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일신 베스트북스 16
나다니엘 호손 지음 / 일신서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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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란 책 제목은 항상 많이 들었다. 내용을 잘은 모르나, 제목 자체가 <주홍 글씨>이기에 그것은 분명히 낙인이란 이름을 말하는 것이란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주홍 글씨>, 역시 낙인이 찍힌 여성의 이야기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왠지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다. 영국에서 왜 미국으로 많은 이주민들을 보내야 했는가? 청교도적인 가치관이 어째 검소함과 더불어 미국의 탐욕적인 식민지개발과 이어졌는가?

 

예전에 마녀사냥을 연구하던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가 있다, 그 책에서 영국의 인클로저 현상을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 16세기부터 공유지를 귀족과 왕족들이 사유화했다. 공유지 사유화는 공유지를 이용하던 농민 입장에서 치명적인 타격이고, 심지어 공유지 주변에 있던 농민의 농지까지 귀족들은 빼앗아간다. 농지가 없는 농노는 부랑자가 되든지 도시의 노동자가 되든지 혹은 도적이 되어야 했다. 경제적 흐름에 따라 영국에서 잉여적인 인구가 늘어가고 있었고, 이들을 처리하기 좋은 방법은 바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이민정책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주홍 글씨>에서는 직접적으로 이런 현상을 말하지 않으나. 나사니엘 호손의 일가의 역사가 나올 때 대략 그 의미를 확신할 수 있었다. 호손의 직계조상은 17세 말에 마녀사냥을 집행하던 관료였던 것이다. <주홍 글씨>의 배경이던 뉴잉글랜드는 그 지명의 이름처럼 새로운 잉글랜드를 말한다. 결국 영국사회에서 격리된 자들이 영국에 대한 향수로 젖어 생긴 식민지 사회인 것이다.

 

식민지사회의 열악한 요소는 잘 보여주듯이 주인공 비운의 여인 헤스터가 살던 마을에 의사와 목사가 매우 귀했다. 원래 헤스터의 남편이던 칠링워드, 헤스터의 딸 펄의 아버지며 그녀가 진정 사랑하던 목사 딤즈데일은 뉴잉글랜드에서 귀한 인재였다. 칠링워드는 실력이 좋은 의사였고, 딤즈데일은 영국 본토 명문대학에서 공부를 한 목사였다. 기독교 사회에서 목사의 권위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추모하는 점에서 왕권은 교회와 밀접한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왕의 시대로부터 격리되어 있지만, 뉴잉글랜드 사회는 아직도 영국의 향수병으로 젖은 매우 수구적인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사회에는 종교가 하나의 사회적 법률로 통용되고, 법률이 교회의 권력에 의해 움직이므로, 종교적 가치관이 문화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여주인공 헤스터는 어두운 감옥에서 나왔으며,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A자 주홍색 자수가 따가운 햇빛과 군중의 눈빛에 의해 반사되었다.

 

그녀의 죄는 남편이 있어도 다른 남자와 간음하여 아이를 낳은 죄였다. 문제는 남편은 정확히 누군지 알 수 없었으며, 사람들은 헤스터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이미 나는 이 작품 초반에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성난 군중과 무서운 보초병의 눈빛이 그녀를 질타할 때, 오로지 마음 약한 목사가 그녀의 입장보단 그녀의 존재성을 인정해주었다. 그게 바로 딤즈데일이었다. 왜 헤스터가 젊은 목사에게 도취했는지에 대해서 작품 안에서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호손의 작품성은 기존 사회의 답답한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상을 찾는 것을 원했다. 본래 헤스터는 명문집안 출신 여성이란 점도 알 수 있었고, 그녀가 당시 사회로썬 용납되기 어려운 죄를 지었다고 하나, 그녀의 인품은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오직 딸 펄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였지만, 때로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선을 마다하지 않았던 용기 높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A자는 평생 그녀에게 지워진 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짐조차 승화시켰다.

 

A가 어떤 의미인지 잘은 모르겠다. 나쁜 의미 내지 정상적이지 못한 것이라면 Abnormal 정도일까? 하지만 그녀의 AAble, Angel까지 변해간다. 도덕을 위반한 그녀가 오히려 인간의 정신이 되어야할 가능성과 천사라는 칭호까지 받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오로지 사회적 관습에 의해 매여져 있었다. 낭만주의 소설이라 하니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을 다소 영향 받을지도 모른다. 소설 중간에 나온 쇠사슬이란 단어는 <사회계약론>에서 항상 나오는 말이고, 쇠사슬이란 의미는 물리적인 의미로써 사슬이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인간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 굴레라는 점이다.

