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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관의 살인 ㅣ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교통사고로 흉칙하게 망가진 얼굴을 하얀 가면으로 가린 채
유명 화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그림들을 수집해
'수차관'에서 은둔하며 살고 있던 후지누마 기이치는
아버지 후지누마 잇세이의 기일에만 그의 그림에 열혈팬들인 손님들을 초대한다.
마침 불어닥친 폭풍우에 연이어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실종된 남자의 소행으로 대충 정리된 비극은 1년 후에 또다시 찾아오는데...
'십각관의 살인'에 이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학산 출판사에서 나왔다가 절판되어 많은 미스터리 팬들의 수집품이 되었던 이 시리즈는
한스미디어에서 계속 복관시키고 있어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고전 추리소설의 거장들에 대한 오마주 성격이 짙었던 데뷔작 '십각관의 살인'에 이은 이 작품은
제대로 된 본격 추리소설의 형태로 독자들과의 진검승부를 벌이는데
많은 작품들을 통해 여러 트릭들을 만나 본 미스터리 팬들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전통적인 기법들을 구사하여 나도 막연하게 감은 왔지만
여전히 논리적인 추리를 하기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ㅎ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세 개의 수차가 돌아가는 수차관에는 마스크맨(?) 후지누마 기이치와
딸뻘인 그의 아내 후지누마 유리에, 그리고 집안일을 책임지는 집사와 가정부가 살고 있다.
후지누마 기이치의 모습을 보면서 딱 요코미조 세이시의 '이누가미 일족' 이 연상되었는데
후지누마 기이치는 '이누가미 일족'의 이누가미 스케키요보다 우울하고 일그러진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유일한 낙은 자신보다 엄청 어린 아내인데 거의 아내를 어릴 때부터
수차관에 감금시켜 놓아 아내 유리에의 상태가 안 좋은 것도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비정상적인 부부가 사는 수차관에 기이치의 친구인 마사키 신고가 장기체류 중이고,
잇세이의 기일을 맞아 네 명의 열혈팬들이 수차관을 방문하는데
폭풍우로 고립된 수차관에선 가정부의 추락사와 마사키 신고로 추정되는 남자가 토막난 채로
불태워지고 방문자 중 한 명인 후루카와 쓰네히토는 연기처럼 증발해버린다.
사건은 대충 후루카와 쓰네히토의 범행으로 일단락되지만
1년 후 잇세이의 기일에 다시 모인 세 명의 남자와 불청객 시마다 기요시가 찾아온 가운데
또다시 폭풍우가 몰아치고 1년 전의 비극을 다시 검토해보지만 비극의 재현은 막을 수가 없었다.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교차되면서 진행되는 이 책은
본격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인 밀실트릭은 물론 서술트릭(?) 등을 잘 버무려내고 있다.
특이한 개성의 소유자들이 모여 수차관이란 기묘한 공간에서 벌이는 죽음의 향연은
어찌 보면 소름끼치는 일들이라 할 것임에도
이상하게 자연스런 느낌이 드는 것은 '관'이 발산하는 중독성에 있는 것 같다.
신본격의 기수라 할 수 있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답게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물씬 담아내고
있는데 예전에 읽었던 '미로관의 살인' 이나 '시계관의 살인'에 비하면
배배 꼬인 복잡한 트릭을 구사하기 보다는 정면승부를 시도한 담백한 느낌의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작품 해설을 해준 또 한 명의 대표적인 신본격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와의
우정이 담긴 평도 보기 좋았는데 그의 표현대로
'본격의 혼을 지닌 작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를 계속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