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불을 끄고 자려고 누으려는 순간, 침묵하던 세계가 기지개를 편다. 불을 환하게 켜고 있던 순간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던 지나가는 차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 소리, 건물 밖에 내어놓은 에어컨 실외기 소리, 개가 컹컹 짓는 소리, 황소 개구리의 육중한 울음 소리, 나뭇잎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그리고 온갖 작은 것들이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소리.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순간 들리기 시작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소리들을 느낀다. 따뜻한 소리, 차가운 소리, 공기를 잔뜩 머금은 소리, 속까지 시원해지는 소리를 구분하다가 스르르 눈이 감기면, 소리들은 내 귓가를 떠나 조용히 창문가에 머문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은 소리를 느낄 수는 있을까. 귀로 전해지는 파장이 귀에 있는 어떤 기관을 자극해서 소리를 만들어낼텐데, '농'에게도 그 파장이 조금은 전달되지 않을까. 하루의 일과를 마감하는 휴식의 시간에 듣는 밤의 소리가 익숙한 나에게 낮이고 밤이고 침묵의 세계에 사는 그들의 존재는 낯설다. 이 낯설음은 어떻게 익숙함으로 바뀔 수 있을까. '아'가 '농'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농'이고 한 명은 '아'다. 둘은 불알친구였고, '아'는 '농'을 늘 자신의 방식으로 챙겨줬다. '아'는 '농'에게 계속 이런저런 말을 했고, '농'은 '아'가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40년이 흘러 둘은 50대가 되었다. 어느날 둘은 수화통역사를 만났고 '아'는 통역사에게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이 친구는 제가 하는 말을 죄다 알아들어요. 우리는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왔어요. 그렇지 친구야."  '농'은 '아'에게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번 만남에서 통역사는 '농'만을 따로 만났고, 수화로 질문을 했다. "친구가 무슨 말을 하던가요?"  '농'이 수화를 답을 했다. "무슨 말을 해요.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내가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요. 나는 그 친구가 하는 말을 알아들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가족간에도 이런 일은 생긴다. '농'이 있는 가족 중에 '아'가 따로 수화를 배우지 않으면서도 '농'을 향해 계속 말을 하면 '농'이 알아듣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는 참 착해. 늘 웃고, 늘 말을 잘 알아듣고. 라고 생각한다. 이 상황에서 통역사가 들어가면 여지없이 '농'의 수화는 달라진다. "예? 아니요. 제가 그들 말을 어떻게 알아들어요. 그냥 못 알아들으니까 웃기만 하는 거지요."  물론 손가락으로 뭘 하라고 가르키거나 하는 등의 대화가 필요 없는 식의 행동까지 못 알아듣지는 않을 것이다. 통역사가 말하는 건, 그런 일을 지시하는 거라던가 하는 것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가 가능한가, 이다. '아'가 '농'과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하려면 손짓이나 몸짓, 눈빛 등의 자연수화로는 한계가 있고, 표준수화를 배워야 가능할 것 같다. 그랬을 때, '농'의 갑갑함은 훨씬 줄어들 것이고, '아'의 세상은 좀더 넓어질 것이다.

 

 

 

우리 나라의 농아 학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하다고 들었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농아학교의 교장실을 점거한 '농'의 얼굴을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 '농'의 주장은 단 하나였다. "수화를 할 줄 아는 선생님에게서 수업을 듣게 해달라. 우리도 공부를 하고 싶다." 그 농아학교는 특수학교 일진대 수화를 할 줄 아는 선생님은 한 분도 안 계셨고, 학생들은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어야했다. 즉 구화를 배우라는 것인데, 이것이 가능하려면 '농'이 어느정도는 귀가 들려야 한다. '농'이라고 모두 소리가 전혀 안 들리는 것은 아니고 소리가 아주 약하게라도 들리는 '농'도 있다. 이런 '농'은 귀에 보청기를 꽂으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너무나 크고도 공평하게 들려 연습이 되지 않은 사람은 보청기를 꽂고도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너무나 많은 소리에 파묻혀 정작 들어야 될 소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평상시에 우리 귀에 들리지 않던 세상의 모든 소리들이 모두 똑같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그중에 사람의 음성을 어떻게 구분하겠나. 두 사람이 양쪽 방향에서 동시에 나를 향해 대화를 건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가 먼저 약을 가져 가려는 조급함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이럴 때 나는 두 사람의 소리를 모두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한 사람씩 이야기해세요, 라며 말을 다시 부탁하게 된다. 두 사람이 말을 해도 듣는 이가 무슨 말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평소에 신경쓰지 않던 사물들의 소리가 모두 같은 강도로 이쪽저쪽에서 들린다면 소리를 듣기는 커녕,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럼 우리 '아'는 왜 사람의 소리를 잘 듣는 걸까.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살면서 계속 그런 상황에 학습이 되어 왔기 때문이다. 세상에 퍼지는 많고 많은 소리 중, 필요한 소리, 사람의 소리를 골라서 듣는 능력이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밤에 불을 껐을 때 비로소 들리기 시작하는 세상의 소음들이다. '농'은 그래서 소리가 겨우 들리는 사람의 경우도 보청기를 끼고서 사람의 말을 구분하는 연습을 해야 된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아'의 목소리, 입 모양을 보며 자신도 조금씩 소리를 흉내내어 말을 배우는 것이다. 부모가 모두 '농'인 부부가 아이를 낳았고, '아'였다. 이들은 너무나 행복해했지만 이 시간은 잠시였고, '아'는 불완전한 귀를 가지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아이가 농아학교에 가서 제대로 수업만 배운다면, 아니 보청기만 제대로 낄 수만 있어도 아이는 정상인 처럼 살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엄마는 용납할 수 없었고, 집에 보청기가 보이는 족족 던지고 발로 밟아서 고장을 내버렸다. 우리 아이는 정상인데 이런 보청기가 대체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결국 엄마의 고집 때문에 아이는 집에서는 보청기를 끼지 못하고, 학교에서 수업하는 잠시 동안만 겨우 보청기를 끼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보청기를 끼면서 들리는 많은 소리들 중 사람 말소리를 골라서 듣는 연습을 지난하게 해야만 제대로 정상인이 될 수 있었기에 아이는 결국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예전에 비하면 어느 정도 나아졌다지만 지금도 농아학교는 상황이 열악하다. 교사 중 수화가 가능한 사람이 2명인 곳도 있는데 그곳이 환경이 그나마 좋은 곳이다. 어떤 곳은 맹인 선생님이 수업을 하기도 하는데 그냥 등 돌리고 칠판 보고 수업 하시면 학생들은 선생님 입 모양도 못 보고 소리도 못 들으면서 그 시간을 통째로 견뎌내기도 한다. 그럼 수화는 어디서 배우는 걸까. 수화는 친구들에게서 배운다. 수화를 할 줄 아는 친구나 선배에게 배우고, 그 수화가 다시 후배에게 물려지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수화 수업 첫 시간에 들은 나는 이 사실이 빨리 다른 사실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란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아이들이 귀에 보청기를 낀 상태에서 선생님이 구화를 차근차근 시범을 보여, 아이들이 우선 구화를 듣게 하고, 또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에 시간 할애를 많이 해주는 것.

