 하기까지 했으니 은신처에서의 삶은 모두에게, 특히 사춘기 소녀에게 힘들었다는 것이 솔직한 안네의 일기에 드러난다.

이런 <안네의 일기> 본문은 갑자기 끝을 맺는데, 누군가의 밀고로 은신처가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안네의 일기에서는 소설을 읽을 때 볼 수 있을 불행의 전조 같은 것은 느껴지지않아 책을 읽는 독자는 갑작스러운 결말을 맞닥뜨리고, 이 불친절한 마무리에 지금까지 읽은 일기가 허구가,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짧게 간추려 덧붙여진 글로 안네의 마지막 일기 이후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안네의 일기>를 다시 읽으면서 (물론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는 필독서지만) 이 책이 왜 청소년 필독서로 내내 추천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소녀가 편지를 쓰듯 적은 일기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어렵지 않은 글이어서 술술 읽히는 데다, 당사자의 개인적인 기록으로 10대 소녀가 겪은 홀로코스트가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특히 안네 또래의 소녀라면 안네의 생각과 고민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태니 안네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이입하면서 홀로코스트라는 작혹한 역사가 주는 교훈을 느낄 수 있겠고 말이다.
내가 어렸을 적 읽은 여러 책 중에서 <안네의 일기>가 유독 기억에 잘 남은 편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는 여기에 더하여 완전한 <안네의 일기>를 읽었다는 만족감이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예전에 출판되었던 <안네의 일기>는 일기의 일부가 제외되었는데,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책 출간 전 빼놓았던 다섯 페이지를 재단에 기부하면서 이렇게 완전판이 세상에 나왔다.
그 다섯 페이지는 안네가 부모에 대해 적은 부분 등인데, 오토 프랑크가 이전 출간 때 그 페이지를 뺀 것을 보면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겠지만 더욱 솔직한 안네의 일기를 읽을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일기를 쓴 당사자의 허락 없이 개인의 일화와 내면을 만천하에 공개한 이 글을 내가 읽어도 될까 싶었지만 또 그렇기에 홀로코스트를 다룬 그 어떠한 책보다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시아 작가 에렌부르그가 말한 것처럼 ‘위대한 현자나 시인의 것이 아닌, 한 평범한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가장 큰 울림을 가진 목소리가 된 것이라고 말이다.
때문에 <안네의 일기>는 나도 꼭 읽어봐야 할 책으로 소개하고 싶은데, 만약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안네는 자신의 일기가 출판되어 ‘세상에서 가장’ 이러는 수식어가 붙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 기뻐했을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 가장 먼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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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미 다카히로가 알려주는 손 그리는 법 - 압도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작화법 가가미 다카히로가 알려주는 손 그리는 법
가가미 다카히로 지음, 박현정 옮김 / 이아소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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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뼈와 근육과 피부 주름으로 이루어진 손을 그리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어서 어색한 손을 그리게 되기 십상이다.
이런 고충을 겪는 그림쟁이는 한둘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손만을 그리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출간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처음 본 독자는 도대체 가가미 다카히로가 누구기에 그가 손 그리는 법을 알려준다는 이런 제목을 붙인 거지 하면서 가가미 다카히로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그랬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그는 <유희왕> 애니메이터이며 손을 잘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유희왕>은 카드 게임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손이 부각되는 장면이 여럿 있는데, 가가미 다카히로가 작화를 맡은 장면을 보니 과연 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서 유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이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손 그리기 강의를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니 기대하며 이 책을 펼쳤다.

책은 먼저 손의 부위와 특징을 살펴보는 기본적인 것으로 시작하는데, 뼈와 근육, 손가락과 손바닥의 길이나 관절의 위치, 주름의 모양 등을 설명하며 입체감과 균형이 있어서 자연스러운 손을 그릴 수 있는 요소들을 알려준다.
복잡한 손 모양도 그릴 수 있는 세 가지 보조선 활용법과 손을 블록으로 나누어 파악하는 방법도 유용하고, 남녀별, 연령별, 크기별로 어떤 포인트를 잡아 손을 그리면 좋은지도 알려줘서 섬세한 손을 그릴 수도 있게 도와준다.

손을 그릴 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다룬 다음에는 어떻게 손을 그리면 장면을 더 박력있게, 더 부드럽게 보이게 하는지, 손만으로 성격과 감정까지 드러나게 하는지, 손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지 보완적이고도 심화적인 내용으로 들어간다.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저자의 작화처럼 유려한 손을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 어색하거나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손 그림이나 장면을 해설대로 보완한 그림과 함께 비교해볼 수 있게 한 부분이었는데, 그렇게 두 그림을 보면 저자가 말하는 바가 더욱 잘 이해가 되고 포인트를 기억하기도 좋았다.
다음으로는 팔짱끼기와 같은 무의식적인 동작들, 맞잡은 손처럼 복잡한 자세, 연필이나 젓가락이나 컵 등 물건을 잡는 것과 같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손들, 무기나 악기를 들었을 때, 그리고 액션과 비즈니스 장면에서 쓸 수 있는 손모양 등 실사례 포즈를 모아두어 따라그리며 연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

이런 다양한 손은 그림 말고도 책 말미에 특전으로 들어간 손 포즈 자료 사진들로 만나볼 수도 있다.
특전은 하나 더 있는데, 해설 동영상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손 포즈 사진 또한 책에 실려있음에도 또 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말이다.

