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리비우스 로마사 1 - 1000년 로마의 시작 ㅣ 리비우스 로마사 1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3월
평점 :
로마가 흔히 권위와 권력에 의한 정치문화라고 생각하기쉽다.하지만 로마도 평민들은 역성혁명을 주장하고 통치자에게 동등한 참정권을 요구하며 잣대를 재었다. 왜 로마가 천하의 제국노릇하는 것에 선두주자가 되었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쌍둥이(로물루스와 레무스)의 탄생과 성장은 운명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이 전설은 비록 로마인들이 자기네 건국과 시조의 탄생을 미화하기위한 것일지라도 그 시대 건국자들의 풍운아적인 인생이 예고되어있는 것같다.아마 그들은 로마인들이라는 사실을 신성시하고 싶었나보다.
사비니여인들을 납치하여 국가의 인구와 영역을 넓힌 재치도 고대국가다운 이야기거리다.어쩌면 여기에 개방적이고 외부로 뻗고 싶어하는 로마인들의 기질을 암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왕들도 개국형과 수성형의 군주들은 각기 특색이 있다.
호전적이었던 로물루스와 달리 도덕적으로 완벽했던, 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는 법률을 정비하고 야누스신전을 세워 내부단결을 호소하며 평화시에도 전란에 대한 방비를 강조했다.
안쿠스 마르키우스는 수성형의 군주였나 보다 .리더의 역활을 중용을 지키며 나라를 이어간다고 했으니 균형을 중시했음을 알수 있다.
로마의 초기 공화정제체에는 요즘의 리더쉅,관용,화합,포용,책임감모두가 포함된다.비록 왕정으로 시작했다고나 하나 로마 7명의 왕들의 시대에 평민들의 투쟁역사가 포함된게 우연이 아니다.이들 왕들의 삶을 보면 개인적으로 공정하고 엄격한 삶을 살고 갔다. 이들은 권력을 즐긴다기보다 귀족과 평민사이에서 줄타기를 타며 지냈을 것이다.
로마도 그리스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왕정 붕괴후 귀족에 의한 공동 통치를 거쳐시민들에 의한 민주정 수립의 수순으로 점차 민주화되었다. 이렇게 민주화되는 것은 도시국가들의 특징으로 이는 도시국가의 사활이 달린 전쟁을 시민군이 수행하였고 때문에 시민들의 발언권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었다. 즉 병역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마지막 폭군의 이름남긴 왕은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여 결국 공화정으로 가는 길을 터준다. 결국 호르텐시우스 법과 같은 결과는 호민관과 민회가 평민의 권익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한 때문이다.
그들의 덕목이 오늘날에도 대통령이나 각층의 리더들에게도 요구된다. 대통령의 아들들이 감옥에 간 일이나 자신이 구속된 일이 흔한 대한민국은 깊이 각성할 부분이다.
원로원과 호민관들의 치고박는 대립속에서 평민들이 얼마나 공화정을 세우려고 독재관들과 집정관들의 권력행사에 경계하고 공직자들에게 가혹했는지 소문난 사실이다.초기 로마 공화정의 전통을 보면 권력남용과 독재를 막기위해 권력에 대한 경계가 굉장히 강했다. 하지만 요즘 대한민국대통령들이 친족에게 이렇게 엄격했으면 그 흔한 신문지상의 비리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근래 미국의 트럼프대통령도 일가친척이나 측근들의 비리가 살살 불거져 나오고 있다. 끝을 보면 알겠지만 정치인이었는지 장사꾼이었는지 그의 처신에 달려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수천년전 로마들에게도 같았다.
리비투스라는 수천년전 로마인이 묘사는 화려하게 해 놓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은 실리적인 사회로 나가고 있었다.갈리아의 침입에서 로마도 흔히 역사에 있듯이 국론이 분열되어 명장 카밀루스를 파면했다.하지만 평민들과 원로원들이 숙청시킨 카밀루스도 실리형의 인간이였다. 추방이란 오명아래 배신감을 제쳐놓고 외교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그렇게 고립되어 있는 조국을 위해 나서는 이는 드물다.요즘 북한과 중국미국의 알력에서 갈팡질팡하는 한국이 숙고할 부분이다.중국시진핑에 줄섰다가 미국오바마에 괄시당하고 이제 트럼프의 압박아래 북핵문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한민국..며칠전 평창올림픽을 폐막하며 북한에대한 미국의 압박은 더 거세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미국도 중국도 영원한 내편은 아니란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들의 조약돌이고 잇권대상일 뿐인 게 국제정치의 현실이다.이런 현실에 카밀루스같은 인물이 우리나라엔 몇이나 될까?결국 4번의 개선행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격때문이다.로마인들은 그에게 ‘제2의 창건자’라는 칭호를 바쳤다.
갈리아인의 로마 침략후 그들은 힘들게 적을 격퇴하고 국력을 키우며 계층간 화합과 조화를 모색했다.요즘 말하는 민주주의의 화합형 국가로 가는 것이다.
군제를 개편해서 레기온스타일로 진화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로마는 이탈리아반도네의 여러 부족도시국가들(에투루니아 삼니움족등) 로마연합으로 차례로 통합헤나가면서 이탈리아반도를 모두 손아귀에 넣었고 그 뒤 세계제국으로 발돋움했다.
이때 로마가 점령한 이웃도시국가들을 대한 것은 고대 사회에선 매우 드물게 온건한 것이였다. 로마는 이들에게 완전한 자치를 부여해주었고 이들에게 참정권을 제외한 모든 로마 시민으로서 누릴 권리인 라틴 시민권을 주었다. 게다가 이들에게 연공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단지 요구한 것은 전쟁이 났을 때 로마에게 보조병력을 보냄으로써 협력하라는 것이었다.현대의 미국처럼 국가를 키워나가는데 합리적이고 관용적 개방적이었다고나할까?
초기공화정의 역사를 보면 느낀 것은 그당시 권력자들도 자신들도 민심을 얻지못하면 권력의 정점에서도 버림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평민과 귀족의 차별이 없어진 게 수백년이 걸렸지만 호민관들과 평민들의 노고아래 그렇게 이루어졌다.
민심을 얻기위해 얼마나 빡세게 노력했는지 그당시 정치인들도 도덕성을 중시한 것이 나타난다.리비우스자신이 학자였지 관직에 나간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자신도 정치인들에대한 자질을 도덕성과 인격에서 찾았다.
로마의 고대 공화정은 지금의 민주주의와 다소 거리는 멀다.하지만 독재관 집정관으로 산다는 것이 권력의 정점에서 쉬운 일도 아니고 책임과 중압감이 얼마나 막중한지 역사만 봐도 안다. 재미있는 건 이들 공직이 월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현대 한국의 대통령들, 박근혜나 이명박같은 이들은 책임감이란 있었을까? 재벌들의 배만 불리는 대한민국은 역사를 돌아봐야할 것이다. 대한민국,어쩌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로마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가듯 과도기적인 성격의 정치인인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와 전근대적왕권정치와 유사한 성격의 징검다리노릇을 해야하는지도..그렇다면 권력자들이 자신에게 엄격해야 할 것이고 더 넓게는 빈자와 서민들의 입장에 서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권력형비리는 모두 잇권과 결탁된 돈때문이었다.이때문에 계층간 갈등도 극심했고 지역간감정도 골이 깊었다.이런 정치의 끝이 어떠했는지 역사서를 좀 읽어보면 알만한 일이다.한국정치에서 한국의 정치인들은 책임감위에서 로마인들처럼 화합과 포용의 정신을 본받았으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