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1년 <<문학저널>> 봄호에 실린 서평임을 밝힙니다.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뇌과학

 

 

왜 내 기억력은 이 모양인가?

요즘은 꽃에 관심이 생겼다. 매주 꽃을 사서 책상 앞에 놓아두고 꽃의 이름을 적어 놓는다. 지난주에는 다홍빛의 라넌큘러스, 옅은 노란빛의 거베라, 흰빛의 솔매, 또 노랗고 하얀 알스트로메리아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도록 화병에 꽂아놓았다. 꽃집 사장님이 아주 감각적으로 꾸며 주어서 일주일 동안 행복했다. 이번 주엔 프리지아랑 또 뭐더라? 이런 식이다. 꽃 이름을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을 할 수 없다. 아무리 외우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컴퓨터 모니터 아래에는 조선시대 왕들의 이름을 붙여 놨다. 국사 시간에 왕들 이름을 못 외워서 지금이라도 외워볼까 하고 석 달 전에 붙여놨는데, 결과는 낙제 점수다. 첫 줄의 일곱 명의 왕 이름은 외우겠는데, ‘예성경중다음부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왜 내 기억력은 이 모양인가?

머리가 안 좋으니까, 라고 무심코 말하겠지만, 그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머리가 안 좋다는 게 뭐야? 그래도 어렸을 때는 기억을 잘했는데, 왜 지금은 그때만큼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와 같은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되돌려 받은 질문에 대해 뇌과학적으로 답해볼까?

뇌에는 엄청나게 많은 길들이 있다. 사춘기 무렵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한다. 대략 1000억 개의 길과, 길과 길을 연결시켜주는 시냅스라는 고리가 있는데, 이 고리는 또 100조 개 정도다. 이러한 길 만들기는 40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일어난다. (이 말은 40대가 지나면 길을 만드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즉 노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뇌는 이렇게 길을 만들고, 자주 다니는 길은 더 넓히고, 다니지 않는 길은 없앤다. 이 길을 신경세포’(뉴런)라고 부른다. 길들은 여러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길은 바다동물인 해마(sea horse)를 닮은, 5cm 정도 길이의 해마(hippocampus)에 연결되어 있다. 이 해마에 우리의 기억이 저장된다. 그냥 있는 대로 하나하나 다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압축되어 저장된다(송미령, 󰡔송미령의 뇌과학 연구소󰡕, 27~40).

압축되어 저장된다는 것은, 영화의 내용이 세세하게 몽땅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덩어리로 기억된다는 뜻이다. 재밌었다, 재미없었다, 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이런 식으로 기억되기 때문에, 영화관에 나와서 재밌었지? . 어떤 부분이 재밌었어? , 그냥 재밌던데. 라는 식의 대화를 나눈다.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하고 인상만 기억하는 것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재미가 있었는지, 그 영화를 보긴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으니까. 그래서 때론 기억이 뒤섞이고, 친구와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각자 다르게 기억하기도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머리가 안 좋다는 것은 신경세포나 해마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것은 신경세포나 해마의 기능이 노화나 질병 같은 것으로 인해 저하되었다는 뜻이다.

 

 

왜 향수병에 걸리는가?

여기서 다시 질문! 왜 우리는 어렸을 적 기억이나 배운 것 등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 것일까? 영어를 그렇게 잘했다는 이승만 씨는 치매에 걸린 뒤 영어를 전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치매에 걸렸다 해도 젓가락 사용하는 법을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많이 사용한 덕에 뇌에 뚜렷하고 확고하고 넓은 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뇌과학적으로 옳다. 이렇게 뇌에 어떤 기억들이 자리 잡는 시기를 결정적 시기라고 부른다. 결정적 시기는, 오리는 태어나서 몇 시간, 고양이는 4~8, 원숭이는 1, 그리고 우리는 10살 정도까지이다. 결정적 시기는 주변 상황에 최적화되도록 뇌가 형성되는 것이다. 김대식은 이렇게 말한다.

