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3
알베르 카뮈 지음, 유호식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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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1957, 43세라는 역대 최연소 나이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카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카뮈가 이 소설을 구상해 출간하기까지는 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1939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예고 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와 죽음을 가져다주는 질병과도 같은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창작에 영감을 주었다. 그 후 카뮈는 1941년부터 오랑에서 1년 반 넘게 지내며 페스트에 관한 소설을 본격적으로 계획한다. 실제로 오랑 인근의 도시에 티푸스가 번져 지인이 감염된 사건과, 지병인 폐렴의 재발로 고통을 겪은 개인적 경험 등이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소설의 무대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알제리의 작은 해안도시이다. 어느 날 갑자기 쥐들의 시체가 발견되고, 어제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었던 이웃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나가지만 시민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페스트가 의심되지만 그들에게 페스트는 구체적인 현실감이 없는추상일 뿐이다. 환자와 사망자 수가 급격히 늘어가면서, 시민들은 병을 이겨내기 위해 미신에 의지하기도 하고, 박하사탕이나 고무를 입힌 레인코트가 병을 이겨내는 데 효험이 있다는 뜬소문에 휘둘리기도 한다.

사태가 장기화되자 극한의 절망과 공포에 대응해 다양한 인간 군상이 그려진다. “사랑과 행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신문기자 랑베르)도 있고, 재앙 앞에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성찰하는 사람(파늘루 신부)도 있고, 속수무책인 현실 속에서 행위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사람(타루)도 있다. 그리고 묵묵히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이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의사 리외가 있다. 이들은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공동체의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투신하는 가운데 조금씩 변화해간다.

이 책을 통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이며, 우리가 왜 사람들과 연대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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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1년 <<문학저널>> 봄호에 실린 서평임을 밝힙니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뇌과학

 

 

왜 내 기억력은 이 모양인가?

요즘은 꽃에 관심이 생겼다. 매주 꽃을 사서 책상 앞에 놓아두고 꽃의 이름을 적어 놓는다. 지난주에는 다홍빛의 라넌큘러스, 옅은 노란빛의 거베라, 흰빛의 솔매, 또 노랗고 하얀 알스트로메리아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도록 화병에 꽂아놓았다. 꽃집 사장님이 아주 감각적으로 꾸며 주어서 일주일 동안 행복했다. 이번 주엔 프리지아랑 또 뭐더라? 이런 식이다. 꽃 이름을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을 할 수 없다. 아무리 외우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컴퓨터 모니터 아래에는 조선시대 왕들의 이름을 붙여 놨다. 국사 시간에 왕들 이름을 못 외워서 지금이라도 외워볼까 하고 석 달 전에 붙여놨는데, 결과는 낙제 점수다. 첫 줄의 일곱 명의 왕 이름은 외우겠는데, ‘예성경중다음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왜 내 기억력은 이 모양인가?

머리가 안 좋으니까, 라고 무심코 말하겠지만, 그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머리가 안 좋다는 게 뭐야? 그래도 어렸을 때는 기억을 잘했는데, 왜 지금은 그때만큼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와 같은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되돌려 받은 질문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답해볼까?

뇌에는 엄청나게 많은 길들이 있다. 사춘기 무렵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대략 1000억 개의 길과, 길과 길을 연결시켜주는 시냅스라는 고리가 있는데, 이 고리는 또 100조 개 정도다. 이러한 길 만들기는 40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 말은 40대가 지나면 길을 만드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노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뇌는 이렇게 길을 만들고, 자주 다니는 길은 더 넓히고, 다니지 않는 길은 없앤다. 이 길을 신경세포’(뉴런)라고 부른다. 길들은 여러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길은 바다동물인 해마(sea horse)를 닮은, 5cm 정도 길이의 해마(hippocampus)에 연결되어 있다. 이 해마에 우리의 기억이 저장된다. 그냥 있는 대로 하나하나 다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압축되어 저장된다(송미령, 󰡔송미령의 뇌과학 연구소󰡕, 27~40).