그밖에도 저자가 직접 메인 캐릭터 디자인을 담당한 TV 애니메이션 <절대가련 칠드런>의 장면들을 보며 그가 실제 작업에서는 어떤 점을 신경써서 연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두 페이지와, 가가미 다카히로를 포함한 세 애니메이터가 작업에 대해서 나눈 대화를 실은 좌담회 네 페이지도 흥미롭게 보고 읽었다.

이 책으로 저자의 해설과 함께 실린 손그림을 보면 곡선과 직선과 같은 작은 요소가 자연스러운 손을 그려내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되고, 내가 부자연스러운 손을 그렸던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배우게 되니, 이를 활용해서 열심히 그려나가면 그 어떤 손모양도 두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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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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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흥미로운 소설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는 역시 무언가 다르긴 다른 모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열세 살 때부터 신기하고 놀랍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수집했다니 말이다.
이 책에 담긴 길고 짧은 이야기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듣고 보고 읽은 것들인데, 때로는 거기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생각이나 해석이 더해지며, 흥미로운 소설을 쓰는 그의 상상력의 원천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의 개정판으로, 기존 383항목에서 542항목으로 내용이 대폭 늘면서 <개미>와 <신>뿐만 아니라 <제3인류>와 <죽음>에서 추려낸 백과사전도 추가되었으니 이전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읽은 독자도 읽을 거리가 많은 책이 될 수 있겠다.

사실 책 제목을 보고 거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책을 펼쳐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갈 텐데, 문학, 역사, 종교, 신화, 과학, 생물, 미스터리 등 다양한 분야의 수백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묶어 놓았으니 (간단한 통계/조사 결과도 있고 때로는 뜬금 없이 레시피가 나오기도 하고) 어디를 펼쳐도 흥미진진한 내용을 마주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도 있지만 몰랐던 내용이 훨씬 많아서 마치 어린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이야기를 수집하면서 느꼈던 것처럼 세상에는 이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많구나 감탄했다.

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의 원천을 엿보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 상상력도 자극받는 경험을 했다.
예를 들어 문어에 대한 부분을 보면, 문어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감각기를 가지고 있어 감각이 예민하고 뇌의 기억 용량도 커서 기억력이 좋지만 암컷은 새끼들이 알을 깨고 나오면 죽어버리고 수컷은 새끼들 일부를 잡아먹고 도망친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니 문어 새끼들은 부모의 사랑이나 자녀 교육같은 것 없이 알아서 생존해 가야 하는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유전자에 스스로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한 암호가 새겨져 있는 것만 같은데, 만약 문어들이 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새끼들에게 경험과 지식을 전수한다면 문어들의 문명은 어떻게 달라질지 상상해보게 한다.
그리고 연장선으로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기억이 전수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문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도 묻는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은 750여 페이지로, 내용이 백과사전급이어서 두께도 백과사전급인데, 양장본임에도 딱딱하지 않고 유연성이 있으면서도 튼튼하게 제본되어 신기하게도 책을 읽을 때 불편하지가 않았다.
항목 찾아보기가 등재순과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이루 원하는 내용을 찾아보기도 좋았고 말이다.

그리고 일단 내용이 흥미로운 것이 큰 몫을 하지만 각 항목이 짧게는 단 몇 줄만 쓰인 것도 있고 길어도 몇 페이지 분량이니 읽다보면 페이지가 훌쩍 넘어가 있고 시간도 훌쩍 지나가버려서 750여 페이지 읽는 것은 일도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흥미로운 수백 가지 소재를 다루지만 각각을 깊게는 들어가지는 않아서 부담도 없고.
그래, 특히 팟캐스트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얉은 지식>,줄여서 <지대넓얕>을 즐겨 들었다면 이 책도 취향에 맞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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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의 아름다움 - 원자폭탄에서 비트코인까지 세상을 바꾼 절대 공식
양자학파 지음, 김지혜 옮김, 강미경 감수 / 미디어숲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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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바흐의 추측, 이 수학 난제를 증명하는 것에 미친듯이 매달려 젊음, 더 나아가 삶을 바친 수학자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단 하나의 공식에 집착하는 그 수학자를 보면서 한 사람을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드는 수학 공식에는 도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 궁금했고, 수학 공식의 아름다움을 알면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공식의 아름다움>을 읽게 되었다.

