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은밀한 취향 - 왕과 왕비의 사적인 취미와 오락
곽희원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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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은밀한 취향>은 제목만 보면 거시기한 이야기라도 적혀있을 것 같지만 건전하게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실 사람들의 취미와 오락거리를 통해서 그들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책으로,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학예연구관 그리고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원구사까지 총 열두 명의 저자가 <한국일보>에 연재한 글을 다듬고 추가하여 나온 책이어서 내용면에서 더욱 신뢰가 간다는 장점이 있다.

이 신뢰도 높은 31개의 글은 제1장 동물 애호가들 / 제2장 왕과 꽃과 나무 / 제3장 취미와 오락 사이에서 / 제4장 소설과 그림을 탐하다 / 제5장 도자기에 담긴 마음 이 다섯 장에 주제별로 나뉘어 실렸는데, 서평에서는 이 책에서 읽은 왕실 사람들의 취미 두세 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취미였던 ‘옥돌’이 떠오르는데, 옥돌이 무엇이냐하면 당시에 ‘당구’를 부르던 명칭이다.
신문물의 영향으로 황제의 여가 생활에도 변화가 나타난 것인데, 당시의 신문인 <매일신보>와 <시대일보>을 보면 고종과 순종 그리고 순정효황후도 당구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황실에서 당구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현재 고종이 애용한 덕수궁 덕홍전 당구장(옥돌장)의 사진이나 유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순종과 순정효황후가 이용한 창덕궁 인정전 내 당구장은 당구 점수 계산기 같은 당구장의 일부가 박물관에 소장되어있고 남아있는 카탈로그 사진도 있어 책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책, 특히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보게 되는, 소설 읽기를 즐겼던 왕실 사람들에 대한 글이 떠오른다.
자신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소설책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았으며 선비들이 소설을 읽는 것을 금지하기까지 했던 정조도 있지만, 많은 왕실 사람들은 소설을 즐겼다.

효종과 인선왕후는 함께 <삼국지연의> 한글 번역본을 제작했고, 영조는 지금 우리가 오디오북을 듣듯 신하가 소설을 낭독하는 것들 들었는데 영조 또한 <삼국지연의>와 <서유기>그리고 <수호전>을 즐겨 읽었다.

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와 사도세자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었는데, 영빈 이씨의 장서임을 알 수 있는 ‘영빈방’ 인장이 짝혀있는 책 3종이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서각에 소장되어있다.
그 세 권의 책은 <고문진보언해>, <무목왕정충록>,<손방연의>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이 소설이다.
단 몇 권의 책만으로 한 사람의 취향을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위 두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 영빈 이씨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남성 주인공들의 갈등과 대결을 그린 소설에 관심을 보였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도세자는 소설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의 명을 받아 궁중 화원이 그린 그림 128면이 실려있는 소설 삽화집 <중국소설회모본>을 편찬했다.
이중 <서유기> 삽화가 가장 많기 때문에 저자는 사도세자가 <서유기>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중국소설회모본>의 가장 앞에 위치한 서문 두 편은 사도세자가 직접, 그것도 그가 뒤주에 갇히기 나흘 전에 쓴 것인데, 그에 따르면 그에게 소설은 병을치료하는 수단이자 도피처였을 것이라는 글을 읽으니 어쩐지 복잡한 마음이 되었다.

이전에는 조선 왕실의 취미라고 하면 사냥이나 말타기 정도만 떠올랐는데 <조선의 은밀한 취향>을 읽으면서 조선 왕실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취미와 오락거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사적이고도 인간적인 면을 보며 거리가 한결 가까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왕의 취미는 단순히 취향의 영역에만 머물 수만은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숙종은 조선 어느 왕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그림에 관해서라면 많은 글을 남겼는데, 농사일의 어려움을 그려낸 그림을 보고는 군주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정치의 기본을 생각했으며 교훈적인 내용의 고사나 역사적 충신 등을 주제로 한 그림은 자기 성찰의 거울이 되기도 했고, 또 왕이 특정 주제의 그림을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의미를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니 말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담은 <조선의 은밀한 취향>은 글 하나하나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부담없는 분량으로 쓰여서 편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 해당 글과 관련된 사진과 도판 자료도 만족스럽게 볼 수 있어 역사 교양서의 교과서 같은 책이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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