압축되어 저장된다는 것은, 영화의 내용이 세세하게 몽땅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로 기억된다는 뜻이다. 재밌었다, 재미없었다, 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영화관에 나와서 재밌었지? . 어떤 부분이 재밌었어? , 그냥 재밌던데. 라는 식의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고 인상만 기억하는 것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재미가 있었는지, 그 영화를 보긴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그래서 때론 기억이 뒤섞이고, 친구와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각자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머리가 안 좋다는 것은 신경세포나 해마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것은 신경세포나 해마의 기능이 노화나 질병 같은 것으로 인해 저하되었다는 뜻이다.

 

 

왜 향수병에 걸리는가?

여기서 다시 질문! 왜 우리는 어렸을 적 기억이나 배운 것 등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것일까? 영어를 그렇게 잘했다는 이승만 씨는 치매에 걸린 뒤 영어를 전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치매에 걸렸다 해도 젓가락 사용하는 법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많이 사용한 덕에 뇌에 뚜렷하고 확고하고 넓은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뇌과학적으로 옳다. 이렇게 뇌에 어떤 기억들이 자리 잡는 시기를 결정적 시기라고 부른다. 결정적 시기는, 오리는 태어나서 몇 시간, 고양이는 4~8, 원숭이는 1, 그리고 우리는 10살 정도까지이다. 결정적 시기는 주변 상황에 최적화되도록 뇌가 형성되는 것이다. 김대식은 이렇게 말한다.

 

고향이 편한 이유는 어릴 적 경험한 음식, 소리, 사람, 풍경,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최적화돼 있으면 당연히 편안함을 느낀다. 선택이 필요 없고 막연히 좋다. 거꾸로 다른 환경에 최적화된 뇌를 가진 사람들은 나에게 당연한 것을 전혀 당연해하지 않거나 편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김대식,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50).

 

에스키모인 아이들은 다섯 살만 되어도 급류를 타고 떠내려오는 얼음 위를 뛰어다니면서 강을 건널 수 있다. 환경에 맞게 뇌가 최적화되고, 그 환경에 필요한 삶의 방식을 익히게 된다. 이때 익힌 능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오게 되었을 때, 매주 집엘 갔었다. 왜냐하면 나는 결정적 시기를 나의 고향에서 보냈으니까. 나의 뇌는 내 고향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웬만한 산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그 산골,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그 산골과 나의 뇌는 동기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촌놈인 내가 서울에서 사는 것은 곤욕이었다. 비가 오면 일할 것이 없었던 우리 동네와 달리,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삶을 체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눈이 오면 군불을 때고 등허리를 지지는 우리 동네 사람들과 달리 눈을 맞지 않으려고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서울이 낯설기만 했다. 나는 향수병을 오래도록 앓았다.

인간의 뇌는 양파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정적 시기에 형성된 뇌를 덮으며 새로운 신경회로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전에 형성된 생각은 더욱 단단해지고 확고해지고, 그렇게 꼰대스럽게 된다. 한편으론 새로운 신경회로망이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감각을 익히기도 한다. 즉 뇌는 경직되기도 하지만 새롭게 생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올바른 방식으로 훈련하면 뇌의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 기억력이 나쁘다면 한탄하지 말고 젊은 뇌를 만들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김대식,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112~116).

 

왜 삶속에서 방황하는가?

목표의 추구, 미래 계획, 감정 조절, 의사 결정, 감정 관리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은 앞이마 쪽인 전두엽이다. 14~19세 이전까지는 시기까지는 편도체가 전두엽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니까 청소년기에 편도체에 있던 기능이 전두엽으로 이사를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청소년기에 뇌가 변화를 겪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나 사고도 변화를 겪는 것이다. 발달된 전두엽은 사용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강렬하고 더 자극적이고 반항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시기가 사춘기 혹은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사춘기는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사춘기의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이해하려 말고 평가하려고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일.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고 뇌과학은 말한다(니콜라우스 뉘첼, 위르겐 안드리히, 󰡔청소년을 위한 뇌과학󰡕, 89~102).

