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2013년 격동기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멋진 미스터리

13.67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6월

재벌가인 위씨 집안의 가장인 위안원빈이 자택에서 살해당하자 수사를 담당한 뤄 독찰은

간암 말기로 병원에 입원해 간신히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사부 관전둬와

특별한 기계장치로 의사소통을 하며 가족 중에 있는 범인을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하는데...

영미나 일본, 북유럽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의 작가들의 추리소설을 만나봤지만

중국계 작가의 작품은 아직까지 읽어본 기억이 없다.

홍콩 출신이라 엄밀히 말하면 중국계라 하기도 좀 그렇지만

암튼 일본이 아닌 아시아권 작가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상당히 반가웠는데 작품의 깊이도 범상치 않았다.

제목부터 과연 무슨 의미일까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2013년과 1967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총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2013년에서 196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홍콩 경찰의 전설과

같은 관전둬와 그의 제자 뤄샤오밍이 기이한 사건들을 명쾌하게 해결해나가는 과정들을 잘 보여준다.

첫 단편인 '흑과 백 사이의 진실'에선 위씨 집안의 얽히고 설킨 복잡한 인간관계가

사건의 배후에 있었는데 막장드라마를 방불케하는 출생의 비밀과

범인의 악랄한 사건 조정이 섬뜩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딱 애거서 크리스티의 '커튼'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는데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관전둬와 뤄샤오밍의 찰떡궁합이 돋보였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 두 범죄조직 사이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여배우의 진실을 파헤치는

'죄수의 도의', 병원에서 탈주한 흉악범을 찾기 위한 힘겨운 과정을 그린 '가장 긴 하루',

무장한 현상수배범을 체포하는 작전 중에서 벌어지는 계략을 밝혀내는 '테미스의 천칭',

부패사건을 처리하는 염정공서의 간부 아들이 유괴되는 사건 속에 숨겨진 경찰의 음모를 그린

'빌려온 공간', 마지막으로 폭동 일보 직전인 상황에서 폭탄 테러를 막아내는 '빌려온 시간'까지

46년 동안 홍콩 경찰에서 있었던 일들을 담아낸다.

6편 하나하나가 기발한 트릭으로 무장해 진실을 알아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는데

관전둬의 추리로 정말 기적같은 반전들을 보여줬다.

각각의 작품들이 본격물의 냄새를 가득 풍기지만

6편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보여주는데 홍콩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사실 홍콩이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97년에 중국에 반환된 이후

특별자치구로서 역사의 격변을 겪은 곳이지만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홍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소수의 영국인이 지배층을 구성하고 다수의 중국인이 어려운 삶을 살던 홍콩의 과거와

중국으로 반환되던 당시의 혼란, 그리고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의 사회변화 등 역사의 질곡을

잘 보여줬고, 그와 동시에 홍콩 경찰의 적나라한 모습을 여실히 담아냈다.

마지막 단편에서 첫 단편과의 묘한 접점을 삽입해놓는 등 전체적인 구성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작품이었는데 탄탄한 스토리와 매력적인 캐릭터,

절묘한 반전에 홍콩 역사와 사회문제까지 한 권으로 녹여낸 멋진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