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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오레 ㅣ 오늘의 일본문학 10
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맥도날드에서 우연히 다이키라는 남자의 휴대폰을 주은 히토시는
다이키의 어머니가 전화를 하자 다이키 흉내를 내며 전화를 받고
사고를 쳤다며 2백만 엔을 보내달라고 한다.
생각보다 다이키의 어머니가 손쉽게 속아넘어가 돈을 계좌이체로 받았지만
며칠 후 집에 돌아가 보니 다이키 어머니가 들어와 자신을 다이키로 대하는데...
제목인 '오레오레'는 일본어로 '나야, 나'란 의미인데 노인들을 상대로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아들인 척 흉내를 내며 돈을 보내라고 하는 보이스피싱 수법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수법을 써서 노인들의 쌈짓돈을 뺏는 파렴치한들이 기승을 부리곤 했는데
이 소설 속 주인공인 히토시가 바로 다이키의 어머니를 상대로 그런 짓을 한다.
처음에는 바로 만연한 보이스피싱 사기를 소재로 한 사회고발성 소설이 아닌가 싶었는데
단순히 그런 경지를 넘어서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바로 등장인물들이 모두 히토시를 닮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무슨 복제인간들도 아니고 주변 인물들이 하나씩 자신을 닮아가더니
결국은 온통 '나'로 가득한 세상이 되고 마는데 어떻게 보면 개성을 상실한 채
주체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소설 속에서도 원래 나와 '나'가 공존하는 혼란스런 상황이 점점 확대가 되는데
어느 순간이 되면 진짜 내가 누구였는지를 모를 정도의 당혹스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
모두가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하게 되고 상대의 생각마저 읽을 수 있는 단계가 되니까
사회생활이 어쩌면 모두가 내 맘 같은 편한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한 편으론 내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공개된
불편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는 모순된 감정 속에 빠지게 된다.
결국 하나씩 나로 변신해가는 사람들은 서로를 삭제시키기 시작하는데...
지극히 현실적인 사회문제를 소재로 하다가 느닷없이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로 바뀌는 판타지 같은 얘기가 펼쳐져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던 이 작품은
결코 황당한 얘기로만 치부할 성질은 아닌 것 같았다.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에 너무도 많았던 내가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면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황들이 연출될 것인데 타인과 소통하기도 결코 쉽지 않지만
나를 떠난 나와 소통하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치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가리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그리고 그 인육을 먹는(나를 흡수하는?) 그런 지경까지 이르는데
어쩌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었다.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 들 정도로 파편화된 관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자신조차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소통하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인 '자신이 누구인지 잊지마라'는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급급해
자신을 잃어버린 우리들에게 진정 자신이 누구인지를 돌아보게 해주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