 

고향이 편한 이유는 어릴 적 경험한 음식, 소리, 사람, 풍경,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뇌를 완성시킨 바로 그 원인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최적화돼 있으면 당연히 편안함을 느낀다. 선택이 필요 없고 막연히 좋다. 거꾸로 다른 환경에 최적화된 뇌를 가진 사람들은 나에게 당연한 것을 전혀 당연해하지 않거나 편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김대식,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50).

 

에스키모인 아이들은 다섯 살만 되어도 급류를 타고 떠내려오는 얼음 위를 뛰어다니면서 강을 건널 수 있다. 환경에 맞게 뇌가 최적화되고, 그 환경에 필요한 삶의 방식을 익히게 된다. 이때 익힌 능력은 나이가 들어서도 없어지지 않는다. 내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오게 되었을 때, 매주 집엘 갔었다. 왜냐하면 나는 결정적 시기를 나의 고향에서 보냈으니까. 나의 뇌는 내 고향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웬만한 산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그 산골,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그 산골과 나의 뇌는 동기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촌놈인 내가 서울에서 사는 것은 곤욕이었다. 비가 오면 일할 것이 없었던 우리 동네와 달리,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서울의 삶을 체화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눈이 오면 군불을 때고 등허리를 지지는 우리 동네 사람들과 달리 눈을 맞지 않으려고 우산을 쓰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서울이 낯설기만 했다. 나는 향수병을 오래도록 앓았다.

인간의 뇌는 양파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정적 시기에 형성된 뇌를 덮으며 새로운 신경회로망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전에 형성된 생각은 더욱 단단해지고 확고해지고, 그렇게 꼰대스럽게 된다. 한편으론 새로운 신경회로망이 형성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감각을 익히기도 한다. 즉 뇌는 경직되기도 하지만 새롭게 생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올바른 방식으로 훈련하면 뇌의 노화를 방지할 수 있다. 기억력이 나쁘다면 한탄하지 말고 젊은 뇌를 만들 수 있도록 훈련하면 된다(김대식,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112~116).

 

왜 삶속에서 방황하는가?

목표의 추구, 미래 계획, 감정 조절, 의사 결정, 감정 관리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곳은 앞이마 쪽인 전두엽이다. 14~19세 이전까지는 시기까지는 편도체가 전두엽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니까 청소년기에 편도체에 있던 기능이 전두엽으로 이사를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청소년기에 뇌가 변화를 겪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나 사고도 변화를 겪는 것이다. 발달된 전두엽은 사용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더 강렬하고 더 자극적이고 반항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시기가 사춘기 혹은 질풍노도의 시기이다. 사춘기는 정신적인 문제가 아니라 물질적인 문제이다. 그러니 사춘기의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이해하려 말고 평가하려고도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일. 그런 여유가 필요하다고 뇌과학은 말한다(니콜라우스 뉘첼, 위르겐 안드리히, 󰡔청소년을 위한 뇌과학󰡕, 89~102).

사춘기는 방황케 하고 이탈케 한다. 나도 그랬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우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노름도 하고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골라서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울했다. 까닭 없이 슬펐다. 삶을 생각하고 죽음을 생각했다. 삶이 뭘까, 라는 물음은 철학을 낳기도 하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더 심한 우울을 선사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에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왜, 라는 질문이라고 한다. 왜 살아야 하지, 왜 죽으면 안 되지, 와 같은 질문들. 그런 질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TV 만화인 심슨 가족(The Simpsons)에는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심슨네의 장남이자, 온갖 장난과 악행을 일삼는 초등학교 4학년 바트(Bart Simpson)가 우울증에 걸린다. 이 녀석은 거의 배 한 척을 난파시켜 놓고 갑자기 현자 타임에 빠져들기 시작해서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노는 것도 장난을 치는 것에도 시큰둥해진다.

바트가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어 할 때, 바트의 동생이자 영리하며 상식적이고 환경주의자인 초등학교 2학년 리사(Lisa Marie Simpson)가 그를 위로해 준다. “그래, 물론 인생은 고통과 고난으로 가득해. 하지만 요령은 순간에 주어진 몇몇 완벽한 경험들을 즐기는 거야.”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순간에 충실하는 것, 그 순간을 즐기는 일이라고 리사는 말한 것이다.

