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문 이후 밀리언셀러 클럽 126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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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제왕이라 불리는 스티븐 킹의 이 단편집은 총 13편의 작품을 담고 있는데(역시 13ㅎ)

기존에 스티븐 킹이 보여줬던 공포의 미학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의 작품들이 실려 있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언더 더 돔'처럼 초현실적인 상황 하에서 인간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공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 능수능란했던 그가 9. 11. 테러라는 현실에서 공포스런 사건을

실제 겪은 이후 현실이 곧 공포란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는지

예전보다는 현실적인 소재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책에 실린 총 13편 중엔 20페이지도 되지 않는 정말 짧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80페이지 이상 분량의 단편스럽지 않은 작품들도 종종 있었다.

기존의 작품 스타일과 유사한 초현실적인 성향의 '윌라'로 시작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충분히 맛볼 수 있는 공포를 다루고 있다.

'진저브래드 걸'은 외딴 곳에서 사이코 살인마를 만난 여자의 도주극을 그리고 있는데

영화 속에선 유사한 설정들을 만나곤 했지만 에밀리가 피커링으로부터 간신히 탈출하고

그를 응징하기까지의 숨 가쁜 과정이(그나마 에밀리가 조깅으로 단련된 여자라 다행이었지만)

정말 실감나게 그려졌다. 꿈이 현실이 되는 악몽을 다룬 '하비의 꿈'이나 휴게소에서의 폭행사건에

연루된 남자의 얘기를 그린 '휴게소', 공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인

'헬스 자전거'까지 현실밀착형 공포를 다룬 작품이 많이 등장했다.

 

스티븐 킹에게도 9. 11. 테러의 충격은 컸던 것 같다. '그들이 남긴 것들'에서 9. 11. 테러로 희생된

동료들이 남긴 물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자의 모습은 마치 스티븐 킹 본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꼭 자기 가족들을 잃지 않았더라도 충격적인 사건때문에 고통스러워 정신과 상담이 필요로 했던

수많은 미국인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이는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은 남편이 아내에게 남긴 선물(?)을 담은

'<뉴욕 타임스> 특별 구독 이벤트'에서도 여실히 담겨있었는데

공포소설이라기보단 죽음도 초월한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N'은 모든 게 짝수여야 안심하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남자와 그에게 영향을 받아 자살에 이르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들의 정신적인 고통을 잘 그려냈는데

결코 소설 속 얘기라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비극이 아닐까 싶다.

'지옥에서 온 고양이'는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는데

목숨이 9개라 할 정도로 무서운 고양이의 진가(?)를 잘 보여주었다.

차 한 번 태워줬다고 바람난 아내와 그녀의 정부를 처치해주는 '벙어리'와

영화로 통해 만났던 스티븐 킹의 '그린 마일'을 떠올리게 했던 '아야나'도 흥미로웠지만

대미를 장식하는 '아주 비좁은 곳'은 정말 압권이었다.

간이 화장실에 갇히게 된 남자가 간이 화장실이 넘어지면서 벌이는 사투가 정말 리얼하게 그려지는데

너무 섬세한(?) 묘사를 해서 토할 뻔 했다.ㅋ 전에 읽었던 '헤드 헌터'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나왔었는데

이 작품의 수위에는 결코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ㅎ

 

'모든 일은 결국 벌어진다'에 이어 만난 스티븐 킹의 이 책은

우리의 일상이 곧 공포가 될 수 있다는 서글픈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 개인적인 교통사고와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9. 11. 테러의 충격이

초현실 세계에 관심을 갖던 스티븐 킹을 현실에 눈을 돌리게 만든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드는데

고도로 발달한 인간의 문명이 오히려 인간성 상실과 각종 정신질환을 낳아

공포를 야기한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스티븐 킹에게만 오히려 이런 현실이 그의 창작력을 자극하지 않았나 싶다.

마지막의 '선셋 노트'를 통해 친절하게 작품해설까지 해준 스티븐 킹의 또 다른 변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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