선생님이 수화 자격증이 있는 분으로 한정해 농아 학교의 특수성을 인정해주는 것.

수화를 배우는 '아'가 많아져 '농'이 은행 볼 일 볼 때, 병원 갈 때, 약국 갈 때 등 일상적인 볼 일을 볼 때 수화로써 대화 가능한 곳이 늘어나는 것.

 

 

추가.

제가 틀리게 알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라도 지적해 주세요. 이제 알아가는 중이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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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09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어쩌면 국가라는 기관'이 이런 기초적인 복지 시스템을 갖추지 않고서 국가의 품격 운운할까요. 암담하네요.
이러고도 과연 정치가들이 복지병 운운하는 게 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 가난하다는 네팔이나 쿠바 보십시요. 1인당 쥐디피 한국에 비하면 콩알만하지만 복지 수준은 우리보다 100배 더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 교육 정책만큼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봄만 되면 보도블록 깔고
한강에 세빗둥둥섬 만드는 돈이면 충분하잖습니까... 참.. 어이가 없습니다.

달사르 2014-03-09 18:39   좋아요 0 | URL
이게 다 친일파를 제 때 청산하지 못해서..쿨럭..ㅠ.ㅠ

저는 정치나 경제를 잘 모르지만, 정치 혐오나 경제 혐오로 가지 않으려 노력을 해요. 원래 선거 때 투표를 잘 하지 않았는데 요새는 투표도 잘 하고 말이죠. 정치가나 경제인의 최대 목표가 국민들의 무관심화'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즈음입니다.

복지도 뭐. 눈에 보이는 것만 대충 잘하려고 하다가 몇 년 지나면 흐지부지 되잖아요. 아이들 급식비 지원도 올해 죄다 짤렸던데요. 노인들 용돈 주는 것도 몇 년 내로 흐지부지 될 테고.
반면에 애초부터 조용한 사람들, 선거철 때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에게는 선심을 굳이 쓸 필요가 없으니 그들을 위한 복리후생은 계속 뒤로 뒤로, 언제까지나 뒤로 뒤로 밀리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네팔이나 쿠바가 가난하다는 생각도 요새는 들지도 않을 정도에요. 그들은 우리보다 정신건강부터 시작해서 만족도, 행복감 등 많은 것들이 부자지요.

2014-07-11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18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20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하고 있는 일들 중 잘했다 싶은 일들은 다 친구 따라 강남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깊은 생각을 잘 못하는지라 내가 믿을 만한 누군가가 "뭐 해볼래?"라고 하면 "생각해 볼께" 라는 말 보다는 "그래? 그럼 같이 하자" 라는 말을 하는 편이다. 뭘 해도 진득하게 오래 하지 못하는 내 단점을 잘 알고 있기에, 그래서 혼자서 뭘 했을 경우 대개 실패하고 만다는 걸 체감했기에, 누군가가 무엇을 제안했을 때 아주 기쁜 마음으로 동참한다. 어제 퇴근 후 다녀온 '수화센터'  역시 친구의 제안으로 다녀왔다. 수화센터에는 두 명의 정상인 근무자와 한 명의 농아인 근무자가 있었다. 그네들의 용어로는 두 명의 '아'와 한 명의 '농' 근무자들이다.

 

고등학교 시절 축제를 하면, 조용한 샌님 같았던 친구들의 숨은 끼를 많이 발견했다. 한 친구는 수화도 할 줄 알았고, 팬플루트도 불 줄 알았으며, 찰흙으로 인형도 예쁘게 만들 줄 알았다. 그 친구는 자라서 목사가 되어 머나먼 타국에서 살고 있는데 가끔 동기들끼리 만나 그 친구의 근황을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그 친구가 수화로 노래를 불렀던 예쁜 모습이 떠올랐다. 기숙사에 놀러가서 친구가 축제에 대비해 수화 노래를 연습하는 걸 구경했던 그때가 내가 수화라는 것의 존재를,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절이었다. 그리고 두고두고 언젠가는 나도 수화를 배워야겠다, 라는 막연한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

 

