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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담이다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2
김중혁 지음 / 민음사 / 2016년 8월
평점 :
소설 책 한 권을 읽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러닝 타임과 비슷했다. 스토리와 연결된 문장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고 작가의 농담 같은 갈무리 글로 마무리 되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소설가들에게는 어떻게 상당히 섭섭한 이야기일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에 읽었던 소설책 이외에 지금까지는 소설책이라고는 전혀 읽지 않았는데 이 소설책도 이웃 분의 선물이 아니었더라면 선택하지도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마침 보내주는 책을 읽지 않고 놔둘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일긴 했으나, 그간에 단절된 소설책의 기간에 대해 큰 미련은 없었다.
소설은 뭐랄까, 억지로 찾지 않았다는 것이 더 어울릴듯하다. 소설은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어떻게 꼭 답도 없는 인간의 극적인 삶의 운명론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빠트리는 악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소설가들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가도 어쩌지 못하는 삶을 만들어 놓고 독자는 머리 쥐 뜯게 하는 그런 가학자들이 역할은 아닐텐데 이를 두고 누구는 소설 읽는 재미라고도 한다. 재미는 무슨. 머리만 아플텐데, 따라서 소설의 허구로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자기 보호 본능이 도사리고 있지나 않을까라는 느낌이었다. 먹고 사는 일도 대가리 아픈 일이 즐비한데 소설에서까지 힘들어 하는 주인공들을 봐야 하겠는가 싶었다. 그런다고 어떻게 해결해 줄 수도 없는 일인데도 말이다. 그럼 소설가들이 벌여 놓은 운명을 소설가들이 주워 담아 정리도 못할 꺼면서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꾸며낸 이야기에 아픈 사연들이 혹시나 많이 들어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랄까, 현실보다 더 아리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현실에서도 더 소설 같은 머리 아픈 일들이 부지기수로 널려 있는데 소설에서까지 머리를 싸매야 하는 것도 탐탁하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더욱이 묵직한 주제들에서 비롯되는 것들로부터 소설책 한 권은 몇날 며칠 동안 또 가슴이 가볍지 않을 것만 같았고, 아 그럼 소설가는 뭐 먹고 살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 어느 소설가가 나를 위해 글 쓰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선물이 아니었더라면 일부러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 그래도 지금 읽어야 할 책이 쌓였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웃의 선물로 받은 책이라는 부채의식이 발동된 탓도 있다. 그런데 역시나 나의 걱정이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존재론적인 소설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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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일단 각설하고, 우선 소설이니 이해를 위해 스토리를 간략히 요약하자.
스탠드 업 코미디언 송우영이 주인공이다. 그의 어머니의 사망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알지 못 했던 형이 있었다.(그의 어머니는 송우영에게 씨가 다른 형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숨겼던 모양이다. 그의 어머니가 죽고 난에 형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숨겨진 형 이일영은 우주 비행사. 그러나 형 이일영이 우주선에서 사고가 나고 우주의 미아가 된다. 점점 좁혀져 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하면서 소설 중간중간에 검은 바탕의 흰 글씨로 형이 내레이션으로 드문 드문 소설은 구성하고 있다. 특히 죽어가는 형이 있는 줄도 모르고 송우영은 어머니가 남긴 유품에서 찾은 편지를 형 이일영에게 전해주려 하지만 지금 형은 우주에서 어딘가를 떠돌며 서서히 소멸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른다. 형 이일영의 소재를 알고 어머니의 편지를 전해주려고 이일영의 숙부(이일영의 아버지 동생이자 어머니의 전 남편) 찾아간다. 그러나 이일영의 숙부와는 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자신의 어머니 즉 이일영의 숙부는 어머니에게 거칠게 퍼붓는다. 어머니의 전 남편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송우영은 대들기도 한다. 어머니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하는 투였다. 그리고 같은 일을 하는 스탠드 업 코미디언인 세미(선배)와 함께 이일영의 여자 강차연을 찾아가지만 만나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강차연과 조우하게 되고, 강차연과 함께 송우영은 녹음 스튜디오를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형 이일영에게 어머니의 편지를 세미가 낭독하고 녹음을 하고 강차연이 이 녹음된 음성을 이일영이 죽어가는 우주로 날려 보내려 한다. 어머니의 음성처럼 닮게 세미가 읽은 편지는 이일영에게 전달될 수 있는 마냥 그렇게 농담 같은 이야기가 끝을 맺는다. 송우영의 어머니는 죽기 전 이일영과 가끔 만났던 걸로 되어 있다. 이일영에게 애틋함과 더불어서 떠나보낸 아들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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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설 속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죄책감이었다. 남편이 죽고 어머니는 재가를 했다. (송우영과 이일영의 숙부의 대화에서 나온다. 남편이 사고로 죽은 것도 이야기를 하고 죽자마자 아이(이일영)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 버린 아들이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라는 것이 이일영에게 쓴 편지에서 나온다. 함께 살아주지 못한 죄를 어머니는 편지에서 아들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녹여 낸다. 또한 이일영에게서 송우영으로 투영되고 송우영과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한 점이었다. 이 소설은 송우영의 스탠드 업 코미디라는 직업이란 설정에서 송우영의 코미디 대사에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물론 송우영의 코미디는 소설 상에서는 독자로써는 전혀 웃기지 않았지만 설정상으로는 웃기는 재능이 있음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형 이일영이 죽어간다는 점이다. 같은 어머니에 아버지가 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죽은 어머니를 모르는 이일영은 그 또한 우주의 미아가 되어서 죽어가는 순간이다. 