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문학저널 겨울호에 실은 글임을 밝힙니다.




문학처럼 물리학 읽기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마쓰바라 다카히코), 

󰡔평행우주󰡕(미치오 가쿠), 

󰡔물질의 물리학󰡕(한정훈)을 중심으로

 





                            문학사와 물리학사

국문학 공부를 하면서 교수님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은 문학사의 흐름을 인식하면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 명의 문인은 개별적이고 독자적인 존재이지만, 그러한 문인을 문학이라는 역사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대문학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라는 물줄기가 얽히고 섥히는 거대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경계는 모호해서, 비평가들은 이상의 날개(1936)를 모더니즘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리얼리즘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최재서와 같은 평론가는 날개를 리얼리즘의 심화로 보며 고평했으나, 백철과 같은 평론가는 이 작품을 리얼리즘의 타락으로 보면서 평가절하했다.



물리학사에서도 논쟁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예컨대, 가모프가 우주가 거대한 폭발의 결과물이라고 주장(1948)을 했을 때, 뉴턴의 정적 우주론을 옹호했던 프레드 호일은 우주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변화한다는 가모프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호일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우주가 하면서 태어났냐고 비아냥댔다. 그런데 빅뱅이라는 말은 인기를 얻어 가모프가 주창한 우주 폭발설의 이름으로 굳어졌다. 가모프는 조롱조의 빅뱅 이론이라는 이름을 싫어해서 다른 이름을 붙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빅뱅이라는 말에 이미 강력히 매료된 상태여서 아무리 이름을 바꾸려고 해도 바꿀 수 없었다고 한다(󰡔평행우주󰡕, 3). 조롱조의 별명이 이름을 잠식하듯이 그렇게 빅뱅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정식화되었다. 호일은 이 빅뱅 이론을 죽을 때까지 수긍하지 않았음에도, 물리학계에서는 빅뱅 이론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것이 아이러니일 텐데, 그런 점에서 과학사는 이미 문학적이다.

날개가 모더니즘이냐 리얼리즘이냐,라는 문학사의 논쟁은, 어떤 결론도 도출하지 못했고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었다. 우주는 어떻게 탄생했을까,라는 물리학사의 논쟁 역시 가모프와 호일 간의 감정 싸움으로 번져 그 둘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물리학에서 벌어진 논쟁은 가모프가 옳다는 것을 분명하게 판단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문학은 작품(언어)을 다루고, 물리학은 물질(사건이나 현상)을 다루는 데에서 기인할 것이다. 언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해서 그 해석이 다를 수는 있지만, 틀릴 수는 없다. 물리학에서도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물리학에서 어떤 해석은 종종 명백히 틀리기도 한다. 틀렸다고 여겼던 것이 맞기도 하고, 맞다고 믿었던 것이 틀리기도 하는 세계. 맞음과 틀림이 존재하기도 하는 세계, 여기가 물리학의 세계다.

 


                             문인들과 물리학자들

문인들이 문학사의 한 켠에 기입되는 것은 언제나 사후적이다. 문인들은 문학사에 기입되기 전 삶의 가장 전위에서, (피츠제럴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1만 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우리에게 직면한 삶을 예민하게 감지한다(󰡔위대한 개츠비󰡕). 그리하여 문인들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일상에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삶의 비의를 발견하거나, 다가올 삶의 모습을 보여 준다.





위대한 문인들의 작품은 내용적으로도 충격을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식으로 문학을 내파한다. 이상은 조선중앙일보오감도를 연재(1934.7.24.~8.8)했는데, 그의 작품은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파괴적이어서 당대 사람들은 거부감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예컨대 김소월의 스승인 김억은 시가에 대한 다시 없는 모독이라며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시는 기지가 아니다, 1935). 사람들은 문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보다는 이상의 연재를 거부함으로써 문학에 대한 자신의 견고한 인식을 보존하려고 했다. 오감도연재가 15회로 끝난 것은 이 때문이다. 이상은 연재를 그만두며, “깜빡 신문이라는 답답한 조건을 잊어버린 것도 실수라고 하면서도, “호령하여도 에코가 없는 무인지경은 딱하다.”라고 일갈했다(오감도 작자의 말). 이상은 스물 여덟 해를 완전히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