 

헤스터는 처음에 남편을 밝히지 않았고, 그동안 죄수의 낙인 A를 가슴에 새기며 다녔다. 그녀는 치욕적인 일을 저질러도, 그 죄에 대한 처벌과 자숙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 위에 A를 새기지 못한 남자는 어떤 심정일까?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도덕적 입장에서 딤즈데일은 오히려 큰 쇠사슬이 되었다. 그리고 질투에 젖은 칠링워드는 아내의 부정과 딤즈데일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간다.

 

그가 처음 뉴잉글랜드에 왔을 때 인상 좋은 노학자이나, 7년이 지나자 그의 얼굴은 험악하고 악의로 가득했다. 헤스터는 이런 2사람 사이에서 죄를 지은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죄를 받아들였고, 그 모습을 바라본 딤즈데일은 스스로 자신을 해방하기로 한다. 그 결실은 딸인 펄의 존재다. 진주와 같은 펄은 사랑과 죄악의 결정체였다. 부정에 의해 태어난 존재, 하지만 사람들은 펄의 행동과 모습에서 천사의 재림처럼 느껴졌다.

 

펄의 존재가 모순되고 역설적으로 보이는 점에서 우리는 죄와 사랑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고, 거기서 태어난 사랑과 증오가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딤즈데일을 병들게 하여 마지막에 그의 부정을 밝혀 비참한 죽음을 유도하려 했지만, 딤즈데일이 죽은 후 그 역시 딤즈데일에게 간다. 칠링워드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그에겐 학식과 재산이 있어도 생명의 연결고리가 없었다. 불구자인 그는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삶의 의미가 바뀐 것이다.

 

딤즈데일의 죽음에서 칠링워드는 그동안 자신을 속박하던 쇠사슬에 해방된다. 그것을 인정하는지 미국과 영국에 남아있는 재산 모두를 헤스터의 딸 펄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죄의 결정체에게 그의 마지막은 사랑의 결정체로 승화된다. 현실에서 만일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21세기 자유주의국가라면 이미 불구자인 칠링워드 옆의 헤스터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가며, 딤즈데일은 헤스터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교회의 권력이 우선되는 시기고, 딤즈데일 목사는 나이가 어려도 마을에서 나이가 최고령 신자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고, 뉴잉글랜드의 최고 통치자인 총독에게도 존중받는 자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최고의 지위에 있은 자가 딤즈데일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치에서 숭고한지, 아니면 자신을 내던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모든 것을 고백하는 인간이 더 숭고한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적어도 딤즈데일의 마지막은 인간에게 주어진 죄가 많은 이들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보다 평생 자신만 안고 가는 게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소설은 낭만주의이지만, 나름 서구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과 같은 동양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인간의 관계성에 시작된다. 하지만 서구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신과 인간의 관계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과연 자유롭고 진실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사는 모든 죄와 거룩한 자리를 초월하여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뉴잉글랜드를 떠난 후 다시 돌아온 헤스터는 A가 달린 드레스를 입은 후 평생 타인의 위해 살아간다. 마지막장면에서 헤스터는 천명을 다하여 딤즈데일이 묻힌 곳의 옆으로 집을 옮긴다.

 

무덤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으나 희미한 한 점의 빛은 A란 글이 보였다. 살아서는 같이 할 수 없었으나 죽어서는 영원히 A를 나눈 두 사람에서 낭만주의 문학성의 백미를 보여준다. 현실에서 인정되지 않기에 새로운 세상에서 이상을 펼칠 수 있다는 신념을 말이다. 헤스터는 단지 그런 이상을 자신만의 환상이 아니라 늘 봉사하는 삶으로 보여준다. 왜냐하면`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은 비문을 만들 수 없고, 무덤사이에 A란 글자를 만들 수 없다. 딤즈데일과 헤스터의 관계는 그들이 살아생전에 용납할 수 없었지만, 그걸 용납받을 수 있었던 것은 헤스터의 용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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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8-2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통, 간음을 뜻하는 adultery의 A라고 하던데요? 성인과 간음이 어원적으로 연관 있는게 재밌지요.

만화애니비평 2016-08-28 23:25   좋아요 0 | URL
그건 몰랐네요. 영어에 약히다보니 감사합니다.

syo 2016-08-28 23:26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좋은 글 읽을수 있어서 제가 감사합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러번과 마녀, 요거 읽을까 말까 생각 중인데 어떻습니까. 재미있쓔?

만화애니비평 2016-08-29 10:30   좋아요 0 | URL
마녀사냥 연구도서로 최고의 서적이죵. 재미보단 깨우침으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