마지막에는 결국 천국으로 떠나버린 어머니의 음성과 우주 미아가 된 형과 농담처럼 만나게 될 것을 암시로 끝을 맺으니까 말이다. 나는 송우영과 이일영 이 사이에서 상당한 페이소스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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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스토리에 있어서, 송우영의 죽은 어머니가 전 남편을 잃고 계속 아들 이일영과 함께 살았더라면, 또는 재가하지 않고 송우영을 낳지 않았더라면, 이 소설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다른 아들 둘을 둔 어머니에게 나는 방점을 찍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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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존재론에 대한 고민이 덧대진다. 여자나 남자가 만나 아이를 낳는다는 것! 참 무서운 일이고도 일상적인 일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낳지 않는다면 고민도 없다. 슬픔도 없고 반대로 행복도 없다. 그저 없다.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아무도 없다. 낳아서 아들을 버려야 하고 또 낳아서 형의 존재도 모르고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소설은 이런 페이소스가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가슴이 아리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여간 소설가는 농담처럼 던져 놓고 독자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사람들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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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처럼 일상적인 잔인한 존재론적 모순의 포로인 셈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물었던,(사실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 그러나 나의 딸아이는 아직 한 번도 나에게 묻지 않았던 질문과 같은 거나 비슷하지 않을까 했다. 능력이 없는 책임감은 고통과 같다는 생각이 떨치지 못했으므로, 나는 딸아이에게 가급적이면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무슨 사연으로 자식을 버린다는 생각은 한치도 허용할 수 없었다. 생물학적인 부모는 단지 생물적일 뿐이다. 감정적인 부분은 생물학적인 유전자에서 침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버린 아들이 어머니와 가끔 만나고 애틋함을 키웠다는 것도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라면 아들을 버리지 못한다. 책임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인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함께 할 수 없었던 아들을 두고서 다시 결혼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버린 아들의 죄책감을 새로운 아들에게 투영시키려는 어머니는 어떻게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은 가시질 않는다. 형은 형이고 자신은 자신일 뿐인데 결국 어머니의 원인적 업보를 두 아들은 고스란히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죽었으니 더 이상 소설적인 궁금증은 해소할 길은 없다. 사진을 감상하다 보면 '사진의 감상자 마음이니 각자가 제 나름대로 알아서 감상하세요.'라는 작가의 멘트를 무척 싫어한다. 마찬가지로 이런 소설가의 태도 또한 설명할 길은 없다. 소설도 결국은 읽는 독자가 판단하고 이해하고 스토리를 마무리해야 하는 것과 같은, 보는 사람 마음이니 읽는 독자도 네 맘대로이라는 무책임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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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목이 농담이라고 했다. 코미디 대사처럼 농담같이 웃기면서도 설렁설렁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길래 뭔가 가볍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이 일어 났으나, 소설의 문장은 가벼우나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역시 농담에는 우러나는 뼈가 걸려 씹혔다. 마치 삼겹살의 오도독뼈처럼. 느낌의 오도독한 식감이랄까 했다. 혹은 진액을 뽑아내는 것과 비슷한 국물을 내는데 아주 탁월한 소설의 뼈라고나 할까.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으니까. 비록 소설적인 허구였다 하더라도 지어낸 이야기만도 아닐 것만 같았다. 아주 극히 드문 경우지만 씨가 다른 형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었으니 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무언가 침울한 뼈가 툭 튀어 나올것만 같았다. 지난 밤 사이 나는 잠을 뒤척이지 못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내 깊은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쉽사리 잠도 들지 못했다. 소설이 뭐간데 자꾸 생각이 나고 울리는 것일까 했다. 그런데 잠을 뒤척일 정도로 연상되는 이야기들을 정리하기가 간단하지 않았고 우선 떠오른 생각이나마 주절 거리듯 몇 자 적고 마무리하기로 한다. 하여간 소설은 가끔 이렇게 깨운하지 않고 여운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는 거. 그래서 소설은 자주 안 읽게 되나 싶었다. 어쩌겠나, 안 그래도 현실의 삶이 머리 아픈데 소설까지 나를 끍어 대는 기분이랄까. 어쩌면 소설가는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뻑뻑 끍는데는 일단 성공한 셈이다. 운명은 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미 다른 형제도 보기 어려운 마당에 아비가 다른 다른 형제 이야기라니 아 그런 설정 난 우울해서 말이지. 늘 그럴지도 모른다.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거. 현상으로 일은 벌어지고 수습은 추상으로 마무리 짓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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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다음 편도 부탁드린다. 다음 편의 제목을 "나는 진담이다"로 이어서 한 편을 더 쓰시라. 죽어가는 형 이일영을 극적으로 구출해서 다시 되돌아 오게 하고 아비 다른 동생을 만나게 하고, 강차연과 결혼 시켜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시켜놔 주시길. 하여간 퍼질러 놓고 주서 담지 않는 스토리, 별로 마음에 안든다. 안그럼 재미없어! 소설 책 한 권이라도 좀 편하게 흐뭇하게 좀 해주면 덧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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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책 감사히 받아 읽었습니다. 좀 일찍 리뷰 써야 했는데요. 구차하게 늦은 변명을 대자면, 이런 저런 경황없는 일들이라서 그런지 차일피일. 리뷰도 막 갈기듯이 난사했습니다. 별점은 "나는 진담이다"라는 후편이 나올 때까지 유보하겠습니다.ㅎㅎㅎ