물리학사를 들여다보면 이어달리기 경주를 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원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케플러(1571~1630)는 행성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것을 밝혔으며, 갈릴레오(1564~1642)는 망원경을 통해 실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뒤 뉴턴(1642~1727)은 행성이 공전하는 이유는 만유인력(중력) , 더 큰 행성이 작은 행성을 잡아 당기는 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곳에 작용하며 모든 물체가 가지고 있는 만유인력을 통해 우주는 완전히 설명되는 듯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1879~1955)이 등장하여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중력은 사실 당기는 힘이 아니라 시공간을 휘어지게 하는 힘이라고 새롭게 정의했다(󰡔물리학은 처음인데요󰡕, 2, 6). (중력에 대해서라면 유튜브에 어느 외국 대학의 중력 강의법이라는 영상을 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고 해서 물리학자들의 사이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 격인 김억이 이상을 공격했듯, 당대 실증주의로 명성을 날렸던 에른스트 마흐(1838~1916)는 원자가 실재한다고 주장했던 루트비히 볼츠만(1844~1906)을 비판했다. 그 이유는 볼츠만의 주장이 긍정적으로 보면 획기적이나, 부정적으로 보면 너무 뚱딴지 같은 소리였기 때문이다.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에너지가 연속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볼츠만은 관찰을 통해 운동 중인 기체 입자들이 특정 에너지 준위에서 다른 준위로 점프한다고 예측했다(󰡔물리학은 처음인데요󰡕, 2). 이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전자를 관측하고서야 안 것인데 볼츠만은 통계학적 추론을 통해 이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마흐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마흐의 공격의 핵심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 실체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흐는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실측할 수 없는 원자의 존재를 주장하는 볼츠만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이 일 때문인지는 모르나 볼츠만의 우울증은 심각해졌고, 그는 결국 아드리아해에 닿아 있는 휴양 도시 두이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볼츠만의 주장에는 물질의 에너지는 연속적(아날로그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디지털화)으로 되어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러한 볼츠만의 아이디어는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과 맞닿아 있다. 양자역학은 원자, 분자 등 미시적인 물질 세계를 설명하는 현대물리학의 기본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러한 미시세계의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이라는 것, 그리하여 에너지를 양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물질의 물리학󰡕, 1).

에너지를 양적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은 빛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전까지 물리학자들은 빛은 에너지의 연속으로 된 파동이라고 생각했다. 빛이 파동이라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물결은 물이라는 매질의 떨림일 뿐 물결 자체가 물질이 아니다. 빛도 어떤 매질의 떨림일 뿐 빛 자체가 물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물질의 물리학󰡕, 150). 빛이 파장이라고 믿었던 뉴턴은 빛의 매질을 에테르라고 명명했으나, 마이컬슨-몰리는 실험(1887)을 통해 에테르가 없음을 증명했다. 에테르가 없다는 것, 그것은 빛이 파장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물리학은 처음인데요󰡕, 6). 그렇다면 빛은 무엇인가? 1905년 아인슈타인은 빛은 하나, 둘 이런 식으로 셀 수 있는 양자화된 에너지 덩어리(광자)로 정의했다. 빛은 이제 에테르라는 매질이 필요없는 물질로 인식되게 된 것이다.

