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wave of anger washed over me, anger against myself, at my age at the time, that stupid lyrical age, when a man is too great a riddle to himself to be interested in the riddles outside himself and when other people (no matter how dear) are mere walking mirrors in which he is amazed to find his own emotions, his own worth. Yes, for fifteen years I‘d thought of Lucie only as the mirror that preserved my image of those days!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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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d always liked to tell myself that Lucie was something abstract, a legend and a myth, but now I knew that behind the poetry of the words hid an entirely unpoetic truth: that I didn‘t know her: that I
didn‘t know her as she really was, as she was in and to herself. I had been able to perceive (in my youthful egocentricity) only those aspects of her being that were turned directly to me (to my loneliness, captivity, my yearning for tenderness and affection); she had never been anything to me but a function of my own situation. (p.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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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h is terrible: it is a stage trod by children in buskins and a varietyek of costumes mouthing speeches they‘ve memorized and fanatically Believe but only half understand. And history is terrible because it so-often ends up a playground for the immature; a playground for the young Nero, a playground for the young Bonaparte, a playground for-easily roused mobs of children whose simulated passions and simplisticposes suddenly metamorphose into a catastrophically real reality.
When I think of all this, my whole set of values goes awry and I feel a deep hatred towards youth, coupled with a certain paradoxical indulgence towards the criminals of history.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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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결혼을 말하다 - 현대인의 뒤틀린 결혼의 실타래를 풀다
팀 켈러 & 캐시 켈러 지음, 최종훈 옮김 / 두란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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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금요일 밤이 행복하다.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지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권고받아 읽게 되었다. 사실 내 안에서 읽고 싶지 않은 거부 반응이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빨리 읽어버리고 싶은 반대 극단의 마음도 있었다. 결국 책 두 권을 동시에 읽다가 이 책을 먼저 끝내게 되었다.

나는 무늬만 기독교인으로 오랜 시절 살아 오면서 늘 진한 양심의 가책이 있었으나, 교회 생활을 충실하게 하지 않은 것과 달리 신앙 서적은 꽤 읽었고 영어 podcast도 많이 들었다. 비교해 보건데 국내서적과 달리 서양 서적은 훨씬 더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며 미래지향적이라 하겠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무조건 결혼을 지향하는 이야기인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수천명의 싱글들이 다니는 뉴욕 맨해튼에서 목회하시는 분이기에 당연한 입장인지도 모른다.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를 인용하며 독신의 유익함을 마음껏 누릴 것과 결혼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정서를 벗고 결혼과 가정이 마음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격하시키라는 내용은 기독교가 다소 아니 많이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선입견을 생각할 때 다소 놀라웠다.

물론 그럼에도 책 대부분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많이 할애하고 있다. 결혼의 목표는 새로운 피조물을 향해 가는 여정의 영적인 동반자로서 우정을 나누는 것이라 했고, 감정과 행동의 두 요소 중 통제 가능한 영역은 행동이기에 사랑을 정의할 때 느낌보다 행동쪽에 방점을 찍으면 오히려 감정이 솟아나고 깊어진다고 보았다.

성경의 기본 진리가 사랑이기에 대부분의 내용은 사실 예측 가능했다. 결혼은 상호희생으로 상호성취를 하는 과정이며 잘 뉘우치고 잘 용서해야 진실과 사랑을 한데 묶을 수 있으며 용서라는 연마제가 빠진 진실은 상처만 남기고 겸손해야만 용서가 가능하다는 것 등등.

그러나,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은 ‘결혼은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한다’였다. 다양한 결함과 일그러진 모습을 안고 결혼이라는 제도로 들어간 우리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화상을 만날 수 밖에 없다. 결혼이라는 현실의 늪에서 마주치는 허상, 좌절, 실망은 배우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 원래 부족했던 나의 모습이 만들어 낸 비극일 수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에서 건진 큰 보석은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만난 George Herbert의 “Love (III)”란 시였다. 난 처음 접한 시였는데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중학교 때 감동적으로 읽은 Jane Eyre를 성경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로체스터의 고백을 놓고 제인이 양심, 이성, 감정의 아우성에 저항하며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부분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자발적 독신은 아니고, 오랜기간 싱글로 살아온 나로서는 이런 기독교 서적이 불편하고 피하고 싶었다. 응답없는 기도가 나로 하여금 겉도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 것도 사실이고, 가정을 이룸이 정상적인 삶으로 보여지는 전통주의 사회의 가치관으로 인해 타인의 색안경이 불편하고 자신감이 결여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현재 복잡한 내 생각들이 조용히 정리되고 평안을 찾아 자존감을 회복하고 비교하지 않는 삶을 살며 나의 내면을 아름답게 가꾸어갈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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