겨울이면 시골 동네엔 하나 둘 트럭 포장마차가 생긴다. 꽃게를 쪄서 팔기도 하고, 어묵을 팔기도, 떡볶이나 순대를 팔기도 한다. 물론 국화빵도 판다. 내가 자주 가는 국화빵 포장마차는 주인이 '농'이다. 병원 인근의 길 좋은 목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국화빵을 구워서 파는데 우수리도 많이 얹어준다. 주인이 '농'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국화빵 굽느라 고개를 숙인 주인에게 큰소리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1분 이내로 '농'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몸짓으로 대화를 나눈다. 나도 미처 알지 못한 상태에서 국화빵을 사러 갔다가 주인 아저씨의 얼굴 표정과 손짓을 보고 '농'을 알아차리고는 무척 당황했다. 마치 외국인이 나에게 길을 묻는데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지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두 손을 내어 가리키기도 하고, 갯수를 말하기도 하고, 금액을 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 잘 먹겠다는 표현도 모두 몸짓과 눈짓, 얼굴 표정으로 했다. 그리고 어제 수화 수업 첫 시간에 알았다. 내가 한 동작이 바로 수화의 한 갈래길이라는 것을. 수화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국어처럼 누구나가 공통적으로 배우는 표준수화가 있다. 이는 '아'도 배우고, '농'도 배운다.  다른 하나는 자연수화라는 것인데 이것은 수화를 배울 기회가 없어 배우지 못한 '농'이 자연적으로 터득한 몸짓 수화이다. 그러니까 수화 문맹인이 하는 수화라고나 할까. 내가 했던 손짓이 바로 자연수화였던 것이다.

 

 

 

그리고 보니, 가끔 약국에 오시는 손님 중 '농'이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거리고 허리는 구부정하고 손이 거칠한 한 할머니는 꼭 물약소화제 한 박스와 파스 하나를 사가지고 가셨는데 눈썰미가 없다 보니 할머니를 미리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았다. "뭐 필요하세요?" 라는 질문 후 할머니가 내지르는 응응거리는 음성을 접하고서야 그 할머니를 알아차리고는 물건을 내드렸다. 그러나 그 물건이 뭐였는지 기억을 못하기라도 해서, 이거요, 이거요? 라고 말하며 물건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이잉, 이잉, 이라고 하셨는데 그 표정이 무척 귀여웠다. 언젠가는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할머니가 오셨는데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할머니가 '농'인 줄을 알았는데 어떤 물건을 원하는지 못 찾아주고 있는 거였다. 나 역시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이거요. 이거요? 하면서 하나하나 짚었고 할머니는 역시나 이잉, 이잉 소리를 내시며 물건을 고르셨다. 할머니가 원하는 물건을 내가 짚었을 때 할머니가 내시는 목소리는 이잉과 또 달랐기에, 그리고 함박 웃음으로 확인을 해주었기에 나는 쉬이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원하는 물건을 획득하신 할머니는 이제는 내게 직원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자기 자리에 가서 앉은 직원을 향해 눈을 흘기며 이잉, 이잉 소리를 내시며 손가락질을 하시는 거다. 그리고 나를 또 한 번 보면서 직원을 삿대질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알아달라 보채셨다. 나는 웃으며 할머니에게 알았다고 말을 했고, 할머니는 내 웃음을 보고 나서야 만족을 하시고는 가게문을 나섰다. 한 달 인가 후에 할머니가 또 오셨는데 들어오자부터 직원에게 삿대질을 했고, 또 흉을 보면서 나에게 동의를 구했다. 나는 속으로 할머니가 참 기억력이 좋으시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그 할머니의 전담은 내가 되었고, 그 할머니가 오실 때는 직원은 자리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표준수화를 알고 계셨을까. 내가 수화를 배우게 되면 다음에 그 할머니가 오셨을 때 수화로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수화센터에서 일을 하려면 하루종일 웃고 있어야한다고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농'은 소리를 못 듣기 때문에, '아'가 쉴 때 짓는 무표정한 얼굴, 그러니까 멍 때리는 얼굴을 견디지 못한다. 무표정한 얼굴의 사람을 접하게 되면, 그 사람이 뭐 때문에 화가 났을까, 라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자기가 뭘 잘못했지, 혹은 저 사람이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는 걸까. 그 두 가지 경우 이외의 것을 생각지 못한다. '아'가 아무리 그냥 멍때리는 표정이라고 말을 해도, '농'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수화 강사님의 사례를 들으면서 나는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직원이 무슨 큰 잘못이라고 한 것처럼 계속 삿대질과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욕을 했는데, 직원은 고작해야 무표정한 얼굴 표정과 차가운 말투를 보였을 뿐이었다. 물론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아니..물론 못했지만, 할머니가 올 때마다 직원에게 욕을 할 수준까지는 아니고 그저 차가운 느낌을 주는 사람, 정도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무척이나 서운해했고 가슴에 뭐가 맺힌 사람 마냥 올 때마다 직원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나는 그저 웃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웃기만 했는데, 할머니는 나에게는 포근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그건, 할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감각이 전적으로 '눈'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입을 열어 뻐끔거리는데 나는 어항 속 물고기 처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갑갑할까. 게다가 상대방이 차가운 표정까지 추가한다면 물고기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아,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구나.'라고 단박에 읽어내는 것이다. 반대로 입을 뻐끔거리며 누군가가 계속 싱글거리며 자기를 쳐다보면, 웃는 모습 만을 알 수 있는 물고기는 그 모습에서 호의를 읽는 것이다. 같은 수화를 해도 얼굴을 웃으며 하는 행동과 얼굴을 무표정으로 하고 하는 행동은 전혀 다른 뜻의 수화가 되듯이, 수화를 하지 않더라도 '농'은 '아'의 얼굴 표정으로 말로 들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다. 눈이 안 좋은 사람 중에 귀가 발달한 사람이 많듯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눈으로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직원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할머니는 자기를 싫어하는 느낌을, 활짝 웃고 있는 내 표정에서 할머니는 호의를 느꼈고 그 느낌을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말로 하지 못하니 온몸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수화 첫 수업을 들으면서 그제서야 할머니를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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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4-03-08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 굉장히 좋은데요. 집중하며 눈 깜빡이지 않고 읽었습니다. 그렇군요. 마저. 맞습니다.
전철 안에서 두 농'이 수화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서로 웃으면서 말을 하는데 엄청나게 재미있는 말인 것 같더라고요.
이야, 수화 참 좋구나 했습니다. 둘만 알아들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나도 수화 배워야지.. 하는 마음에 생겼고
실제로 수화 책을 사기도 했어요.. ㅎㅎ