 

문학 작품과 물리학 저서

책 읽기 모임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사람들은 서사가 뚜렷한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나 󰡔모비딕󰡕 같이 두꺼운 작품도 잘 읽는다. 작품들 사이 사이 숨어 있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서사를 따라가는 것만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사람들과 읽은 책 중에서 흥미로웠던 책은 까뮈의 󰡔페스트󰡕였다. 코로나19가 활개치는 현재의 상황과도 딱 들어맞는 책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책은 서사가 뚜렷했고, 문학적인 아름다움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그랑이 등장하는 부분이다. 소심한 그랑은 멋진 소설을 쓰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다. 그런데 그가 몇 년에 걸쳐 쓴 것이라고는 한 문장 밖에 되지 않는다. “5월의 어느 화창한 아침에 우아한 여인 한 명이 근사한 밤색 암말을 타고 불로뉴 숲의 꽃이 만발한 오솔길을 달리고 있었다.” 이게 전부다. 이 문장을 수없이 다듬고 다듬었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대충 써둔 것에 불과해요. 내가 머릿속에 그려놓은 장면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하고 말을 타는 속도와 내 문장이 딱 들어맞게 되면 나머지는 더 쉬어질 겁니다. 그러면 환상이 처음부터 무척 강해서 모자를 벗으시오!’라는 소리가 나오겠지요.”(󰡔페스트󰡕, 문학동네, 126.) 말을 타는 속도와 문장이 딱 들어맞는 소설, 시와 같은 리듬감을 가지면서 그 리듬감과 동일한 서사가 진행되는 소설, 이것은 어쩌면 까뮈가 생각한 이상적인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페스트󰡕는 하나의 아름다운 구조물과도 같았다. 모든 문장과 문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어느 문장하나 버릴 것이 없다. 이렇게 꽉 짜여진 단편소설로는 칸막이 객실(레이먼드 카버),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김연수) 등의 소설이 있다. 그런데 󰡔페스트󰡕는 장편임에도 단편소설이 이룩한 미적 아름다움에 다가간다. 그 뿐만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묵직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물리학 책 중에 󰡔페스트󰡕 같은 책이 있다면 󰡔평행우주󰡕(미치오 가쿠)일 것이다. 󰡔평행우주󰡕의 각각의 장은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자신이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도 그만이다. 다 읽으면 수없이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다중우주론이 등장하기까지의 과학사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수도 있다. 마치 미적으로 아름다운 소설이 그러하듯이 󰡔평행우주󰡕의 부분은 전체와 연결되어 있어 아름다운 구조물처럼 느껴진다.

󰡔평행우주󰡕에서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올베르스의 역설을 설명한 부분이다. 올베르스(Heinrich Wilhelm Olbers)의 물음은 아주 간단하다. ‘왜 밤하늘은 어두운가?’ (여기에 대해서라면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라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이 좋겠다.) 무척 간단하게 들리는 이 물음을 해결하지 못해 물리학자들이 헛발질을 하고 있을 때, 애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이런 답을 제시한다. “별들이 끝없이 나열되어 있다면 밤하늘은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별이 존재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주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 있는 천체로부터 방출된 빛이 아직 우리의 눈에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유레카, 1848)라고 말이다. 이 말 뒤에 덧붙인 포의 말이 더욱 가관인데,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에 틀렸을 리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포의 말에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어서 멀리 있는 빛이 아직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가설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제기되었고, 그러고도 7~80년이 지나서야 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된다(󰡔평행우주󰡕, 2). 이 외에도 저자는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물리학을 친절하면서도 쉽게 설명한다.

󰡔물질의 물리학󰡕 또한 󰡔평행우주󰡕에 견줄만 하다. 이 책은 양자역학사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지만, 노벨물리학상의 역사를 정리하고 있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저자의 전공 분야인 양자 스핀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물질의 물리학󰡕의 가장 큰 장점은 전자, 양자, 중성자와 같은 아주 어렵고 복잡한 미시 세계의 움직임을 쉽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한 권만 읽으면 전부를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모르는 분야를 탐구할 때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게 될 위험이 있다. 조금 저항감을 줄여줄 방법은 있다. 위에서 소개한 물리학 책을 알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차례로 읽어가는 것이 좋겠다. 󰡔물리학은 처음인데요󰡕(마쓰바라 다카히코)를 읽고, 그 다음에 󰡔평행우주󰡕(미치오 가쿠), 그 다음에 󰡔물질의 물리학󰡕(한정훈) 이렇게 말이다. 그렇게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문학이 아름다운 만큼 물리학도 아름답다는 것을 수긍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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