사춘기는 방황케 하고 이탈케 한다. 나도 그랬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우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하고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골라서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울했다. 까닭 없이 슬펐다. 삶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했다. 삶이 뭘까, 라는 물음은 철학을 낳기도 하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더 심한 우울을 선사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에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왜, 라는 질문이라고 한다. 왜 살아야 하지, 왜 죽으면 안 되지, 와 같은 질문들. 그런 질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TV 만화인 심슨 가족(The Simpsons)에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심슨네의 장남이자, 온갖 장난과 악행을 일삼는 초등학교 4학년 바트(Bart Simpson)가 우울증에 걸린다. 이 녀석은 거의 배 한 척을 난파시켜 놓고 갑자기 현자 타임에 빠져들기 시작해서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노는 것도 장난을 치는 것에도 시큰둥해진다.

바트가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바트의 동생이자 영리하며 상식적이고 환경주의자인 초등학교 2학년 리사(Lisa Marie Simpson)가 그를 위로해 준다. “그래, 물론 인생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해. 하지만 요령은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기는 거야.”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순간에 충실하는 것, 그 순간을 즐기는 일이라고 리사는 말한 것이다.

아버지 호머(Homer Simpson)도 한 마디 거든다. “그래, 이 멍청아. 재미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만두고 즐기는 거야?” 이 짧은 대사를 분석적으로 보자면, 재미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왜 살지, 왜 먹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라고 묻는 일에 해당한다. 그런 걸 생각할 시간에 닥친 일을 수습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일이다. 정신병 및 심리치료를 연구하고 뇌인지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허지원의 조언도 리사나 호머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 말고는 다들 되게 생각 있어 보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 뭔가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능적 요소라기보다는 상처 입고 고단했던 자기애가 남긴 하나의 증상 같은 것입니다.

삶에는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그것으로 당신은 다 한 겁니다. 살아 있는 부모, 살아 있는 친구, 살아 있는 자식, 살아 있는 나, 그거면 됐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수습하면서 살다가 문득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잦아지고, 또 그다음엔 남에게 기여도 좀 하고요. 시간이 지나 그렇게 쌓인 일상이, 의미라면 의미겠지요.(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187~188.)

 

그런데 우울증을 앓으면, 해마, 편도체, 전전두엽이 축소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것들의 부피가 축소되면 정서적 자극에 과잉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편도체의 부피가 줄어든 사람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SNS 중독이다. 이들은 SNS의 다양한 사람들, 그중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점점 스스로를 궁색하고 저열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런가 하면, 자살시도를 한 사람들은 전전두엽의 부피 감소를 보인다. 전전두엽은 불필요한 행동의 억제, 행동 개시, 미래 계획과 같은 일을 관리하는 곳으로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인 폭식, 폭음, 자살 따위를 선택하게 된다. 우울증이나 자살 시도는 뇌에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 흔적도 치유가 가능하다. 규칙적인 운동, 꾸준한 공부, 약물치료 및 심리치료 등을 통해서 말이다(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180~189.).

요컨대 왜 삶속에서 방황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리가 방황하는 이유는 라고 묻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왜라고 물을 때 우리는 삶에 안착하지 않고 삶으로부터 떨어져서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 라는 물음은 돌연 삶속에서의 삶을 중단시키고 삶 바깥을 헤매게 만든다. 그러니 삶에 발 딛고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해야 하지, 가 아니라 어떻게이것을 하지, 라고 말이다. 니체가 무엇이 도덕인가, 가 아니라 누가 도덕을 규정하는가, 라고 물었듯이, 질문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는 삶에 발을 딛게 하는 마법과 같은 주문이다. 그 주문을 통해 삶에 대한 인상이 아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삶고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뇌를 안다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나의 행동을 이해하고, 나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뇌를 알고 싶어하는 당신을 위해 여기 네 부류의 책을 준비했다.