이런 수학자는 허구적인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기에 더욱 궁금했던 것인데, 실제로 유명한 수학 난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360년 가까이 되는 긴 시간동안 수많은 수학자들이 증명에 시간과 열정을 들였고, 이를 최초로 완벽하게 증명한 앤드류 와일즈라는 영국의 수학자도 앞선 수학자가 이미 페르마 추측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여겼음에도 8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풀지 못한 수학 난제가 있으니 지금도 난제에 매달리고 있을 수학자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각 장에서 공식을 소개하기에 앞서 양면을 꽉 채운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볼 수 있다는 특징을 가진 <공식의 아름다움>은 중국의 과학 교육 플랫폼 양자학파에 의하여 쓰인 책이고, 고등학교 수학교사가 번역하였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한 AI. 전기공학과 부교수의 감수까지 받아 전문적인 번역을 기대할 수 있었다.
책은 먼저 크게 이론과 응용편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이론편에서는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1+1=2’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대한민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뇌리에 콕 박혀있을 ‘피타고라스의 정리’와 “나는 절묘한 증명 방법을 찾았지만 이 책의 여백이 부족해 쓰지 않는다.”라는 간단한 메모에서 촉발되어 수학자들을 358년이나 괴롭히는 동시에 수학의 발전을 이끌어낸 ‘페르마 정리’, 독립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던 미분과 적분을 연결할 수 있게 한 ‘뉴턴-라이프니츠 공식’, 사과 일화로 유명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각각의 개성이 있는 5대 상수를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는 점에서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꼽히며 치명적인 수학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찬사까지 들어 이 책의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공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오일러 공식’, 비운의 수학 천재 갈루아와 ‘갈루아 이론’, 리만 본인은 한가롭게 제시했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리만이라는 존재를 일깨워주는 계기가 된 ‘리만 가설’, 우주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4개의 공식으로 전자기 현상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맥스웰 방정식’, 무엇을 의미하는 공식인지는 몰라도 일단 알고는 있는 아인슈타인의 E = mc2 ‘질량 에너지 보존의 법칙’, 상자 안 고양이로 들여다보는 양자 세계 ‘슈뢰딩거 방정식’,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어 당시 가장 유명한 물리학자였던 하이젠베르크를 질투하게 만들고 현대 물리학의 초석이 되었으며 물리학자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디랙 방정식’, 매우 분명한 약점이 있지만 어쨌든 당대 최고의 물리학 이론이라는 것이 이미 실험실에서 증명되어 위대한 업적으로 남은 ‘양-밀스 이론’ 등을 만날 수 있다.

위처럼 이론편은 이름만 알고 있던 공식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는, 대강만 알고 있었던 공식에 대해서는 더 알 수 있는 장이다.
예를 들어 ‘피타고라스 정리’는 하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서 툭 치면 공식이 튀어나올 정도이기 때문에 그래도 꽤 알고있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피타고라스를 스스로 무덤에 빠뜨리게 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게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우주 만물은 모두 유리수에 의해 통치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피타고라스 학파였지만 정작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의하면 직각을 낀 두 변 모두 길이가 1인 직각 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는 √2, 그러니까 무리수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흥미로운 사실은 피타고라스 학파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히파수스가 발견했는데, 안타깝게도 교칙을 어겼다는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산 채로 바다에 버려져 익사하고 말았다.

이론편에 이은 응용편에서는 정보 전송 속도의 상한선을 정의하는 공식으로 현대 통신의 거의 모든 이론은 이 공식에 기초하여 전개되며 5G시대 통신기술의 새 지배자로 여겨지는 ‘섀넌 공식’, ‘블랙-숄즈 방정식’을 응용하여 뛰어난 운용수단을 만들어 내어 금융권을 뒤집어 놓았던 기업 LTCM의 흥망, 탄알이 한 사람의 머릿속을 관통하는 과정 속에 숨겨진 수학적 원리와 수학적 공식, 시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숨은 영웅 ‘후크의 법칙’, 전통적인 통계 방법보다 효과적이어서 일기예보든 주식이든 상관없이 시장, 언어 연구, 공학, 바이오의학, 컴퓨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카오스 이론’, 고급 도박꾼의 세계에서 아주 유명한 공식으로 통하는 ‘켈리 공식’, AI뒤에 숨은 수학 공식 ‘베이즈 정리’, 1995년 해결된 ‘페르마의 대정리’와는 달리 아직 수학계의 과제인 ‘삼체문제’, 안전성 없이는 비트코인 통화 신용이 불가능한데 비트코인의 안전성을 보장하여 비트코인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타원곡선 방정식’처럼 이론편과는 달리 이름도 낯설지만 우리 삶과는 더욱 밀접하게 다가오는 공식들에 대해 읽을 수 있었다.