달사르 2014-03-08 16:47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도 수화가 마치 음성 처럼 말하는 느낌이 들어서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것 같아요. 수화 정말 좋아요. '농'도 할 수 있고 일반인도 할 수 있고, 그리고 둘만 알아들을 수도 있고.

아. 수화를 책으로 배우는 건 권해드리지 않아요. 수화 샘이 절대 예습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수화 책에는 수화 동작이 사진으로 있는데 그게 익숙지 않은 사람은 되려 엉뚱한 동작으로 익힐 수가 있는데 이게 나중에 고치기가 참 힘들다면서 예습은 하지 말고, 대신 복습은 많이 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서울에도 수화센터가 곳곳에 아마 있을 거에요. 알아보시면 거기에서 '아'를 위한 수화강좌가 개설될 거에요. 수강료도 달에 2만원이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4-03-08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대한민국 수화 정책에는 어두운 면도 있다고 합니다.
말하는 데 장애가 있으면 무조건 수화를 가르친다고 해요.
수화를 하게 되면 말을 안하게 되지 않습니까 ? 그러면 아예 말을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장애 복지 국가들은 가급적이면 수화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르친다고 하네요.
귀에 좀 거슬려도, 듣기 힘들어서 말을 하게 만든다고 해요. 그래야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되니까요.
그 다음에 수화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우리나라 수화 정책은 장애인 중심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이라는 말이죠.
귀에 거슬리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달사르 2014-03-08 16:56   좋아요 0 | URL
네. 수화 정책에 관한 이야기도 수업 도중에 있었는데요. 우리나라 수화 정책의 문제점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농'들이 많이 힘들었겠다, 란 생각과 아직도 개선되어가야 할 것들이 많구나, 라는 생각 들었어요.

복지 국가들은 그렇게 하나요? 제 생각에도 그 순서가 맞는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듣는 쪽 기능을 우선 틔워 놓고 차선으로 수화를 가르치는 게 맞지요. 근데 우리나라는 '농'학교에서 조차 수화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선생님 중 수화 가능자가 없는 학교가 태반에, 있어도 한 두명이라고 하네요. 어떤 학교는 맹인 선생님이 농아를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고도 하니..ㅠ.ㅠ 결국 아이들이 정작 수화는 친구들에게서 배운다고 하는데, 학교 정규 과정에 수화가 없다는 게 이해가..

담번 수업 시간에 샘한테 좀더 물어봐야겠어요. 궁금한 게 많이 생기더라구요. 곰발 님 말씀도 물어보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4-03-08 20:26   좋아요 0 | URL
후후, 제가 듣기로는 수화를 강제적으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장애 복지 국가에서는 네가 소리 내는 건은 이상한 소리가 아니니 자신있게 말해도 된다, 이런 메시지를 심어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수화는 보통 네 목소리 이상해서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니 그냥 수화로 해... 라고 하고요. 그 차이는 너무 다른 거죠...

글구 책으로 접하는 건 정말 아닙니다. 저도 몇 번 공부하다고 그냥 포기했어요. ㅎㅎㅎ

달사르 2014-03-08 23:39   좋아요 0 | URL
응. 맞아요. 표준적이지 않은 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상한 게 아니죠. 곰발 님이 저번 포스팅에서 언급하신 네오포비아, 순혈주의 등이 여기에도 해당되는 듯해요. 나는 무리 밖에 외따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무리 밖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눈빛을 보내고.

무리를 지을 필요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기가 힘든가봐요. 왜냐면 내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위치에 있고 싶으니까. 좋은 건 내가 먼저 하고 싶고, 나는 존중받고 싶으니까. 그러나 이 생각은 반대로 뒤집으면 그렇지 않은 상황에 대한 '불안'을 감추고 있는 거지요. 언제라도 도태될 수 있다는 불안감. 국민 복지가 제대로 되지 않은 나라에 사는 국민들의 마음 심리 같아요.그래서 '농'에게도 그런 식의 이상한 시선을 보내고, '농'이 내는 보편적이지 않은 소리를 이상한 소리라고 규정하고. 자기 주위에 '농'이 있으면 감추려들고.

우리나라 수화에서 네 목소리 이상해서 사람들이 못 알아들으니..라는 말에는 이런 속내용이 숨어있지 않을까요. 곰발 님 댓글을 읽고 퍼뜩 든 생각입니다. (실은 제가 술을 걸치고 들어온지라, 좀 멍합니다. 횡설수설해도 이해를.. ^^)
 

 

언젠가의 무덤에 다녀왔다.

한참 전부터 엄마와 아빠는 당신들이 묻힐 땅을 사놓으셨고, 영정 사진도 곱게 찍어놨다. 미래의 그날이 고정된 시간이라면 한 치의 느림이나 빠름도 없이 초를 세며 다가올 테지만, 우리는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기에 그날은 탄성 있는 고무줄 처럼 멀리까지 늘어난다.