먼저, 뇌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얻고 싶다면, 󰡔송미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추천한다. 뇌의 해부학적인 세부 명칭이나 각 기능 등에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뇌 생각의 출현󰡕(박문호)의 책을 읽어도 도움이 되겠다. 다음으로 뇌로 인해 생기는 삶의 문제나 철학적 문제들이 궁금하다면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김대식)를 추천한다. 뇌에 대한 적당한 지식,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 그러면서도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매우 인문학적인 뇌과학 책이다. 다음으로,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허지원)는 뇌과학과 심리학이 결합한 책이다. 마음이 아프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성장기 아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청소년을 위한 뇌과학󰡕(비룡소, 니콜라우스 뉘첼 외)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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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등급 영화
김선향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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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으며, 남성으로 살아왔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이 할 수 없는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나는 남자였고, 이미 내가 원하는 직업은 모두 많은 남성들이 원하는 그런 직업이었으니까. 

이 시집을 읽으면서  

과거 지휘자가 되는 것도, 자전거를 타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오늘날 화장실에서 볼 일조차 편히 볼 수 없는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게 되는 시집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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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문학저널 겨울호에 실은 글임을 밝힙니다.




문학처럼 물리학 읽기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마쓰바라 다카히코), 

󰡔평행우주󰡕(미치오 가쿠), 

󰡔물질의 물리학󰡕(한정훈)을 중심으로

 





                            문학사와 물리학사

국문학 공부를 하면서 교수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문학사의 흐름을 인식하면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명의 문인은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존재이지만, 그러한 문인을 문학이라는 역사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대문학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물줄기가 얽히고 섥히는 거대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경계는 모호해서, 비평가들은 이상의 날개(1936)를 모더니즘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리얼리즘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최재서와 같은 평론가는 날개를 리얼리즘의 심화로 보며 고평했으나, 백철과 같은 평론가는 이 작품을 리얼리즘의 타락으로 보면서 평가절하했다.



물리학사에서도 논쟁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예컨대, 가모프가 우주가 거대한 폭발의 결과물이라고 주장(1948)을 했을 때, 뉴턴의 정적 우주론을 옹호했던 프레드 호일은 우주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변화한다는 가모프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일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우주가 하면서 태어났냐고 비아냥댔다. 그런데 빅뱅이라는 말은 인기를 얻어 가모프가 주창한 우주 폭발설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가모프는 조롱조의 빅뱅 이론이라는 이름을 싫어해서 다른 이름을 붙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빅뱅이라는 말에 이미 강력히 매료된 상태여서 아무리 이름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었다고 한다(󰡔평행우주󰡕, 3). 조롱조의 별명이 이름을 잠식하듯이 그렇게 빅뱅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정식화되었다. 호일은 이 빅뱅 이론을 죽을 때까지 수긍하지 않았음에도, 물리학계에서는 빅뱅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것이 아이러니일 텐데, 그런 점에서 과학사는 이미 문학적이다.

날개가 모더니즘이냐 리얼리즘이냐,라는 문학사의 논쟁은, 어떤 결론도 도출하지 못했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다.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물리학사의 논쟁 역시 가모프와 호일 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져 그 둘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물리학에서 벌어진 논쟁은 가모프가 옳다는 것을 분명하게 판단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문학은 작품(언어)을 다루고, 물리학은 물질(사건이나 현상)을 다루는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언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해서 그 해석이 다를 수는 있지만, 틀릴 수는 없다. 물리학에서도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물리학에서 어떤 해석은 종종 명백히 틀리기도 한다. 틀렸다고 여겼던 것이 맞기도 하고, 맞다고 믿었던 것이 틀리기도 하는 세계. 맞음과 틀림이 존재하기도 하는 세계, 여기가 물리학의 세계다.

