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볼 밀리언셀러 클럽 106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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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사장과 결혼하여 두 딸을 둔 카스미는  

남편 회사의 거래처 사장인 이시야마와 불륜에 빠진다.

불륜의 달콤함(?)을 즐기던 카스미와 이시야마는 급기야 이시야마가 마련한 훗카이도의 별장에

자신들의 가족들과 함께 와서 가족들의 눈을 피해 밀애를 즐기던 중 카스미의 딸 유카가 실종되는데...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아웃'을 통해 인생의 막다른 궁지에 몰린 네 여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기리노 나쓰오의 나오키상 수상작인 이 책은

불륜에 빠졌다가 딸을 잃어버린 여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훗카이도에서 답답함을 못 이기고 가출했던 카스미는 도쿄에 와서 산전수전 고생을 하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성실한 회사 사장 미치히로를 만나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간다.

하지만 무던한 남편과 달리 자신의 숨겨진 열정을 불러일으킨 이시야마에게 빠져 이중생활을 시작한다.

심지어 겁도 없이 가족들끼리 동행한 여행지의 별장에서 서로의 배우자들 몰래 뜨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이 남자와 함께라면 아이들을 버려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는데  

이는 결국 현실이 되어 딸 유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유카가 실종된 이후 두 가정은 파탄이 난다.

사실 유카의 실종과 별개로 카스미와 이시야마의 불륜으로 이미 파탄이 예정된 상태였지만

카스미는 죄책감에 어떻게든 딸을 찾겠다는 집념으로 유카를 찾는데 올인을 하고

이시야마는 자신의 불륜을 눈치 챈 아내와 이혼한다.

자식을 잃어버리는 것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정도의 고통을 느끼고  

정상적인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보면 카스미가 어느 정도 불쌍한 생각도 들었지만  

불륜이라는 원죄를 지었기에 마냥 동정만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계속 이시야마와의 불륜 사실을 숨기고 있는 상태여서 좀 가증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다.

어쨌든 유카 실종사건은 별다른 진척 없이 4년이란 시간만 흐르고 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경찰을 그만둔 우쓰미가 우연히 유카를 찾는 방송을 보고 유카를 찾는 일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데...

 

사실 처음엔 당연히 유카를 유괴했거나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찾는 게 스토리 전개에 중요할 거라  

생각했지만 유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카스미와 우쓰미가 본격적으로 유카의 행방을 추적하며  

다시 훗카이도로 날아가지만 기대만큼 수사(?)가 진척되진 않는다.

오히려 혼란스럽게도 유카 실종사건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그들의 꿈에 등장해서  

사건의 실체만 더욱 미궁에 빠뜨린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아동 성폭행 사건들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사건의 실체가 그쪽으로 가지는 않고 오로지 작가는  

카스미나 우쓰미 등 유카를 찾는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불륜으로 가족을 배신하고 딸을 잃어버린 카스미,

그리고 카스미와의 불륜으로 가정을 망가뜨리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이시야마,

그리고 카스미의 남편과 이시야마의 아내, 카스미의 어머니까지

엄청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이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또한 죽음을 앞둔 전직 형사 우쓰미를 통해 과연 어떻게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계기도 마련해 주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책은 '아웃'에 이어 두 번째였는데 그녀의 작품은 우리의 주변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세상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살아 숨쉬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고

그들의 행동이나 감정들이 전혀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점이 사건을 더욱 와닿게 만들었다.

불륜이란 게 물론 가정을 파탄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빠져드는 게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음이 아닐까 싶다.

이성과는 따로 움직이는 감정을 다스리는 게 싶지는 않는 일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보다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고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뼈저린 후회를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카를 찾아다니던 카스미와 우쓰미의 힘겨운 여정을 따라 다니느라

나도 같이 몸과 맘이 힘들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게 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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