이렇듯 책에서 보편적이고 실용적인 공식을 선정하여 다루었기 때문에 수학적 교양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워낙 과거 내로라하는 수학자들도 머리를 싸맸던 공식들을 향연이라 이 책으로 소개된 공식 하나하나를 전부 이해했다고 하면 내가 바로 수학 천재 만재일 것인데, 나는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거쳤을 뿐인 범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알파벳과 수학 기호와 숫자가 복잡해 보이는 공식을 꿰지 못하더라도 흐름을 따라가며 몰랐던 수학을 만나는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각 공식의 역사와 특징을 알게 될수록 어렵고 지루하게만 보이던 공식이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나보다 공식을 훨씬 더 깊게 이해하는 수학자들이 공식에 매료되어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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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은밀한 취향 - 왕과 왕비의 사적인 취미와 오락
곽희원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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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은밀한 취향>은 제목만 보면 거시기한 이야기라도 적혀있을 것 같지만 건전하게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의 취미와 오락거리를 통해서 그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학예연구관 그리고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원구사까지 총 열두 명의 저자가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을 다듬고 추가하여 나온 책이어서 내용면에서 더욱 신뢰가 간다는 장점이 있다.

이 신뢰도 높은 31개의 글은 제1장 동물 애호가들 / 제2장 왕과 꽃과 나무 / 제3장 취미와 오락 사이에서 / 제4장 소설과 그림을 탐하다 / 제5장 도자기에 담긴 마음 이 다섯 장에 주제별로 나뉘어 실렸는데, 서평에서는 이 책에서 읽은 왕실 사람들의 취미 두세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취미였던 ‘옥돌’이 떠오르는데, 옥돌이 무엇이냐하면 당시에 ‘당구’를 부르던 명칭이다.
신문물의 영향으로 황제의 여가 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인데, 당시의 신문인 <매일신보>와 <시대일보>을 보면 고종과 순종 그리고 순정효황후도 당구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황실에서 당구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현재 고종이 애용한 덕수궁 덕홍전 당구장(옥돌장)의 사진이나 유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이용한 창덕궁 인정전 내 당구장은 당구 점수 계산기 같은 당구장의 일부가 박물관에 소장되어있고 남아있는 카탈로그 사진도 있어 책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책,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보게 되는, 소설 읽기를 즐겼던 왕실 사람들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자신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소설책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으며 선비들이 소설을 읽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했던 정조도 있지만, 많은 왕실 사람들은 소설을 즐겼다.

효종과 인선왕후는 함께 <삼국지연의> 한글 번역본을 제작했고, 영조는 지금 우리가 오디오북을 듣듯 신하가 소설을 낭독하는 것들 들었는데 영조 또한 <삼국지연의>와 <서유기>그리고 <수호전>을 즐겨 읽었다.

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와 사도세자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었는데, 영빈 이씨의 장서임을 알 수 있는 ‘영빈방’ 인장이 짝혀있는 책 3종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서각에 소장되어있다.
그 세 권의 책은 <고문진보언해>, <무목왕정충록>,<손방연의>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이 소설이다.
단 몇 권의 책만으로 한 사람의 취향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위 두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 영빈 이씨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남성 주인공들의 갈등과 대결을 그린 소설에 관심을 보였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도세자는 소설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명을 받아 궁중 화원이 그린 그림 128면이 실려있는 소설 삽화집 <중국소설회모본>을 편찬했다.
이중 <서유기> 삽화가 가장 많기 때문에 저자는 사도세자가 <서유기>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중국소설회모본>의 가장 앞에 위치한 서문 두 편은 사도세자가 직접, 그것도 그가 뒤주에 갇히기 나흘 전에 쓴 것인데, 그에 따르면 그에게 소설은 병을치료하는 수단이자 도피처였을 것이라는 글을 읽으니 어쩐지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이전에는 조선 왕실의 취미라고 하면 사냥이나 말타기 정도만 떠올랐는데 <조선의 은밀한 취향>을 읽으면서 조선 왕실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취미와 오락거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사적이고도 인간적인 면을 보며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왕의 취미는 단순히 취향의 영역에만 머물 수만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숙종은 조선 어느 왕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그림에 관해서라면 많은 글을 남겼는데, 농사일의 어려움을 그려낸 그림을 보고는 군주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정치의 기본을 생각했으며 교훈적인 내용의 고사나 역사적 충신 등을 주제로 한 그림은 자기 성찰의 거울이 되기도 했고, 또 왕이 특정 주제의 그림을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니 말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조선의 은밀한 취향>은 글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부담없는 분량으로 쓰여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 해당 글과 관련된 사진과 도판 자료도 만족스럽게 볼 수 있어 역사 교양서의 교과서 같은 책이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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