 


                             문인들과 물리학자들

문인들이 문학사의 한 켠에 기입되는 것은 언제나 사후적이다. 문인들은 문학사에 기입되기 전 삶의 가장 전위에서, (피츠제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우리에게 직면한 삶을 예민하게 감지한다(󰡔위대한 개츠비󰡕). 그리하여 문인들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일상에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삶의 비의를 발견하거나, 다가올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위대한 문인들의 작품은 내용적으로도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으로 문학을 내파한다. 이상은 조선중앙일보오감도를 연재(1934.7.24.~8.8)했는데, 그의 작품은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파괴적이어서 당대 사람들은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예컨대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은 시가에 대한 다시 없는 모독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시는 기지가 아니다, 1935). 사람들은 문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보다는 이상의 연재를 거부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견고한 인식을 보존하려고 했다. 오감도연재가 15회로 끝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상은 연재를 그만두며, “깜빡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라고 하면서도,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라고 일갈했다(오감도 작자의 말). 이상은 스물 여덟 해를 완전히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물리학사를 들여다보면 이어달리기 경주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케플러(1571~1630)는 행성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것을 밝혔으며, 갈릴레오(1564~1642)는 망원경을 통해 실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뒤 뉴턴(1642~1727)은 행성이 공전하는 이유는 만유인력(중력) , 더 큰 행성이 작은 행성을 잡아 당기는 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곳에 작용하며 모든 물체가 가지고 있는 만유인력을 통해 우주는 완전히 설명되는 듯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1879~1955)이 등장하여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중력은 사실 당기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을 휘어지게 하는 힘이라고 새롭게 정의했다(󰡔물리학은 처음인데요󰡕, 2, 6). (중력에 대해서라면 유튜브에 어느 외국 대학의 중력 강의법이라는 영상을 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학자들의 사이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격인 김억이 이상을 공격했듯, 당대 실증주의로 명성을 날렸던 에른스트 마흐(1838~1916)는 원자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던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을 비판했다. 그 이유는 볼츠만의 주장이 긍정적으로 보면 획기적이나, 부정적으로 보면 너무 뚱딴지 같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에너지가 연속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볼츠만은 관찰을 통해 운동 중인 기체 입자들이 특정 에너지 준위에서 다른 준위로 점프한다고 예측했다(󰡔물리학은 처음인데요󰡕, 2). 이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전자를 관측하고서야 안 것인데 볼츠만은 통계학적 추론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마흐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마흐의 공격의 핵심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실체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흐는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실측할 수 없는 원자의 존재를 주장하는 볼츠만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이 일 때문인지는 모르나 볼츠만의 우울증은 심각해졌고, 그는 결국 아드리아해에 닿아 있는 휴양 도시 두이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볼츠만의 주장에는 물질의 에너지는 연속적(아날로그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디지털화)으로 되어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볼츠만의 아이디어는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과 맞닿아 있다. 양자역학은 원자, 분자 등 미시적인 물질 세계를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기본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러한 미시세계의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이라는 것, 그리하여 에너지를 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물질의 물리학󰡕, 1).

에너지를 양적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은 빛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전까지 물리학자들은 빛은 에너지의 연속으로 된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파동이라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물결은 물이라는 매질의 떨림일 뿐 물결 자체가 물질이 아니다. 빛도 어떤 매질의 떨림일 뿐 빛 자체가 물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물질의 물리학󰡕, 150). 빛이 파장이라고 믿었던 뉴턴은 빛의 매질을 에테르라고 명명했으나, 마이컬슨-몰리는 실험(1887)을 통해 에테르가 없음을 증명했다. 에테르가 없다는 것, 그것은 빛이 파장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물리학은 처음인데요󰡕, 6). 그렇다면 빛은 무엇인가?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은 하나, 둘 이런 식으로 셀 수 있는 양자화된 에너지 덩어리(광자)로 정의했다. 빛은 이제 에테르라는 매질이 필요없는 물질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문학 작품과 물리학 저서