 

인간이란 게 늘상 존재의 불안함을 짙든 옅든 간에 안고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건 엄마의 영정 사진을 보고나서다. 동년배 지인들과 같이 영정 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할 때 이미 마음이 불편했지만, 막상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영정 사진을 접하고 나니 심장이 무거워졌다. 막연히 언젠가는 올 거라 생각했던 그날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가까울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었을까. 아직까지 부모형제에게 큰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내온 지금까지의 여정이 새삼 감동스러워 울먹여져서일까. 아니면 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거대한 심연을 잠시라도 들여다 본 것일까. 가끔 엄마 몰래 엄마의 영정 사진을 꺼내본다. 엄마가 곁에 있어도 느껴지는 먹먹함을 무기로 엄마에게 재롱도 떨어보고 청소도 가끔 해주고 용돈도 드리며 밤에는 자는 엄마의 얼굴을 자주 들여다본다.

 

작년 봄엔 엄마와 같이 쑥을 캐러 들판에 나갔다. 시장 좌판에 가면 3000원에 한 웅큼이나 쥘 수 있는데도,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는 쑥을 캐는 소녀의 마음으로 이미 구름 위 콩밭 인양 자세를 취하고 앉았다. 늘상 다리가 아프다면서도 쑥을 캘 때는 얼마나 재빠른지 다람쥐 같았다. 쑥을 캐는 법도 몰라 어색한 나는 자꾸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오고가는 차가 없는 깊은 산중의 들판과 하늘의 흐르는 구름은 그림 속 장면처럼 정지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그날이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언젠가의 그날 이후 난, 오늘의 엄마 모습을 눈이 시리도록 기억에서 꺼내볼 거라는 걸. 먼 미래가 저만치서 날아와 내 눈에 담겼다.

 

 

 

주말에 다녀온 부모님의 산소 자리는 지금은 밭이다. 십 년도 전에 사 놓은 그 밭은 심심산천인 아빠의 고향에서도 한참을 골짝으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그나마 최근에 농로길이라도 나서 차가 들어갈 수 있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꼼짝없이 걸어서 십 여분을 걸어가야 되는 곳이었다. 멀미날 정도로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넓은 들판이 나왔고, 군데군데 무덤과 상석 들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주차를 하려니 우리 차 뒤를 따라 온 차 두 대가 빵빵거린다. 갈림길까지 내려와 길을 비켜주니, 지나가는 차들이 아니었는지 인근에 주차를 한다. 내리는 사람들의 모자와 복장을 보니 작업복 차림이다. 우리도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니 그쪽에서 아는 체를 하는 게 아닌가. 아빠 고향 사람들이었고, 우리처럼 선산 자리에 심어놓은 유실수를 관리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간만에 만난 고향 사람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지기 시작했고 우린 차에서 짐을 내렸다.

 

트렁크를 열어보니 비료 포대가 너댓 개 보였고 삽이며 호미, 낫, 가위 등이 있었다. 남동생이 비료 포대를 하나 안고 밭으로 걸어갔고, 나도 따라서 비료 포대를 하나 들어서 매실 나무가 있는 우리 밭 두렁에 놔뒀다. 차에서 매실 나무 밭까지는 100 미터 정도 되었다. 동생이 비료 포대를 또 하나 들었고, 나도 또 하나 들었다. 좀 무겁다는 느낌이 들어서 5킬로그램이나 나가려나 생각하던 찰나, 엄마와 수다를 떨던 할머니 한 분이 나를 보고 여장부라며 놀라셨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동생에게 비료 포대가 얼마나 나가냐고 물어보니, 20킬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비료 포대의 무게를 먼저 알았다면 절대 들지 않았을 무게다. 비료 포대와 도구들, 음료수 등을 놓고 나서 밭을 둘러보았다. 300 평의 작은 밭떼기에 매실이 서른 그루 쯤 보였고, 곳곳에 더덕꽃을 메단 더덕 줄기의 흔적이 보였다. 엄마가 아침부터 우리를 현혹시켰던 문제의 더덕 줄기다. 신이 났다. 더덕꽃은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 더덕줄기 밑만 찾으면 더덕은 절로 캐어지리라. 마음은 이미 더덕무침을 하고, 더덕전을 부치느라 부산하다.

 

더덕줄기는  잡풀들과 서로 엉켜 매실 나무를 어지럽게 휘감아 자랐던 흔적이 있었다. 아직은 추워 새로 돋는 더덕순은 보이지 않았다.  매실 나무에는 새순이 가지마다 들어찼다. 어디선가 듣기로 열매를 크고 튼실한 걸 얻기 위해서 가지치기를 한다고 했다.가지치기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고 머리를 써야 되는 일 같아서 나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섰다. 촌사람인 엄마와 아빠는 일을 능숙하게 하려니 싶어 따라나섰건만 웬걸. 다들 엉거주춤 자세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날까지 한 번도 만져보지도 않은 낫을 들고 나는 잡초베기를 시작했다. 매실나무 주위를 정리하려니 더덕줄기가 자꾸 몸에 걸린다. 일단 더덕을 캐야겠다. 더덕줄기를 잡아당기면서 뿌리를 찾으려 했으나 오줌줄기 시원찮은 뒷방 늙은이 처럼 더덕줄기는 밑으로 내려가면서 그 줄기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해서 다른 더덕줄기도 찾아봤으나 모두 매한가지다. 졸지에 더덕줄기를 보고서도 더덕 뿌리를 찾지 못하는 눈 먼 사람이 되었다.