아버지 호머(Homer Simpson)도 한 마디 거든다. “그래, 이 멍청아. 재미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만두고 즐기는 거야?” 이 짧은 대사를 분석적으로 보자면, 재미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왜 살지, 왜 먹지, 왜 이 일을 해야 하지, 라고 묻는 일에 해당한다. 그런 걸 생각할 시간에 닥친 일을 수습하는 것, 그것이 현명한 일이다. 정신병 및 심리치료를 연구하고 뇌인지과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허지원의 조언도 리사나 호머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 말고는 다들 되게 생각 있어 보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삶에 뭔가 큰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믿음은,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능적 요소라기보다는 상처 입고 고단했던 자기애가 남긴 하나의 증상 같은 것입니다.

삶에는 큰 의미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의미입니다. 그것으로 당신은 다 한 겁니다. 살아 있는 부모, 살아 있는 친구, 살아 있는 자식, 살아 있는 나, 그거면 됐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수습하면서 살다가 문득 행복하다 느끼는 순간이 잦아지고, 또 그다음엔 남에게 기여도 좀 하고요. 시간이 지나 그렇게 쌓인 일상이, 의미라면 의미겠지요.(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187~188.)

 

그런데 우울증을 앓으면, 해마, 편도체, 전전두엽이 축소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것들의 부피가 축소되면 정서적 자극에 과잉 반응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편도체의 부피가 줄어든 사람들이 보이는 문제 행동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이 SNS 중독이다. 이들은 SNS의 다양한 사람들, 그중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며 점점 스스로를 궁색하고 저열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런가 하면, 자살시도를 한 사람들은 전전두엽의 부피 감소를 보인다. 전전두엽은 불필요한 행동의 억제, 행동 개시, 미래 계획과 같은 일을 관리하는 곳으로 여기에 문제가 생기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인 폭식, 폭음, 자살 따위를 선택하게 된다. 우울증이나 자살 시도는 뇌에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 흔적도 치유가 가능하다. 규칙적인 운동, 꾸준한 공부, 약물치료 및 심리치료 등을 통해서 말이다(허지원,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 180~189.).

요컨대 왜 삶속에서 방황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리가 방황하는 이유는 라고 묻기 때문이다. 삶에 대해 왜라고 물을 때 우리는 삶에 안착하지 않고 삶으로부터 떨어져서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 라는 물음은 돌연 삶속에서의 삶을 중단시키고 삶 바깥을 헤매게 만든다. 그러니 삶에 발 딛고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것을 해야 하지, 가 아니라 어떻게이것을 하지, 라고 말이다. 니체가 무엇이 도덕인가, 가 아니라 누가 도덕을 규정하는가, 라고 물었듯이, 질문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는 삶에 발을 딛게 하는 마법과 같은 주문이다. 그 주문을 통해 삶에 대한 인상이 아닌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삶고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뇌를 안다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나의 행동을 이해하고, 나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뇌를 알고 싶어하는 당신을 위해 여기 네 부류의 책을 준비했다.

먼저, 뇌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얻고 싶다면, 󰡔송미령의 뇌과학 연구소󰡕를 추천한다. 뇌의 해부학적인 세부 명칭이나 각 기능 등에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뇌 생각의 출현󰡕(박문호)의 책을 읽어도 도움이 되겠다. 다음으로 뇌로 인해 생기는 삶의 문제나 철학적 문제들이 궁금하다면 󰡔내 머릿속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김대식)를 추천한다. 뇌에 대한 적당한 지식,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 그러면서도 사유의 깊이가 느껴지는 매우 인문학적인 뇌과학 책이다. 다음으로,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허지원)는 뇌과학과 심리학이 결합한 책이다. 마음이 아프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성장기 아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 󰡔청소년을 위한 뇌과학󰡕(비룡소, 니콜라우스 뉘첼 외)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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