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홉슨의 제국주의론이 나오기 1년 전인 1901년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가 출간되었습니다.고도쿠 슈스이(1871-1901)의 역저이지요.그의 저작은 홉슨에 비하여 학술적인 연구서는 아니지만 그 날카로운 통찰력은 지금 음미해 보아도 설득력이 있습니다.특히 제국주의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지요.그의 저작 중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제국주의자들은 일제히 입을 모아 "무역이 중요하다,영토의 확장은 우리의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구하는 데 있어 실로 급선무이다" 고 외친다.그들은 무엇때문에 새로운 시장의 개척을 필요로 하는가.그것은 자본의 과잉생산 때문이다.하지만 자본가들이 과잉생산으로 고민하고 있는 이면에는 수천만의 빈민들이 먹고 입을 것도 부족하여 고생하고 있다.저들의 과잉생산이란 시실은 수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수 국민의 구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런 구매력의 저하는 부의 분배가 공평성을 잃어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기 때문에 생긴다. 

...따라서 오늘날 구미의 경제문제는 다른 가난한 국민을 압박하고 이를 굴복시켜 그 상품소비를 강요하기에 앞서 먼저 자국의 다수 국민의 구매력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그러려면 자본에 대한 특혜적인 권리부여를 금지하고 일반 노동자에 대하여 공평하게 이익을 분배해야 한다.그러므로 분배를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자유경쟁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조하여 사회주의적인 제도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도쿠 슈스이는 아나코 신디칼리즘에 기울어져 직접행동론을 주창하는 등 정통 맑시즘과는 거리가 있지만 반전 평화 제국주의 운동으로 일본의 앞날에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1905년 7월 21일 을사조약을 앞 두고 그는 사카이 도시히코 등과 함께 일제의 조선정책을 반대하는 결의문인"우리는 조선인민의 자유,독립,자치의 권리를 존중하고,이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은 만국평민 계급공통의 이익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본다.그러므로 일본정부는 조선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는 언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를 세계 각국에 호소하였습니다.이 결의에는 고도쿠와 거리를 두던 사회주의자들도 분파를 넘어 공동행동을 취하였지요.일본의 민주투사로 숭앙받던 자유민권운동 계열들도 일제의 한국지배에 대해선 별다른 비판이 없었던 당시를 생각해 본다면 이들의 반전-반제국주의 사상은 돋보입니다. 

  존 홉슨의 <제국주의론>은 레닌의 1917년 저작인 <제국주의-자본주의의 최고단계>에 인용되어 유명해졌습니다.홉슨은 진보적 자유주의자이긴 하지만 사회주의자는 아니었는데도 카우츠키의 제국주의론이 레닌의 맹비난을 받은 것에 비해 비교적 후한 평을 받았지요.하지만 홉슨의 저작에는 요즘 중국경계론과 비슷한 주장이 있어서 놀라게 됩니다.그의 <제국주의론> 뒤편의 '아시아의 제국주의'장에는 "중국이 형세를 역전시켜 서구 산업국가의 자본과 관리자를 차용하여,혹은 중국의 자본가와 관리자를 활용하여 값싼 자국 상품으로 자국시장을 석권한 뒤 무역에서는 서구 수입상품을 거부하면, 결국 이전의 후원자이면서 중국을 개화시켜 준 국가들을 재정적으로 지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게다가 "황인종 노동자,황인종 용병부대 및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유입될 농산물과 공산품에 우리 농민과 노동자의 복지가 위협받지 않을까"하는 언급에서는 인종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입니다.1900년 의화단의 봉기를 진압하러 중국으로 출동하는 독일군에게 카이저인 빌헬름 2세가 "황인종이 유럽을 지배할 지도 모르니 난을 일으킨 중국인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형편이었고 중국과 일본이 연합하여 유럽열강에 대항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유럽과 미국에 퍼져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홉슨 같은 진보주의자까지...하는 놀라움은 금할 수 없지요. 