 

당장 더덕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도 않은 더덕줄기는 이제 어쩐다. 어지러운 더덕줄기 때문에 매실나무는 세파에 찌든 젊은이 처럼 찌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뿌리인 더덕이 땅 속에 있으니 더덕줄기를 베어내도 무방하겠다 싶어 과감히 낫질을 시작했다. 이름 모를 잡풀들도 꽤 많이 보였는데 죄다 낫질을 했다. 낫질에 잘려 매실순 근처에 남겨져 세찬 바람에 휘날리는 더덕줄기는 손으로 잡아당겼다. 아빠와 나는 매실나무 주변을 정리했고, 동생은 정리를 마친 매실 나무 주변에 동그랗게 도랑을 만들었다. 엄마는 호미를 들고 딸기나무를 하나씩 캤다. 딸기나무는 자라게 되면 옷에 들러붙기도 하고 가시도 많고 해서 무리지어 자라기 전에 뿌리를 캐내야 되었다. 언니는 낫도 호미도 들지 않고 손으로 더덕줄기를 잡아서 떼어내더니 이내 차로 들어갔다. 다들 자기 요령껏 일을 하는 형국이었다. 나는 장장 2 시간을 쉬지도 않고 일을 마친 다음 허리를 펴고 하늘을 봤다. 불현듯 작년 봄의 하늘이 떠올랐다. 그때 처럼 엄마는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고 바지에 흙이 묻는 것도 모르고 땅만 보며 손을 놀리고 있었다. 눈에 이슬이 비치려는 찰나, 동생이 부른다.

 

 

"누나. 비료 좀 들고 와. 이제 구덩이에 비료 넣을거야. 올해 매실 농사는 풍년이다 풍년."

 

 

 

서투른 농부의 말과 함께 고정된 하늘이 다시 흐른다.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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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6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도 책을 안 읽어서,

(아니, 읽긴 읽는데 끝까지 제대로 읽는 책이 없고 보다 중단한 책들이 태반이라서)

(아니, 외관상 읽긴 다 읽었는데 제대로 읽어내질 못해서 읽고 나서도 뭔 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래서 내가

나와 약속을 하나 만들었다.

 

책 사지 말기.

책을 정말 사고프면 한 권 다 읽고 사기.

그러니까 한 권 읽으면 한 권 살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하는 거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인데,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동생 방이 아주 훤해졌다. 동생 없는 동안 빈 방을 내 서재 삼아 그간 책장도 들이고 책도 잔뜩 사서 쌓아놨는데 이제 동생이 돌아오니 그 책들을 빼야 되게 생겼다. 그런데 내 방에도 책이 여기저기 가득가득해서 뺄 수가 없다. 해서, 조금이라도 팔아야겠다, 생각하고 책들을 주욱 살펴보니, 안 읽은 책들이 태반이다.ㅠ.ㅠ 아니, 읽다 만 책들 뿐이다. 제대로 끝까지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 책을 내다팔래도 일단 읽고나서 팔아야 되지 않겠나 싶지만, 요새는 특히 바쁜 철이라..하아..      게다가 이상한 고집이 있어, 한 번 읽고 나서 이해를 다 못 한 책은 안 읽은 책으로 간주해버리는 나쁜 버릇까지 있으니..ㅠ.ㅠ         

해서, 미적거리던 나를 보다 못한 동생이 책장과 함께 내 책들을 집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으로 옮겨놔버렸다. 내 책들을 지못미한 나는 아픈 마음에 옥상 쪽으로 가보지도 못한다.  

 

 

최근에 곰발님 이벤트에 당당히 5등으로 당첨되어 책을 2권 선물받았다. 받자부터 지금까지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데 만화책이라 가독성은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서 곱씹어 읽고 싶은 마음에 몇 번 째 도돌이를 하고 있다. 그러니 아직 안 읽은 책이 되는 셈이다.  그 와중에도 새 책 욕심은 끊임없이 일어 곰발님 서재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최근에 구설수에 휘말려 이리저리 마음 고생 중이라 그야말로 소금밭에 있는 심정인데 새 책이 자꾸 눈에 들어와 더 힘든, 나를 위한 책 같았다.

 

 

 

 

 

 

 

 

 

 

 

 

 

 

매일 알라딘에 들어와  책 표지만 보고, 한숨 한 번 내쉬고, 알라딘을 나갔다. 며칠을 계속.

 

 

그러다 어제 네이버 웹툰에서 치인트(치즈 인 더 트랙) 만화를 보게 되었는데 야호~

치인트를 보기 시작한 이래 가장 통쾌한 일이 발생했다. 난 댓글을 달진 않지만 (로긴하기 귀찮아서), 댓글을 꼼꼼히 보는 편이다. 근데 댓글 하나 보고 나면 댓글이 몇 십 개씩 달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다들 너무나 신이 났다. 치인트를 보는 사람들에겐 어제가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었는데, 주인공 설이를 힘들게 하던 여자를 설이 남친이 기막힌 방법으로 발라준 것이다. 안그래도 치인트가 드라마화 한다는 소식에 설이 역을 누가 할지, 남친 역을 누가 할지 궁금한 판국에 어제의 그 역전극은 그야말로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댓글을 꼼꼼히 보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치인트 관련 쇼핑 정보였는데 세상에나. 만화책이 있었다. 머그컵도 있었고, 티도 있었고, 팔찌, 목걸이 등등이 있었다. 앗. 이런 고급 정보를 이제사 보다니. ㅠ.ㅠ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알라딘에 들어왔다. 계속 바빴지만 짬짬이 알라딘에 살았다. 그리고 찾아냈다. 알라딘에서도 치인트 만화책을 구매할 수 있었다. 치인트가 몇 권이나 나온 거지? 짬짬이 몇 시간에 걸친 서핑으로 치인트가 무려 12권이나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3권씩 묶음으로 판매한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알라딘 노트!!!!!!!!!!!!!!!!!!!!!!!!!!!!!!!!!!!!!!!!!!!!!!!!!!!!!!!!!!!!!!!!!!!!!!!!!!!!!!!!