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사람들은 서사가 뚜렷한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모비딕󰡕 같이 두꺼운 작품도 잘 읽는다. 작품들 사이 사이 숨어 있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서사를 따라가는 것만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사람들과 읽은 책 중에서 흥미로웠던 책은 까뮈의 󰡔페스트󰡕였다. 코로나19가 활개치는 현재의 상황과도 딱 들어맞는 책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서사가 뚜렷했고,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그랑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소심한 그랑은 멋진 소설을 쓰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다. 그런데 그가 몇 년에 걸쳐 쓴 것이라고는 한 문장 밖에 되지 않는다. “5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에 우아한 여인 한 명이 근사한 밤색 암말을 타고 불로뉴 숲의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게 전부다. 이 문장을 수없이 다듬고 다듬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대충 써둔 것에 불과해요. 내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장면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고 말을 타는 속도와 내 문장이 딱 들어맞게 되면 나머지는 더 쉬어질 겁니다. 그러면 환상이 처음부터 무척 강해서 모자를 벗으시오!’라는 소리가 나오겠지요.”(󰡔페스트󰡕, 문학동네, 126.) 말을 타는 속도와 문장이 딱 들어맞는 소설, 시와 같은 리듬감을 가지면서 그 리듬감과 동일한 서사가 진행되는 소설, 이것은 어쩌면 까뮈가 생각한 이상적인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페스트󰡕는 하나의 아름다운 구조물과도 같았다. 모든 문장과 문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어느 문장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렇게 꽉 짜여진 단편소설로는 칸막이 객실(레이먼드 카버),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김연수) 등의 소설이 있다. 그런데 󰡔페스트󰡕는 장편임에도 단편소설이 이룩한 미적 아름다움에 다가간다. 그 뿐만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묵직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물리학 책 중에 󰡔페스트󰡕 같은 책이 있다면 󰡔평행우주󰡕(미치오 가쿠)일 것이다. 󰡔평행우주󰡕의 각각의 장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자신이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그만이다. 다 읽으면 수없이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다중우주론이 등장하기까지의 과학사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수도 있다. 마치 미적으로 아름다운 소설이 그러하듯이 󰡔평행우주󰡕의 부분은 전체와 연결되어 있어 아름다운 구조물처럼 느껴진다.

󰡔평행우주󰡕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올베르스의 역설을 설명한 부분이다.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의 물음은 아주 간단하다. ‘왜 밤하늘은 어두운가?’ (여기에 대해서라면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 좋겠다.) 무척 간단하게 들리는 이 물음을 해결하지 못해 물리학자들이 헛발질을 하고 있을 때,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이런 답을 제시한다.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유레카, 1848)라고 말이다. 이 말 뒤에 덧붙인 포의 말이 더욱 가관인데,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포의 말에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어서 멀리 있는 빛이 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제기되었고, 그러고도 7~80년이 지나서야 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평행우주󰡕, 2). 이 외에도 저자는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물리학을 친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한다.

󰡔물질의 물리학󰡕 또한 󰡔평행우주󰡕에 견줄만 하다. 이 책은 양자역학사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지만, 노벨물리학상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저자의 전공 분야인 양자 스핀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물질의 물리학󰡕의 가장 큰 장점은 전자, 양자, 중성자와 같은 아주 어렵고 복잡한 미시 세계의 움직임을 쉽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한 권만 읽으면 전부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르는 분야를 탐구할 때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게 될 위험이 있다. 조금 저항감을 줄여줄 방법은 있다. 위에서 소개한 물리학 책을 알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차례로 읽어가는 것이 좋겠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마쓰바라 다카히코)를 읽고, 그 다음에 󰡔평행우주󰡕(미치오 가쿠), 그 다음에 󰡔물질의 물리학󰡕(한정훈)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문학이 아름다운 만큼 물리학도 아름답다는 것을 수긍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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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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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정미와 정대, 동호, 은숙, 진수, 선미, 그리고 나의 이야기.
저들의 이야기를 쓰는 동안 작가는 저들과 함께 수없이 죽고, 저들과 함께 고문당하고 저들과 함께 트라우마에 시달렸으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책과 함께 1980년 5월이 다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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