 고도쿠 슈스이는 천황암살 모의에 가담했다는 조작극에 걸려 투옥된 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집니다.그와 함께 아나키스트로 쌍벽을 이루던 오스키 사카에는 관동대지진의 와중에 아마이에게 살해당합니다.오스키의 경우엔 그의 자서전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으나 고도쿠가 생전에 "나를 알려거든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된다"고 자신만만했던 그의 대표작<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는 아직 번역이 안되어 있습니다.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내세운 사이비 아시아주의와 달리 반전 민족자결,반 제국주의를 내걸고, 1907년 일본에 망명해 온 중국,필리핀,베트남,인도의 혁명가,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동화 화친회를 결성하기도 한 진짜 아시아주의자인 고도쿠의 전기나 그의 저서를 우리말로 읽고 싶군요.그는 또 박노자가 좋아하는 아나키스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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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1-08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국내 경제 관련 기사를 봐도 내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가 종종 보이더군요. 일자리도 늘어나질 않고 고용의 질도 떨어지고 그렇다고 사회안전망이 잘 갖춰진것도 아닌데 유가환급금 몇 푼 쥐어주고 서민을 생각한다고 하니 참 어이가 없네요. 두 번째 문단의 글은 짧지만 굉장히 명쾌하네요.
말씀하신 존 홉슨의 사례가 프랑스의 똘레랑스나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종교탄압을 피해 아메리카에 정착한 사람들이 만든 종교자유조례 등과 같이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가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주민들과 인디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을 볼 때 말이죠.
고도쿠 슈스이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01-08 17:46   좋아요 0 | URL
내수가 부족해서 공황이 생긴다는 이론을 과소소비론이라고 하는데 맬서스도 주장했고 그 이전의 옛날 경제학자들도 했던 주장입니다.하지만 고도쿠는 이를 제국주의론과 연결했지요.홉슨도 여기에 속합니다만 혁명가는 아닙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황인종에 대한 테러가 굉장히 심했습니다.구타는 물론이며 살인까지 서슴지 않았지요.

머큐리 2009-01-08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퍼가도 뭐라 안하실 거죠...^^; 매일 눈팅만 하다 퍼가기까지 하면 죄송스러워서

노이에자이트 2009-01-08 16:57   좋아요 0 | URL
죄송스러울 것까지야...종종 들러서 좋은 말씀 부탁합니다.

비로그인 2009-01-08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도 뉴스 나왔지만 러시아도 제노포비아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해당 국가가 자국민에 대한 보호 노력이 소홀할수록 표적이 되는 것 같아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해보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01-08 23:25   좋아요 0 | URL
제정 러시아 때 유태인 학살은 유명했지요.그래서 유럽이나 미국으로 이민간 유태인들이 많았습니다.최근엔 나치조직도 생겼는데...2차대전 때 독일군에게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나라에서 웬 나치? 했지만 역시 폭력적인 인종차별주의는 그런 걸 안 가리죠.

파란여우 2009-01-08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도한 민족주의도 제노포비아를 양산시킨다고 보는데요, 우리나라 같은 민족순결주의에 걸린 국가일수록 위험성이 높죠. 현재까지 의도적인 폭동은 안일어나고 있지만 경제상황이 악화될수록 이런 불안감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취업이 안된 청년이 문방구, 고시원 등을 방화하는 것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피해의식을 조장시키는 국가폭력이 가장 저열하고 위험한 것이지만요.

노이에자이트 2009-01-09 00:3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노동자 물러가라는 구호를 내건 단체가 생겼더군요.마치 유럽의 파시스트 단체가 생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순혈주의에 기반한 극단적인 국수주의가 워낙 강해서 염려됩니다.

비로그인 2009-01-09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네시로 가즈키의 <플라이 대디 플라이>에서도 재일동포 고교생 박순신이 어렸을 적에 한 일본인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는데 그 이유가 일본인이 직장에서 해고되었고 해고의 원인을 외국인들 때문이라고 생각해 마침 지나가는 길에 朴이라는 문패를 보고 거기서 나온 순신에게 칼질을 했다는 부분이 나오죠. 우리나라 인터넷상에도 실업문제를 외국인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흔히 볼 수 있죠. 정작 6,70만원 받고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겠냐면 백수로 있겠다는 자들이 그런말을 하죠.

노이에자이트 2009-01-09 23:14   좋아요 0 | URL
바로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민규제법에 기업주들은 난색을 표하는 겁니다.우리나라에서도 기업주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걸요.싼 값에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 중요하니까요.

가시장미 2009-01-10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씨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읽고 있는데, 제국주의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참 와 닿네요.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중국 일본 한국이 제국주의의 열을 올려 정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다보니 내수를 살리려는 노력은 한 하고, 경제영토를 찾는데만 열을 올리는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모두가 힘들고 실업률도 높을 때는 어떻게든 서민을 위한 정책을 세워야 할 텐데..나라의 일꾼이 칼 자루를 쥐고 이런저런 횡포만 일삼고 있는 것 같아서 참 답답하네요. -_ㅠ

노이에자이트 2009-01-10 23:15   좋아요 0 | URL
임금을 적정선으로 올려 구매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습니다.경제사상사를 읽을수록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경제문제에 관한 쟁점이 되는 문제는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사실은 이런 식의 해결방법은 마르크스 주의자들 간에도 대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