 

 

작년에 알라딘 노트 덕을 너무 많이 보았더랬다. 공부 못하는 자가 연장 탓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공부를 하려면 꼭 미피펜이 있어야되고, 예쁜 노트가 있어야되는데, 알라딘 노트는 너무 예쁘고 앙증맞아서 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알라딘 노트에 글을 쓰고파서 노트를 펴고 공부를 하는 행복한 나날들이 작년에는 아주 많이 있었다.

올해도 그 역사를 이어가야되는데, 이제 내게 남은 알라딘 노트가 없는데,

알라딘 노트를 받으려면 책을 사야되는데, 나는 기존의 책을 읽지 않아서 새 책을 살 수가 없다.

까짓거. 올해는 공부를 덜 하지 뭐. ㅠ.ㅠ

 

눈물을 머금고 알라딘 노트와 작별을 간신히 했는데, 빨리 알라딘 화면에서 알라딘 노트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인트의 꼬시킴에 곧바로 넉다운되어버렸다.

치인트를 갖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나와 했던 약속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을 깨버린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라, 최대한 싸게 구매를 하기 위해 작전을 펴기 시작한다.

일단 5만원을 만들면 2천원 적립. 알라딘 노트를 받을 수 있는 책을 끼워서 구매하기. 더 샾 사이트에 들어가서 5% 추가 할인 혜택 받기. 알라딘 전용 카드로 결제해서 12% 추가 할인 혜택 받기 등등의 잔머리를 최대한 굴려 구매 금액을 줄였다. 그렇게 4번을 반복한 결과, 치인트 12권과 알라딘 노트 4권과 그리고 몇 권의 신간을 구매했다.

 

 

 

 

 

 

 

 

 

 

 

 

 

 

 

 

 

 

 

 

그리고, 내가 나와 했던 약속의 시한을

내일로 변경했다.

 

만화책이 12권이니, 새 책을 앞으로 12권을 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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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2-2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덕끄덕) 네, 그래도 되는겁니다. 정말로요. 그래도 돼요.

달사르 2014-02-28 13:41   좋아요 0 | URL
우히히. 방금 책이 도착했어요. 이렇게 책이 빨리 온 적이 없었는데 말이죠. 완전 행복입니다. 방싯방싯. ^^

탄하 2014-02-28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거의 반전있는 생활소설인데요?
치인드 열광에 빵터졌다가
그거 12권과 알라딘 노트 4권이라는 소리에 완전 쓰러졌어요.

사실 저도 오늘 책 사러 왔는데.
적립금 모아서 가만히 두려 했더니
전에 행운의 램프에서 너무 큰 쿠폰이 당첨되어서리..ㅠ.ㅠ

달사르 2014-03-05 22:11   좋아요 0 | URL
ㅎㅎ 알라딘 노트를 가지고 나니
방학이 끝나버리네요. 알라딘 노트로 다시 열공해야될 듯요.

분홍신 님, 축하드려요~~
ㅎㅎ 쿠폰으로 뭘 사셨을까나~~~
분홍신 님 바쁘실테니 리뷰 올려달란 말은 못 드리겠고, 100자평이라도. ^^

2014-02-28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5 2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의 흉을 보려거든, 내 속이 썩어 문드러져야 한다."

 

얼마전 아는 언니네 놀러갔다가 들은 말이다. 그 언니와는 이제 알게 된 지가 횟수로 6년을 접어드는데 속이야기를 종종 하는 사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속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아서 거리감이 느껴진다,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친언니도 그런 말을 종종 듣는다고 하는 걸 보니 이것도 가족내력인 모양이다. 내 고민을 이 사람에게 하소연, 저 사람에게 하소연 하거나 치근덕대는 걸 싫어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고민이란 건 내 선에서 해결하는 게 원칙이다. 고민이 어느 정도 정리된 후 이후의 상황에 대한 상담 정도는 모를까, 한창 고민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그러니까 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뭐든 과장되기 쉽상이고, 게다가 털어놓고 난 후는 항시 후회하기 마련이다. 일단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발 없는 말이 되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러니까 내 속에서 나온 말이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의미다.

 

 

 

 

 

그 언니와 나는 속이야기를 할 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이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줄래. 내 이야기. 너만 알고 있어."

이런 말은 듣기는 쉬운데 지키기는 사실 어렵다. 세상에 나만 아는 비밀이라니, 얼마나 짜릿한가.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다가 마침내 병이 생긴 사람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살다보면 종종 타인의 비밀을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병이 생길 순 없지 않은가.

 

그럴 때 먼저 입 밖에 이렇게 말을 내뱉고 나면 이후의 행동에 책임지기 쉬워진다. 같은 결과물이라도 남이 시키는 것과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은 천지차이지 않은가. 타인이 자기 입에서 비밀 이야기를 해놓고는 (누가 말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비밀을 지키라고 말을 하면 곤혹스럽지만, 내가 먼저 비밀을 지키겠다고 말을 꺼내면 내 의지가 개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지키기가 좀더 쉬워진다. 첫 한 번은 어려울 수 있지만 곧 버릇이 들어 저절로 비밀을 지킬 수 있게 되면, 이후는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게 된다. 왜냐면 지킬 비밀이 하나일 때는 힘들지만 비밀이 여러 개가 되면 대수롭잖은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타인의 비밀 자체가 대수롭잖다는 말은 아니다. 타인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내 상황 자체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다. 타인의 비밀 자체는 어디까지가 보호받아야할 그 어떤 것의 일종이다. 타인은 나를 믿고 비밀을 말했으며 그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마음이 후련해졌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으며 또한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으로 일종의 동지적 사고를 가지게 된다. (물론 이후 비밀을 털어놓은 사람이 제 3자에게 말을 옮길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 또다른 괴로움에 빠질 수도 있지만 이는 나중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자.)

