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책을 안 읽어서,
(아니, 읽긴 읽는데 끝까지 제대로 읽는 책이 없고 보다 중단한 책들이 태반이라서)
(아니, 외관상 읽긴 다 읽었는데 제대로 읽어내질 못해서 읽고 나서도 뭔 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래서 내가
나와 약속을 하나 만들었다.
책 사지 말기.
책을 정말 사고프면 한 권 다 읽고 사기.
그러니까 한 권 읽으면 한 권 살 수 있는 티켓을 확보하는 거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인데, 퇴근해서 집에 와보니 동생 방이 아주 훤해졌다. 동생 없는 동안 빈 방을 내 서재 삼아 그간 책장도 들이고 책도 잔뜩 사서 쌓아놨는데 이제 동생이 돌아오니 그 책들을 빼야 되게 생겼다. 그런데 내 방에도 책이 여기저기 가득가득해서 뺄 수가 없다. 해서, 조금이라도 팔아야겠다, 생각하고 책들을 주욱 살펴보니, 안 읽은 책들이 태반이다.ㅠ.ㅠ 아니, 읽다 만 책들 뿐이다. 제대로 끝까지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 책을 내다팔래도 일단 읽고나서 팔아야 되지 않겠나 싶지만, 요새는 특히 바쁜 철이라..하아.. 게다가 이상한 고집이 있어, 한 번 읽고 나서 이해를 다 못 한 책은 안 읽은 책으로 간주해버리는 나쁜 버릇까지 있으니..ㅠ.ㅠ
해서, 미적거리던 나를 보다 못한 동생이 책장과 함께 내 책들을 집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참으로 옮겨놔버렸다. 내 책들을 지못미한 나는 아픈 마음에 옥상 쪽으로 가보지도 못한다.
최근에 곰발님 이벤트에 당당히 5등으로 당첨되어 책을 2권 선물받았다. 받자부터 지금까지 매일 조금씩 읽고 있는데 만화책이라 가독성은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생각을 하면서 곱씹어 읽고 싶은 마음에 몇 번 째 도돌이를 하고 있다. 그러니 아직 안 읽은 책이 되는 셈이다. 그 와중에도 새 책 욕심은 끊임없이 일어 곰발님 서재에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다. 최근에 구설수에 휘말려 이리저리 마음 고생 중이라 그야말로 소금밭에 있는 심정인데 새 책이 자꾸 눈에 들어와 더 힘든, 나를 위한 책 같았다.
매일 알라딘에 들어와 책 표지만 보고, 한숨 한 번 내쉬고, 알라딘을 나갔다. 며칠을 계속.
그러다 어제 네이버 웹툰에서 치인트(치즈 인 더 트랙) 만화를 보게 되었는데 야호~
치인트를 보기 시작한 이래 가장 통쾌한 일이 발생했다. 난 댓글을 달진 않지만 (로긴하기 귀찮아서), 댓글을 꼼꼼히 보는 편이다. 근데 댓글 하나 보고 나면 댓글이 몇 십 개씩 달리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다들 너무나 신이 났다. 치인트를 보는 사람들에겐 어제가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었는데, 주인공 설이를 힘들게 하던 여자를 설이 남친이 기막힌 방법으로 발라준 것이다. 안그래도 치인트가 드라마화 한다는 소식에 설이 역을 누가 할지, 남친 역을 누가 할지 궁금한 판국에 어제의 그 역전극은 그야말로 통쾌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댓글을 꼼꼼히 보던 중,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치인트 관련 쇼핑 정보였는데 세상에나. 만화책이 있었다. 머그컵도 있었고, 티도 있었고, 팔찌, 목걸이 등등이 있었다. 앗. 이런 고급 정보를 이제사 보다니. ㅠ.ㅠ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알라딘에 들어왔다. 계속 바빴지만 짬짬이 알라딘에 살았다. 그리고 찾아냈다. 알라딘에서도 치인트 만화책을 구매할 수 있었다. 치인트가 몇 권이나 나온 거지? 짬짬이 몇 시간에 걸친 서핑으로 치인트가 무려 12권이나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3권씩 묶음으로 판매한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알라딘 노트!!!!!!!!!!!!!!!!!!!!!!!!!!!!!!!!!!!!!!!!!!!!!!!!!!!!!!!!!!!!!!!!!!!!!!!!!!!!!!!!
작년에 알라딘 노트 덕을 너무 많이 보았더랬다. 공부 못하는 자가 연장 탓만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공부를 하려면 꼭 미피펜이 있어야되고, 예쁜 노트가 있어야되는데, 알라딘 노트는 너무 예쁘고 앙증맞아서 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알라딘 노트에 글을 쓰고파서 노트를 펴고 공부를 하는 행복한 나날들이 작년에는 아주 많이 있었다.
올해도 그 역사를 이어가야되는데, 이제 내게 남은 알라딘 노트가 없는데,
알라딘 노트를 받으려면 책을 사야되는데, 나는 기존의 책을 읽지 않아서 새 책을 살 수가 없다.
까짓거. 올해는 공부를 덜 하지 뭐. ㅠ.ㅠ
눈물을 머금고 알라딘 노트와 작별을 간신히 했는데, 빨리 알라딘 화면에서 알라딘 노트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인트의 꼬시킴에 곧바로 넉다운되어버렸다.
치인트를 갖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나와 했던 약속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을 깨버린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라, 최대한 싸게 구매를 하기 위해 작전을 펴기 시작한다.
일단 5만원을 만들면 2천원 적립. 알라딘 노트를 받을 수 있는 책을 끼워서 구매하기. 더 샾 사이트에 들어가서 5% 추가 할인 혜택 받기. 알라딘 전용 카드로 결제해서 12% 추가 할인 혜택 받기 등등의 잔머리를 최대한 굴려 구매 금액을 줄였다. 그렇게 4번을 반복한 결과, 치인트 12권과 알라딘 노트 4권과 그리고 몇 권의 신간을 구매했다.
그리고, 내가 나와 했던 약속의 시한을
내일로 변경했다.
만화책이 12권이니, 새 책을 앞으로 12권을 사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