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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파드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8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평점 :
'스노우맨' 사건 이후 사표를 내고 홍콩으로 잠수를 탄 해리 홀레.
그가 떠난 후 또 다시 '스노우맨'을 모방한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자
강력반은 카야 형사를 보내 그의 아버지가 위독하다며 만신창이가 된 그를 간신히 데려온다.
연쇄살인사건의 수사권을 두고 강력반과 크리포스가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해리 홀레는 카야와 비에른 홀름과 팀을 이뤄 차근차근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고,
범인은 그런 해리 홀레를 조롱하는 듯 계속 살인사건을 저지르는데...
'스노우맨'에 이은 해리 홀레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인 이 책은 한층 스케일이 커진 면모를 선보였다.
무려 784페이지의 엄청난 분량을 자랑하는데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책 중 단권으로는
거의 최고의 분량이 아닌가 싶다. 전작인 '스노우맨'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과연 이 책은
얼마나 스릴 넘치는 흥미진진한 얘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되었는데 압도적인 분량만큼이나
노르웨이, 홍콩, 콩고 등을 넘나들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사건이 전개된다.
전작의 범인 애칭(?)이 '스노우맨'이라서 이번 범인의 애칭은 레오파드라 나름 짐작했지만
이번 사건의 범인에게는 여자들이 좋아할 '백마 탄 왕자님'이란 멋진(?) 애칭이 붙여진다.
전작의 범인이 불륜녀들을 응징한 후 눈사람을 남겨놔 '스노우맨'이 되었다면, 이 책의 범인은
'레오폴드의 사과'라는 잔인한 고문기구로 피해자들을 살인하는데도 여자들의 로망(?)이 되고 말았다.
여자를 사로잡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인 범인과 피해자들 사이에는
같이 산장에 묵었다는 인연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되었는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은 씁쓸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살인을 하는 능력을 건강한 인간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게 된 범인은
나름의 아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악마가 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굴욕이 범죄의 커다란 동기가 될 수 있음이 잘 드러났는데
사건이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어찌 보면 잠자던 레오파드의 코털을 건드려 연쇄살인을 유발한 원인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암튼 범인은 결코 쉽게 잡히지 않고 오히려 해리 홀레는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지만
결국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응징을 당하게 된다.
전작의 스노우맨이 까메오(?)로 등장하여 작품의 연속성을 보여주는데
해리 홀레는 스노우맨에게 마지막 선물(?)까지 한다.
이 작품에서 해리 홀레는 정말 피폐한 몸과 맘을 이끌고 오로지 범인 잡기에 몰두하는데
그 와중에 수사기관 간의 알력과 카야 형사와의 로맨스, 아버지의 죽음까지
정말 파란만장한 일들을 겪게 된다. 노르웨이의 수사구조는 잘 모르겠지만
두 기관이 벌이는 진흙탕 싸움은 정말 누구를 위해 범죄수사를 하는지를 모를 정도였다.
특정 인물의 입신양명을 위한 수단으로 수사권 분쟁을 벌이는 모습은
결코 우리 검찰과 경찰 간의 다툼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프리카 콩고가 중요한 무대로 등장하는데 그곳의 아픈 역사와 여전히 참담한 현실이
이 작품 속에 잘 녹아 더욱 풍성한 얘기를 들려준 것 같다.
해리 홀레와의 두 번째 만남은 이렇게 한바탕 치열한 몸살을 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가 영어판 제목으로 선택한 레오파드는 범인을 상징하는 동시에 해리 홀레 본인을
상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가 '라스트 코요테'에서
외로운 한 마리 코요테의 이미지를 보여준 것과 유사했다.
중간 중간에 시리즈의 전작들이 언급되곤 했는데,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스노우맨'과 '레오파드' 두 권으로 이제 해리 홀레 시리즈도 자리를 잡은 게 아닌가 싶다.
해리 홀레가 지금의 망가진(?) 모습이 되기 전의 모습부터 차근차근 만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