 

간혹 남의 비밀을 지킨답시고 제3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제3자는 남의 일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 상황 그 순간에야 미주알고주알 말이 많지만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그런 일이 있었나, 기억 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3자가 그 상황에 관심도 없는데 굳이 그 상황을 들춰가며, 게다가 거짓말까지 붙여가며 타인의 비밀을 지키는 경우는 한마디로 오버적인 행동인데 이것은 타인의 비밀을 자신의 자랑스러운 마음의 재산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나 타인의 비밀을 많이 알아. 나는 이 정도 되는 사람이야.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아.' 등등. 타인의 비밀은 절대 나의 (마음의) 재산이 될 수 없다. 그런 것으로 타인과 친분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은 타인을 진실되게 믿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타인을 이용할 뿐인 것이다. 나중에 거짓말이 들통났을 경우 그 욕이 고스란히 타인에게 갈 건데 그 책임을 과연 질 수나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타인은 정작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 거짓말을 한 상황 조차도 모르고 있는데 말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불러 자기들끼리 뭉쳐 제 몸피를 넓히는 데 재주가 있기 때문에 타인을 위한답시고 하는 거짓말은 그저 거짓말에 불과하다. 결코 하얘질 수 없다. (아. 타인을 지키기 위해 하게 되는 어쩔 수 없는 경우의 거짓말은 제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고민이나 비밀이란 것에 대해 이런 기본 생각을 가진 내가 앞서 언급한 언니에게 만큼은 간간이 비밀 이야기를 하곤 한다. 언니가 타인으로 인한 상처를 입었을 때 내가 들어주는 과정이 첫 시작이었는데 그 둘을 모두 아는 나는 갑작스러운 언니의 의기소침에 놀랐고 이후 지속적인 대화를 하면서  언니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언니와 있었던 비밀 이야기를 옮길까, 언니가 (또다른, 새로운) 걱정을 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나의 과거 경험으로 우러난 생각이다. 나 역시 과거 누군가에게 나의 비밀을 털어놓는 과정에서 꼭같은 고민을 했기 때문이다.) 고민을 털어놓을 때, 털어놓고 후련할 때와, 시간이 지난 후 고민이 입 밖으로 나와 오픈된 상황이 되어 내가 제어할 수 없게 되었을 때는 완전히 입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고민이 내 입 안에 들어 있을 때는 얼마든지 수정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 지울 수도, 없던 일로 만들수도 있지만, 입 밖에 나온 이상 그 고민은 더이상 나만이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인식되어진 오픈 상태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혹은 언령)의 무서운 일면인데, 이 상황에 심각하게 직면을 해본 사람은 어지간한 말은 입 밖에 내기 저어할 정도로 바뀔 수도 있다. 암튼, 내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언니의 마음 상태를 미루어 짐작한 나는 언니에게 이렇게 먼저 말을 꺼냈다.

"언니, 나 이 말 아무에게도 하지 않을게요."

시간이 흘러 나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내 고민과 내 비밀을 언니에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이 일어나고 1년도 훨씬 지나고 난 후였다. 직업적인 힘듦을 가족이나 기타 친한 지인에게 말하기가 어려웠던 나는 역시나 제 3자와의 관계를 알고 있는 언니가 편했고 그 언니는 놀라면서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었다. 그리고 언니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기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언니, 아무에게도 이 말 안해줬으면 해요."

 

 

 

시간이 또 흘러 며칠 전 언니는 소위 말하는 멘붕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언니는 미처 마음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 말을 할까 말까 저어했다. 그러나 이윽고 말을 하기로 생각을 했는지 입을 열었고 긴 이야기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동원해 최대한 언니를 도우려고 했고, 대화하는 와중에 언니의 상기된 얼굴은 조금씩 가라앉았다. 언니네 가족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지만 너무 버거웠던 언니는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나는 그 요청에 성실히 임했다. 마침내 언니는 마음의 평안을 찾았고 일상으로 조금은 돌아온 느낌이었다. 나는 우리 둘의 암묵적인 오랜 약속을 입 밖에 꺼냈다.

"언니,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하지 않을게요. 나는 우리 식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아요. 언니, 알고 있지요?"

 

입 밖으로 낸 말은 실은 내가 나에게 하는 약속이랄 수도 있다. 자칫 실수로 언니의 비밀을 말하지 않게 해달라는 나만의 기도법이라고나 할까. 입 밖으로 비밀을 말하고 싶어 간질거리는 내 입술에 대한 빗장이랄까. 타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한 경고랄까.

 

가끔 그 언니와 서로의 옛 상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서로의 상황을 체크하는 우리들은 이제 그 상처들이 더이상 아프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보다 세상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우리 둘이 서로에게 그런 존재라는 사실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언니는 언니의 시어머니에게 들은 말을 나에게 전해준다. "남의 흉을 보려거든, 내 속이 썩어 문드러져야해. 남의 흉을 보려면 제 속에 악한 기운을 담아야 되니 이 얼마나 힘든 일이냐. 우리는 이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남의 흉을 안 봐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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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하 2014-02-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켜야할 비밀이 많아지면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된다...이거, 기억해두면 좋을 원리네요.
일종의 마음 연습이 되는 것 같아요. 비밀이 생길 때마다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두면 빗장이 자주 걸리게 되고,
그러면 비밀을 지키는 것에 대해 그러려니...하는 습관으로 여기게 되는 것. 좋은 습관입니다.^^

아뉘, 언제 이렇게 많은 페이퍼를 남기셨어요?
제가 너무 뜸했다가 뒤통수 맞았네용.

2014-02-16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